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의 끝 - 아서 C. 클라크 탄생 100주년 기념판
아서 C. 클라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 쿠키뉴스에서 연재하고 있는 영국과 아일랜드 여행기에서 북아일랜드의 코즈웨이 주상절리에 관한 이야기를 찾다보니 영국의 록밴드 레드 제플린이 1973년에 발표한 앨범의 표지를 이곳에서 찍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표지 사진이 영국의 SF작가 아서 클라크가 1953년에 발표한 공상과학소설 <유년기의 끝>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https://blog.naver.com/neuro412/221356309590). 그래서 읽어보았습니다.

출판사의 설명에서처럼 이 책은 인류의 진화와 외계생명체와 인간의 만남 등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주제를 잘 버무려놓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읽어도 대단한 상상력을 동원한 작품이라는 느낌입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이영도의 판타지소설 <눈물의 마시는 새> 역시 이 책에서 영감을 얻지 않았나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사실 이 책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이는 작품들이 적지 않아 보입니다. 예를 들면, 오래 전에 방영된 미국 드라마 <브이>에서 외계인이 거대한 우주선을 타고 와서 지구인들을 장악한다는 설정도 <유년기의 끝>의 서두에 등장하는 장면과 흡사합니다. 다만 <브이>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인간을 탄압의 대상으로 다룬 것과는 달리 <유년기의 끝>은 인간을 다음 단계로 진화시키도록 지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점은 <유년기의 끝>에 등장하는 오버로드라는 외계인은 그저 오버마인드라고 하는 우주의 상위적 종족의 하명에 따르는 집행인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오버마인드라고 하는 초우주적 존재는 이 작품에서 실체를 보여주지 않는 존재, 즉 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결국 이 작품의 결말부분에 이르러서는 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는 멸종하고 인류의 후손이 새로운 종으로 진화한다는 것입니다. 즉 네안델타르인이나 하이델베르그인처럼 현생인류에 밀려 멸종한 고인류의 길을 반복하는 셈입니다.

한 가지 의문으로 남는 것은 현생인류가 오버로드에게 통제되는 과정에서 보면 창의적인 활동이 소멸되고 오버마인드가 설계한대로 단순화한다는 것인데, 찬란하게 꽃피웠던 그리스문명이 꺼진 뒤로 로마제국 시절에는 하향곡선을 그리던 문명이 중세 기독교문명 시기에는 신과 관련된 것을 제외하고는 그저 어둠에 잠겨 있던 시기와 비교할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류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유년기의 끝>에 등장하는 신인류는 오히려 능력면에서는 놀라울 수도 있지만, 문명사적 차원에서 본다면 아쉬운 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물론 오버마인드가 신인류에게 부여한 과제가 오버로드보다는 상위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오버로드의 등장으로 인류가 저지르던 많은 학대, 어리석은 행동, 죄악이 사라지고 국가의 개념이 붕괴되며 세계는 단일국가를 이루게 됩니다. 오버로드는 인류를 통제할 강력한 힘을 무기로 반발하는 집단을 제압하여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르도록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진면목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드라마 <브이>에서 본 것처럼 인류의 반발을 불러오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신인류가 등장할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한 조치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버로드들은 사람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감시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그것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니까 오버로드들은 미리 정한 행동범위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인류의 행동은 규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엇이 문제인지를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존재는 결국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버로드들은 인류를 감시하는 한편 인류의 역사를 송두리째 살펴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이유가 분명치 않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오버마인드로부터 선택된 종족, 인류가 부러웠는지도 모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