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적으로  시집을 한 권 샀다. 나는 시를 이해하지 못해서 시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시가 무엇인지 여전히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글이든 나를 뒤집어 엎는 듯한 글은 좋아한다.

머리털이 쭈뻣 서게 만드는 글, 아무리 세세하게 설명해도 설명할 수 없다 느꼈는데, 단숨에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글을 좋아한다. 나는 마치 방관자처럼 수치심에 확 달아오른 나를 건너다본다. 저 글 뒤에 숨어서, 마치 내 몸집이 글자 뒤에 숨겨지는 것 마냥. 숨길 수 없었던 것을 이야기하는 말에 어떻게 숨어있는 건지… 내가 한 말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타인의 서사라는 이유로 부끄러움 위를 한 겹 덮은 천 뒤에서 몰래 관찰하는 느낌이다. 

타인의 고통을 목격자로서 바라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 고통의 당사자로서 어떤 일을 겪기도 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던 누군가가 아직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고민하며 살아가는 흔적을 보는 듯 해서, 나는 여기 실린 시들에 위로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그는 목격자로서의 고통을 말하기도 하고 자신의 고통을 진술하기도 하지만, 그걸 과장하지 않는다. 고통보다 자신이 더 앞서서 취해있지 않다. 내가 내 고통에 취해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한 명의 친구가 생일을 맞아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에 힘을 보태려, 자신의 생일선물 대신에 후원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친구의 요청 없이도, 나는 후원을 할 생각이었지만, 그 친구의 요청글을 읽으니 한편으로는 부끄러워졌다. 나 역시 내 생일선물을 바란 적은 없었지만 그건 내가 태어난 일을 기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었지, 자신에게 올 복을 자신이 뜻하는 바에 전하고 그 일이 또 다른 생명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기를 바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후원을 요청하며 설명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이산화탄소 배출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공항을, 현재 있는 공항조차 잘 이용되지 않는데 새로 짓고, 그 자리에 살고 있던 생명을 파괴하겠다는 것이 그에게 너무 큰 고통과 슬픔이라고. 그러니 자신이 태어난 것을 축하하고 싶다면 그가 슬퍼하는 지점에 힘을 모아달라고 했다. 여태 내 발언이 당연히 먹히지 않을 것이고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하며 몸을 사리는 데 너무 익숙해서, 사랑받는 사람이 하는 이런 행동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나는 비건지향이고, 페미니즘의 연장선상에서 동물권에 관심이 있고, 동물해방을 꿈꾼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행동하지만, 그는 그걸 밖으로 잘 표현하고, 그를 위한 삶을 살아간다. 단지 먹히기 위해 끊임없이 임신을 강요당하고, 태어난 아이를 빼앗기고, 운신조차 힘든 우리에서 전염병에 걸렸을 위험이 있으리란 이유 하나 만으로 살아있는 채로 매장당하는, 동물들의 고통에 절망한다. 단지 전쟁을 위해 죽어나가야 하는 생물들의 고통에 화를 낸다. 나는 그가 한 행동을 닮고 싶었다. 

나는 어쩌면 과거에 페스코베지테리언을 시도하다가, 바쁘고 신경쓸 것이 많다는 이유로,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고 싶다는 스스로의 마음을 이전에 스스로 부수었기 때문에, 아마 그게 부끄러워서, 그 상처가 회복되지 않아 내가 동물권에 관심이 있습니다 하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기도 하다. 오래 실천을 지속하다보면 자신감이 생기리라고 믿고 싶다. 비건을 시도하게 된 건 환경운동을 하고 싶어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 싶어하면서(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79377.html) 육식을 지속하는 게 창피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워지니, 쓰는 일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를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 변명하는 글을 남기면, 내가 그 변명에 안주하게 될까봐.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안주하기를 바라지 않았으므로, 전달하고 싶은 말도 사라졌다. 연결되고 싶다는 갈망이 쓰기라면, 나는 그 시기, 나를 지키기 위해서 단절을 원했던 것 같다. 

나는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이,  연결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시라고 생각했다. 안주하지 않고, 자신에게 계속 말을 걸고, 전달하려는 노력을 하는 글들... 그래서 읽는 데 오히려 안주하기도 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쓰는 일로 어떻게 삶을 살아가게 만들지 고민하면서 쓴 시처럼 보였다. 살기 위해 쓰고, 헛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럼에도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던 이야기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돌이켜보는데 그치지 않는 시들. 어떻게 하면 자기자신을 더 많이 자신안에 포함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살수록 포함시켜야 하는 천진한 나와, 많은 실수와, 잘못이 늘어가고 있다. 고통에 방관하거나 목격자가 되거나, 감당할만한 고통의 당사자가 되거나, 이리저리 휘둘리는 사이 내가 내뱉은 말이 얼마나 먼지처럼 가벼운지 생각했고 먼지처럼 흩어지지는 못하고 습기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고 옭아매는 점을 생각하고, 그래서 자꾸 망각한다는 것도 생각한다. 

지금 내가 포함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천진함이다. 꽉 막힌 상황에 무엇이든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더 나은 것들을 끌어오고 싶어서이다. 내 기대치에 어긋나는 나를 포함시켜서, 더 나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가능주의자라는 제목에 이끌려 이 시집을 집어든 이유도 이와 같다. 절망스러운 일에 절망하기도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 것, 그 힘을 믿고 싶었다. 나는 내 모든 역량을 다해서 나를 수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므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아마 어디서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될 것이다. 

달리는 기관차를 멈추게 하는 브레이크가 혁명이라면, 혁명을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비폭력적인 혁명이었으면, 이걸 꿈꾸는 것조차 천진하여 그런 것이다.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일에 기여하고 싶지 않다. 내가 먹고 사는 일이 앞으로의 미래를 망치지 않기를 바라서. 그리고 지금 이산화탄소 배출을 막을 수 있는 잠시멈춤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고 싶어서... 천진함으로 끝나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었다. 

누가 그랬다. 사람들이 전부 칼럼을 썼으면 좋겠다고. 그 칼럼으로 자신을 검열하게 될 테니까. 

그렇지만 또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네가 아무리 뾰족하게 글을 써도 무딘 글일 뿐이라고, 글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고. 

매일 망각하고 새로 쓰고 생각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으로, 이미 잊은 걸 계속 삶에서 이어갈 수 있기만 해도 좋을 것 같다. 결국 쓰는 게 자기만족일 거라면 쓰는 일로 나를 계속 노력하게 할 수 있었으면. 

언젠가는 검열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도 어긋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내 작은 행동이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타인의 시선들로 가득찬 방,
책상과 의자와 침대가 수치심에 떨고 있다

이제 이곳은 내 방이 아니다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지만
출구는 없는 방

문의 공포는
열 수 없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잠글 수 없다는 데 있다 - P18

여행에서 돌아오자
미루어둔 불행이 일제히 들이닥쳤다.
벽장문 사이로 쏟아져내리는 잡동사니들처럼

예외적인 날들은 끝났다고
그것 보라고
이게 바로 도망칠 수 없는 네 몫의 삶이라고
누군가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 P122

벤야민은 혁명을
기차 탄 사람들이 잡아당기는 비상브레이크라고 말했지만
달리는 기관차를 멈춰 세우는 것이라고

달리는 기관차를 멈추게 하는 장력은

얼마나 고요해야 하는지
얼마나 자유로워야 하는지
또는 얼마나 천진해야 하는지

아내의 방에 와서도 점점 어린애가 되어갔다던 김수영처럼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꾸어버렸다던 김수영처럼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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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7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8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3-03-17 1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어본 시집 리뷰중 가장 근사한 리뷰입니다. 저도 시를 잘 읽지 못하지만 이 시집은 읽어보겠습니다. 이 시집을 읽어도 이렇게 근사한 리뷰는 써내지 못할것 같지만요.

우끼 2023-03-17 11:26   좋아요 1 | URL
와앜 엄청난 칭찬이네요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다락방님께도 좋은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잠자냥 2023-03-21 13: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점심 먹다 울컥합니다.....;

우끼 2023-03-21 16:26   좋아요 1 | URL
ㅜㅜ 고맙습니다.. 제가 모순적인 인간이라 저 자신한테 화내고 세상에 화내느라 혼자 사는게 아니라 같이 사는 거고 마음도 통할 수 있다는 걸 요새 자주 잊고 살았어요.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