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뜻과 신의 뜻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서 속 좁은 인간은 툴툴대며 불만을 토로하게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신의 뜻이 언제나 옳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하나님 까불면 죽어."라고 협박하거나 왜 하나님만 있고 둘님은 없느냐고 말도 되지 않는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인간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신의 의지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인간(같지도 않은)들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불만이 쌓이던 시기를 한참 지나쳐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신의 뜻이 과연 옳았구나, 저절로 머리가 끄덕여지는 경우가 종종 있을 듯싶다.

 

지금과 같은 연말연시가 되면 융통성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시간의 엄격성 앞에 무력감을 느끼곤 한다. 연초가 지나고 그날이 그날 같은 날들이 흐르다 보면 세월의 흐름에 마냥 둔감해진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기에 바쁜, 남들과 하나 다를 게 없는, 맹목적 시간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 돌변하게 마련이지만 유독 한 해를 마감 짓고 시작하는 연말연시만 되면 훌쩍 흘러버린 세월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2021년 신축년의 새해 벽두부터 동장군의 위세가 무섭다. 날씨가 따뜻했다고 할지라도 코로나의 확산세가 무서워 집 밖을 벗어난다는 게 쉽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 드라마를 몰아서 보고 있다. <특수사건 전담반 TEN 시즌1>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대사가 있어 옮겨 적어 본다.

 

"비밀이 권력이 되려면 뭐가 필요한 지 알아? 침묵! 어떤 경우에도 공개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 그것이 비밀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해야 돼! 그래야 그 신뢰를 바탕으로 권력을 만들 수가 있지."

 

2021년에는 공수처의 출범과 함께 권력구조의 개편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주장했던 것처럼 현실에서 환영받을 개혁이란 없고 권력의 교체만 있을 뿐이다. 법적으로 지난해 7월에 출범했어야 할 공수처가 소위 협치라는 명목 하에 미적대다가 해를 넘기고 만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주장했던 것처럼 명목상으로 인민을 사랑과 자비로 다스리는 것보다 조금 가혹하고 무자비하더라도 고통의 시간을 짧게 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왕국을 획득하는 데는 노력이 많이 들지만 유지하는 데에는 그보다 조금 든다. 새로운 체제를 앞장서서 도입하는 것만큼 실행이 어렵고 성공이 의심스럽고 처리가 위험한 일도 없다. 신질서의 도입자들은 구체제 하에서 이익을 얻던 사람 모두를 적으로 만들게 되고, 신체제에서 이익을 얻게 될 모든 사람들은 단지 미온적인 지지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제에서 이익을 얻던 법조계와 보수 야당, 언론 모두가 하나가 되어 개혁을 반대하는 이유도 그런 까닭이다. 신체제에서 이익을 보게 될 국민 대다수는 다만 미온적인 지지자로 남을 뿐이다. 개혁을 함에 있어서 미적미적 시간을 끄는 게 이렇게 위험한 일임을 현 정부와 여당은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겠다는 발상은 너무나도 위험한 생각이며 권력을 내주어도 좋다는 것과 진배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전가된다. 이런 와중에 여당의 당대표는 감옥에 간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말하고 있다. 태극기부대를 제외한 국민 중 어떤 이가 그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는가,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다. 그것이 과연 우리 후손에게 공정과 정의를 말할 수 있는 선조의 자세인가. 노망이 들지 않고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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