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무관심 - 함께 살기 위한 개인주의 연습
한승혜 지음 / 사우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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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그 심리적효과는 엄청나다. 17~35세의 모든 사람이 출산에 묶일 수 있다는 사실이 이곳에서는 다른 세계의 여성들처럼 생리적, 육체적으로 완전히 출산에 묶일‘ 일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부담과 특권을거의 동등하게 나누어 가지며, 모든 이가 선택에 대한 똑같은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러므로 다른 세계의 남성들처럼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남성들도 없다.
- 어슐러 르 귄, 《어둠의 왼손》

이처럼 《어둠의 왼손은 성차가 존재하는 세계의 사람이 성차가 없는 곳에서 겪는 에피소드를 통해 성별에 투영된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을 자연스레 깨우쳐준다. ‘여성스러움‘ 혹은 ‘남성스러움‘이란 무엇인지, 사실상 그런 특성이 존재하기나 하는지, 성욕은 또 무엇인지, 개인의 성향과 성차를 어디까지 구분 지을 수있는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과 함께, 무척 흥미로운 작품으로나 역시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나도 진작 물어볼걸, 잠깐 기다리다 소식이 없으면 말을 붙여볼걸. 왜 바보처럼 가만히 있었을까.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던 걸까. 물론 답은 알고 있다. 혹여라도 ‘무례하고 무지한 아시아인‘으로 보일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차별과 혐오의 시선을 감당하기 싫었던 것이다. 결국서양에서 소수자의 위치에 놓인 ‘아시아인인 나는, 시간을 거슬러돌아가더라도 똑같이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럴 때는 서양인들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 설사 에티켓이나 매너에 어긋난 행동을 하더라도 단순한 문화 차이로 용인될 수 있다.
는 것이, 부정적인 피드백이나 반응을 그저 흘려 넘기고 쓸데없는피해의식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잘못된 행동을 한 누군가가 그저 이상한 ‘개인‘으로 남을 뿐 집단 전체로 묶이지 않으리라는 것이, 물론 서양인이라고 모두가 자유롭지는 않을 테지만,

본인들이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내가 궁금한 건 왜 굳이 거리에서남들 다 보는 곳에서 저런 행동을 하느냐는 거지." "자기가 성폭력 피해자면 피해자지 왜 굳이 저런 이야기를 만날 하고 다니지?"
"이혼했다고 난 특별히 편견 없어. 근데 왜 굳이 저런 말을 해서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해?" "여성 인권이 더 열악한 거 잘 알겠는데, 그걸 왜 티를 못 내서 안달이야?"

이와 같이 소수자, 마이너적인 정체성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되, 티 내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을 ‘커버링‘이라고 부른다. 커버링은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의 저서 《낙인》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요약하자면 "어떤 낙인이 찍힌 사람들이 그 낙인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행위를 이야기한다.

이 역시 전형적인 커버링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는 한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위치에 이르러서도 낙인과 전형성을 피하기 위해, 그것을 감추기 위해 애쓰지 않을 수 없었다는 지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만약 김대중 대통령이 영남 출신이었을 경우,
그리고 홍어를 좋아했을 경우에는 오히려 아무런 부담 없이 먹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남인에게 홍어는 전혀 낙인이 아니기때문이다. 오히려 미각이 세련되었다고 추앙받았을지도 모른다.그러나 똑같은 음식과 똑같은 기호식품이 호남인에게는 다르게다가온다. 일종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낙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칭찬이란 결국 누군가의 고유성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과 비교하여 더 낫고 못하고, 더 열등하고 우월하고를 가리는 게 아니라, 그가 어떤 측면에서 남과 다른지’, 어떤고유성‘을 가졌는지 알아보는 것이 진정 좋은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애정을 바탕으로 상대를 지켜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굳이 순위를 매겨 남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음주운전을 하다 사람을 다치게 하면 어떤 일이 닥칠지 안다. 물론 강력한 규제가 있어도 잘못된 판단으로, 호기심으로, 혹은 한순간의 충동을 억누르지 못해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경우 법에 의해 감옥에 가고,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고, 손해 배상을 해야 하고, 직장을 잃거나 인생이 망가질 위험에 처하는 등 강한 책임을 지게 된다. 음주운전을 ‘실수‘라고하여 받아주는 경우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음주운전을 할수 있는 기회가 있거나 그럴 만한 충동이 들더라도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자제하면서 산다.

성폭력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누구나 저지를 수 있다는, 우리 모두와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않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 거기 따르는 강력한 책임을 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설사 그럴 만한 ‘기회’가 오더라도 한순간의 호기심이나 충동으로 ‘실수’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이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보호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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