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11월에는
한스 에리히 노삭 지음, 김창활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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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가장 솔직하지 못했던 대상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나를 기만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법을 배우고, 그런 행위에 대해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순간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지난 일에 대해 우리가 하는 후회는 결국 우리 자신을 기만했던 모든 행위와 생각과 어리석음에 대한 자책과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모든 외부 환경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진실로 솔직해지는 순간이 올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누구의 비난도, 다가올 미래도, 어쩌면 죽음까지도 잊을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외부 조건에도 휘둘리지 않겠다는 선언이자 혁명과 같은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회적 관습이나 통념에 비추어 그들을 단죄하고 비난한다.  우리에게는 과연 그런 사람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진심으로 축하할 용기는 과연 있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인 한스 에리히 노삭은 우리를 향해 진지하게 묻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우리가 대답해야 할 차례이다.

 

베르톨트 묀켄은 작가이다.  어느 날 그는 상공인협회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사실은 '헬데겐 사'가 주최한 시상식이었지만 헬데겐 사의 대표인 막스는 익명을 원했고, 수상식장에는 그의 부인 마리안네를 대신 보낸다.  베르톨트는 그곳에서 만난 마리안네에게 첫눈에 반한다.  "당신과 함께라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베르톨트.  마리안네와 베르톨트는 그 순간이 자신들에게 가장 솔직한 순간임을 직감한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그런 순간은 자주 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모든 외부 환경이나 사회적 비난, 그들이 걱정해야 할 미래마저도 초월하는 순간이다.  그날 마리안네는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베르톨트와 함께 집을 나간다.

 

그러나 행복은 실로 순간적인 일이다.  사회적 관습과 통념에 비추어 좋은 사람으로, 남들에게 비난 받지 않을 정도로 착하게 산다는 것(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고 있지만)은 그 순간을 만나지 못한 불행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어떤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 행복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처음의 그 순간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했다.  그 역시 행복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행복이 비록 오랫동안 계속될 수 없음을.  그것이 예전부터 생각해오던 것과 같지 않음을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우리는 행복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행복은 오직 현재일 뿐이다.  거기엔 과거도 미래도 없다.그때 우린 참다운 행복을 알았고, 그래서 그후 우린 불행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P.128)

 

      

한 번의 이혼 경력이 있는 베르톨트의 머릿속에는 오직 미래만 존재한다.  과거와 단절한 채, 자신의 엄마와 동생조차 만나지 않는다.  미래에 저당잡힌 베르톨트는 현재의 시간을 시시껄렁한 잡담으로 소비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오직 그에게는 잘 팔리는 희곡을 완성하여 좋은 집으로 이사도 하고, 폭스바겐도 한 대 사고, 마리안네와 마음껏 여행할 날만 기다린다.  늦어도 11월에는.

 

"너무나도 괴로운 시간이었다.  세상의 모든 탄식마저 입을 다무는, 아무리 빠져나오려 애를 써도 빠져나올 수 없는 무기력한 시간이었다.  울고 싶어도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어두워지기 시작해야 비로소 숨이 좀 트였다."    (P.180)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마리안네에게 시아버지의 방문은 한줄기의 빛이요, 탈출구였다.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시아버지는 성공을 향해 오직 앞만 보며 살았다.  그런 까닭에 자신의 부인은 집을 나가 죽고, 아들 막스는 어머니도 없이 자랐다.  이제 자신이 세운 회사는 그에게 긍지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저주의 대상이었다.  사회적 통념과 관습에 의해 전 인생을 바친 그는 이제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이 되었다.  원인은 서로 달랐지만 베르톨트와 마리엔느, 그리고 시아버지는 사회적 통념에 의해 자신들의 삶이 무참히 짓밟혔음을 깨닫고 이에 저항하려 한다.  작가의 입장에서 그들은 타자(他者)인 동시에 서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한몸인 것이다.  시아버지에게 베르톨트와 마리안네는 자신을 대신하여 사회적 관습과 통념에 저항하는 대리인이다.

 

"나 역시 모든 것이 무의미한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지.  내 나이에도 말이다.  부끄러운 일이지.  사람들은 흔히 말하지.  그래도 인생은 계속된다고...  누구도 깊게 생각해보려 하지 않아.  그냥 대충 그런 식으로 넘기려는 거지.  하지만 어쨌든 틀린 말은 아니야.  운수가 사나울 땐 흔히들 소리치지.  이따위 인생이 다 뭐야!  정말 지긋지긋해!  하지만 어쨌든 인생은, 삶은 그렇게 계속되는 거다..."    (P.227)  

 

시아버지의 권유에 의해 마리안네는 결국 베르톨트를 남겨 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남편 막스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녀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해 11월, 베르톨트의 희곡이 마리안네가 사는 도시에서도 공연된다는 기사를 읽게 된다.  마리안네는 공연 입장권을 구입하였지만 정작 자신은 가지 않는다.  그리고 11월의 어느 날, 우박이 심하게 내리던 날 밤 베르톨트는 마리안네의 집을 찾아온다.  베르톨트임을 직감한 마리안네는 베르톨트와 함께 다시 집을 나간다.  그러나 베르톨트가 약속한 폭스바겐을 타고 떠나던 두 사람은 철로 교각에 부딪쳐 영원한 여행을 떠난다.

 

나는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카레니나>를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르트르가 말했던 것처럼 "전후 독일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이며, 가장 탁월한 작가"인 한스 에리히 노삭은 연애 소설이라는 구조물 속에 또 다른 스토리를 깔고 있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삶의 수동성과 맹목적성에 저항하는 젊은 두 남녀와 이를 지켜보며 지지하는 한 명의 노인, 그리고 인습과 통념에 순응하며 사는 대다수의 주변인들.  성공, 의무, 도덕 등 우리에게 주어진 외부 환경에 의해 우리는 단 한 번도 저항하지 못한 채 우리의 삶을 마감한다.  이런 삶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찾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시아버지의 관점에서 그렇게 살았던 자신의 삶은 얼마나 허망했을까?  자신이 할 수 없었던 일, 자신은 감히 용기조차 낼 수 없었던 일을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두 젊은이는 얼마나 부럽고 대견했을까?  관습과 통념에 따라 읽으면 이 책은 한낱 흔한 러브 스토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는 그 인습의 벽을 깨고자 시도했던 두 젊은이를 통하여 독자들에게 묻고 싶었을 것이다.  당신은 자신에게 얼마나 솔직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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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
셰리 터클 엮음, 정나리아.이은경 옮김 / 예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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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한 10년쯤 지나면 슬슬 버려야 할 것 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는는데 기억을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사람마다 개인적 편차가 있겠지만 자신이 쓰던 물건을 버리는 일은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누구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물건일 수도, 또는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한 물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같은 대상을 두고 이렇듯 다른 판단이 내려지는 것은 함께 한 세월의 무게가 한 몫 하는 듯하다.  어떤 사물에 있어 그 형태와 쓰임은 세월을 견뎌내지 못하고 스러진다 할지라도 세월에 깃든 사물의 영혼은 끝내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마치 육체가 쇠잔한 노인에게도 거대한 추억의 구조물이 영원히 살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의미 있는 사물'이라, 참으로 달콤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아련히 떠오르는 과거에 희열을 느끼고 어린 시절 즐거운 한때의 추억과 함께 진한 향수가 몰려올 때 우리는 그런 말을 쓴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참으로 아픈 말이다.  그렇다.  우리 가족은 앞으로 영원히 평범한 가족이 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우리 가족사는 동화 같은 해피엔딩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어린 내 눈에 이상적이었던, 불행이 시작되기 전의 가족의 모습을 형상화하기 위해 나는 쉽게 막내 여동생을 그림에서 제외해버렸다."   (P.127)

 

MIT대학에서 예술사학을 가르치는 캐롤라인 A 존스는 어린 시절 자신이 그렸던 한 장의 그림을 보며 서글퍼 한다.  이렇듯 우리는 어떤 사물을 통하여 넘을 수 없는 시간의 벽을 단숨에 통과한다.  그리고 우리가 물리적 시간을 그렇게 거슬러 올라 닿게 되는 어느 순간에 우리는 비로소 감성의 언어를 배우게 되는지도 모른다.  이성의 언어에 종속되어 살았던 긴 시간 동안 우리 행위의 숱한 오류와, 삶의 은유와, 숨겨진 비밀들이 뒤늦게 배우는 감성의 언어를 통하여 제자리를 찾고 많은 비밀들이 조금씩 밝혀지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제사 철이 들고, 삶의 보폭이 얼마나 느려져야 하는지 깨닫는다.

 

이 책은 하버드, 코넬, MIT 등의 세계적인 석학 34인이 평범한 주변의 사물들에서 느꼈던 그들만의 특별한 에피소드를 들려줌으로써 그들의 인생철학과 삶의 가치를 전해주고 있다.  누구에게는 첼로가, 누구에게는 발레 슈즈가, 또는 할아버지의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또는 어린 시절 입었던 노란 우비가 어느 순간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기억의 저편에서 펼쳐지는 황홀한 축제를 어찌 이성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그 많은 불꽃들을 어찌 식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까?

 

"하지만 여전히 지나가는 급행열차를 보면 저 반대편의 세상이 떠오른다.  열차는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린다.  길게 늘어선 향기로운 유향나무, 공을 주우러 기어올라갔다가 너무 뜨거워 손도 대지 못했던 녹슨 철제 지붕, 불현듯 코끝에 다가오는 흙먼지 속의 빗방울 냄새, 그리고 작고 호기심 많은 한 아이가 있다.  태양이 작열하는 고요한 시골길을, 놀랍도록 젊고 아름다웠던 부모님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 한 아이가."    (P.212)  

 

나는 지금 누렇게 변색되고 습기를 머금어 찌들 대로 찌든 나의 오래 전 일기장을 읽고 있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눈길을 벙어리 장갑을 낀 한 소년이 걷고 있다.  버석버석 심하게 튼 손을 호호 불며 시린 어깨를 옹크린 채 홀로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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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민음의 시 104
박정대 지음 / 민음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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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대의 시를 읽으면 아련한 슬픔이 묻어나곤 한다.  그것은 아마도 나만이 느끼는 주관적 감정일 수 있다.  왜 그렇게 느꼈을까?  그것은 시인과 내가 겪었던 추억의 공유, 적어도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서 느꼈던 막막함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은 정선에서, 나는 고한에서, 산들로 둘러싸인 육지 속의 섬과 같은 곳에서 자랐다.  석탄 트럭이 굉음을 울리며 도로를 질주하고, 인생의 막장과 같은 곳으로 몰려든 사람들이 악다구니를 쏟아내는 곳.  삶은 생각만큼 아름답지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부모의 한숨 소리에 설핏 잠이 깬 그 순간에 배웠다.  생존본능의 포로였던 아이들은 전혀 아이답지 않았고, 오직 살아남아야 한다는 슬픈 매질이 내 영혼에 문신처럼 남았다.

 

4 만항재

아무리 달려도 이정표가 나타나지 않아 뒤돌아 보면 좁은 산길 아래로 폭포처럼 쏟아지는 나무들의 물결, 허공의 바다를 털털거리며 지난다.  갈매기 한 마리 날지 않는 이곳은 전생에 무슨 바다였나.  길이 좁아질수록 생각은 날아가고, 길이 험해질수록 더욱 깊어지는 그리움의 계곡, 엄나무들은 엄숙하게 머리를 길렀지만 식솔들 이끌고 산 중턱까지 와서 정착한 낙엽송, 참나무 이주민들.  아무리 달려도 너에게 가는 길은 보이지 않아 어느새 다다른 하늘 밑, 침묵은 끝나지 않고 바람 끝에 매달려 와서 끝내 만항재, 해발1,330m라고 씌어진 곳에서 불어가는 음악, 페루, 나비, 바람. 

 

5. 음악, 페루, 나비의 경계를 지나서

오래도록 꿈꾸던 것, 그것을 나는 만항재에서 본다.
만항재는 음악과 페루와 나비의 경계선. 이 경계선을 지나면
음악만이 남을 것. 그때부터 나는 눈을 버리고 음악을 얻을 것.
그리고 당신이 어느 날 참 많이 어두워져서 그때부터 음악소리 들린다면,
그것이 바로 나의 이름이다.
('열두 개의  촛불과 하나의 달 이야기' 中에서)

 

그랬다.  만항재를 넘으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전나무 숲에서 홀연히 나타나는 정암사와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수마노탑. 

황동규 시인은 태백에서 만항재를 넘어 몰운대로 차를 몰며 이렇게 읊었다. 

고개가 가파르다./자장율사가 진신사리 봉안했다는 정암사 가는 길/그도 헐떡이며 넘었으리라./앵앵대는 소형차를 길가에 그냥 내버리고 싶다./가만, 자장이며 의상 같은 쟁쟁한 거물들이/경주, 황룡사, 부석사를 버리고/ 왜 강원도 산 속을 방황했을까?//왜 자장은 강원도 산골에서 세상을 떴을까?/입적지 미상의 의상도 행려병자가 아니었을까,/이곳 어디쯤에서?/가파른 언덕을 왈칵 오르자/해발 1280m의 만항재./태백시 영월군 정선군이 서로 머리 맞댄 곳./자글자글대는 엔진을 끄고 차를 내려 내려다보면/소나무와 전나무의 물결/가문비나무의 물결/사이사이로 비포장도로의 순살결/저 날것,/도는 군침/

 

태백시에서 만항재를 넘으면 바로 고한이다.  석탄산업의 부흥기였던 7,80년대에  고한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넘쳐났었다.  그 주변 지역은 다 그랬다.  전국의 사투리가 모두 모여 새로운 사투리가 생겨나고, 사람들은 그 억센 사투리를 시나브로 닮아갔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마스크와 헬멧을 쓰고 막장에서 꼬박 8시간을 일했다.  요새와 같았던 유배지에서 돈 벌어 도시로 나갈 꿈을 꾸었던 사람들, 그러나 천형과 같은 광산일은 대를 물려 이어지고, 지친 사람들은 '잊혀진 곳에서 잊혀질 곳으로의 비상'을 기다렸다.  도로도, 집도, 심지어 냇물까지 검었던 그곳에서 오직 산과 하늘만 푸르렀다.  봄이면 태백산맥을 넘은 높새바람이 석면 슬레이트 지붕을 날리고, 겨울이면 방 안의 물도 꽁꽁 얼었던 그 혹독한 지역에서 철마다 아이들은 태어나고 또 그렇게 질긴 목숨을 지켜갔다.

 

박정대 시인은 그 매섭던 바람의 끝자락을 닮았다.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그의 시는 때로는 긴 호흡으로, 때로는 순간에 정지한 채로 자연을 모방한다.  그 시뮬아크르의 세계는 현실의 벽을 자유자재로 넘어 상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태백준령에서 자란 소년이 간절히 바라던 그 상상의 세계로.  높은 산맥을 따라 점점이 흩어진 가난한 마을들, 그 육지 속의 격렬비열도엔 음악 같은 눈이 내리고 눈처럼 고운 꽃가루가 흩날리기를...  중년의 시인은 아린 손마디처럼 절절한 꿈을 꿈 속에서도 바라나 보다.

 

나는 삶이 봄바람처럼 느슨하다 느낄 때 박정대의 시집을 읽는다.  그의 슬픔과, 꿈과, 음악과, 나비로 사라지고픈 불멸의 잔상과 먼 이국의 어느 섬과, 사람들.  시인의 눈에 촛불처럼 흔들리는 삶.

 

10 밤의 여행자들

........

허공에다 당신은 매일 간절한 키스를 한다. 그 입맞춤이
대지의 가슴에 닿아 그곳에서 아름다운 나무들이 태어나기를,
그 나무 아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 함께 머물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어느 날 당신은 창밖에 환하게 핀 앵두꽃을 보고
밤이 어디론가 사라진 줄 알았다.
당신은 그 꽃을 보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에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때로는 음악이 된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매일 밤마다 촛불을 켜 들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난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열두 개의 촛불과 하나의 달 이야기' 中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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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중에 이름이 '종북'인 분이 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아끼는 순한 분이다.  가끔 그분을 만날 때면 '나도 저렇게 늙을 수만 있다면'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 면에서 나만큼 철저한 종북주의자도 세상에 다시 없겠다 싶다.  그런데 각종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종북 운운하는 기사를 볼 때마다 어깨가 으쓱하고 자랑스럽기는커녕 영 마음이 개운치 않은 게 사실이다.  내가 아는 종북氏는 꽤나 연로하신 분인데 그분보다 나이도 한참이나 어린 분들이 뉘집 개이름 부르 듯 '종북, 종북'할 때면 나도 모르게 욱하는 심정이 아니 들 수 없기 때문이다.  곁에서 그런다면 한 대 쥐어박기라도 할텐데 그마저도 어려우니 속으로만 꾹꾹 눌러 참곤 한다.  동방예의지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리라고 본다.

 

한번은 내가 "어르신, 요즘 유명인사가 다 되셨던데요?" 하고 농을 치자 대체 뭔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기에 "인터넷이건, 방송이건 어르신 함자가 안 나오는 곳이 없어요."하자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 밝게 웃었다.  그리고 "그렇다고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이제 와서 바꿀 수 있남?" 하시며 혀를 끌끌 찼다.

 

나는 한 국가가 다양한 사람들로 채워지면 질수록 더 성숙한 사회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전제조건이 따른다.  내 의견이나 이념이 다른 사람과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다른 것이 어쩌면 당연할 테고.  물론 그렇게 일방적으로 비난 일색인 사람의 인간성이 나쁜 것이니 그것도 다양성의 한 측면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  내가 '종북氏'라고만 했어도 이런 글까지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주위에 '좌빨'이나 '수꼴'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말이다.

 

나는 참 궁금한 것이 만일 우리나라가 통일이라도 된다면 그때도 '종북'을 외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점이다.  아마 없겠지 싶다.  그렇다면 이 용어는 한시적으로 쓰일 수 있는 말이고 생명력이 그리 길지도 않은, 한마디로 좋지 않은 말인데 왜 그렇게 그 말을 쓰지 못해 안달하는 것일까?  정히나 쓰고 싶다면 '종북氏'라고나 하던가.  혹시 그 말을 영구히 쓰고 싶어서 통일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반 인륜적이요, 반 민족적인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어찌 그깟 말 한마디 때문에 헤어진 동포들의 가슴에 철책을 칠 수 있을까?  인간이라면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믿는다.

 

아무튼 요즘 인터넷 키워드에 '종북'이라는 단어가 다시는 안 보였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앞으로는 '종북氏, 또는 종북氏주의자'라고 하자.  그것이 이 땅에 사는 모든 '종북'씨를 욕되게 하지 않는 일이며, 동방예의지국의 국민으로서 우리가 할 도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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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 그해, 내게 머문 순간들의 크로키, 개정판
한강 지음 / 열림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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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처럼 하얘진다'는 표현은 진부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럼에도 종종, 솔직히 말하면 자주 쓰게 된다.  오늘도 나는 이 글을 쓰기 전에 떠오르지 않는 생각을 쥐어짜며 이 말을 했었다.  이렇듯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주변을 둘러보아도 우리가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내가 진부하다고 놀리면서도 '백지처럼 하얗다'는 말을 자주 쓰는 것과는 달리, 독서 과정에서는 가끔, 아주 가끔은 맘에 쏙 드는 작가를 우연처럼 만날 때가 있다.  진부하지만 전혀 진부하지 않게 느껴질만큼 세련된, 일상에서 흔하디 흔한 말인데도 전혀 새로운 말을 쓰는 그런 작가를 만나면 괜히 긴 손편지라도 써야할 것만 같다.  '한강'은 내게 그런 작가 중 한사람이다.  가볍고 일상적인 글들이 낙엽처럼 깊게 쌓이면 나도 그녀처럼 오래된 토담벽처럼 허물없이 자연스러운 글줄이나 쓸 수 있으려니 하는 헛된 꿈을 심어 준 작가도 그녀였으니 따지고 보면 나는 그녀의 팬이라고 자처하기도 애매한 구석이 있지만 말이다.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그리고 <노랑무늬 영원>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줄곧 소설쓰기에만 매달렸었다.  마치 그녀에게 소설은 그녀의 삶이자, 생명인 것처럼.  이 책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은 그녀가 쓴 두번째 산문집이다.  그녀가 쓴 첫번째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와 그에 얽힌 추억들을 다룬, 그리고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하여 음반으로 만들기까지 한, 어찌 보면 소설가의 취미생활과 같은 책인 반면에 이 책은 그녀가 아이오와 대학이 주최한 국제창작 프로그램(IWP)에 참가함으로써 만나게 된 사람들의 스케치이다.  즉 미국 아이오와시티에서 체류했던  석 달 반 동안 그녀가 만났던 세계 각국의(주로 제3세계의) 작가들과 그녀가 겪었던 경험들을 다룬 일종의 소품과 같은 책이다.

 

"그날 저녁 마흐무드와 나는 부슬비를 맞으며 헌책방 순례를 했다.  몇 권의 책을 서로에게 사주었고, '초원의 빛'이라는 이름의 단골 책방 2층에서 옷을 말리며 케이크를 들었다.  "사랑이 아니면"하고 마흐무드는 중얼거렸다.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네 살 때 이스라엘군에게 고향을 잃은 뒤 청년 시절에 두 번 투옥되어 4년간의 옥살이를 했던, 그 뒤로 10여 년간 망명생활을 했던 그는 덧붙여 말했다.  "사랑 없이는 고통뿐이라구."  "하지만 때로는"하고 나는 반문했다.  "사랑 그 자체가 고통스럽지 않나요?"  마흐무드는 생각에 잠겼다.  "아니지.  그렇지 않아."  그의 음성은 숙연했다.  "사랑을 둘러싼 것들이 고통스럽지.  이별, 배신, 질투 같은 것.  사랑 그 자체는 그렇지 않아."  그 말을 꺼내기까지 마흐무드의 눈앞을 스쳐간 여인들의 얼굴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가 그녀들과 보냈던 시간, 나누었던 밀어, 무수한 입맞춤과 어루만짐을 모른다.  다만 그가 그 여인들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 그때마다 순정을 다했으며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다시, 마흐무드 中에서)

 

작가는 자신이 보았던 그들의 몸짓, 표정, 그들의 말과 표정 하나하나를 담담하게 쓰고 있다.  사랑은 그렇게 호들갑스럽거나 유난을 떨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임을 믿는 듯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고 주장할지라도 작가만큼은 마음 속으로 조용히 '사랑은 그만큼 은근한 것'이라며 입술을 깨무는 듯하다.  두꺼운 유리창을 통하여 바라보는 무음의 세상, 세월이 거둬간 습기만큼 파삭파삭해진 그때의 추억을, 그저 스쳐지나간 사람들일 수도 있었던 그들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었나 보다.  나는 오늘처럼 겨울비가 내리는 날에 낙엽처럼 부스러지는 그녀의 추억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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