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카탈로니아 찬가>로 처음 만난 조지 오웰이었지만, 그를 인식하게 된 것은 <더 저널리스트 : 조지 오웰>을 읽으면서부터입니다.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있는 그의 <동물농장>이나 <1984>를 읽은 것도 그 뒤의 일입니다. 이탈리아의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는 “고전이란 사람들이 ‘요즘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않고 ‘요즘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는 책”이라고 정의했다지만, 고전을 모두 읽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만큼 늦게라도 읽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로 주목을 받게 된 조지 오웰이 글쓰기에 전환을 모색하던 시기의 기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어 그에 대한 생각의 두께를 조금 더할 수 있었습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는 진보적 성향의 ‘레프트 북클럽’으로부터 실업상태인 탄광노동자들이 넘쳐나고 있던 영국북부 지역의 상황을 조사해달라는 청탁을 받아 쓴 것입니다. 오웰은 1936년 초 위건, 리버풀, 셰필드, 반즐리 등 랭커셔와 요크셔 일대의 탄광지역을 찾아 광부들의 집이나 광산노동자들이 묵는 하숙집에서 그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실태조사를 한 결과를 이 책에 담았습니다.

오웰이 청탁을 받아들인 이유는 사회주의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기 위한 행보였다고 했습니다. 스스로가 사회주의에 호의적인지 확인하고, 당시의 상황이 용인할만한 것인지를 판단하고, 계급이라는 문제에 대한 입장도 확고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책의 1부가 그 내용입니다. 그 내용은 ‘실업을 다룬 세미다큐멘터리의 위대한 고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부에는 자신의 성장배경, 영국의 계급문제에 대한 소신, 그리고 정치적 견해에 관한 에세이 6편을 담았습니다. 2부의 내용을 보면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의 수위가 사뭇 높습니다. 박노자교수가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했던 오웰을 ‘비판적 개인주의자’라고 정의한 것처럼, 오웰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면서도 당시의 사회주의자들에게 할 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악마의 대변인’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웰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애정이 담긴 비판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웰이 사회주의를 지향했던 것은 당시 개인을 속박할 위험이 큰 전체주의가 부상하고 있다는 감을 잡았고, 그를 저지할 수단으로는 사회주의가 유일한 수단이라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 급한 문제는 파시스트 세력이 유럽을 장악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회주의를 효과적인 형태로 널리 그리고 빨리 확산시키지 못한다면, 파시즘을 타도할 가망은 없어진다. 사회주의야말로 파시즘이 상대해야 할 유일한 적수이기 때문이다.(288쪽)” 역시 오웰이 걱정했던 것처럼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이 세력을 얻었고, 스페인 역시 프랑코의 독재정권이 들어섰습니다. 뿐만 아니라 독일과 이탈리아는 연대하여 자유진영의 말살에 나섰습니다. 물론 공산주의화된 소련이 동참하기는 했지만, 파시스트의 의도를 무너뜨린 것은 오웰이 꿈꾸던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였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세상이 변하는 것처럼 ‘주의’ 역시 세월의 흐름이 따라 변하는 것이라서 사회주의가 여전히 정답일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오웰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오도된 사회주의가 전체주의로 흐를 위험이 크다고 보이며, 특히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오웰이 우려했던 것보다 더 심한 전체주의를 추구하는 세력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족주의에 편승한 어설픈 감상주의에 젖다가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무너트리는 불행을 자초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필자가 오웰로부터 배우려하는 것은 그의 비판의 기조입니다. 사회주의를 지향했지만, 나라에 대한 충심은 분명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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