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게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 통계와 역사에 문학과 과학이 버무려진 생의 마지막 풍경
하이더 와라이치 지음, 홍지수 옮김 / 부키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의학의 발전으로 인하여 평균 수명이 대폭 늘어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죽음을 입에 올리는 것을 꺼려하고 있습니다. 또한 죽음을 명쾌하게 정의하는 일도 쉽지 않는 것 같습니다. <죽는 게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은 죽음에 관하여 시시콜콜한 데까지 캐어본 책입니다. 이의 저자 하이더 와라이치 (Haider Warraich)는 의사이자 임상연구가이며 작가이기도 합니다. 2009년 파키스탄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010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의대 부속 베스 이스라엘 디커니스 병원에서 내과 수련을 마치고, 지금은 듀크대학병원에서 심장학 전임의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세포의 죽음으로부터 인간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자신의 경험을 포함하여 다양한 연구성과들을 인용하여 설명합니다. 의학의 발전은 역설적으로 죽음의 정의를 모호하게 만들었고, 저자의 말대로 죽음보다 더 끔찍한 목숨이 등장하게 만들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입원한 환자가 의료진에게 살려 달라 애원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제는 편안하게 죽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환자를 만나는 일이 그리 드물지 않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의학이 인간ㅇ로 하여금 생존할 능력을 강화해주는 동시에 세상을 떠날 권리를 침해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생명의 불꽃을 중단시킬 수 있는 권리가 과연 의사에게 있을까하는 의문이 싹텄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정의가 심장사에서 뇌사로 옮겨가면서 인간답게 사유하는 기능이 무력화된 사람에 대한 연명치료에 대한 의미가 새롭게 정의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즉, 뇌기능이 사라져 이미 살아있는 것이라고 할 수 없는 환자를 다양한 연명치료로 그저 심장만 뛰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일이라고 보아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에서 적극적 안락사에로 발전하는 경향도 생기고 있습니다.

죽음의 정의가 심장사에서 뇌사로 이행하게 된 배경에는 장기이식도 한 몫을 해왔습니다. 심장이 멈춘 다음에 장기를 적출하는 경우에는 이식된 장기가 제 역할을 할 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뇌사판정을 받게 되면 심장박동을 유지하는 장치를 끄고 죽음을 유도하고 이식할 수 있는 장기를 적출하게 된 것입니다.

저 역시 인간의 죽음에 대하여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에 대하여 새롭게 배우는 개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옮긴이의 참신한 번역도 한 몫을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맛보기 죽음(pre-death)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만성질환이 증가하면서 대부분의 죽음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질질 끌면서 서서히 소진해가는 과정을 말한다고 합니다. 만성 질환으로 인하여 죽음을 맞기 전에 무력한 상태로 지내는 시간을 말합니다. 과거에는 심근경색 혹은 뇌졸중 등과 같이 죽음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경우와는 분명 차별되는 면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필자는 아직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인간은 태어나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새롭게 가꾸고 나면 자리를 내어주고 떠난다(255쪽)’라는 부분이 마음에 강하게 와  닿았습니다. 저자가 한 무신론자 환자로부터 들은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신론자는 믿을 수 없다고 인식하는 나라도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는 ‘무신론자를 강간범이과 마찬가지로 미덥지 않고 범죄 의도를 지닌 사람으로 여기지만 종교가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254쪽)’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 신앙인은 ‘무신론자’라는 용어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종교라는 가면 뒤에 몸을 숨긴 채 나쁜 짓을 하는 것보다는 더 양심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도 말입니다.

이 책의 뒷부분은 안락사에 관한 미국인들의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대하여도 설명합니다. 아무래도 이 책을 책장에 모셔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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