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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9월
평점 :
저도 몇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만, 책을 쓴다는 것은 참 힘든 작업입니다. 우리말로 쓰는 것도 이처럼 어려운데 나이가 들어서 새로 배운 외국어로 책을 쓴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지 싶습니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는 그 어려운 일이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이 수필집을 낸 줌파 라히리는 런던에 사는 벵골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이주하여 로드아일랜드에서 성장하였고, 바너드대학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하였습니다.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하면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르네상스 문화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서른셋이 되던 1999년 첫 소설집 <축복받은 집>을 출간하여 그해 오 헨리 문학상과 펜/헤밍웨이 문학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런 저자가 2015년에 이탈리아어로 쓴 수필집이 바로 이 책입니다. 수필은 저자가 이탈리아어를 배워온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외국어로 책을 낸다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정이라는 점은 책을 읽다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이탈리아어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저자가 이탈리아어를 공부한 기간은 무려 20년이라고 합니다. 외국어로 듣고 말하기를 그 나라 사람처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책을 쓸 생각까지 했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에는 2개의 단편소설과 21개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이탈리아어 배우기를 호수건너기로 비유를 합니다. 크지 않은 작은 호수임에도 너무 깊을 것이라는 생각에 호수 건너편에 있는 오두막에 가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추스르려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크지 않은 호수를 건너는 방법은 호수를 가로질러 헤엄치는 방법도 있고, 호수의 가장자리를 따라 헤엄치는 방법도 있으며, 수영을 하지 못한다면 호숫가를 따라서 걸어도 될 일입니다. 즉 비유가 딱 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거나 저자는 작은 호수 건너기에 해당하는 이탈리아어 배우기를 마치고 다음 단계로 이탈리아에 살아보기로 했던 것 같습니다.
저자가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게 된 배경에는 박사학위를 받기 위하여, ‘17세기 영국 극작가들에게 미친 이탈리아 건축의 영향’이라는 주제를 붙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 역시 해외여행을 하고나서 여행기를 쓰다 보니, 해당국가의 말로 된 자료가 가장 많고 정확하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어가 아니면 번역할 줄 아는 외국어가 없어, 영어로 옮겨진 자료를 통하여 중역하거나 혹은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럴 때는 그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초급정도의 해석능력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는 ‘이탈리아어로 글을 쓸 때 난 내가 침입자, 사기꾼같이 느껴진다(72쪽)’라고 스스로를 책망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어로 책까지 내게 된 데는 발명, 상상력, 창조성에 실마리를 준다고 믿는 ‘불완전’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불완전하다고 느낄수록 난 더욱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94쪽)’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내 불완전을 잊기 위해, 삶의 배경으로 숨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글을 써왔다. 어떤 의미에서 글쓰기는 불완전에 바치는 경의다’라고 합니다. 임신 기간을 통하여 사람이 제 몰골을 갖추어가는 것처럼 ‘책은 창작 기간에는 불완전하고 완성되지 않은 어떤 것’이라고 합니다. 임신기간이 끝나면 사람은 태어나게 되는데, 책은 다 씌어지고 나면 죽는다는 차이가 있다고 저자는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자에게는 영어도 외국어일 수밖에 없는데, 커가는 동안 주로 영어를 사용하게 되고, 모국어라 할 벵골어는 많이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일종의 언어적 괴리감 같은 것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이탈리아어라고 하는 제3의 언어를 시작함으로써 안정적인 구조의 언어의 삼각형을 만들어내게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