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하 범우고전선 32
투키디데스 지음, 박광순 옮김 / 범우사 / 199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올 가을 그리스 여행을 하면서 그리스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역사를 알아보기 위하여 읽게된 책입니다. 물론 여행전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전말을 간단하게 요약한 글은 읽어보았지만, 대부분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기반으로 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원전을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상하권 합하여 850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으로 거의 일주일을 꼬박 읽어야 했습니다.

시기적으로 앞선 이집트나, 소아시아, 중동지역에서는 왕국 혹은 제국이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적으로 뛰어났던 그리스에서는 도시국가 수준에 머물렀던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먼저 그리스사람들의 뿌리는 북쪽에서 이주해왔다고 합니다. 그리스의 전설에 따르면, 데우칼리온과 퓌라의 아들 헬렌은 뉨프 오르세이스에게서 세 아들 아이올로스, 도로스, 쿠토스를 얻었는데, 이들로부터 헬라스의 주요 부족인 아이올리아인, 도리아 인, 아카이아 인, 이오니아 인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보면, 이들 가운데 우리가 스파르타라고 알고 있는 라케다이몬을 중심으로 펠로폰네소스반도 일대에는 도리아인이,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대륙에는 이오니아인이 많았던 듯합니다. 그리스는 섬이 많고, 테살로니키 지방에 평야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육지의 4/5가 산지라고 합니다. 따라서 지역 간에 교통도 불편하여 집안사람들끼리 모여 살았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배타적일 수밖에 없었고, 타지인으로부터 피해를 입으면 그 빚을 갚아주는 악순환의 뿌리가 깊어졌을 것 같습니다.

특정 도시가 세력을 얻어 전체 도시들을 평정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어서 도시들 사이에 동맹이라는 느슨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이민족 페르시아와 전쟁을 치를 때는 그리스동맹을 이루어 단합하여 이를 격퇴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지만, 이후 동맹의 중심이 되었던 아테네의 세력이 커지면서 전횡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고, 이를 계기로 라케다이몬을 중심으로 하는 펠로폰네소스동맹이 생겨났고, 아테네는 델로스동맹을 결성하여 서로 대항하게 되지 싶습니다.

투키디데스가 기록한 기원전 431년부터 기원전 404년까지의 펠로폰네소스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221년에 이르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합니다. 물론 땅덩어리가 넓으니 그리스의 도시국가들보다는 커다란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도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압도하여 통합하는 일이 윤리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용이한 일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합종책이니 연횡책이니 하는 전략이 나오게 된 것이 아닐까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다보면 변설에 능한 사람의 세치 혀에 따라서 도시국가들 사이에 전쟁도 일어나고 하던 전쟁도 멈추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투키디데스가 자료를 많이 모아 분석하고 중립적으로 기록하였다고는 하지만, 누군가의 연설문을 오늘날처럼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므로 연설의 취지는 살리되 문장은 투키디데스의 머리에서 나왔을 터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투키디데스는 참으로 뛰어난 문장력을 가졌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아테네와 라케다이몬이 30년 가까운 전쟁을 이어가는 과정을 보면 코린토스나 케르키아 등 작은 도시국가들이 분쟁의 꼬투리를 만드는 경우도 있었으며, 아테네 내부에서도 라케다이몬과 휴전상태라고는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는 상황에서 멀리 이탈리아반도에 붙어있는 시케리아섬에 대규모 원정군을 보냈다가 시케리아섬의 도시국가 시라쿠사가 라케다이몬을 끌어들여 아테네원정군을 괴멸시킨 것이 아테네의 운명을 결정지은 요인이 된 것을 보면, 대규모원정군을 보내는 의사결정과정에 군사적으로 심도있게 검토되었다기 보다는 민중이 모인 가운데 몇몇 변설가들의 막연한 주장이 흐름을 주도하여 결정되었던 것 같아서 그리스 대중정치의 한계를 본 듯합니다.

그리스의 옛지명이 오늘날과 많이 다른 점이라든가 오늘날의 지명을 대비하거나 전투상황에 맞는 지도를 곁들였더라면 읽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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