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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어버린 앨리스를 부탁해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서른 아홉살의 앨리스가 십년간의 기억을 잃고 자신이 행복했던 스물 아홉 신혼시절, 첫 아이를 임신했던 순간까지만을 기억한다는 설정은 참 의미심장하다.결혼도 육아도 처음엔 다 행복했었지...(왠지 서글프군) 기억도 안나는 십 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자신에겐 이미 세 아이가 있고, 이혼 소송 중이며, 남자친구가 있고, 명품 가방을 갖고 있다니.. 두 아이를 기르는 엄마로서, 결혼 육년차 아내로서 깊이 빠져들어 읽었다. 빵빵 터지는 십년간의 비밀들이 독자로 하여금 몰입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매력적인 책이다.
스포일이 되겠지만, 앨리스가 이혼 소송을 하게 되었던 건 남편의 외도 때문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세아이를 기르는 것에 대한 솔직한 묘사는 육아의 천국과 지옥을 겪는 같은 엄마로서 정말 숨이 막혔다. 셋째가 석달째 중이염을 앓고, 둘째는 말끝마다 발을 쿵쿵 구르며 화를 내고, 첫째는 이유없이 턱이 아프다고 병원에 데려갔더니 스트레스라고 하고, 대체 얘가 왜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수가 없는데, 아침마다 학교 가기 싫다고 침대에서 토하고. 빨래는 날마다 산더미인. 그러나 남편은 걸핏하면 출장가고 퇴근은 한밤중이며, 애 숙제나 준비물이 뭔지도 모르는. 아오. 여기도 이러고 사는 여자가 있네. 격한 공감이 절로 나와 이 놈의 남펴언~~~~! 결혼은 왜 한 것이냐아아아! 애는 나만 혼자 기르는 것이냐아아아!!!
앨리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제일 다행이었던 것은 여섯번 유산한 친언니 엘리자베스에게 마침내 아기가 생긴것! 진짜 눈물날뻔했다. 정신과 상담 의사에게 쓰는 편지를 통해 엿보게 되는 엘리자베스는 점점 더 이상해져서 결국 미쳐버리는 게 아닐까. 세상의 모든 여자들을 '가임'이라고 부르고, 자신은 '불임'이라고 부르고, 오늘 점심은 "불임들"과의 모임이라고 하고. 카페에서 처음 보는 아기를 유괴- 의도는 아니었지만 결국 누가 봐도 유괴일 수 밖에 없는-할 뻔한 데까지 읽었을 때는 정말 잠깐 멈춰 쉬어야했다. 숨막히게 안타까워서. 아는 사람의 이야기 인 것만 같아서 곁에 가서 같이 울고 토닥여주고 싶었다.
나도 딸을 둔 엄마라서 그런지 아홉살짜리 딸 매디슨의 어려움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어느날 교장 선생님에게 전화가 와서 달려갔더니 내 딸이 친구를 가위로 찌르겠다고 위협하고, 실제로 친구 머리칼을 잘랐고 케익을 가져다 그 친구 얼굴에 엎어 버렸다면. 천사같은 내 딸이 학교 폭력의 가해자라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 일의 동기는 바로 엄마임을 알게 되자 마치 머릿 속에서 큰 종이 댕댕 울리는 듯한 느낌. 부모가 잘 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깊이 생각케했던 에피소드였다.
책 한권을 읽고 가족에 대해 새삼 다시 감사하게 되었다면 억지스러울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가족이고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이 또한 가족이기도 하다. 감사하게도 남편과의 결혼 생활을 돌아보게 되는 여러 계기들이 지난 두 주 내내 있었다. 이 책도 내게 그런 실마리들 중 하나. 삶을 여러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겠지만, 지금 내게 있는 가족이 귀하다는 건 어떤 기준을 들이댄대도 가장 중요한 사실일테지. 남편이 있어 감사하고, 아이들이 있어서 깊이 감사한다. 지친 일상을 새롭게 해 준 의미있는 책,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