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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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는 프롤로그 첫 줄을 읽고 "컥"했다. 이런 말로 시작하는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전에 읽었던 <28>에서의 정유정 작가의 필력이 새삼 기억났다. 한번 빨려들면 억센 아저씨의 손아귀에 머리칼을 휘어잡힌 듯 딸려가 읽을 수 밖에 없게 만들던 작가였지, 소름 돋게 기억하며 책장을 넘겼다. 줄거리나 구성을 다 이야기하기엔 벅차서 그냥 이 책을 소개할 만한 한 부분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P.369, <7년의 밤>

승환은 전화를 끊었다. 상황의 윤곽이 잡히는 느낌이었다. 오영제와 팀장은 전혀 다른 의미에서 비슷한 수준으로 위태로웠다. 오영제는 살해당한 아이의 아빠였다. 충돌지점을 향해 폭주하는 자동차였다. 팀장은 범인일 가능성이 높았고 침몰하는 난파선이었다. 두 극점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게 어떤 일인지 도무지 짐작이 되질 않았다. 짐작할 만한 단서가 없었다. 그래서 무서웠다.

 

최현수와 그의 아버지 월남에서 돌아온 최상사. 오영제와 엄마를 매맞는 여자로 만든 그의 아버지. 삶의 가장 큰 비극이었던 아비들을 꼭 닮은 아들들. 사건의 이면에 있던 그 아비들이 무섭고 오싹했다. 더불어 그런 사건을 들여다보는 작은 창구멍같은 틈. 그 틈에서 용케도 끄집어낸 상상의 이야기들이 내 사흘을 채우고, 어쩔 수 없이 악몽까지 선사했다. 악몽에 딱히 영향을 받진 않지만, 함께 읽고 있는 다른 책들로 시간을 배분하기가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정신없이 빨려 읽히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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