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다 - 전염병에 의한 동물 살처분 매몰지에 대한 기록
문선희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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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은 신이 인간에 내린 가장 큰 축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살기가 복잡해지면서 내 일이 아닌 것은 그만큼 쉽게 잊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의도적으로 잊으려 노력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느 해던가 조류독감, 구제역 등이 돌면서 닭이나 오리, 돼지 등을 대규모로 살처분하는 모습이 방송을 탄 것을 기억합니다. 널찍하게 파놓은 구덩이에 버둥거리는 동물을 쏟아 붓고는 흙을 덮어 생매장하는 모습에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동물을 살처분해서 묻은 장소가 어디인지 궁금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뒤로 그 장소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잊혀져가는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묻다>는 2010년 우리나라의 축산농가를 강타한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살처분되었던 동물들이 묻힌 장소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들 동물전염병을 관리하는데 있어 살처분이 유일한 방법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작가에 대한 소개가 분명치 않습니다만 사진작가인 듯합니다. 그래서 살처분 동물을 묻은 장소를 곰팡이가 뒤덮고 있거나, 시간이 많이 경과한 곳의 경우 풀이 자라 뒤덮고 있는 사진들을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은 백 마디의 말보다도 정황을 담은 사진 한 장이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책에 실려 있는 살처분된 동물을 묻은 장소를 담은 사진이 충격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비가 늘면서 가축사육방식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식용육의 소요가 늘면서 풀어놓고 키우던 옛날 방식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다가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특히 단위 면적에 키우는 동물의 개체수를 최대한 늘려 잡는 밀집사육의 경우는 동물의 면역이 떨어지기 때문에 동물전염병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구제역이나 조류독감과 같은 급성 전염병의 경우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표준처리방식을 수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물사육농장의 왕래를 금하고 전염병이 발생한 농장을 중심으로 일정 거리 안에 있는 농장의 동물을 살처분하는 방식입니다.

작가는 이 경우에 처분 대상인 동물을 안락사시킨 후 소각하거나 매몰하라고 법에서 권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급박한 상황임을 빌어 생매장하고 있는 것은 불법이라고 주장합니다. 동물전염병을 조기에 차단해야 하는 행정당국의 입장에서는 법이 정한대로 하다가는 전염병이 전국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시간과의 싸움일 수밖에 없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과연 급성 동물전염병을 조기에 종식시키려면 빠른 시간에 살처분을 해서 건강한 동물들과 차단시켜야 한다면 법을 보완하여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2013년부터 시작한 작가의 살처분 장소의 뒷모습에 대한 추적은 사진전을 통하여 세상에 알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관련 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자칫하면 단발성 행사로 끝났을 수도 있는 일을 사명감을 더해져 후속조치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참 장한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만 동물에 대한 안쓰러운 생각으로 감상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인 아닌지 하는 점입니다. 매몰장소에 출사를 다녀오는 날이면 동물들이 차를 따라오지 않나 후사경을 들여다보거나, 동물의 그림자가 밤새도록 창문 밖을 서성이는 느낌이 들었다고 적은 것을 보면 작가에게도 정신적으로 부담스러운 작업이 아니었난 싶습니다. 급성동물전염병의 관리가 과연 단순하게 인간들의 경제적 요구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인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고, 또한 전염병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하여 살처분 이외의 방법이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인가 등도 면밀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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