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책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논어> 술이(述而) 편에 “三人行 必有我師焉(삼인행 필유아사언)”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세 사람이 길을 같이 걸어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라는 뜻입니다. 책읽기는 이보다 더 유용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책도 배울 점이 있다고 말입니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 <위험한 책>이라는 제목에서 무엇이 위험한지 궁금해서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자인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역시  인간의 운명을 뒤바꾸어놓는다(5쪽)’라고 말합니다. 헤밍웨이는 많은 독자들을 스포츠광으로 만들었고 뒤마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여인들의 삶을 뒤집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책이 인간의 운명을 뒤바꿔놓은 경우’는 전혀 다른 의미인 듯합니다. 화자의 동료 이자 내연의 관계로 보이는 여교수가 에밀리 디킨슨의 구판본 시집을 사고, 거리를 걸어가면서 읽다가 자동차에 치어 죽었다는 사건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묘합니다. 책장 높이 꽂혀있는 책을 꺼내려다가 다리가 부러진 사건이나 책장에서 떨어진 책에 머리를 맞아 반신마비가 된 사건 등등 책이 건강을 위협하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일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니 책읽기에 빠져있는 동안 눈 건강이 계속 위협받고 있는 저의 경우도 비슷하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야기는 앞서 말씀드린 화자의 동료가 멕시코의 몬테레이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을 때 만난 누군가에게 주었다는 책이 그녀의 사후에 되돌려졌는데, 그 책을 받은 화자가 그 연유를 추적하는 과정을 적고 있습니다. 그 책은 조셉 콘래드의 <섀도 라인>이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에 들어있는 <암흑의 핵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의 속지에는 “카를로스에게, 몬테레이에서의 미친 날들을 기념하며. 공항에서 공항으로 나와 함께 붙어 다녔던 소설. 참 유감스럽게도, 내 영혼에 마녀가 깃들어 있다는 걸 금방 깨달았어요. 당신이 뭘 하든 날 놀라게 할 수는 없을 거예요. 1996년 6월 8일.”라는 헌사가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침대를 같이 쓰는 사이인 여성에게 배달되어 온 책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한다면, 특히 그녀가 사고로 죽음을 당한 뒤라면, 저 역시 그 사유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화자는 이 책을 보내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카를로스의 행방을 찾아 멕시코로 향하지만, 카를로스와의 만남은 의외로 쉽지가 않습니다. 이야기를 뒤따라가는 동안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에 대하여 여백에 메모를 하는 사람, 메모지에 써 책갈피에 끼우는 사람 등에 대하여 듣게 됩니다. 책을 어떻게 읽는가 하는 문제는 각자의 선호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것이 정답이라 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읽은 책처럼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라면 뒤에 읽을 또 다른 사람을 위하여 줄을 친다거나 메모를 하는 짓은 자제함이 옳다고 하겠습니다. 이 책에는 벌써 누군가 남긴 밑줄이 적지 않게 쳐있었습니다. 변명삼지 않았나 싶은 대목이 있어 옮겨보겠습니다. “어떤 상념의 유혹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메모를 했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나는 일개 독자에 지나지 않아요. 나는 이미 완성된 형태의 풍경 속을 여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끝이 없어요. (…) 보르헤스의 말을 인용하자만, 서가란 시간 속으로 난 문입니다.(45-46쪽)”

이 이야기는 애서가, 서적수집가, 장서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의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옮긴이에 따르면 책을 사랑하다 혼란에 빠지고 인상적인 운명의 격변을 겪어야 했던 한 남자와 그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냈다고 합니다. 저자는 콘래드의 소설에 나오는 한 대목을 소개합니다. “그는 또다시 자기를 절대 혼자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해주기를 간청했다.(97쪽)” 그런데 작가는 소설 속의 그를 바로 책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나타냈습니다. 책이 주인에게 지켜주기를 간청하는 모습은 최근에 읽은 <책의 자서전; >과 흡사한 면이 있어 보였습니다. 사람 간의 사랑이 쉽지 않은 것처럼 사람과 동물, 혹은 사람과 무생물 사이의 사랑에도 뭔가 지켜야 할 무엇이 있는 것이라면 사랑이란 정말 어려운 일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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