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내린다
마르탱 파주 지음, 발레리 해밀 그림, 이상해 옮김 / 열림원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얼마 전에 프랑스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파리에서 출발하여 북쪽 해안에 있는 몽생미셸까지 올라갔다가, 서쪽으로 돌아서 몇 곳의 고성과 절벽 마을을 구경하고, 아를과 액상 프로방스 등 인상파화가들이 활동한 지역을 보고 니스와 깐느, 모나코 등 남쪽 해안을 거쳐 밀라노에서 귀국하는 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행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절반 정도는 비를 맞아가며 다녀야 했습니다. 해외여행을 꽤 다녀온 셈입니다만, 이토록 빗속을 헤맨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프랑스 작가 마르탱 파주가 쓴 산문집 <비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내린다>가 눈에 들어온 것도 어쩌면 그런 인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116쪽에 불과한 얇은 책인데 작가의 번뜩이는 재치가 느껴지는 느낌이 남습니다. 속표지를 넘기면 사람들이 쓴 색색의 우산 위로 흩뿌리는 빗줄기를 그린 삽화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비는 세상이 잠시 정지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패스워드다. 비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 그건 다름을 긍정하는 것이다.” 어떻습니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구절 아닙니까?

비에 대한 속깊은 생각을 정리한 작가도 비와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고백합니다. 더구나 ‘잘게 부서져 와 닿는 그 차가운 접촉을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기억합니다. 그러니까 비라는 존재는 일단 부정적인 이미지로 시나브로 작가의 의식에 자리한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와인 즐기는 법을 배우듯 비를 좋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말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비를 좋아할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경우는 때에 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 실내에 앉아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볼 때는 좋은 느낌이지만, 걷거나 운전할 때 비가 내리는 상황은 별로 반갑지가 않은 편입니다.

‘삶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반면, 비가 오면 뭔가가 일어난다(15쪽)’라는 구절을 읽는 순간 멍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번 프랑스 여행에서 몽마르트에 갔을 때 500유로가 넘는 돈을 소매치기 당했던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까지의 해외여행은 대체로 날씨가 나쁘지 않았던 탓인지 소매치기와 같은 험한 꼴을 보지 않았는데, 특히 비가 많이 내렸던 파리 여행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 비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서 말입니다. 이어서 ‘비는 우리에게 재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19쪽)’는 대목에서는 무릎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는 희생양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태만, 과오, 기만을 숨기기 위해 비를 이용한다.(31쪽)’라는 대목에 이르게 되면 얼굴이 붉어 옴을 느끼기 됩니다. 몽마르트에서는 사진을 찍기에 집중하느라 아무래도 가방을 챙기는 일을 소홀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작가는 ‘이 책은 그들이 매일 쏟아내는 비난으로부터 비를 옹호하기 위하여’ 쓴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아무래도 비가 내리면 잔치나 행사를 진행하는데 어려움을 겪기 마련입니다. 축구와 같은 경기에서는 이변이 속출하고(물론 수중경기도 경기의 일부라고 이야기합니다만), 야구 같은 경기는 아예 취소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비는 폭력, 정상적인 상태, 질서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준다. 하늘에 그어지는 빗줄기는 우리를 받쳐주는 기둥이다(59쪽)’라고 강변합니다. 비가 내리면 소매치기도 작업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오판한 셈입니다만, 날씨가 궂으면 아무래도 작업에 나서는 선수들이 줄어들기는 할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 비올 때의 몽마르트에 있는 성심성당에서 볼 수 있는 무엇에 대한 언급을 읽으면서 또 다시 아픈 추억을 떠올려야 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눈물과 비를 비유한 대목도 있습니다. 당연히 집중해서 읽었지만 불과 한 쪽 밖에 되지 않는 내용이 제대로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생각을 해볼 일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