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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쁨 - 느리게 걸을수록 세상은 커진다
실뱅 테송 지음, 문경자 옮김 / 어크로스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여행을 떠날 때 여행에 관한 에세이를 빠트리지 않는 편입니다. 비행기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여행에 대한 누군가의 생각을 읽다보면 쉽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문단의 데이비드 소로라고 불리는 에세이스트 실벵 테송의 <여행의 기쁨> 올 여름 더위를 피해 떠난 독일 여행에서 읽었던 책입니다. 어쩌면 ‘느리게 걸을수록 세상은 커진다’라는 문구에 끌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리학을 전공한 그는 비행기는커녕, 기차 심지어는 자동차도 타지 않는 여행을 즐기는 괴짜라고 합니다. 왜? 자신을 위해, 때로는 자신을 깊게 들여다보기도 하며 말없이 여행하는 것에 만족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이 책은 문명이 주는 편리함을 모두 내팽개치고 아주 옛날 방식의 여행을 통하여 얻은 느낌을 담고 있습니다. 시간을 죽이듯 천천히 여유 있게 살았던 유목민의 삶을 뒤쫓다보면 시간에 쫓기듯 살고 있는 현대인의 틀에 박힌 듯한 삶에서 탈피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자 역시 틀에 박힌 듯 원칙만을 고수하지는 않는 듯합니다. 언젠가는 핀란드에서 폭주족 무리에 섞여 오토바이를 몰기도 했답니다.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에 우주적 황홀감에 빠져들었다고 하니, 이 또한 생각이 자유롭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걷는 여행이 주는 즐거움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한 구절 옮겨봅니다. ‘걷고 있노라면, 뇌라는 두개골 상자, 여행자에게 가장 소중한 짐인 이 기록 보관 상자 속에 차곡차곡 쌓인 단층들이 기억의 표면 위로 떠오른다. 그 곳을 헤집어 추억을 추려낸다. 갑자기 번개라도 번쩍이면 이제는 잊고 있는 즐거웠던 순간이 떠오르면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32쪽)’
그런데 이런 여행을 하기에 제가 부족한 점이 눈에 띄네요. 도보여행 길에서 텅 빈 공간과 싸우려면 시가 있어야 한답니다. 정신을 붙잡아두고 영혼을 확장시킨다고 하네요. 뿐만 아니라 음악이 되는 리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행군에 박자를 붙여줄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과의 조화도 만들어낸다는군요. 주변 환경에 맞춤한 시를 고르면 된답니다. 만약에 시를 지을 수 있다면 그 여행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편 제가 여행을 하면서 조금 해보고 있는 글쓰기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반더러는 걷는 동안 약탈해온 이 모든 행복을 저녁마다 자신의 공책에 모두 집결시킨다.’ 걸으면서 오감을 통하여 느끼는 모든 것들을 ‘약탈’이라고 표현했습니다만, 그렇게 얻은 소중한 느낌을 매일 저녁 글로 정리를 해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긴 여정을 걸어가는 자에게 글쓰기는 가장 강력한 평정의 계기이고, 낮의 역량을 연장시켜주는 늘임표다(71쪽)’는 것입니다. 제 경우는 걷는 여행이 아니라서 여정 중에 시간을 내서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녁 혹은 이른 아침에 맑은 정신을 집중해서 정리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예습을 너무 많이 하는 것도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합니다. 여행지에 가면 사전에 예습한 내용을 확인하려는 경향이, 미지의 곳에 대한 호기심을 앞지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준비한 것을 그저 확인하는 것에 끝난다면 여행의 의미가 축소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보아야 할 것들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뭐든지 적당히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가 즐기는 독특한 모험 가운데 하나는 대성당을 오르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대성당을 기어오르는 것은 ‘아직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땅’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109쪽)”라고까지 했겠습니까? 그곳도 한밤중에 검은 옷을 입고서 말입니다. “바위 비늘들은 지각변동의 밀어 올리는 힘과 땅이 하늘 위로 솟구치지 못하게 하려는 하늘의 의지 사이의 전투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대성당의 안테나들은 인간의 신앙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아니 인간이 지닌 허영심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성당의 첨탑을 등정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고딕성당은 에너지를 충전해주는 일종의 가속장치’이기 때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