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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소통법 - 신화의 나라, 이집트에서 터득한 대화의 기술 51가지
이정숙 지음, 조창연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멀티태스킹이 주목을 받은 적 있습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으로 칭송받던 멀티태스킹이 오히려 집중도가 떨어지면서 속도도 늦는 등 실제로는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질적인 요소를 접합해서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내는 퓨전이라는 개념과는 달리 멀티태스킹은 이질적인 요소가 녹아드는 퓨전의 개념보다는 서로 충돌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멀티태스킹과 퓨전의 개념을 따로 정리해본 이유는 이집트 여행과 대화의 기술을 접목하였다는 <여행 소통법>을 읽은 느낌이 퓨전이라기보다는 멀티태스킹의 느낌이 나더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책은 ‘국내 최고의 대화전문가’라는 분이 아들 내외와 함께 이집트를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입니다. 일단 읽는 내내 불편했다는 점을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표지에 적은 ‘옆 사람과의 성공적인 관계는 기본 소통에서 시작된다’는 문구에는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화의 나라, 이집트에서 터득한 대화의 기술 51가지’라는 부제는 잘 못된 것입니다. 그저 대화전문가라는 저자가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겪은 일을 인용하여 대화의 기술을 설명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입니다.
내용으로 들어가면 우선 대화체의 문장이 거슬립니다. 그것도 마치 아랫사람에게 가르치는 듯한 어투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흔히 사용하는 설명체 보다는 친근한 느낌을 주려는 시도였는지 모르겠지만, 불특정 다수가 읽는 책의 경우 저자보다 나이가 많은 독자도 있을 것이고 심지어는 이집트 여행이나 소통분야에서 저자보다 더 전문가가 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대화의 기술 부문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저자가 이집트에 관하여 인용한 내용들이 사실과는 다른 듯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저자의 전문분야라고 할 대화의 기술에 관한 내용에 대한 신뢰마저도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하루에 다섯 번 기도시간을 알리기 위하여 남성이 경전을 읊조리는 소리를 ‘부카’라고 한다는데, 이슬람 국가에서 ‘무에진’이라고 하는 남성이 사원의 첨탑 미나렛에 올라 기도시간을 알리는 성구를 읊조리는 것을 아잔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찾아보았는데, ‘부카’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유럽이 이집트 점령하자 이집트 사람들이 유럽으로 흘러들어와 집시가 되었다는 것도 근거가 없는 내용으로 유럽의 집시는 인도 북부의 펀잡지방 출신이라는 설이 언어학적 근거가 있다는 주장을 보면 집시가 이집트에서 온 것이라고 단정하는 저자의 입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파피루스에 관한 내용도 지나치다 싶습니다. 파피루스에 관한 기록 역시 이집트에서 개발된 파피루스가 문서작성에 사용된 것은 사실이지만 파피루스가 8-9세기 유럽사회에서 중요한 기록문서였는지는 생각해볼 일입니다. 이집트가 파피루스는 제작비용이 싸기 때문에 대중적인 기록도구였는지 모르나 양피지에 비하여 내구성이 약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가장 주요한 기록문서로 사용되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학문에 대한 비하도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인문학이 아예 없어 서양으로부터 일본을 통해 전해진 것을 배웠다는 시각이나 수사학이 빠져 제대로 된 화법을 익힐 수 없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과거 동아시아 학문의 중심이라고 하는 중국의 학자들도 조선의 학자들의 학문수준이 높아 서로 학문을 논하기를 바라마지 않았다고 하고, 거슬러 오르면 서희의 담판과 같이 우리나라 고유의 수사학 수준도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화의 기술을 정해진 순서에 따라서 전개하려다 보니 이집트 여행이 뒤죽박죽 섞이는 것도 책읽는 흐름을 흩어놓았고, 저자가 흥정의 달인이라는 자랑과 영국 사람들의 배품을 배웠다는 것이 정리되지 않는 것도 헷갈리는 부분이었습니다. 차라리 이집트 여행과 대화의 기술을 별도로 정리하는 편이 훨씬 나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남는 책읽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