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방 열린책들 세계문학 28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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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읽었던 책입니다. 이 소설의 1부가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무대로 하고 있다는 점이 고려되었습니다. 큰 줄거리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만나 엮인 인연이 영국으로 이어지면서 우여곡절을 겪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보면 당시 영국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어떻든 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피렌체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도 덤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피렌체에서 깨어나는 일, 햇살 비쳐드는 객실에서 눈을 뜨는 일은 유쾌했다. (…) 햇빛 속으로 몸을 내밀고 맞은편의 아름다운 언덕과 나무와 대리석 교회들, 또 저만치 앞쪽에서 아르노 강이 강둑에 부딪히며 흘러가는 모습을 보는 일도 유쾌했다.(27쪽)”는 구절인데, 제 경우는 여행 두 번째 날 피렌체 부근에서 묵었지만, 산속에 외따로 있는 숙소인데다가 비가 오고 있어서 이 책의 주인공 루시가 본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거의 귀곡산장 분위기였다고나 할까요?

루시가 아르노강이 내다보이는 전망 좋은 방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남의 일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영국신사들과는 달리 거칠게 없어 보이는 에머슨씨의 호의 덕분이었습니다. 아르노강이 보고 싶었다는 루시의 말대로 제가 피렌체를 갔을 때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였던 듯 매화꽃을 간간이 볼 수 있었고, 아르노강에도 눈녹은 물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쌀쌀한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른 봄이 반가웠던 모양으로 힘차게 카누를 젓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에머슨씨의 호의로 전망 좋은 방을 쓸 수는 있게 되었지만, 피렌체에서의 일정은 루시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크로체교회 구경에 동행한 래비시양이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길을 잃을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혼자서 찾아나선 시뇨리아광장에서는 백주에 벌어진 충격적인 살인사건을 목격하고 졸도하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펜션에 같이 묵고 있는 남성과 여성들이 마차를 타고 시골로 산책을 나서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조지의 키스를 받기도 합니다.

이러저런 사건이 이어지면서 루시와 사촌언지 샬럿을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갔다가 귀국을 하게 되는데, 로마에서 만난 인연으로 세실과 결혼을 약속하기에 이릅니다. 아마도 집안의 내력이나 외모 등이 고려되었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피렌체에서의 인연의 고리가 영국에까지 이어지게 되면서 세실의 진면목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실은 여성을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는 않는 지극히 보수적인, 어쩌면 전통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루시는 결국 세실과의 약혼을 파기하고 조시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피렌체에서 전망 좋은 방을 양보 받았을 때 이미 월하노인의 붉은 실이 두 사람을 묶어 놓았는지도 모릅니다.

<전망 좋은 방>은 다음 여행지를 그리스로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세실과의 약혼을 파기한 루시는 피렌체에서 만났던 엘런자매가 그리스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행하기로 결정하는데, 이 과정에서 비브목사의 말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저는 그리스를 가본 적도 없고 가볼 생각도 없어요. 우리 작은 인생에 그리스는 너무도 거대합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건 이탈리아 정도가 최대일 겁니다. 이탈리아가 영웅의 땅이라면, 그리스는 신의 땅이거나 아니면 악마의 땅이에요(252쪽)”

당시 영국 사람들에게 이탈리아 여행이 인기를 끌었다고 들었는데, 웬만한 영국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리스여행까지는 언감생심이었던 점이 있는 듯합니다. 의욕을 앞세우던 루시 역시 그리스에는 가지 않습니다. 아니 갈 수 없었지요. 조지와 결혼을 했기 때문인데, 신혼여행으로 피렌체를 다시 가보는 정도로 만족했나 봅니다. 생각보다는 피렌체에 관한 이야기가 많지 않아서, 다른 책을 골라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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