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개의 단상 세라 망구소 에세이 2부작
세라 망구소 지음, 서제인 옮김 / 필로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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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을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다른 내용으로 시작하면 그게 뭐든 그저 지루한 배경 설명이 되어버릴 것이다."p5


'300개의 단상'에는 자신이 했던 말이든, 타인이 했던 말이든, 그와 그 주변의 타인이 공통적으로 받아들이는 관습이든 간에, 우선 뒤집는 말들이 담겨있다. 어떤 사람은 솔직한 글이 가학 혹은 피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했는데, 수치스러운 것을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고 선언한 건 그가 솔직한 글을 쓰고자 한다고, 솔직한 글이 지루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로서 그가 느끼기에 부끄러울 일조차도, 적어내겠다는 뜻처럼 들렸다. 수치스러운 일을 고백한다고 하더라도, 그가 아무렇지 않을 것이라는 것. 누구든지 그에게 지루해하지 않고 공감할 누군가가 존재할 거라고 믿는 것 같았다. 당신에게 공감할, 누군지 알지 못하는 독자를 만나려고 손을 내미는 듯한 그의 발언이 도발적으로 들렸다.


한편으로 사람이 수치심을 느끼는 순간은, 자신이 익숙히 괜찮다고 믿었던 사실이 뒤집힐 때라고 한다면, 위의 문장은 무언가를 뒤집으면서 시작하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앞과 뒤를 뒤집어, 놀라게 하라는 것. 이 단상의 재미는, 이 뒤집힘에서 오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어떤 사람들은 오래 알고 지낸 사람과 빚은 갈등을 해소하는 것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편이 더 쉽기 때문에 오랜 친구와 연인을 버린다. 갈등을 해소하려면 자기가 저지른 실수를 인정하거나 상대를 용서해야 하는 경우에 더욱 그렇다. 나는 지금 어떤 멍청한 인간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멍청한 인간이 자기가 나라는 멍청한 인간을 버린 거라고 생각하면 어쩌지?"p7


그러니 어떤 인물을 멍청한 사람으로 평하고서, 상대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할 가능성을 생각한다는 것. 이점은 재미있지 않은가? 어쩌면 자신이 그런 사람일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자신은 부정하고 있지만, 혹여 그렇게 보일 수 있겠다고, 그런 점이 자신에게 있을 수 있겠다는 의심을 거두지는 못한다는 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로서, 확신에 찬 발언을 불확실한 상태로 내버려둔다. 도로 발언하는 자신을 의심하도록 만드는 말을 늘어놓는다. 자신의 발언을 모순으로 뒤섞는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뒤집힌 말은 어느새 하나로 이어져 있다. 그는 이런 모순을 삶에서 발견하고 글로 옮긴다.


'300개의 단상'에는 모순을 폭로하는 듯한 짧은 글들이, 내용연결 없이 연이어 나열되어 있다. 그런데 계속 읽다보니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한 사람의 삶으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마치 쓴 일기를 읽을 때의 기분이었다. 일기를 쓸 때 연이어 이어진 사건을 쓰기 보다는 계속 끊임없이 주어지는 생각을 쏟아내기 바빴다. 이후 읽어보면 그 생각이 이어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무언가 깨달은 것들이 스쳐지나가는데 받아적기 바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나치게 솔직한 이야기들은 누가 읽지 않으리라는 생각없이는 쉽게 쓸 수 없는 글이었다. 이 단상은 그런 의미에서 일기처럼 느껴졌다. 일기보다는 압축적이고, 사건이 구체적으로 상상되지만, 축약되어 있는, 내밀한 이야기들. 길게 쓰면 한 편의 단편이 될 듯한 인상들이, 계속 연이어 나열되고 있었다. 나열된 글들은 규정된 무언가를 억압으로 느끼고 계속 탈주하려는 시도를 한다. 그가 탈주를 하려는 이유는, 이 단상에 잠깐 언급되듯이 그가 가진 장애가 내내 그를 괴롭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 장애로부터 사유를 이용하여 간헐적으로 탈출하는 것으로 숨을 돌렸을 지도 모르겠다.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한 그 느낌을 즐기기 위해 나는 섹스, 약물, 우범지대처럼 사람들이 흔히 빠져드는 것들에 빠져들곤 했다. 그 갈망을 마침내 충족시킨 건 모성이었다. 모성은 멈추는 법도, 알아차리는 사람도 없는 자기 소멸의 한 방법이다." p97

삶을 그저 견디려 애쓰는, 책임을 하나도 져버리지 못한 듯한 모습, 아슬아슬하게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서 자신의 병을 견디고 엄마가 된 자신을 견디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서, 그의 삶이 힘겨워보였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넘나드는 사유와, 그 사유대로 사는 삶이, 무기력하고 자유로워보였다. 다른 모든 일탈보다도 낭비하고 있다는 갈망을 충족시킨 것은 모성이었으며, 알아차리는 법도 멈추는 법도 없는 자기소멸의 방법이라고 묘사한 데 있어서, 그가 탈출하지 못한 그 자신의 몸이, 그가 짊어진 책임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니, 그는 책임을 지는 것으로, 일탈을 하며 갈망했던 죽음에 가까워졌고, 역설적으로 삶에 닻을 내린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는 그가 실은 단상 첫 페이지에 쓴, 그의 말은 실현된 것일까? 그는 그가 닻을 내린 그의 삶을 부끄러워하는건가? 아니면, 그 이전의 삶을 부끄러워하는 걸까? 그가 무게를 두는 게 어느 쪽인지는 나는 모르겠다. 그가 버티고 있는 삶을 그대로 말한 건 남들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그저 그는 고백하는 것 같았다. 


몇 문장 밖에 안되는 글에 함축된 생각의 일부를 듣고 있는데, 그 사이에 숨어있는 서사가 눈에 보이는 듯 했다. 어쩌면 그건 그의 서사가 아니라, 내 내면에 불러일으켜진 서사일 수도 있다. 문장들은 너무 짧아서, 모든 사안을 유추하기에는 부족하다. 따라서 읽었을 때 바로 어떤 상황을 상상할 수 있는 건 내가 듣고 보고 경험한 일에서 오겠지만,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단상들은, 단상을 왜 적었을까, 이 단상의 배경에 무슨 일이 있었을지, 나라면 이런 생각을 언제 할 지 상상해보면서 이 사람의 삶을 그려봄으로써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비연속적인 단상의 나열은, 그 생각을 통과하여 연속적인 삶으로 살아있다. 자기자신으로부터 세상을 구하려 애쓰는 사람으로서.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만약 이 책을 읽으면서 자기 안의 서사를 발견하지 못하거나 저자의 서사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 책은 별로 재미없는 책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발견한 서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재미없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소 평범하지는 않은 생각인 것 같기 때문이다. 


이전에 정영문의 검은 이야기사슬을 읽을 때도 단편으로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 집합을 책으로 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단편, 혹은 장편에 등장할 수 있는 인물의 단면들을 읽는 기분으로 읽었다.


이 독후감을 이렇게 쓴 것이 조금은 후회된다. 왜냐하면, 이렇게 요약될 수 있는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둘러 읽기 위해 읽느라 흘려보낸 글들이 많아서, 오히려 아쉽다.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니며, 오래 두고 읽는 시집처럼 읽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을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다른 내용으로 시작하면 그게 뭐든 그저 지루한 배경 설명이 되어버릴 것이다. - P5

어떤 사람들은 오래 알고 지낸 사람과 빚은 갈등을 해소하는 것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편이 더 쉽기 때문에 오랜 친구와 연인을 버린다. 갈등을 해소하려면 자기가 저지른 실수를 인정하거나 상대를 용서해야 하는 경우에 더욱 그렇다. 나는 지금 어떤 멍청한 인간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멍청한 인간이 자기가 나라는 멍청한 인간을 버린 거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 P7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한 그 느낌을 즐기기 위해 나는 섹스, 약물, 우범지대처럼 사람들이 흔히 빠져드는 것들에 빠져들곤 했다. 그 갈망을 마침내 충족시킨 건 모성이었다. 모성은 멈추는 법도, 알아차리는 사람도 없는 자기 소멸의 한 방법이다." - P97

우울증은 그 병에 걸린 사람에게서 즐거워하는 능력만 훔쳐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한 적 없는 모든 일과 할 수 있었던 모든 일을 장막으로 덮어버린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기 위해 죽는다. 이런 경우 우울증(depression)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분명해진다. 그는 내리(de) 누름(press)을 당하는 것이다. 영원히.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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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적으로  시집을 한 권 샀다. 나는 시를 이해하지 못해서 시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시가 무엇인지 여전히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글이든 나를 뒤집어 엎는 듯한 글은 좋아한다.

머리털이 쭈뻣 서게 만드는 글, 아무리 세세하게 설명해도 설명할 수 없다 느꼈는데, 단숨에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글을 좋아한다. 나는 마치 방관자처럼 수치심에 확 달아오른 나를 건너다본다. 저 글 뒤에 숨어서, 마치 내 몸집이 글자 뒤에 숨겨지는 것 마냥. 숨길 수 없었던 것을 이야기하는 말에 어떻게 숨어있는 건지… 내가 한 말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타인의 서사라는 이유로 부끄러움 위를 한 겹 덮은 천 뒤에서 몰래 관찰하는 느낌이다. 

타인의 고통을 목격자로서 바라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 고통의 당사자로서 어떤 일을 겪기도 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던 누군가가 아직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고민하며 살아가는 흔적을 보는 듯 해서, 나는 여기 실린 시들에 위로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그는 목격자로서의 고통을 말하기도 하고 자신의 고통을 진술하기도 하지만, 그걸 과장하지 않는다. 고통보다 자신이 더 앞서서 취해있지 않다. 내가 내 고통에 취해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한 명의 친구가 생일을 맞아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에 힘을 보태려, 자신의 생일선물 대신에 후원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친구의 요청 없이도, 나는 후원을 할 생각이었지만, 그 친구의 요청글을 읽으니 한편으로는 부끄러워졌다. 나 역시 내 생일선물을 바란 적은 없었지만 그건 내가 태어난 일을 기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었지, 자신에게 올 복을 자신이 뜻하는 바에 전하고 그 일이 또 다른 생명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기를 바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후원을 요청하며 설명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이산화탄소 배출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공항을, 현재 있는 공항조차 잘 이용되지 않는데 새로 짓고, 그 자리에 살고 있던 생명을 파괴하겠다는 것이 그에게 너무 큰 고통과 슬픔이라고. 그러니 자신이 태어난 것을 축하하고 싶다면 그가 슬퍼하는 지점에 힘을 모아달라고 했다. 여태 내 발언이 당연히 먹히지 않을 것이고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하며 몸을 사리는 데 너무 익숙해서, 사랑받는 사람이 하는 이런 행동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나는 비건지향이고, 페미니즘의 연장선상에서 동물권에 관심이 있고, 동물해방을 꿈꾼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행동하지만, 그는 그걸 밖으로 잘 표현하고, 그를 위한 삶을 살아간다. 단지 먹히기 위해 끊임없이 임신을 강요당하고, 태어난 아이를 빼앗기고, 운신조차 힘든 우리에서 전염병에 걸렸을 위험이 있으리란 이유 하나 만으로 살아있는 채로 매장당하는, 동물들의 고통에 절망한다. 단지 전쟁을 위해 죽어나가야 하는 생물들의 고통에 화를 낸다. 나는 그가 한 행동을 닮고 싶었다. 

나는 어쩌면 과거에 페스코베지테리언을 시도하다가, 바쁘고 신경쓸 것이 많다는 이유로,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고 싶다는 스스로의 마음을 이전에 스스로 부수었기 때문에, 아마 그게 부끄러워서, 그 상처가 회복되지 않아 내가 동물권에 관심이 있습니다 하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기도 하다. 오래 실천을 지속하다보면 자신감이 생기리라고 믿고 싶다. 비건을 시도하게 된 건 환경운동을 하고 싶어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 싶어하면서(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79377.html) 육식을 지속하는 게 창피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워지니, 쓰는 일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를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 변명하는 글을 남기면, 내가 그 변명에 안주하게 될까봐.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안주하기를 바라지 않았으므로, 전달하고 싶은 말도 사라졌다. 연결되고 싶다는 갈망이 쓰기라면, 나는 그 시기, 나를 지키기 위해서 단절을 원했던 것 같다. 

나는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이,  연결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시라고 생각했다. 안주하지 않고, 자신에게 계속 말을 걸고, 전달하려는 노력을 하는 글들... 그래서 읽는 데 오히려 안주하기도 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쓰는 일로 어떻게 삶을 살아가게 만들지 고민하면서 쓴 시처럼 보였다. 살기 위해 쓰고, 헛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럼에도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던 이야기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돌이켜보는데 그치지 않는 시들. 어떻게 하면 자기자신을 더 많이 자신안에 포함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살수록 포함시켜야 하는 천진한 나와, 많은 실수와, 잘못이 늘어가고 있다. 고통에 방관하거나 목격자가 되거나, 감당할만한 고통의 당사자가 되거나, 이리저리 휘둘리는 사이 내가 내뱉은 말이 얼마나 먼지처럼 가벼운지 생각했고 먼지처럼 흩어지지는 못하고 습기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고 옭아매는 점을 생각하고, 그래서 자꾸 망각한다는 것도 생각한다. 

지금 내가 포함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천진함이다. 꽉 막힌 상황에 무엇이든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더 나은 것들을 끌어오고 싶어서이다. 내 기대치에 어긋나는 나를 포함시켜서, 더 나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가능주의자라는 제목에 이끌려 이 시집을 집어든 이유도 이와 같다. 절망스러운 일에 절망하기도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 것, 그 힘을 믿고 싶었다. 나는 내 모든 역량을 다해서 나를 수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므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아마 어디서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될 것이다. 

달리는 기관차를 멈추게 하는 브레이크가 혁명이라면, 혁명을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비폭력적인 혁명이었으면, 이걸 꿈꾸는 것조차 천진하여 그런 것이다.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일에 기여하고 싶지 않다. 내가 먹고 사는 일이 앞으로의 미래를 망치지 않기를 바라서. 그리고 지금 이산화탄소 배출을 막을 수 있는 잠시멈춤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고 싶어서... 천진함으로 끝나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었다. 

누가 그랬다. 사람들이 전부 칼럼을 썼으면 좋겠다고. 그 칼럼으로 자신을 검열하게 될 테니까. 

그렇지만 또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네가 아무리 뾰족하게 글을 써도 무딘 글일 뿐이라고, 글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고. 

매일 망각하고 새로 쓰고 생각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으로, 이미 잊은 걸 계속 삶에서 이어갈 수 있기만 해도 좋을 것 같다. 결국 쓰는 게 자기만족일 거라면 쓰는 일로 나를 계속 노력하게 할 수 있었으면. 

언젠가는 검열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도 어긋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내 작은 행동이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타인의 시선들로 가득찬 방,
책상과 의자와 침대가 수치심에 떨고 있다

이제 이곳은 내 방이 아니다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지만
출구는 없는 방

문의 공포는
열 수 없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잠글 수 없다는 데 있다 - P18

여행에서 돌아오자
미루어둔 불행이 일제히 들이닥쳤다.
벽장문 사이로 쏟아져내리는 잡동사니들처럼

예외적인 날들은 끝났다고
그것 보라고
이게 바로 도망칠 수 없는 네 몫의 삶이라고
누군가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 P122

벤야민은 혁명을
기차 탄 사람들이 잡아당기는 비상브레이크라고 말했지만
달리는 기관차를 멈춰 세우는 것이라고

달리는 기관차를 멈추게 하는 장력은

얼마나 고요해야 하는지
얼마나 자유로워야 하는지
또는 얼마나 천진해야 하는지

아내의 방에 와서도 점점 어린애가 되어갔다던 김수영처럼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꾸어버렸다던 김수영처럼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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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7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8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3-03-17 1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어본 시집 리뷰중 가장 근사한 리뷰입니다. 저도 시를 잘 읽지 못하지만 이 시집은 읽어보겠습니다. 이 시집을 읽어도 이렇게 근사한 리뷰는 써내지 못할것 같지만요.

우끼 2023-03-17 11:26   좋아요 1 | URL
와앜 엄청난 칭찬이네요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다락방님께도 좋은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잠자냥 2023-03-21 13: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점심 먹다 울컥합니다.....;

우끼 2023-03-21 16:26   좋아요 1 | URL
ㅜㅜ 고맙습니다.. 제가 모순적인 인간이라 저 자신한테 화내고 세상에 화내느라 혼자 사는게 아니라 같이 사는 거고 마음도 통할 수 있다는 걸 요새 자주 잊고 살았어요.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심층적응 - 기후대혼란, 피할 수 없는 붕괴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젬 벤델.루퍼트 리드 지음, 김현우 외 옮김 / 착한책가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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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스템으로는 기후붕괴를 막을 수 없으리란 절망감에 내내 잠식되어 있었다. 때문에 기후붕괴 이후의 사회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핵발전소 멜트다운으로 인한 지역오염, 자급자족, 농사기술의 필요성, 어쩌면 농사조차도 불가능할 환경에 마주할 가능성, 공동체와의 새로운 방식의 연결. 내게 자산이 없고, 땅을 산 이후에 이를 준비하기 시작하겠다고 한다면, 그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내게 없어보였다, 그럼에도 나는 내 안전을 보장받기를 원하고 발언과 행동의 자유를 원한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 것인지는 모르는 채로.

기후정의에 관하여 고민하는 사람들조차도 누구는 비건을 하고 누구는 육식을 줄이는 데 머문다. 에너지문제에 있어서도, 누구는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더라도 어떤 땅에 지을 것인지 고민해야하며, 에너지 사용량 자체를 줄여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남반구를 재식민화하여 에너지를 조달하는 유럽의 방식을 따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온도차는 그렇다 하더라도, 아예 고민조차 안하고 일회용컵에 매일 커피를 마시고 배달음식을 생각없이 주문하거나, 육식을 세끼 지속하는 사람들도, 아직도 기후위기를 거짓말이라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괴로운 건, 내가 먹는 먹거리조차도 스스로 생산하지 못하며, 따라서 아무리 텀블러를 들고 다닌다고 할지라도, 나 역시도 누군가가 생산한 음식을 구매해서 먹어야 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막지 못한다는 점이다. 야채를 포장할 때도 플라스틱 부산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래서 가급적 시장에 가서 직접구매를 하려고 한다고 할지라도, 완전한 제로웨이스트는 사실상 너무 품이 많이 든다. 그리고 내게는 그게 가능할 만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나는 그런 맥락에서 기후위기에 계속 기여하고 있고, 그 사실이 우울을 유발한다는 점도 생각한다. 만약 이 모든 것을 다른 방식으로 실천가능했어도 우울했을 것 같기는 하다.. 혼자 실천한다고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개인의 실천도 문제지만, 그보다도 심각한 건 단 한번의 결정으로 일반 노동자 몇십만명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는 자들을 막지 못하는 게 더 문제니까.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소비시스템도 그렇고, 이토록 여유없이 살아야만 하는 이 상황도... 그리고 이것은 강압적으로 이루어져서는 곤란하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정의의 이름에 포함되어야 한다. 이 붕괴를 막기 위해 사람들을 설득할 시간이 우리에게 남아있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누군가가 피해를 일방적으로 감수하게 할 수 없다. 정의의 이름에 포함되지 않는 목소리가 많을 수록, 기존 시스템이 하던 일과 크게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구독 ai이야기를 한다. 사람은 필요없고 데이터와 자본이 있으면 되는데 이 자본을 끌어오려고ai를 구독방식으로 만들어서 돈을 벌겠다는 거다. 사회복지사가 해왔던 노인과의 대화도 이제 ai가 한다고 한다. 사람보다 더 친절하고 다정하니,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은 걸까? 이들은 ai가 사람처럼 행동하기만 해도 괜찮나? 노인이 되어서 ai와 소통하고 싶은 노인이 되고 싶은건가? 차라리? 나는 이들이 내놓은 대안이라는 게 당신들은 이렇게 살지 않으리라는 확신때문인 것 같다.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나라면 사람을 만나지 않고 AI와만 접촉해야 한다면 삶에 의미를 잃을 것 같다. 아닌가, 지금도 딱히 삶의 의미를 못느끼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걸까? 어찌되었건, 이 시선은 노인을 철저히 관리대상으로 보는 입장으로밖에 안 읽힌다. 

게다가 이들이 연구개발을 진행하지 못하는 이유를 정부규제 및 투명성을 요구하는 세력을 이유로 들던데, 여기서 투명성은 '윤리성'을 의미하는 건가? 이루다의 실패 이후에도 사람들의 사고라는 블랙박스를 필요로 하는 건가?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든, 그들이 사용하는 데이터라는 건 사람들이 인터넷에 퍼올린 말들이고 그들의 삶이 담긴 자원이다. 저작권이 있는 것만 저작료를 내면 끝나는 게 아닌데 마치 저작료정도는 감수할 만한다는 듯이 말하는게 당혹스러웠다. 이들 모두에게 혜택을 제공할 것도 아니면서, 무얼 위해서 AI개발을 한다는 건지... 우리가 연결되어 있고, 우리의 부 역시도 연결되어 있다면, 단지 다른 사업자가 더 빨리 무언가를 개발하여 상품화할 것이라는 점에만 매달리지 않아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이 일을 하기 위해 소모하는 에너지는 기후위기에 역행하는 일일지 아닐지도 궁금하다. 

예술이 예술일 수 있는 건, 법과 규칙으로는 다 포용되지 않는 삶을 잘라내지 못하고, 다시 삶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인데, AI가 만들어낸 '예술'이라는 것이 이러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까? 데이터들의 집합이 무엇을 도출해낼지 알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모른다는 건 어쩌면 더 나은 가능성을 도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더 나은 가능성조차도, 인간이 AI의 결과물을 보고 만들어낸 가능성이지 AI가 만들어낸 가능성이 아니다. AI는 결과물에 반응하지 않고, 인간이 AI의 결과물에 반응하는 것이므로. 데이터가 편향적인데 도출된 결과물이 이루다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사람도 추상화를 하면서 필요없는 데이터들을 걸러내는데, AI는 더 정량적으로 데이터를 걸러내지 않을까? AI는 인간사회가 무엇을 좋아하도록 제도화했는지 걸러낼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러나 AI가 만든 결과물이 예술로서 감동을 일으킬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좋아한다고 도출된 것만 계속 전달한다고 해서 사람이 그것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니까. SNS를 하고 책을 읽는 건 너머의 어떤 삶을 상상하며 소통하려 하기 때문이라 여겨서, AI와의 소통을 누가 바랄까도 궁금하다. AI가 인간의 확장으로 작동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를 인격으로 느낄 때, 그럼에도 우리가 그를 도구로 대할 때, 나는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어서 두렵다...

AI가 대신할 수많은 일자리들이 없어지는 세상도 두렵다. AI를 윤리적으로 작동하게 하려고 폭력적인 데이터를 걸러내는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의 노동이 지속되는 세상도 두렵다. 



특히나 우리의 목표가 사회와 자연 세계를 더 많이 구하고 피해를 줄이는 것이라면 이 어려운 순간에 무엇을 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소중한 시간을 몽땅 잃어버리게 만들 수 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고 남은 삶을 그것에 맞추어 갈 기회를 지연시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거대한 사회적 혼란에 직면하여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을 탐색하기 시작조차 하지않는 것은 패배주의라고 간주한다. 이것이 우리가 사회 붕괴를 예견하는 것에 담긴 다양한 의미들을 논의하는 책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 이유다.
심층적응 Deep Adaptation은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인한 산업소비사회의 잠재적이거나 가능한 또는 불가피한 붕괴에 대응하기 위한 의제이자 틀framework이다. ‘사회 붕괴 societal collapse"
라는 용어로 우리가 나타내고자 하는 바는 지속성, 보호, 건강, 안보, 즐거움, 정체성과 의미에 관한 산업소비주의 양식의 불균등한 중단이다.
환경적, 경제적 또는 정치적 붕괴보다 이 ‘사회‘라는 단어가 중요한 이유는 이런 불균등한 중단들이 사회에 두루 퍼지고 그 속에서 살고 있는우리 처지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붕괴‘라는 용어는 반드시 급작스러울 것 같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시스템이 포괄적으로 그리고 그 전의 모습으로 돌이킬 수 없도록 파괴되는 형태를 함축한다. ‘심층‘이라는 용어에는 기후 영향 적응에 관하여,
우리 자신들 그리고 우리 조직과 사회들 내의 원인과 잠재적 대응들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감으로써 주류적 접근들의 의제와 대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Klein et al, 2015). - P19

"멸종반란은 생태적 이유로 인한 문명 붕괴와 대량 멸종을 막기 위해 수천 명의 사람들이 기꺼이 채포될 용의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 P16

우리의 일반적 생활방식의 취약성은 2020년 한 바이러스가 처음의건강상 영향을 넘어서서 일련의 연쇄적 효과들을 촉발시켰을 때 확연하게 드러났다. 이를 시작으로 의약품과 보호장구, 식량 부족을 겪었고,
경제 활동의 둔화, 국내적 정치 격변, 외교적이고 지정학적인 갈등, 그리고 경제적 충격을 줄이거나 지연시키기 위한 엄청난 국가 부채가 초래되었다. 여러 곳에서 생겨난 자원활동가 주도의 상호부조 활동은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보여주는 지표다. 코로나-19는 지구화된 경제에 스트레스 테스트가 되었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무엇이 심층적으로 중요한지를 가감 없이 일깨워주기도 했으며 미래의 재난들과 심리적 불안에 대한 실시간 예행연습이기도 했다(Read 2020:ch. 26; Gray 2020). 일부 사람들이 사회 붕괴를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문제로 생각할 때, 유엔이 잠재적으로 코로나-19보다 더 심각한 것을 포함하여 코로나바이러스의 발병이 환경 파괴와 기후변화 모두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경고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UnitedNations 2020). 이러한 분석은 기후변화의 간접적 영향들에서 비롯하는혼란들이 이미 세계 대부분의 사회에서 느껴지고 있음을 뜻한다. - P20

2019년 11월, 일곱 명의 유력한 기후과학자들이 <네이처>지의 기고를 통해 사회 붕괴가 불가피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왜냐하면 지구의 상태를 조절하는 알려진 지구 기후 티핑 포인트 15개 중 9개가 이미 작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Lenton et al. 2019).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우리의 기후 상황에 대한 과학자 다섯 명의 의견이 생물과학지에 실렸고 인류에 대한 경고로서 11,000명이 넘는 전 세계 기후과학자의 서명을 받았다. "기후 위기가 다가왔고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가속화되고 있다. ..… 예상보다 심각하며, 자연 생태계와 인류의 운명을 위협하고 있다…."(Ripple et al. 2019). 기후변화가 인류에게 그토록 위험스러운 이유들은 2장에 설명되며, 기후과학자들이그 위험성에 대한 진술에서 왜 보수적인지는 1장에서 설명된다.
2020년에는 2백 명의 과학자가, 다른 기후 및 환경적 인자들이 상호작용하며 서로 증폭하는 방식 때문에 ‘지구의 시스템적 붕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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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 투쟁기 -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
우춘희 지음 / 교양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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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화가 나서 작성했습니다. 다소 편향적인 질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계약서대로 하면 아무도 농사 못 짓고, 얘네들 전부 보따리 싸서 고향에 가야 해.“ “임금 체불 신고액 1천억원.”

이런 환경에서도 이주 노동자들이 일하는 건 국가 간 빈부격차로 인한 임금차이 때문이다.

질문 하나. 농장주가 주장하는 대로 임금을 제대로 주면 농사를 못 짓게 되는 것이라면 이는 지나치게 값싼 농산물 가격 때문일까?

질문 둘. 이 가격은 시장경제가 만들었을까 아니면 국가가 만들었을까?

값싼 농산물이 있어야 한국인 노동자가 받는 월급으로도 농산물을 구매하는 데 부담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 노동자의 월급은 최저임금 이상을 주게 되어 있다. 최저임금은 노사합의라는 이름으로 매년 정해진다. 아마 월급 대비 농산물 가격이 오르는 순간 최저임금이 올라야 한다는 요구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질문 셋. 누가 이것을 막고 싶을까? 사업주?

질문 넷. 왜 사람들이 월급노동자 대신 사업주가 되고 싶어할까?

임금생활자로 살면 노동의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업주가 되는 순간 노동이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보다도, 노동의 값을 절감해야만 사업 지속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더 중요하게 맞닥뜨린다. 사업이 지속되어야, 임금을 줄 수 있으므로, 노동자의 생계가 자신의 손에 달려있다는 점만 생각하며 노동자를 사업자가 먹여살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손해가 생기면 임금을 체불하되, 이득이 생기면 나누지 않는다는 점은 고려하지 않는다.

2020년 기준 31,998명의 이주노동자는 이 틈새에서, 임금체불을 당한다.p89 그럼에도 밥상에는 채소가 싼값에 올라온다. 따라서 임금체불을 하고도 이주노동자는 노동을 하고, 농장주는 고용을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들을 일러 왜 임금체불에 저항할 제도를 활용하지 않느냐고 이주노동자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질문 다섯. 제도를 만들어도 그걸 알고 활용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 제도는 의미가 있는지? 제도를 몰라 활용을 못하면 제도를 확실히 알았는지 확인하는 절차도 필요한 게 아닌지? 제도를 활용해도 구제받지 못하는 제도가 제도로서 역할을 하는 건 맞는지?

이 책에 따르면 해마다 임금체불을 당한 사람과 임금 체불액은 늘어나고 있다.

질문 여섯. 그렇다면 해마다 얼마나 많은 농장주가 임금체불을 하고 있을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얼마나 더 많은 농장주가 이런 상황 속에서 임금을 적게 주도록 강요당하거나, 적게 주는 유혹에 빠지게 될까? 이들은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종 혹은 출신국 차별을 하려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국가간 빈부격차로 임금을 다르게 주려고 하는 것은 국가간 차별일까 아닐까? 피부색으로 드러나지 않는 흔적을 찾으려는 공무원들을 본 적이 있는지?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한국이름을 갖고 있음에도 다른국가에서 온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건 인종차별일까? 빈국부국에 따른 차별일까?

다른 근거를 찾지 않더라도 국제 노동기구가 정한 8가지 기본적인 협약에는 '고용 및 직업상의 차별에 대한 협약'이 있다. 고용과 직업에서 모든 형태의 차별은 철폐되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고용노동부는 2019 업종 지역 연령별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타당하지 않다고 입장을 내놓았다. (오 이럴수가 성별은 여기 없네요_)





질문 일곱. 그렇다면, 왜 이 협약은 지켜지지 않는가? 왜 고용노동부의 발언은 지켜지지 않는가? 

질문 여덟. 왜 이주노동자는 미등록 이주민이 되기를 선택할까? 


합법 체류자는 단기간의 노동만 제공하도록, 다시말해 한국에 정착해 살지 못하도록 여러 법적, 제도적 장치가 설계되어 있다. 이들은 사업장을 옮기는 데도 횟수가 정해져있고, 고향에 돌아가기 않고 돈을 벌려고 여러 억압들을 견딘다. 미등록 이주민은 그들을 원하는 일자리가 있는 한 일할 수 있다. 미등록이기 때문에 협박을 하든 안하든 돌아가야한다는 위험을 항상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원하는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다. 농사일은 때가 있어서 일을 해야 하는 시기에 일을 해아한다. 미등록 이주민은 원하는 만큼 일자리를 옮기는 편이라, 꼭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되므로 협상력이 생긴다. 협상력이 생기므로 제대로 된 돈을 받고 일하며, 생각하는 기준에 따라 일할 곳을 정할 수 있다. 어떤 경우 여러 제도때문에 발이 묶여 합법체류자일때 가족과 함께 살며 일할 수 없었던 때에도, 미등록 이주민 일 때는 가능하다. p153~179


질문 아홉. 왜 미등록자가 된 이주노동자를 사업주는 고용할까? 


(내국인) "청년층 건설현장 유입문제는 앞으로 장기간 개선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단순히 처우개선이 문제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자기 자식 공부시켜서 노가다 보낼 부모가 누가 있겠습니까? ... 수주산업이라는 것은 일정 기간 내에 건물을 완공해야 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공사 일정 못 맞추면 안 되니까 불법 고용을 하는 것이 편한 해법이겠지요. 미등록 체류자를 못 쓰게 하면 공사가 멈출 것입니다. 정부에서는 불법 고용 하지 말라고 해도, 현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p179


질문 열. 합법 고용이든, 불법 고용이든, 여성 이주노동자의 경우, 이들의 인권은 지켜지고 있을까? 


"남녀고용평등과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남녀고용명 동법) 제39조에 따르면, 사업주가 직장 내 성희롱 행위를 한 경우에는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법적인 구제를 받지 못했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제조업 분야 여성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보면, 설문 조사에 응한 385명 가 운데 45명(11.7퍼센트)이 성희롱과 성폭행을 겪었다고 대답했 다. 같은 해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농업 분야의 여성 이주노동자 성폭력 실태 조사를 했는데, 응답자 202명 가운데 25명(12,4퍼센트)이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성폭력 가해자는 한국인이 80퍼센트를 차지했는데, 고용주를 비롯해 고용주의 가족, 관리자, 직장 동료, 이웃 등이었다. 나머지는 한국 외 타국 동료(12퍼센트)와 같은 나라 동료(6퍼센트)였다".p189


질문 열 하나. 이런 실상에, 이주노동자의 건강권은 지켜지고 있을까?


2019년 7월 16일 이후 6개월 이상 체류하는 이주노동자는 건강보험료를 내도록 되어있다. 소득과 재산으로 산정되는 내국인 보험료와 달리, 이들은 내국인 평균 건강보험료를 낸다. 이는 그들의 소득수준보다 높게 산정된 금액이다. 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체류자격에 문제가 생기며, 이들은 접근성문제로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p200~203


질문 열 둘. 그러니까, 국가간 빈부격차를 이용하여 이주노동자를 농업,공장,건설업에 종사하도록 만든 이는 누구일까? 누가 아직도 이들을 필요로 하는가? 이들의 자발적 노동이 자발적일까? 언제까지? 


p242"한국에서도 이주민, 특히 미등록 노동자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더 늦지 않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


임금체불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허술한 것도 문제지만 방한도 안되고 냉방도 안되는 비닐하우스에서 거주하면서 거의 거주비만 달에 2백을 낸다는 것도 부당하다. 거주 조건이 좋은 것도 아닌데다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같이 사는데 합해서 그 정도 금액이라니. 주거지 조건이 안좋아서 병이 악화되어 2020년에 죽은 이주노동자도 있었다. 그 노동자가 죽은 지역만 기숙사가 더 좋은 곳으로 바뀌었다. 그 후 기숙사비가 2배 비싸져서 이주노동자들이 비닐하우스가 더 싸니까 낫지 않나 하는 식으로 이야기한다는데, 그걸 비닐하우스가 더 살기 좋다는 말로 받아들이는 것도 너무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여러 이유로 차별에서 무관한 국가가 아니다. 법의 테두리, 제도의 태두리 내에서 살 수 있도록 여러가지로 논의가 필요한 문제인 것 같다. 


P.S. 질문 열 셋. 그래서 국가간 빈부격차가 왜 생겼다고?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화 때문에? 



원인이 뭐든 간에, 이 일이 잘 논의되어서, 사람이 건강하게 살면서 노동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이 상황이 제국주의시절의 식민지와 얼마나 많이 다를지 의구심이 들었다. 한강의 기적 이전의 노동자들의 여건과 어떻게 다를지도 궁금했다. 이렇게까지 해야만 지속될 수 있는 걸까도 궁금했다. 이러한 질문들은 아마 많은 것들을 생략한 후에 할 수 있는 질문이기는 하다, 다만 이들이 일하는 환경이 바뀌는 게 더 중요하게 보였다. 내가 그들이 키운 야채를 먹을지도 모르는 한, 이 일은 나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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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2023-02-14 18: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결국 문제는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체제가 가진 폐단이라 여겨집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혹은 저개발국가의 차이는 제국주의로 인한 식민지 침탈로 가속화되어 지금의 차이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때의 자본으로 선진국과 타국가의 격차가 심화되었죠.
그 이후 자본주의 체제의 심화로 현재 우리가 목도하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이 첨예해집니다. 자본가는 노동자로부터 잉여가치의 극대화를 위해 여러가지 수단을 쓰는데 가장 악질적인 것이 임금체불인 것이죠.
자본주의의 심화는 사람(노동자)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없는 체제이기에 복지나 노동친화적인 사회주의 정책들을 도입하여 그나마 숨은 쉬고 살 수 있는거죠.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는 얘기지만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좋은 리뷰를 쓰셨는데 댓글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에 주절주절 떠들었습니다.

우끼 2023-02-17 19:17   좋아요 2 | URL
답글 감사드립니다 ㅠㅠ 뭐라 답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 답이 늦었어요. 같이 고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식민침탈에 보상이 이루어져야, 이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요? ㅜㅜ 이 일이 무 자르듯 답이 나오지 않는 건 이미 유지하고 있는 생활에서 무엇을 포기하고 포기하지 않을지 서로 논의하는 것조차도 어떻게 가능할지 알 수 없어서일까요?? 말할 수록 답을 모르겠지만, 같이 고민해주셔서 힘이 났습니다 감사드립니다

DYDADDY 2023-02-17 19:28   좋아요 2 | URL
우로보로스처럼 세계적으로 모두가 맞물린 초연결사회에서 오히려 ‘이것이 답이다‘라고 외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떻게 하면 조금은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환경과 입장에서 조금씩 실천하면서 타인의 실천을 비판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것이 현재로는 그나마 대안인 것 같습니다. 실천이라는 것이 대단할 필요도 없이 길가다 재활용품 있으면 주워서 재활용품 장소에 버리거나 환경단체에 매달 소액 후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이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추운 밤을 나는 펭귄들처럼 모여 버텨나가다보면 더 많은 펭귄들이 모이고 그러면 좀더 나은 세상이 오리라 생각합니다.

우끼 2023-02-18 10:40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저는 그정도로 충분한 일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ㅠ 고통받는 사람들의 고통이 경감되는 게 아니고. 공적 발언은 계속 필요한 것 같아요. 그와 더불어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앞서서 찾는 사람도 필요하고, 그를 지지하여 함께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개인이 자신의 실천방향을 어떻게 할지는 대신 결정할 수 없지만, 공적발언이 누군가에게는 가닿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DYDADDY 2023-02-20 12:26   좋아요 1 | URL
며칠간 우끼님의 공적발언에 말씀을 고민해봤는데 최근 읽은 법고전 산책에서 ‘법규나 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행위는 이 같은 모든 이해관계자들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것과 같으며, 수많은 촉수로 단단히 들러붙은 해파리를 제거하는 일과 같다.‘ 라는 글을 읽고 간단히 해결하거나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완전비례대표제에 대한 것도 고민해보았습니다. 양당제로 구성된 국회가 아닌 기본소득당, 녹색당 등도 원내 구성을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목소리가 공적으로 인증 즉 법제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저도 여러모로 고민하고 실천해보겠습니다. 깊은 물음을 던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의 힘을 다시 믿게 된 건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 라는 책을 쓴 분이 하신 인터뷰 때문이다. 그분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다시 일궈낸 분 같았다. 돌봄노동을 그렇게 즐겁고 기쁘게 이야기하는 분을 처음 봤다. 아프고 무력한 순간이 민폐로만 취급되지 않는다는 게 구원받는 느낌이었다. 그분께 감사하는 만큼 나도 내가 가진 모든 역량을 끌어내서 그와 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한 내 삶을 긍정하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그분이 출연한 인터뷰에 나온 대로, 요양보호사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점도 생각했다. 그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사람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일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사람은 없을 지라도, 최소한 이들이 자신의 일이 의미가 있다고 상호작용하는 게 가능한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최저임금을 받고, 적은 숫자의 요양보호사가 너무 많은 인원을 케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더군다나 요양보호사는 사람들이 나이들어 죽기 전에 간 요양원의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하지 않나. 이 문제는 지금 현역으로 일하는 노동자에게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정부의 세금을 착복한다는 요양원의 비리는 제도적으로 막을 수 없을까? 

인간의 조건을 함께 읽기로 했다. 예전에 읽을 때는 아렌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려고, 언급한 대목 하나하나 어디서 가져왔고 그게 원래는 어떤 맥락이 있고 아렌트는 어떤 맥락에서 사용하려 이걸 가져왔는지 찾다가 중단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읽게 되면 아마 시간이 없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많이 받을 것 같다.

자급 노동을 하려는 건 하는 일에 연결된 누군가의 희생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자괴감을 덜 느끼려는 이유에서였다. 다만 자급 노동을 하면서 쓰는 시간을 보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백수가 될 것이라 고백하는 일은 내가 이 사회에서 아직 인간이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잘 아끼면서 버틸 수 있을때까지는 돈을 벌고 싶다. 당장 백수가 되면 내가 마음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돈이라는 매개도 전달하기 어렵다. 어떤 사람은 백수야말로 환경보호를 앞장서서 하는 사람이 아니냐고 했다. 백수라는 이유로 소비를 덜하고 교통도 거의 이용안하고. 걸어다니니까.. 그러나 기부금을 끊기는 싫고, 경력도 단절되는 게 두려우니 돈을 벌어야 할 것 같아서, 일을 구할 것이다. 매주 이야기를 몇천 자씩 써서 글 공모를 해보려고 했는데, 일 구하는 데 집중할 시간도 모자라서 포기했다. 이야기를 쓰지 않더라도 일기는 계속 쓸 것 같다.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이것도 다른 스터디에서 함께 읽기로 했다. 기후정의가 중요하다고 모였는데 도대체 다들 기후정의가 뭔지 모르겠다고 해서... 얼씨구나 좋다 나도 모르니 함께 책을 읽을 수 있어 신났다. 먼저 책 한 권이라도 읽은 분이 추천해주신 책을 읽기로 했다. 읽다 보면 뭔가 축적되겠지 싶다. 브루노 라투르 책을 장바구니에 내내 넣어놓고 이제서야 스터디 한다 하니까 주섬주섬 같이 읽자고 링크를 보냈다. 사라질 수 없는 사람들이랑 빈곤 과정도 같이 읽자고 하고 싶었는데, 사라질 수 없는 사람들만 언급하고 말았다. 다들 너무 바빠서 뭐라 말하기도 그랬다. 지난달에 빈곤 과정 새벽책스터디 하려고 했는데 사람을 구하는 데 실패했다. 당분간은 아마 새벽책 스터디는 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일단 사라질 수 없는 사람들을 읽고 나서 나도 사람들과 함께 인터뷰를 모으는 걸 목표로 삼았다. 이게 얼마나 성과가 있을지 가늠이 어렵다. 남에게 맡겨버리는 정치 말고, 직접 목소리를 내고 그게 어떤 방식으로든 가시화된다는 게 어떤 반향이 있을지 가늠할 만한 지식이 없다. 민주주의라는 책에 실린 예시에선 직접민주주의 형식으로 의사결정을 한 거랑 엘리트가 의사결정을 한 거랑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고는 하는데, 지금은 눈앞의 밥그릇만 쳐다보는 정치인 엘리트가 더 많아보여서... 할 수 있는 말이 있는 건 할 수 있는 말을 배운 사람들이라고는 하지만, 일단 뭐라도 시도해보고 싶었다. 기후 위기를 겪는 사람들의 말을 모으고 싶었다. 말을 하는 사람 앞에서, 듣는 사람이 있는 게 중요할 것 같았다.

기후 위기 때문에 농사에 실패하고 사람이 죽어도, 석탄화력발전으로 돈을 번 삼척블루파워는 회사채1300억을 내놓았다고 했다. 전혀 팔리지 않을 줄 알았건만 개인투자자에게 50억을 팔아치웠다는데, 화가 났다. 이산화탄소 배출로 얻은 부는 그대로 두고 책임을 민간투자자에게 미루는 것처럼 보였다. 이걸 또 얼마나 끼워팔기로 내놓을지 상상하면... 이건 민간의 부를 빼앗는 일이지만, 자산조차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얼마나 많이 지워져 있을지? 말로 표현되지 않은 그림자 속에 있는 일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곳을 계속 살피고 싶었다. 나도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깻잎 투쟁기는 얇으니까 2/5일까지 재빨리 읽을 예정이다. 읽으려고 다짐한 지가 두어 달은 된 것 같다.
토베 디틀레우센 코펜하겐 3부작은 계속 1권만 다시 읽고 다시 읽고 하고 있다. 이 사람이 정말 얼마나 우울한지 느껴져서 집중하는 게 어렵지만 번역된 문장이 너무 아름답고, 감정의 맥락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1권을 맴돌고 있다. 이것도 일요일 내로 다 읽... 일요일에 다 못 읽으면 이달 안에 읽는 건 포기하는 걸로..
마틴에덴 이것도 문장이 예뻐서 읽는 걸 계속 미루고 있다. 한 번 읽을 때 몰입해서 읽고 싶다. 대충 읽는 게 너무 아깝다. 아마 이건... 이달안에 못 읽지 않을까. 일요일에 해야 할 일도 많은 데 책 5권을 다 읽는 건 무리일 것 같다.

























































나머지 책은 2월에 못 읽는다. 아마 2월에는 배수아 작별들 순간들 조금 건드리다 말 것 같다. 소개글에서 좋아한 문장은 이것이다. ...

상실을 겪거나 배반당하거나 어리석은 결정을 내려 수치스러울 때면 나는 책상으로 가서 읽거나 쓰면서 마음을 달랠 것이다. 삶을 바꾸고 싶을 때, 다른 삶을 간절히 원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언젠가, 한 시간쯤 뒤에 혹은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는, 반드시 기분이 다시 좋아질 것이다. 나는 빛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섬을 갖는다. 하나의 오두막을, 하나의 정원을 갖는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평화를 느낀다. 물이 나를 들어올리듯이 그것이 나를 들어올리고 있음을 느낀다. p110-p111

이외에는 인간의 조건과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이 두 권만 남은 시간에 조금씩 읽지 않을까 싶다. 베르그송 농담은 언제부터 읽고 싶어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밀란 쿤데라도 농담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었는데 아직 못 읽었다. 그때 왜 농담을 읽으려고 했더라? 소설에 도저히 농담을 넣기가 어려워서? 어떤 작가는 우울하고 끝없이 무의미한 이야기를 웃기게 쓰는데 나는 왜 자꾸 우울한 이야기를 힘주고 쓰나 자괴감 들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이 책만 읽을 시간이 필요해서 못 읽었다. 인물이 하는 행동의 맥락을 좇아가는 데 힘이 많이 들었다. 올해 내에는 읽을 시간을 낼 것이다.

좌파의 길은 자본주의도 잘 몰라서 읽고 싶었다. 자본 첫권을 과거에 구매했지만 다른 일로 의지력을 모두 소모하고 나면 읽을 여력이 남지 않아서 아직 못 읽었다. 그래도 지금은 공부를 더 미룰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얼마나 진정성을 가졌는지 스스로 의심이 들지만.

쿼런틴도 읽고 싶다. 쿼런틴은 누가 밑줄그은 문장들을 읽었는데 너무 충격적이었다. 밑줄긋기에 나온 사유가, 이전에 이야기로 만들어보고 싶다 여겼던 사유와 닮아보였기 떄문이다. 사유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걸 이야기로 만드는 건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심지어 재미있다고 하니... SF를 많이 안 읽어서 이런 작품이 있는지 몰랐다. 올해 안에는 꼭 읽어야지 싶다. SF로 잘 알려진 작가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가고 싶다. 필립 k 딕도 읽고, 할란 엘리슨도 읽고 해야 하는데. 그나마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로저젤라즈니도 아직 다 읽지 못했다. 밀란 쿤데라도 전집이 다 재밌지는 않겠지만 읽었던 몇 개는 재미있었으니 한번 다 전집을 읽어보려고 했는데 이것도 계속 미뤘고. 카뮈 시지프신화, 페스트도 추천받은 지가 몇 년인데 이인 말고는 안 읽었다.

실비아 플라스도 읽고 싶고. 페터 한트케 시 없는 삶도 읽어야 하고. 읻다 시인선 10권 이후 나온 책들도 아직 안 샀고. 코스모스 읽고 다시 되팔려고 했는데. 산 책보다 역시 살 책이 더 많고 안 읽은 책은 더 많다.

읻다, 워크룸프레스, 글항아리, 두 번째 테제가 내는 책은 계속 따라가면서 확인하고 싶었고, 두 번째 테제 책을 우선 리스트에 올렸다.

기후 위기 시대에 책 산업이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지 자꾸 생각하게 된다. 내 경제력으론 책을 사고 보관하는 걸 감당할 수 없는데, 출판사가 계속 좋은 책을 내주기를 바라고 있어서 죄송하다. 도서관이 잘 정비되면 좋겠다. 빌려보고, 더 오래 읽고 싶은 책을 조금씩이라도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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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지혜씨 2023-02-11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저는 재밌게 읽어서 단숨에 읽어내려갔어요.글자수가 많고 두껍긴하더라고요.배수아님 신간 궁금해서 들어왔다가 책장 구경하고 갑니다.엄청 많이 읽으시네요.저도 분발해보렵니다.좋은 주말 보내세요!

우끼 2023-02-11 12:17   좋아요 0 | URL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저도 읽는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배수아님 신간을 아직 읽지는 못해서 말을 많이 못했네요.. 즐거운 독서시간 보내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