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중에 이름이 '종북'인 분이 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아끼는 순한 분이다. 가끔 그분을 만날 때면 '나도 저렇게 늙을 수만 있다면'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 면에서 나만큼 철저한 종북주의자도 세상에 다시 없겠다 싶다. 그런데 각종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종북 운운하는 기사를 볼 때마다 어깨가 으쓱하고 자랑스럽기는커녕 영 마음이 개운치 않은 게 사실이다. 내가 아는 종북氏는 꽤나 연로하신 분인데 그분보다 나이도 한참이나 어린 분들이 뉘집 개이름 부르 듯 '종북, 종북'할 때면 나도 모르게 욱하는 심정이 아니 들 수 없기 때문이다. 곁에서 그런다면 한 대 쥐어박기라도 할텐데 그마저도 어려우니 속으로만 꾹꾹 눌러 참곤 한다. 동방예의지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리라고 본다.
한번은 내가 "어르신, 요즘 유명인사가 다 되셨던데요?" 하고 농을 치자 대체 뭔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기에 "인터넷이건, 방송이건 어르신 함자가 안 나오는 곳이 없어요."하자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 밝게 웃었다. 그리고 "그렇다고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이제 와서 바꿀 수 있남?" 하시며 혀를 끌끌 찼다.
나는 한 국가가 다양한 사람들로 채워지면 질수록 더 성숙한 사회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전제조건이 따른다. 내 의견이나 이념이 다른 사람과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다른 것이 어쩌면 당연할 테고. 물론 그렇게 일방적으로 비난 일색인 사람의 인간성이 나쁜 것이니 그것도 다양성의 한 측면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 내가 '종북氏'라고만 했어도 이런 글까지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주위에 '좌빨'이나 '수꼴'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말이다.
나는 참 궁금한 것이 만일 우리나라가 통일이라도 된다면 그때도 '종북'을 외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점이다. 아마 없겠지 싶다. 그렇다면 이 용어는 한시적으로 쓰일 수 있는 말이고 생명력이 그리 길지도 않은, 한마디로 좋지 않은 말인데 왜 그렇게 그 말을 쓰지 못해 안달하는 것일까? 정히나 쓰고 싶다면 '종북氏'라고나 하던가. 혹시 그 말을 영구히 쓰고 싶어서 통일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반 인륜적이요, 반 민족적인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어찌 그깟 말 한마디 때문에 헤어진 동포들의 가슴에 철책을 칠 수 있을까? 인간이라면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믿는다.
아무튼 요즘 인터넷 키워드에 '종북'이라는 단어가 다시는 안 보였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앞으로는 '종북氏, 또는 종북氏주의자'라고 하자. 그것이 이 땅에 사는 모든 '종북'씨를 욕되게 하지 않는 일이며, 동방예의지국의 국민으로서 우리가 할 도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