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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롤리타>의 초반부를 읽으며 내내 든 고민은 "부도덕한 화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읽을지"였다. 난 두 딸아이의 엄마인데, 정신 나간 소아성애자의 심리고백을 대체 어떻게 읽으란 말인가. 심리적 거리감이라도 좀 있으면 덜 불편하련만. 1인칭으로 전개되어 성인남성인 자신이 의붓딸에게 성적욕망을 품고 정신분열적인 자아를 낱낱이 드러내는 과정. 추악하고 담담한 서술. 이걸 계속 읽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개인적으로는 1부 앞부분이 참 읽기 힘들었다. 하숙을 하게 된 험버트가 집주인의 어린딸에게 마음을 갖고 그 딸을 얻기 위해 엄마와 결혼하게 된 무시무시한 상황에서 계속 읽을지 말지 진짜 고민했다. 예술문학과 범죄서술 혹은 통속의 끝자락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롤리타>. 이름부터 롤리타컴플렉스의 그 롤리타라니. 영문학 수업 때문이 아니었다면 정말 안 읽었을 소설. 읽고 나서도 어디 추천하기도 꺼려진다.
수많은 언어유희나 교묘히 숨겨놓은 장치 같은 것들은 비평가들의 눈길을 끌어왔던 것 같고, 책의 기술적인 부분들이 이 책을 고전의 반열까지 올려놓은 것 같다. 읽으면서 나도 여러번 감탄하게 되긴 했다. 심지어 소아성애가 범죄이고 이름부터 혐오스럽지만, 읽다보니 돌리(롤리타)를 정말 사랑한 것은 부인할 수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비뚤어진 사랑도 그에겐 사랑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심지어는 한번도 되돌려 받지 못한 험버트의 사랑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지경까지 생각이 미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험버트는 열두살 소녀에게 가진 탐욕을 실현하기 위해 그 엄마와 결혼했고, 사실을 안 엄마가 죽은 후 (이 엄마는 대체 왜 죽었단 말인가! 딸을 데리고 얼른 도망을 쳤어야지!) 의붓딸에게 거짓말을 하고 납치하여 2년여간 교묘히 여행을 다닌 것. 주된 줄거리가 이럴진대 서술방법이 천재적이라고 해서 전체가 미화될지는 미지수.
문학 비평가가 아닌 평범한 독자로서는 읽는 동안 심리적으로 좀 지쳤고, 나는 여전히 현실과 소설을 명확히 구분짓지 못해 죄없는 내 남편이 왠지 나쁘게 보이기도 했다. 돌리가 도망친 후부터는 일부러 빨리 마무리짓고 싶어 속독해버렸다. 아름다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꽤 여러곳에서 나보코프만의 독특한 시선, 표현이 보인다. 작가는 본래부터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은 차이가 없다고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미성년자 납치,강간 사건을 아름다운 언어로 쓴 건가. 내게는 잘 맞지 않았던 혼란스러운 책을 어서 정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