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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가면 키스를 훔쳐라 - 에로틱 파리 스케치
존 백스터 지음, 이강룡 옮김 / 푸른숲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주책맞게도 ‘에로틱 파리 스케치’라는 부제에 끌렸던 모양이다. 하지만 작가 역시 1939년생이니 저보다 무려 15살이나 많은 것으로 위안을 삼아보려 합니다. 길어 보이지만 출판사가 요약한 이 책의 성격을 소개하는 것이 더 쉬울 듯합니다.
“프랑스 여행 및 레스토랑을 소개한 『미슐랭 가이드』와 미국 뉴욕 여성들의 대담한 성 담론의 대명사 <섹스 앤 더 시티>를 합친 것 같은 독특한 분위기의 에세이. 영화, 미술, 문학, 사진 등 온갖 예술 장르를 넘나들며 우리가 알지 못했던 파리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프랑스인의 성 풍속도, 동성애, 사창가, 포르노그래피 예술 등 성과 관련된 주제도 대담하게 다루고 있다.”
1939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태어난 저자는 시골 마을의 철도국에서 십 년을 일하고서는 사표를 내던지고 영국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영국 BBC방송국에서 통신원을 거쳐 미국의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 평론가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일을 믿지 않는 편입니다만, 우연히 10년 전 파리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던 연인 마리-도미니크와 보냈던 즐거운 순간을 최면을 통해 되살리면서 그녀와 다시 연결되었고, 결국 그녀를 찾아 파리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역시 사랑의 힘은 크고 위대한 것 같습니다.
파리에 머물면서 필연적으로 열렬한 파리 예찬자가 된 그는 파리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면서 틀에 박힌 내용이 아니라 색다른 시각으로 소개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에로틱 파리 스케치’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파리 사람들의 성담론을 가감 없이 소개하겠다는 것입니다. 부제에 크게 기대를 했더라면 이야기의 초반에 크게 실망하고 책읽기를 그만 둘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수위를 조금씩 높여가다가 후반에는 상당한 수위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론을 이야기하면 연인과의 사랑이 열매를 맺어 귀여운 공주를 얻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저자가 시나리오 작업과 영화평론 등의 일을 해왔기 때문에 영화분야에서는 고금을 막론하고 제가 모르는 뒷이야기를 많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남의 뒷담화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지 않습니까? 제 경우는 파에 머문시간이 불과 4일도 되지 않아서인지 저자가 말하는 ‘파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억제되어 있던 무언가가 해방되고 맘껏 상상력을 발휘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참 묘했다.(36쪽)’라는 저자의 이야기에 쉽게 공감되지 않더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수에서 황량한 바람이 불고, 그들이 랍스터 뉴버그에 관해 들었는지는 오직 신만이 알고 있다’며 아침마다 나는 시카고란 도시가 주던 으스스한 기운을 느꼈다.(56쪽)”고 한 부분은 충분히 공감합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시카로를 방문했던 적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요리를 대하는 태도만큼 그 사람에 대한 평판을 좌우하는 잣대도 없다.(70쪽)’고 한 저자의 충고를 마음에 새겨두어야 하겠습니다. 사실 제 경우는 먹는 것에 대범한 편입니다.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것을 굳이 찾아다니면서 먹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사는데 필요한 만큼 열량을 얻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시테 섬과 생 루이 섬 주위를 가르며 파리를 관통하는 센 강의 곡선은 키스를 하려고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약간 젖힌 여인의 얼굴 같다(97쪽)‘고 한 표현은 따로 챙겨두었다가 언젠가는 써먹을 생각입니다. 구글지도를 찾아 배율을 이리저리 바꾸어보아도 전혀 실감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만, 저자처럼 다양한 경험을 축적한 분이 그렇다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기획의도라할 성에 관한 이야기는 따로 챙길만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프랑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꺼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굳이 파리 사람들의 성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할 이유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떻든 책을 읽으면서 무수히 붙여두었던 표시를 그냥 떼어내기는 찜찜한 무엇이 남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