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타당한 이유로 믿는 것과 황당한 이유로 믿는 것 사이에 차 이가 있을까? 그 차이를 인정하는 정도에 있어서 과학과 종교가 다른가? 이런 쪽으로 가면 우리의 토론은 시작하기도 전에끝난다.
우리의 관심사는 비록 제각각이지만, 종교의 독단이 정직한
지식의 성장을 방해하고 인류를 쓸데없이 갈라놓는다는 것을 각자의 자리에서 절실히 깨달았다. 후자는 위험할 뿐 아니라 아이러니한 결과인데, 종교의 가장 칭찬받는 능력 가운데 하나가 통합이기 때문이다.

데닛: 자기가 겪은 신비한 경험에 대한 스스로의 가치 평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신으로부터온 것이 아니면, 어떤 종교적 체험이 아니면, 사람들은 그러한 경험을 보이는 그대로 좋게 받아들이지 않아요. 하지만그러한 경험은 그 자체로 경이롭고 중요합니다. 그건 인생의 최고 순간이고, 자신을 잊고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는 순간입니다. 겸손함과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순간이죠. 그것으로 된 겁니다. 정말!멋지죠. 거기에는 사족이 필요 없습니다. "나보다 훨씬 더경이로운 누군가가 내게 그런 경험을 주었을 거야!"라는 말은 필요 없습니다.

해리스 : 지금이 과학은 오만하다‘는 관념으로 돌아가야 할 시점인 것 같군요. 과학보다 더 엄격하게 겸손을 강요하는 담론은 없으니까요. 제 경험상 과학자들은 누구보다 먼저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과학자들에게 전공 분야 외의이야기를 시키면, 그들은 즉시 애매한 태도를 취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에는 분명 그것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아는 분이 있다. 게다가 모든 데이터가 나온 것은 아니다." 과학은 우리가 어느 정도로 모르는지에 대한 가장 솔직한 남론 형태예요.

한편 이 대담의 맥락을 제공했던 분위기는 바뀌었다. 현재성전聖戰이 문명을 위협하는 "현존하는 단 하나의 재앙"인 것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들의 대화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지금을 흔히 ‘포스트 팩트post-fact",
‘탈진실’ 시대라고 부른다. 옥스퍼드 사전은 탈진실 사회를
"대중의 의견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객관적 사실이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보다 영향력이 적은 환경"이라고 정의했다. 우리 사회도 급속하게 확산되는 소셜 미디어가 가짜뉴스와 양극화된 정치적 신념을 부추기는 가운데 합리적 의심과 이성적 판단은 힘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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