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길 위의 철학 - 플라톤에서 니체까지 사유의 길을 걷다
마리아 베테티니 & 스테파노 포지 엮음, 천지은 옮김 / 책세상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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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물 안에서 살고 있는 개구리가 알 수 있는 세상은 우물 안이 전부일 수밖에 없으므로, 우물 밖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모르는 사람을 빗대는 말입니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세상사는 이치를 깨치는 학문이고 보면 철학자는 세상을 두루 알아야 할 것입니다. <여행, 길 위의 철학>은 멀리는 플라톤으로부터 니체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달리하는 철학자들이 자신의 철학을 세우는 과정에서 해냈던 여행을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요즘에는 굳이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파악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을 뿐 아니라 세계를 이웃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가깝게 만들 정도로 교통이 발달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대에는 여행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속된 말이 그 옛날에는 더 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책에서 처음 다루는 철학자의 여행은 기원전 6세기 무렵의 솔론, 플라톤, 아폴로니우스 등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래된 세상의 지혜를 찾아 나선 여행인 경우도 있습니다만 때로는 누군가에게 쫓겨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도망치듯 여행을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은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좋은 기회였음은 분명합니다. 이븐 시나 혹은 알 카잘리의 철학을 다룬 ‘페르시아에서 지식의 근원을 찾다’는 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슬람에서 여행이 은유하는 바는 신비로운 생각과 감정이 함께 스며있는 공통의 공간을 경험하는 것이다(77쪽)”

이슬람에서 말하는 신비한 여행의 전형은 무함마드의 미라지(mi'raj)를 꼽는다고 합니다. 메카의 카바사원에서 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에 도착해서 승천하는 경험을 하룻 밤에 해치웠다니 말입니다. 무함마드의 미라지는 페르시아의 신비주의 시인 파리드 알딘 아타르의 <새들의 언어>를 통하여 영혼의 정화와 성장과정으로 그려졌다고 합니다. 즉, “한 마리의 새가 창조주를 찾아 하늘을 날아가 스스로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고 초월의 경지로 들어서면서 신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 깨달음의 이미지가 더 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니체의 초인 역시 사색을 겸한 그의 여행에서 탄생한 것이고 본다면 스스로 안으로 천착할 수 있는 그런 장소로의 여행을 통하여 얻어낸 성과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안성맞춤한 장소를 만나는 것도 결코 쉽지는 않았던가 봅니다.

루소 역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8권>에 이렇게 적었다고 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전혀 만족할 수 없었다. 소란스러운 세상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외로움은 나를 괴롭혔다. 나는 계속해서 장소를 옮겨야했고, 또 어느 곳에서도 편안하지 못했다(206쪽)” 이런 루소의 방랑벽을 ‘여행중독증후군’으로 진단한 이는 보르도대학의 에마뉘엘 레지교수였습니다. 루소와 같은 방랑벽에는 체질적 혹은 유전적 소인이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루소는 여행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옮기지 앓았다는데, 진정한 철학적 여행은 글로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루소는 자연이 아름다운 곳을 찾아가고 전적으로 자신을 즐기는 일종의 방랑여행과 달리 일 때문에 하는 사회적 여행은 사람들이 사는 사회적 공간을 지나게 되고 경제적 목적을 따르기 마련이라 했습니다(218쪽).

그밖에도 그자비에 드메스트로가 쓴 <내 방 여행하기>도 관심을 끄는 대목입니다. 이동하지 않는 방은 세상의 모든 부와 좋은 것들이 들어 있는 기쁨의 장소로, 철학적 자극을 주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니체에 관한 글의 한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이제 우리는 거의 강의 시원에 와있다, 외관상으로는 단순하다, 시간과 공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이 끝나가는 것이다(3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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