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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마음에 고요가 머물기를
마크 네포 지음, 박윤정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9월
평점 :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열심히 보았습니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여주인공과 얼핏 보면 싸가지 없어 보이는 면모 뒤에 숨어있는 삶에 대한 처절한 저항을 읽어내고 도움을 손길을 내미는 남자 주인공이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처럼 누군가의 본 모습을 이해하기 위하려면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잘해야 할 것입니다. 저 역시 듣기보다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역시 누군가를 설득하는 것도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잘하는 경우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들음’에 대한 사유를 담은 <그대의 마음에 고요가 머물기를>은 얼마전 이탈리아 여행에서 함께 한 책입니다. 사실 여행하면서 무언가 읽고 생각할 시간이 의외로 많습니다. 가벼운 읽을거리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철학자이자 시인으로 영성에 대하여 강의를 해왔다고 합니다. 특히 청각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특히 들음에 대하여 깊이 사유하고 그를 통하여 얻은 생각들을 이 책에 담았다는 것입니다. 그 생각들을 크게 존재의 작업, 인간됨을 위한 작업, 사랑의 작업 등으로 나누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나름의 독특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면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으며, 그 안에서 소통하고 우정을 다지는 일이야말로 삶을 충만하게 하는 일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 책이 미지의 것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받아들이고, 삶이 우리를 자극하고 부르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기만의 방법을 함양하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36쪽)’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명상센터에서 만난 사람들과 주고받은 이야기 가운데 ‘들음’의 정수를 깨닫게 됩니다. ‘마음으로 모든 것에 귀 기울이세요. 정말 모든 것에요. 그리고 느낌에 따라 행동하기 전에 고요히 있어보세요.(266쪽)’ 흔히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침묵의 순간을 두는 것이 대화의 깊이를 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침묵하는 사이에 두 사람 모두 주고받은 이야기들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전에 부검의사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부검의는 죽은 사람이 세상에 남겨놓은 모든 것을 검토하여 사망 원인을 규명하게 됩니다. 따라서 살아있는 사람들이 알아차렸으면 하는, 심지어는 감추고 싶은 표식까지도 찾아내 사인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추리해내야 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생명이 없는 것들로부터도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모양입니다. 청각을 잃은 사람들이 새로이 개발하는 능력이라고 할까요? 프라하의 유대인 공동묘지에서 히브리어로 쓰인 비문을 읽어가면서 망자들의 이야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 같더라는 이야기부터, 카리브해의 바닷가 절벽에서 바위 표면을 흠뻑 적시며 스며드는 바닷물이야말로 자신에게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는 포용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것으로 스며드는 친화성까지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저자를 사유의 심연으로 끌어들이는 꼬투리는 참 다양한 것 같습니다. 저자 자신이 여행을 하면서 보고 느낀 것은 물론, 주변의 친구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이 소재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무심하게 지나치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보고 듣는 다는 것은 결국 오감을 통해서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정보가 되겠는데, 이 모든 것을 ‘들음’이라고 포괄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받아들임’이 수동적인 느낌이 들어서일까요? 능동적으로 보이는 ‘들음’이라는 표현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