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
페터 비에리 지음, 문항심 옮김 / 은행나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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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을 쓰는 페터 비에리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비롯하여 <말의 격;> 등으로 이미 친숙한 느낌이었는지, 그의 신작이라는 <교양 수업>을 선뜻 골라들었습니다. 사실 ‘교양’이라는 단어는 아주 익숙한 편입니다. 아마도 대학에서 ‘교양과목’이라는 학과목들을 이수하면서부터 본격 교양수업을 듣게 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제 경우는 의과대학의 예과과정에서 공부를 했는데, 생각해보면, 국사, 의학사, 문화사, 철학, 종교철학, 영어, 독일어, 라틴어 등 지금 생각해보면 주중에 한 시간을 빼고는 하루 8시간에 토요일 4시간까지 빼곡하게 들어차있는 수업시간표가 숨찰 정도로 강의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교양’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페터 비에리는 이 책에서 철학적 사유를 통한 교양의 정의를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 쉽게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없지는 않습니다. 어떻든 서두에서 “교양이란 사람이 자신에게 행하는 그리고 자신을 위해 행하는 어떤 것을 말한다(9쪽)”라고 교양을 정의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교양을 쌓는 일은 남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혼자의 힘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교양 쌓기는 ‘무엇인가를 아는 것’과 ‘어째서 그런지 이해하는 것’을 양대 축으로 하여 앎의 깊이를 더해가는 과정이라고 정리합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알아야 할 것들의 비율적 관계를 이해하고, 정확함을 의식해야 한답니다.

교양을 정의하기 위하여 저자는 ‘세상을 대하는 태도’, ‘깨인 사상’, ‘역사인식’, ‘표현’, ‘자아인식’, ‘주체적 결정’, ‘도덕적 감수성’, ‘시적 경험’ 등의 관점에서 교양의 의미를 살펴보고, 교양을 쌓는 길은 열정이 필요하다고 마무리를 합니다.

저자는 종교나 이데올로기가 교양과 연결이 되었을 때 파괴적이고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즉 전체주의적 세계관이 교양이 가진 넓은 시선을 위축시키고 심지어는 질식시킬 수 있다는 지적인 셈입니다. 종교는 형이상학적 진실 여부를 가리기 보다는 각자가 자신의 삶에 부여하고자 하는 삶의 한 형태로서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입니다.

이 책의 후반부는 이해의 다양한 모습을 논합니다. 그러니까 학문 언어와 문학 언어는 그 쓰임에서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어에 대한 저자의 사유는 앞서 논한 교양 쌓기도 결국은 표현을 통하여 표출해야만 하는 것인데,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중요하다라고 보는 것입니다. 결국 앎을 표현하는 언어는 ‘우리를 이해 능력이 있는 존재로 만든다’라고 규정합니다. 알고 있는 사실을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여, 적절하게 표현해야 교양이 있는 사람이 되는 셈입니다. 철학을 전공한 저자가 소설을 쓰는 이유도 자신이 쌓아올린 앎을 적절한 표현방식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문학은 앎을 정확하게 서술하기 위한 방편인 셈입니다. 적확하지만 평범한 말로도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플라톤적 대화의 방법을 통하여 이 점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문법적으로 잘 구성된 문장 하나하나가 모두 하나의 생각을 표현한다고 섣불리 말하지 말아야 한다. 겉으로 봐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문장도 실제로는 생각의 내용을 조금도 담지 않은 그저 헛소리인 경우가 숱하게 많다.(66쪽)”

저자는 자신이 쓰는 말과 글에서 철학적으로는 사고의 일치성이, 문학적으로는 사건에 투명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적절한 은유와 적확한 단어와 문장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철학적 깨어있음과 언어적 깨어있음이 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데 있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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