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 김진영의 벤야민 강의실
김진영 지음 / 포스트카드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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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김진영의 벤야민 강의실’이라는 부제가 달린 것처럼 1918년 8월에 작고하신 김진영 선생께서 2015년에 일반을 대상으로 ‘발터 벤야밈과 근대성’이라는 제목으로 했던 10차례의 대중강연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사실 오래전에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를 읽고 발터 벤야민에 대한 관심이 일었지만, 그가 쓴 책들을 더 읽지 못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있던 참입니다. 김진영선생은 강의를 듣는 사람들에게 벤야민의 사유에 대하여 주관성과 객관성이라는 두 성찰의 극이 균형을 맞춘 가운데 비판적으로 읽어내기를 희망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벤야민의 사유에 바로 뛰어들기 보다는 벤야민이라는 개인의 삶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도 하였습니다.

모두 10개로 이루어진 강의 가운데 1강은 유년기에서 장년기에 이르는 발터 벤야민의 삶을 추적하면서, 그의 삶에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사건들의 의미를 짚었습니다. 2강은 벤야민의 지적인 삶이 아니라 개인적인 삶을 하나의 텍스트로 보고 읽으면서 검토해갑니다. 3강부터 10강까지는 근대성에 대한 벤야민의 사유를 검토하고 있는데, 3강에서는 근대란 비상사태라는 전제로부터 시작합니다.

벤야민에게 근대란 ‘방금 지나간 과거’였던 것입니다. 그의 저서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바로 ‘현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방금 지나간 시간’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벤야민이 살던 시기에도 과거에 비하여 속도면에서 엄청난 발전이 있었습니다. 선생은 하이네가 기차를 처음 탔을 때 세상이 사라져 버렸다고 외친 사실을 인용하였습니다. “기차를 탈 때 마차와는 확연히 다른 속도감 때문에 마차 위에서 보던 익히 알고 있던 풍경이 우리 앞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함축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강의에서는 근대성과 신화성, 종교, 정치, 육체, 예술, 대도시, 역사 등의 순서로 벤야민이 바라본 근대성에 대한 사유를 분석하고 설명해나갑니다. 강의를 들을 때나 책을 읽을 때 흔히 느끼는 점입니다만, 강의 혹은 책에서 인용하는 내용이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는 사람이 익히 알고 있는 것이라면 설명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소설의 경우도 소설의 무대가 익숙한 경우에는 이야기가 전개되어 가는 과정이 머릿속에 훤히 전개되기 때문에 맥락이 끊기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저자가 벤야민의 사유를 설명하면서 인용하는 것들은 상당수가 우리가 잘 알고 있어서 이해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오이디푸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테베에서 추방당한 오이디푸스가 갈 데가 없어 도달한 곳은 삶과 죽음의 경계인 하데스였다고 합니다. 누구도 추방당한 자를 도와주거나 받아주면 안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오이디푸스가 그의 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이고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4자녀를 낳는 패륜을 저질렀지만, 이는 오직 신탁에 예정된 일이었기 때문에 그의 잘못이라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선왕 라이오스가 저지른 죄가 아들에까지 미친 것이라면 신탁이 잘못된 탓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게 된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 후에 테베를 떠나 작은 딸 안티고네에 의지하여 세상을 떠돌다 죽었다는 것이 신화의 내용입니다. 즉 테베에서 추방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떠나간 것입니다. 여기에는 자신의 잘 못으로 테베의 백성들이 역병으로 고난을 받고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자는 벤야민의 사유에서 읽히는 ‘당대의 시간이, 나아가 인류사의 모든 시간이 무상하고도 잔인한 헛되며, 오로지 승리한 자들만을 위한 것으로, 비역사이며 비상사태의 시간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짚어서, 이를 바로 잡아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려면 미래에 대한 설계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상황을 엄정하게 기록하고 개선할 바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책의 제목을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로 정한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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