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가는 막무가내의 삶을 나는 미련하다거나 대책 없다거나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느 순간 삶은 백지처럼 하얗게 변하고 마는 것, 그러자면 호흡이 멈춰질 정도의 숨 가쁨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세월도 잊고, 검질기게 따라붙는 운명도 잊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모두 잊은 채, 숨이 멎지 않을 정도로 한껏 달려 보는 것. 그렇게 나의 속도를 가늠해 본다는 건 인생의 어느 시점을 통과하는 통과의례와도 같은 것. 그것이 꼭 밥벌이에 국한되라는 법은 없다. 연애도 좋고, 취미도 좋고, 남들이 거들떠도 보지 않는 멈춤이어도 좋다. 뜬금없이 멈춤이라니? 하고 의문을 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멈춤'이란 말하자면 '치열한 멈춤'이란 자신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으면 절대로 가능하지 않은 일, 어쩌면 우리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게 '멈춤'인지도 모르겠다.

 

습관처럼 새해를 맞고, 뒤질세라 남들 다 하는 신년 계획을 세우고, 출처도 떠오르지 않는 여러 책들의 토막 상식을 모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거나 '애쓰지 말고 편안하게' 그리고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고 하면서 삼 일도 되기 전에 이른 포기를 하는, 의지박약의 자신의 모습에 하루쯤 좌절하는, 그리고 한 달이 지나기 전에 언제 그랬냐는 듯 그날이 그날 같은 날들을 살아가는 게 우리들 '일 년 살이'가 아닐까. 세상은 쉼 없이 나이 들어가는데 눈밭의 푸른 소나무처럼 나만 홀로 그대로일 거라는 착각 속에, 후회와 반성은 연말연시에나 하는 연례행사쯤으로 생각하는 쉽디쉬운 사고방식.

 

시무식이 있었던 1월 4일의 아침, 사람들의 얼굴에는 희망보다 공포와 두려움이, 기쁨보다 인내의 질긴 그늘이, 우리 주변을 감싸는 무거운 침묵이 차례로 호명되었다. 숨이 멎지 않을 정도로 한껏 달려볼 이유도, 모든 걸 놓아버리고 치열하게 멈춰볼 의지도 우리 곁에선 발견되지 않았다. 너무도 쉬웠던 2021년의 시무식은 그렇게 끝났고, 각자의 업무는 힘겹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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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호흡 - 시를 사랑하고 시를 짓기 위하여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9년 12월
평점 :
품절


메리 올리버의 에세이 <긴 호흡>은 어린이들의 장난감 레고와 같은 책이다. 주어진 형식이나 주제는 없고 책을 읽는 독자에 의해 어떠한 형식, 어떠한 주제로 언제든 변경 가능하기 때문이며, 얇디얇은 이 책을 가지고 몇 날 며칠이고 뒹굴뒹굴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작가는 문장과 문장 사이, 단락과 단락 사이에 너른 공간을 만들어 놓고 독자들로 하여금 마음껏 사유하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부추기는, 어쩌면 작가는 사유의 세계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레크리에이션 강사와 같은 역할을 자청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을 쓰는 건 개를 목욕시키는 일과도 같았다. 다듬을 때마다 조금씩 깔끔해졌다. 하지만 개를 목욕시키다 보면 개가 너무 깨끗해져서 개다움을 완전히 잃을 위험에 처할 때가 있다. 나는 이와 같이 책도 너무 많이 씻어내게 될까 봐 수건을 내려놓고 책에게 다 끝났다고 말한다. 왕겨나 모래 같은 실제 세계의 쪼가리들이 이 책의 페이지들에 조금은 달라붙어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p.8 '서문' 중에서)

 

1935년 미국 오하이오에서 태어나 열네 살 때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메리 올리버는 월트 휘트먼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내면의 독백, 고독과 친밀하게 지냈다는 측면에서 에밀리 디킨슨과 비교되기도 하는데, 미국 시인 맥신 쿠민은 메리 올리버를 일컬어 '습지 관찰자'이며 '자연 세계에 대한 포기할 줄 모르는 안내자'라고 했다. 2019년 1월 17일, 여든세 살의 일기를 마칠 때까지 스무 권이 넘는 시집과 산문집을 냈던 시인은 자연과의 교감이 주는 경이와 기쁨을 단순하고 빛나는 언어로 노래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따금 나는 몸을 기울여 물을 들여다본다. 연못 물은 거칠고 정직한 거울이다. 내 시선뿐 아니라 사방에서 물그림자에 합쳐 드는 세상의 후광도 비춘다. 그러니까 연못을 가로질러 날아다니며 노래를 조금 부르는 제비들은 내 어깨 위로, 머리칼 사이로 날아다니는 것이다. 진흙 바닥을 천천히 지나가는 거북은 내 광대뼈를 만지는 것이다. 내가 이 순간 똑딱거리는 시계의 소리를 듣는다면 그 소리가 무엇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억할 수 있을까?"  (p.83)

 

시인은 이 책에서 인간 또한 자연계의 일원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드러낸다. 어쩌면 그것은 시인이 살았던 프로빈스랜즈의 무성한 숲과 모래언덕에서, 클랩스 연못에서, 베넷 연못에서, 라운드 연못에서, 오크 헤드 연못에서, 패스처 연못에서 시인과 함께 살았던 부엉이와, 올빼미와, 토끼와, 들쥐들과, 어스름한 마당에 앉아 평화로운 생각에 잠긴 고양이로부터 배웠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책이 든 배낭을 메고 학교 대신 숲으로 들어갈 때마다 책들 사이에 늘 함께 있었던 휘트먼의 시집으로부터 배웠을지도 모른다.

 

"나는 시가 단지 존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말하기 위해, 동무가 되기 위해 쓰인다는 걸 배웠다. 모든 것이 필요할 때 시는 필요한 모든 것이었다. 나는 숲으로 들어가는 헝클어진 미묘한 길과 배낭 속 책들의 무게를 기억한다. 나는 그 어슬렁거림과 빈둥거림을 기억한다. 휘트먼과 함께 "바지 끝을 장화 속에 집어넣고 가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나 자신의 노래> 중에서) 경이로운 날들을 기억한다."  (p.92)

 

우리는 이따금 시가 어렵다는 이유로 시의 무용론을 말하기도 하고, 압축된 시어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를 멀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연못 위에 부서지던 금빛 햇살의 잔상들을 실재하는 시구 하나하나의 시어 위에서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는 모습으로 목도하는 비현실적인 체험으로 경험하기도 하고, 현실에서 다시는 느낄 수 없는 엄마의 체온을 하나의 시구에서 체험하기도 한다.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에, 시가 의미하는 바가 뭔지 몰라서 시를 읽지 않는다는 건 그야말로 핑계일 뿐이다.  시는 시어 위에 실재하는 햇살이며, 엄마의 따스한 체온이며, 나풀거리는 눈발일 뿐이다. 시는 이해하는 문학이 아니라 체험하는 문학인 까닭에 한 편의 시를 읽으며 시인의 삶을 체험하면 그만이다. 내가 메리 올리버의 <긴 호흡>을 읽으며 프로빈스랜즈의 숲길을 길게 거닐었던 것처럼. 때로는 어슬렁거리며, 때로는 또 빈둥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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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뜻과 신의 뜻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서 속 좁은 인간은 툴툴대며 불만을 토로하게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신의 뜻이 언제나 옳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하나님 까불면 죽어."라고 협박하거나 왜 하나님만 있고 둘님은 없느냐고 말도 되지 않는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인간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신의 의지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인간(같지도 않은)들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불만이 쌓이던 시기를 한참 지나쳐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신의 뜻이 과연 옳았구나, 저절로 머리가 끄덕여지는 경우가 종종 있을 듯싶다.

 

지금과 같은 연말연시가 되면 융통성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시간의 엄격성 앞에 무력감을 느끼곤 한다. 연초가 지나고 그날이 그날 같은 날들이 흐르다 보면 세월의 흐름에 마냥 둔감해진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기에 바쁜, 남들과 하나 다를 게 없는, 맹목적 시간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 돌변하게 마련이지만 유독 한 해를 마감 짓고 시작하는 연말연시만 되면 훌쩍 흘러버린 세월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2021년 신축년의 새해 벽두부터 동장군의 위세가 무섭다. 날씨가 따뜻했다고 할지라도 코로나의 확산세가 무서워 집 밖을 벗어난다는 게 쉽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 드라마를 몰아서 보고 있다. <특수사건 전담반 TEN 시즌1>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대사가 있어 옮겨 적어 본다.

 

"비밀이 권력이 되려면 뭐가 필요한 지 알아? 침묵! 어떤 경우에도 공개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 그것이 비밀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해야 돼! 그래야 그 신뢰를 바탕으로 권력을 만들 수가 있지."

 

2021년에는 공수처의 출범과 함께 권력구조의 개편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주장했던 것처럼 현실에서 환영받을 개혁이란 없고 권력의 교체만 있을 뿐이다. 법적으로 지난해 7월에 출범했어야 할 공수처가 소위 협치라는 명목 하에 미적대다가 해를 넘기고 만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주장했던 것처럼 명목상으로 인민을 사랑과 자비로 다스리는 것보다 조금 가혹하고 무자비하더라도 고통의 시간을 짧게 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왕국을 획득하는 데는 노력이 많이 들지만 유지하는 데에는 그보다 조금 든다. 새로운 체제를 앞장서서 도입하는 것만큼 실행이 어렵고 성공이 의심스럽고 처리가 위험한 일도 없다. 신질서의 도입자들은 구체제 하에서 이익을 얻던 사람 모두를 적으로 만들게 되고, 신체제에서 이익을 얻게 될 모든 사람들은 단지 미온적인 지지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제에서 이익을 얻던 법조계와 보수 야당, 언론 모두가 하나가 되어 개혁을 반대하는 이유도 그런 까닭이다. 신체제에서 이익을 보게 될 국민 대다수는 다만 미온적인 지지자로 남을 뿐이다. 개혁을 함에 있어서 미적미적 시간을 끄는 게 이렇게 위험한 일임을 현 정부와 여당은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겠다는 발상은 너무나도 위험한 생각이며 권력을 내주어도 좋다는 것과 진배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전가된다. 이런 와중에 여당의 당대표는 감옥에 간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말하고 있다. 태극기부대를 제외한 국민 중 어떤 이가 그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는가,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다. 그것이 과연 우리 후손에게 공정과 정의를 말할 수 있는 선조의 자세인가. 노망이 들지 않고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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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조막만 한 햇살이 자맥질하듯 어른거렸다. 하늘에 구름이 많은 탓이었다. 가뜩이나 감질나는 겨울 햇살이 날름거리며 드나드는 사무실 한 귀퉁이에 서서 눈 덮인 풍경을 내다보았다. 스산한 느낌이었다. 완전무장을 하듯 꽁꽁 싸맨 사람들은 뒤뚱거리며 거리를 스쳐갔고, 신호를 기다리는 차량들은 채 녹지 않은 눈을 뒤집어쓴 채 마치 플라스틱 장난감처럼 나란했다. 뚝 떨어진 기온 탓에 모든 사물이 금방이라도 일순 정지할 것만 같은 풍경. 2020년을 하루 남긴 얼떨떨한 오후.

 

김애란의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을 읽었던 건 시간이 꽤나 지난 일이지만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짧게라도 남겨야 하나?' 하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일단 의문을 갖는다는 건 대개 '귀차니즘'의 발로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에세이를 읽고 리뷰를 쓸 때마다 번번이 느꼈던 막연함 혹은 뭔 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괜스레 붓방아만 찧게 되는 막막함 같은 것들로 인해 리뷰는커녕 시간만 축냈던 것에 대한 일말의 회의 혹은 안타까움이 내면에 존재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맞다. 진짜 공포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 혹은 부족한 것은 공포에 대한 상상력이 아니라 선善에 대한 상상력이 아닐까. 그리고 문학이 할 수 있는 좋은 일 중 하나는 타인의 얼굴에 표정과 온도를 입혀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니 '희망'이란 순진한 사람들이 아니라 용기 있는 사람들이 발명해내는 것인지도 모르리라."  (p.298)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과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을 통해 국내에서도 이미 탄탄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김애란 작가이기에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출간한다는 건 쉽지 않았을 터, 그럼에도 작가는 자신의 내밀한 속내를 거리낌 없이 털어놓는다. 작가의 성장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룬 '1부 나를 부른 이름'을 비롯하여 작가 주변의 동료 문인들과 작가가 읽은 책들에 대해 쓴 '2부 너와 부른 이름들', 그리고 문학 관련 글과 작가가 경험했던 여행과 우리 사회의 사건들에 대한 작가의 느낌을 기록한 '3부 우릴 부른 이름들'로 책은 완성된다.

 

"이해란 비슷한 크기의 경험과 감정을 포개는 게 아니라 치수 다른 옷을 입은 뒤 자기 몸의 크기를 다시 확인해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작가라 '이해'를 당위처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지만 나 역시 치수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불편하다. 나란 사람은 타인에게 냉담해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렇게 애쓰지 않으면 냉소와 실망 속에서 도리어 편안해질 인간이라는 것도 안다. 타인을 향한 상상력이란 게 포스트잇처럼 약한 접착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해도 우리가 그걸 멈추지 않아야 하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지 않을까. 그런 얇은 포스트잇의 찰나가 쌓여 두께와 무게가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p.252)

 

작가는 작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작가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특유의 섬세하고 다정한 문체로 들려준다. 작가가 말했듯 '잊기 좋은 이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되짚어 불러주었을 때, 자신의 삶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삶이 우리가 불렀던 이름처럼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2020년의 겨울, 가만가만 불러보는 이 계절의 이름이 내 삶의 한 구석에서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얼어붙었던 그대의 이름도 내 따스한 입김으로 부디 되살아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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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럽던 청춘의 시기를 지나면 삶은 어느 정도 차분해지고 제 자리를 찾게 마련이지만 그에 반하여 선명하던 자신만의 색깔은 시나브로 흐릿하게 변하여 나와 타인의 경계마저 분명치 않을 때가 많아진다. 무엇보다 개성을 중시하는 연예인이나 정치인에게 있어서는 그마저도 다르게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삶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자신의 고집이나 성격을 모나지 않게 조금씩 변화시켜 타인과의 원만한 삶을 가능케 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우리 부모님들이 귀히 여겼던 '누름돌'은 삶을 대하는 그들만의 철학이 그 돌 속에 고스란히 스며있었는지도 모른다. 강에서 주워 온 반들반들 잘 깎인 돌은 때로는 김칫독 수북한 김치 위에 올려져 그 무게로 숨을 죽여 김치의 맛이 돌게 하기도 하고, 돌확에 담긴 보리쌀을 쓱싹쓱싹 갈아내어 투박한 보리밥을 짓는 일등공신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 윤이 나던 '누름돌'을 이제는 도시의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누름돌에 담긴 삶의 철학과 함께...

 

사람도 세월에 따라 '누름돌'처럼 둥글둥글 원만한 성격으로 변해가는 건 당연한 일, 불현듯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양재동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인데 묘하게도 그는 나와 생일이 같아서 대학 시절 각별하게 지냈었다. 고등학교 동창이면서도 생일이 같다는 건 까맣게 몰랐다가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사실 앞에 우리는 서로 놀라워하며 매년 서로의 생일을 기꺼이 챙겼었다. 순진하기만 했던 그도 이제는 세상에 닳고 닳은 한 명의 노련한 사회인으로 변해 있다.

 

몇 달 전 조국 법무부 장관 기용과 함께 빚어진 현 정권과 검찰과의 갈등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전망했었다.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비밀은 곧 권력일 수밖에 없고, 비밀을 다루는 기관은 권력도 함께 움켜쥘 수 있지.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비밀을 다루는 가장 큰 조직인 국정원을 빈 껍데기로 만든 상황에서 권력기관의 개혁을 시도하고 있으니 이게 성공할 리가 없지 않겠어? 보수정권이 국정원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쥔 채 놓지 않았던 까닭도 검찰이나 감사원, 국세청, 혹은 언론과 같은 권력기관을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게 만들기 위함이었던 건 잘 알 거야.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아마추어처럼 국정원을 먼저 개혁한답시고 국내 사찰을 중지한 건 큰 패착이지. 물론 평생 인권변호사로 지냈던 대통령이니 국정원을 좋게 보았을 리 없지만 권력기관 개혁의 우선순위를 거꾸로 했다는 건 국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아. 그러니 이번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어."

 

애석하게도 그의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가는 듯하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사법부도 검찰의 손을 들어주는 듯하고, 언론 역시 검찰의 입장만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며칠 전 있었던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효력정지 신청을 인용한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었을 터, 그는 이에 대해 검찰총장의 판단이 자신의 자존심은 살릴 수 있었겠지만 정치적으로는 얻은 게 전혀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총장이 징계를 수용했으면 국민들의 동정표가 보수 야당으로 기울고 그러면 퇴임 후 자신의 입지도 높아질 텐데 오히려 그 반대 결과가 나오는 바람에 자존심은 지켰을지 몰라도 수사권을 경찰에게 넘겨주게 생겼고, 공수처 탄생을 앞당겼고, 더 이상의 논란거리도 없애버렸으니 그로서는 사실 얻은 게 없는 셈이다." 말하자면 그는 검찰총장의 고집 때문에 보수 야당이 반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이라고 보았다. 그로 말미암아 검찰 조직은 쪼그라들고, 언론도, 보수 야당도 트집을 잡아 물고 늘어질 거리가 없어졌다는 게 그의 평이다.

 

나는 지금 수전 손택의 저서 <타인의 고통>을 읽고 있다.

"지금 관직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임무가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말해서 사람들의 자신감을 부추기고, 슬픔을 조종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오래 전부터 심리요법의 정치, 특히 논쟁을 수반하고 허심탄회함을 장려하는 민주주의 정치를 대신해 왔던 것이다. 부디 다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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