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0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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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행을 다녀오면 같이 일하는 분들과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사실 제가 직접 보거나 들은 것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만, 필요한 경우에 별도로 공부한 내용을 섞어서 같이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파리 8대학 불문학교수인 피에르 바야르가 쓴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에 관심이 쏠리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읽은 덕분에 이 책을 알게 되었으니, 꼬리를 무는 책읽기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방콕 여행자(옮긴이의 기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를 위한 글이라고 이 책의 성격을 밝혔습니다. 오늘 원고를 쓴 영국-아일랜드 여행기의 첫머리에 저자의 생각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여행이 내가 모르는 어떤 도시나 나라를 발견하는 최고의 방법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어떤 곳에 대해 얘기하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자기 집에 머무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이런 저자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저자가 기획한 이 책의 얼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1부에서는 ‘다른 문화를 알고 서술하고 싶어했지만 그것을 만나기 위해 자신들의 근거지에서 멀어질 생각을 별로 없었던 일련의 작가들과 사상가들이 사용한 비여행의 여러 가지 유형을 살펴보았습니다.

저자의 촉수에 딱 걸린 인물을 보면, <동방견문록>의 마르코 폴로가 먼저 인용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을 읽어보고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인데, 저자는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거합니다. 그는 가보지 않은 곳을 가본 것처럼 서술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저자는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쥘 베른입니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오로지 정해진 시간에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기 때문에 여행지를 찬찬히 들여다 볼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여행을 대충하는 대표적 사례가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유형으로는 귀동냥으로 들은 곳에 대하여 이야기한 사람입니다. 에두아르 글리상의 <매혹의 땅, 라파 누이의 방랑, 이스터 섬>입니다. 이 책을 쓴 글리상은 몸이 불편한 관계로 아내 실비 세마를 이스터섬에 보냈고, 그의 아내가 이스터섬에서 보고 들은 내용과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책을 썼다고 합니다. 대리여행을 통하여 얻은 것을 이야기 한 셈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잊혀진 곳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사례인데, 사토 브리앙을 대표적인 인물로 꼽았습니다. 사토 브리앙의 여행기는 시적인 서술로 읽는 이들을 사로 잡았다고 하는데, 그가 과연 그곳에 가보았는지는 분명치 않은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이 점에 대하여 ‘저는 많은 허구를 실제 일들에 뒤섞었으며, 불행하게도 허구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실재의 성격을 취하며 그 모습이 변하고 있습니다.(96쪽)’라고 고백하였다고 합니다.

제2부에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들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몇 가지 구체적인 상황을 살펴보았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런 상황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제3부에서는 저자 자신은 물론 방콕 여행자들의 경험에 입각해서, 다른 문화를 만나보고는 싶지만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여행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지적으로 자신을 살찌울 기회를 더 갖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은 사람들에게 실용적인 조언을 담았다고 합니다. 즉 자신의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위한 변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자의 생각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현장을 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커다른 차이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란 말이 공연히 생겼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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