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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없는 에세이 -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
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성주 옮김 / 함께읽는책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버틀런드 러셀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한 사람이란 점은 익히 알고 있지만, 그가 수학자이자 논리학자라는 점은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든 러셀에 박병철교수의 <버트런드 러셀>에서 그의 삶의 궤적과 철학적 사유를 정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실 그의 철학적 관점에 대하여는 <철학은 무엇인가>를 통하여 엿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회비평서인 <행복의 정복>의 경우는 꽤 긴 호흡의 독후감을 적어본 적도 있습니다. <인기 없는 에세이>는 세 번 째로 러셀을 만나게 되는 책읽기인 셈입니다.
이 책에서는 조지아대락교 사학과의 커크 윌리스교수가 1950년 9월 24일자 <선데이 타임스>와 1950년 10월 6일자 <스펙테이터>에 실은 서평을 서문으로 담았습니다. 윌리스교수는 먼저 ‘다들 알다시피 명성이란 변덕스러운 것이다’라고 서두를 떼면서 러셀의 굴곡진 삶을 짚었습니다. 젊은 시절 전직총리의 손자로 태어났다는 후광보다도 스스로의 명성을 거머쥐었던 그였지만,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계기로 정의가 실종된 전쟁이라는 확신 아래 반전운동에 뛰어들면서 대중의 인기도 식었을 뿐더러 반역자로 몰리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그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는 층도 생겨나면서 전쟁의 상처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다시 명성을 회복하기 시작합니다. 미국에서 생활하던 중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정부는 그의 귀국을 막았다고 합니다. 1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그가 보여준 행적이 미심쩍었던 모양입니다. 1944년 트리니티 칼리지는 그에게 특별연구원으로 초빙하였고, 그가 미국에서 집필한 <서양철학사>가 인기를 끌면서 대중적인 명성을 되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기 없는 에세이>는 러셀이 다시 잘 나갈 무렵에 미발표 원고를 찾던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 이미 써둔 8편의 글에 새로 4편의 글을 써 책으로 묶었다고 합니다. 배경이 그렇다보니 15년의 세월에 주제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었는데, 어쩌면 그런 배경 때문에 <인기 없는 에세이>라는 제목이 썩 어울릴 수도 있겠습니다. 초고를 쓸 무렵에는 인기를 끌 요인이 없었지만 세월이 좋아지다 보니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게 된(?) 셈입니다.
윌리스교수의 말에 따르면 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이 두서없는 상념이나 교묘하게 위장된 정치적 계산을 고려한 글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러셀경이 평생을 두고 지켜왔던 새 세상에서 지켜져야 할 진보적 가치를 새삼 일깨우는 그런 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관념들’, ‘인류에게 해를 끼친 관념들’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류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그는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다음 3가지 가운데 하나는 실현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1. 모든 인간, 어쩌면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가 종말을 맞는다, 2. 인구가 파국적으로 감소하여 야만 상태로 돌아간다, 3. 주요 전쟁무기를 모두 독점한 단일 정부가 전세계를 통일한다.” 다행스럽게도 3가지 예언 모두 빗나갔습니다만, 두 차례의 끔찍한 전쟁을 지켜본 러셀경으로서는 제3차 세계대전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읽은 <계산된 위험: 한국전쟁과 정치를 말하다>를 보면 세계는 극동의 작은 반도에서 일어난 국지전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던 모양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스스로 쓴 부고’는 1937년에 쓴 것으로 사망하기 33년 전, 그러니까 65살이 되던 해 쓴 글입니다. 98세로 당시만 해도 장수한 러셀이었지만, 자신의 삶의 궤적을 돌아보고 싶었던 시점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 러셀경은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자신의 행적에 대하여 균형잡힌 판단이 부족했다고 자성합니다. 그와 함께 스스로가 오랜 세월을 이어온 고리였다고 평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