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을 넘어서 - 사회와 타자
버나드 맥그레인 지음, 안경주 옮김 / 이학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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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구경하는 범위가 조금씩 넓어지면서 관심도 다양해지는 것 같습니다. 인류학에 대한 관심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만, 인류학을 쉽게 설명하는 대중서가 많지 않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옮긴이에 따르면 <인류학을 넘어서>는 “16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서구에서 논의되어온 ‘이질문화’에 대한 서로 다른 개념들의 역사를 기술함으로써 ‘인류학의 고고학’을 밝히려는 시도이다”하고 합니다.

인류학이 ‘인간에 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는 하지만 연구대상과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여 19세기 이후 들어서 학문으로 체계화되었음을 고려한다면, 인류학이라는 학문 전체의 뿌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류학의 기본 개념에 해당하는 ‘타자’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를 찾아가는 것이 과연 적절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형질인류학, 고고학, 문화인류학 등이 인류학에 속하는 세부학문으로 나뉘고 있다고 한다면, 저자가 이 책에서 논하고자 하는 ‘타자’의 개념은 문화인류학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타자’에 대한 인식의 변천과정을 뒤쫓고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인류학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유럽사회가 제3세계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닿게 되는 것 같습니다. 즉 주체로서의 유럽인들이 비유럽인들을 주체가 아닌 타자로 인식하여 그 차이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를 찾아내려는 시도가 인류학이라는 학문으로 발전한 것이 아닐까합니다. 비유럽문화, 특히 오지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유럽 사람들의 원시모형으로 이해하려는 시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는 르네상스 시기의 유럽인들이 유럽 밖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던 시절부터, 계몽주의가 시작되던 시기 그리고 19세기 근대의 시기를 거쳐 오늘날의 인류학의 관점을 세우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우주론, 심리학, 진화론 등 다양한 이론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오히려 유일신으로서의 기독교 중심의 사고에 매몰되어 있던 유럽사회가 비유럽 사회의 다양성을 깨닫지 못했던 것에서 문제가 출발한다고 보면 간단할 것 같습니다.

개명되었다는 오늘날에도 유럽 사람들은, 혹은 유럽 사람에 업혀가는 비유럽사람들까지 아시아 사람들을 비아냥거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은 이슬람과 함께 유대교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뿌리는 같으나 예수와 무함마드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이들 종교의 차이가 아닐까 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성경의 근본을 뒤흔든 사건이었을 터인데, 이를 어떻게 봉합하여 수습했는지 궁금합니다.

유럽의 기독교는 그 세력이 많이 위축되어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과학의 발전과 함께 그동안 믿음으로 믿어왔던 것들이 과학적 근거가 취약하다는 사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종교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충돌이 일어나고 있음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의 내용에 관한 생각 가운데, ‘르네상스 시대부터 20세기까지 이어지는 미개사회에 대한 생각들로 독자를 이끈다.’라는 관점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은 유럽사람들이 비유럽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학은 르네상스 시대의 악마적이고 열등한 것이 아니고, 계몽주의 시대의 무지와 미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근대의 진화론적 발전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문화적 차이, 혹은 문화적 다양성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지만, 이런 인식은 그저 인류학을 전공하는 집단 내에서의 움직임으로 찻잔 속의 작은 소용돌이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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