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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다녀온 그리스 여행길에서는 철로변에 있는 호텔에 들었다가 밤잠을 설친 날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즐겨 불렀던 ‘기찻길 옆 오막살이’라는 동요가 있습니다. “기차소리 요란해도 / 아기 아기 잘도 잔다”는 가사도 있습니다만, 기차가 요란스레 지나갈 때면 자던 아이도 깰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칙칙폭폭하고 달리는 기차에 대한 한 자락 향수는 마음 어딘가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저도 어렸을 적에는 하루에 버스 몇 번 다니지 않는 신작로 가에 살아본 적도 있습니다만,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작은 도시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통학열차를 타보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성인이 된 다음에는 지하철 혹은 전철을 많이 이용합니다만, 지하철은 창밖의 볼거리라는 것이 없는데다가, 지상으로 나오더라도 요즈음 열차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철로변에서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휙 하고 지나치기 마련입니다.
통근열차와 관련된 스릴러물이라고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런던 교외에 살면서 런던으로 출퇴근하는 여성과 그녀가 살던 동네에 사는 여성들 해서 3명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두 남자가 있습니다. 이 다섯 명의 등장인물이 복잡하게 연결되는 사건입니다. 우리나라는 기차는 역에만 설뿐 건널목 등에서는 기차가 통행의 우선권을 가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런던에서는 기차도 신호등을 받으면 서야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기차는 이들 다섯 명의 등장인물이 살고 있거나 살았던 동네, 바로 그 집에서 멈추는 상황입니다. 첫 번째 화자인 레이철은 통근열차가 설 때 창밖에 보이는 집에 사는 젊은 부부의 다정한 모습에 눈길을 주곤 합니다.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름까지 붙여주고 이들 부부가 사랑을 나누며 잘 살기를 기원합니다. 그녀는 직장에서 쫓겨날 정도로 알코올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퇴근할 때는 의례 술을 몇 병 사들고 기차를 타서 마시곤 합니다.
어느 날 그녀가 애정을 쏟는 집에서 이상한 장면을 보게 됩니다. 남편이 아닌 남자와 애정표현을 하는 여자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음날 그녀가 실종됩니다. 그녀는 실종사건에 개입하기 시작하고 점점 깊숙하게 빠져들게 됩니다. 오지랖도 이 정도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입니다. 그녀가 알코올의존증 환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녀가 보고 들었던 정황은 수사당국이나 실종자가족으로부터 증거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실종된 여성의 가정을 제외한 한 쌍은 그녀의 전남편과 그 남편을 가로챈 여성입니다. 따라서 그녀의 접근에 대하여 아주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데, 헤어진 전 남편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여인이 실종되던 날 밤에 그녀 역시 술에 취한 채 그 동네를 헤맨 듯한데, 전혀 기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실종된 여성이 살해된 채로 발견되면서 상황은 실종된 여성의 남편이 유력한 범인으로 몰리는 순간 그녀는 갇혀있던 기억을 끄집어내는데 성공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반전이 일어납니다.
알코올의존증의 무서움을 새삼 깨닫게 되었는데, 막상 읽기를 마치던 날밤 오랜만에 가진 술자리가 지나치는 바람에 집에 어렵게 들어가는 옛버릇이 다시 나온 것입니다. 책읽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술을 많이 줄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폭주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 같아서입니다.
세 여자가 날자 별로 겪은 상황을 설명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사건 발생을 처음 인지하는 레이철은 2013년 7월 5일부터, 실종되는 여성 메건은 2012년 5월 16일부터, 애나는 2013년 7월 20일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같은 상황을 다른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것도 사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궁극적으로는 관점이 일치하는 순간 사건이 해결되게 됩니다. 통근열차가 가지는 낭만적인 느낌과 알코올의존증의 안타까움, 그 속에 숨어있는 범인의 잔인한 본 모습 등이 뒤섞여 생각거리가 많았던 책읽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