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가는 막무가내의 삶을 나는 미련하다거나 대책 없다거나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느 순간 삶은 백지처럼 하얗게 변하고 마는 것, 그러자면 호흡이 멈춰질 정도의 숨 가쁨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세월도 잊고, 검질기게 따라붙는 운명도 잊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모두 잊은 채, 숨이 멎지 않을 정도로 한껏 달려 보는 것. 그렇게 나의 속도를 가늠해 본다는 건 인생의 어느 시점을 통과하는 통과의례와도 같은 것. 그것이 꼭 밥벌이에 국한되라는 법은 없다. 연애도 좋고, 취미도 좋고, 남들이 거들떠도 보지 않는 멈춤이어도 좋다. 뜬금없이 멈춤이라니? 하고 의문을 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멈춤'이란 말하자면 '치열한 멈춤'이란 자신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으면 절대로 가능하지 않은 일, 어쩌면 우리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게 '멈춤'인지도 모르겠다.

 

습관처럼 새해를 맞고, 뒤질세라 남들 다 하는 신년 계획을 세우고, 출처도 떠오르지 않는 여러 책들의 토막 상식을 모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거나 '애쓰지 말고 편안하게' 그리고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고 하면서 삼 일도 되기 전에 이른 포기를 하는, 의지박약의 자신의 모습에 하루쯤 좌절하는, 그리고 한 달이 지나기 전에 언제 그랬냐는 듯 그날이 그날 같은 날들을 살아가는 게 우리들 '일 년 살이'가 아닐까. 세상은 쉼 없이 나이 들어가는데 눈밭의 푸른 소나무처럼 나만 홀로 그대로일 거라는 착각 속에, 후회와 반성은 연말연시에나 하는 연례행사쯤으로 생각하는 쉽디쉬운 사고방식.

 

시무식이 있었던 1월 4일의 아침, 사람들의 얼굴에는 희망보다 공포와 두려움이, 기쁨보다 인내의 질긴 그늘이, 우리 주변을 감싸는 무거운 침묵이 차례로 호명되었다. 숨이 멎지 않을 정도로 한껏 달려볼 이유도, 모든 걸 놓아버리고 치열하게 멈춰볼 의지도 우리 곁에선 발견되지 않았다. 너무도 쉬웠던 2021년의 시무식은 그렇게 끝났고, 각자의 업무는 힘겹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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