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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카페에서 읽는 인상주의 - 모네의 빛에서 고흐의 어둠으로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이봄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지난 주에 딸아이와 그림책 <발레 교실에 놀러온 드가 아저씨>, <드가와 꼬마 발레리나>를 재미있게 읽었었다. 읽고 나니 나도 인상주의 화가들이 궁금해져서 몇 권을 빌려왔다. 이 책은 읽는 도중에 "아니, 누가 이렇게 설명을 잘하시노?" 싶은 생각이 들어 몇 번이나 작가 프로필을 다시 보게 하는, 결국은 작가 이름을 검색해서 그녀의 다른 저서들을 구해와야겠다고 마음먹게 하는 책이다. 나카노 교코, <무서운 그림>시리즈로 유명하시고, 와세다 대학교에서 서양 문화사를 가르치고 계신다고 한다. 번역도 너무나 편안해서 전혀 번역서의 느낌이 없고, 술술 읽힌다. 지난 주에 다녀온 헨릭 빕스코브 전에서 도슨트 선생님도 이렇게 조곤조곤 설명해주셨는데. 예술을 공부하는 사람이 괴팍하리라는 편견은 정말이지 틀린 듯. 어찌나 다정히 설명들을 하시는지!
이 책은 인상주의 작품과 작가들을 소개하는 책이지만, 당대의 사회적 현실이나 이를 반영한 문학 작품을들 함께 이야기해주시니 재미가 새록새록. 미술을 공부하신 분이 어쩜 이런 걸 다 아실까 싶었는데 프로필을 다시 보니 학부 때 독일문학전공하셨다. 캬... 역시 문학을 전공하신 게야.. 문학이지. 암, 문학이고 말고. 남편에서 소리내서 읽어주고, 갈피해뒀던 두 곳 옮겨 적는다.
p.197-198, <미술관 옆 카페에서 읽는 인상주의>
모파상은 이 시대 남녀의 갖가지 관계를 신랄한 유머와 무서울 정도의 통찰력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단편 <죽은 여인>에서는 숨겨둔 애인을 잃은 나머지 다시 일어설 힘까지 잃어버리게 된 남자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폭풍우가 치던 밤에 흠뻑 젖은 채 집으로 돌아와 폐렴에 걸려 금새 죽어 버렸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잠들었노라"라고 새겨진 묘비 앞에서 남자는 울다 지쳐 잠이 듭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밤중이었습니다. 무덤마다 유령이 나와서는 저마다 묘비를 고쳐쓰고 있었습니다. 죽은 그녀도 무덤에서 나와 "사랑하고 사랑받고 잠들었노라"를 지우고 이렇게 고쳐씁니다. "어느 날 불륜의 관계를 맺으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맞고 병을 얻어, 덧없이 이 세상을 떠나다."
모두 헛된 것이었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미치도록 사랑했지만, 여자는 남자를 생계수단으로 여겼을 뿐, 사랑하는 상대는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p.240-241, <미술관 옆 카페에서 읽는 인상주의>
아무것도 모르면 편견을 갖고 그림을 보게 됩니다. 이 경우에 발레는 고상한 예술로, 발레를 배우는 소녀들은 부유한 집안 출신이며, 프리마 발레리나로 선발된 이 소녀는 엄청난 노력을 하여 실력을 갖추었을 거라는 편견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눈으로만 본 데서 생겨난 편견입니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당시 무용수의 상황은 오늘날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발레는 오페라의 부속물일 뿐이었고, 무용수는 매춘부와 다를 바 없는 처지였으며, 프리마 발레리나로 춤추고 있다고 해서 꼭 실력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저 후원자가 그녀를 뒤에서 밀어주기 때문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것이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런 '사소한' 것은 모른 채 즐기는 게 좋을까요? 괜히 환멸을 느낄테니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림을 이루는 배경을 알고, 그 배경이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라 해도, 심지어 환멸이 거듭된 다 해도, 그림의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그래야만 진정한 예술품이라 할 수 있겠죠. 작품을 빚어낸 이의 인격과 예술이 동떨어져 있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문학에서도 음악에서도, 그리고 예술 바깥의 세계에서도, '어떻게 이런 인간이 이처럼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냈단 말인가', '이런 야비한 인간이 어떻게 이처럼 숭고한 일을 했단 말인가'하고 의아해지는 예는 수없이 많습니다. 어떤 사회 상황에서 어떤 의도로, 어떤 경위로 그려졌다고 해도, 진정한 예술은 오히려 더욱 큰 아우라를 발산합니다.
'그럼에도 아름답다', 이것이야말로 예술의 독毒이고, 또 매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화는 보고 느끼는 사람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