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 22년간의 도보여행, 17년간의 침묵여행
존 프란시스 지음, 안진이 옮김 / 살림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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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존 프란시스 박사와 459쪽에 달하는  기나긴 순례를 마치고 방금 나의 현실로 되돌아왔다.
1971년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일어난 기름유출 사고를 목격한 후 기름으로 움직이는 모든 동력운송수단을 포기한 존 프란시스.  그의 결심은 그가 어렸을 때 고향 마을의 도로에서 자동차에 깔려 죽은 개똥지빠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미국 동부 해안에서 자라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의 인버네스에 정착한 스물 일곱 살의 흑인 청년 존 프란시스가 마주한 또 다른 죽음.  그의 친구이자 마을의 부보안관이었던 제리 태너의 보트 전복 사고로 인한 갑작스러운 죽음이 바로 그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한계상황에서 자신의 결심이 굳어지나 보다.  그렇게 그는 비주류의 인생을 선택했다.
도보생활로의 전환은 대학을 중퇴한 평범한 흑인 청년의 모든 현실적 삶과 맞바꾸는 일이었다.  전위음악 그룹 매니저였던 그에게 내려진 해고 통보,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 흑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 그리고 가족들의 걱정.
그렇게 시작된 그의 도보 여행은 22년간 지속되었고 그 중 17년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나는 가끔 내가 장난삼아 녹음한 나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 낯설음에 놀라곤 한다.   내가 말을 하는 매 순간 나는 전달하려는 내 의견만 생각할 뿐 나의 목소리나 행동은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그 만큼 낯설고 생경하다.  그리고 과연 내가 말을 배운 이후로 '말'이라는 의사소통 수단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나는 말을 함으로써 편리하고 유용한 면이 있긴 하지만 욕설이라든가 논쟁에 휘말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구어(口語)의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말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안 듣는 것과 욕설이나 논쟁 등 부정적으로 쓰이는 말의 쓰임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행 중에 만난 한 사람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발생 반복! 그거야.  내 생각에 자네는 걸어다니고 말을 안 하면서 '발생 반복'을 하고 있는 거야.  그게 뭔지 아나?  그러니까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가서 인간의 모든 발달 과정을 다시 거쳐 우리의 현 상태에 도달하는 걸세.  자네는 뭔가를 배우려고 되돌아갔을 거고.  재현은 좋은 선생이지.  사실 우리는 모두 이런저런 방식으로 '발생 반복'을 한다네.  특히 태어나기 전에 말이야.'(P.135)
존 프란시스의 목표는 항해와 도보로 세계를 일주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공부의 일환이자 그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고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의 표현이었다.  그는 그렇게 태평양 북서부를 거쳐 시에라 산맥과 로키 산맥을 횡단했으며, 태평양 연안에서 대서양 연안으로 미국 땅을 도보로 가로질렀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여행하면서도 남오리건 주립대학에서 과학 학사과정을 그리고 몬태나 대학에서 환경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결국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토지자원 분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몸짓언어와 수화를 배우고 그가 여행 중에 늘 함께 했던 밴죠를 연주하면서 그는 다른 사람과 교류하였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싶어 안달하는 우리도 이루지 못한 박사 과정을 통과했던 것이다.  단 한 마디 말도 없이.
처음에는 논쟁을 피하려는 의도로, 다음에는 의사소통 방식을 실험해 보자는 생각으로 말을 않고 지낸 것이 어느덧 깊은 의미가 담긴 행위로 발전했다.  나는 고요함의 언저리에 도달했고, 침묵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영성과 교감과 명상이라는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다.(P.173)
기름투성이 해변에 앉아 이런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한 평범했던 청년은 각종 언론에 등장하는 유명인사가 되었고, UNEP(유엔환경계획)의 세계 풀뿌리 공동체를 담당하는 친선대사로 임명되어 UNEP의 홍보와 환경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였으며, 비영리 환경교육기구 '플래닛워크'의 설립자이자 대표로서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순례와 변화에 관하여 강연을 하고 '플래닛라인스'를 홍보하고 있다.  기름유출의 끔찍한 현장을 목격하고 그러한 재앙을 막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소시민이 기름유출 관련 법령을 작성하고 평가하는 일을 해달라고 정부로부터 요청을 받아 해안 경비대에서 근무하기 까지의 과정은 책을 읽는 독자 개개인에 잠재된 그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길을 걸을 때 우리는 자신과 대면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우리가 편을 갈라 싸울 필요가 없고, 국가의 적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과 말다툼을 벌일 필요도 없음을 깨닫는다.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 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 좁은 행성에서 이 귀중한 순간을 평화롭게 살아갈 기회가 아직 열려 있다.  걷기만 한다면 가능한 일이다.(P.435)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 그 신념이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것이어야 하고, 그것이 굳어져 실천으로 옮겨지기 까지의 과정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 아닐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인간과 다른 모든 생명체로 확장되고, 돌처럼 굳어진 확고한 신념을 갖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 아이들의 내재된 가능성을 현실에 드러내게 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존 프란시스는 자신의 체험으로 입증하였다.  외부의 시련을 통하여 내면은 더욱 강해지고, 밖으로만 향하는 나의 말을 안으로 갈무리 할 때 우리는 삶의 기쁨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의 잠재력을 십분 발휘하게 되는 것이리라.  그러한 방식이 인간을 창조한 신의 뜻임을 나는 겸허히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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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원 벤치에서


침묵의 계절 겨울이 순례를 떠나는 날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해묵은 편지를 읽었다

처음과 끝이 맞닿은 어느 곳에서
부유하던 너는 
기별도 없이 내게로 왔다

봄은 속삭이는 계절
소리치지 말 것
험한 얼굴로 인상쓰지 말 것
바람의 언어로 시를 쓰고
태양의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그 오후를 방해하지 말 것
그렇게 숨죽이고 지켜볼 것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아련함이 흐르는 한낮

도시 저편에는 회색빛 게으름이 졸고
꽃이 피려는지
아이들 웃음이 맑다

봄은 속삭이는 계절

소리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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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작은 공원의 벤치에 앉아 ’우연’을 위한 빈 자리를 마련했다.
커피 한 잔으로 이렇게 여유로울 수 있는 것을 보면 삶은 분명 축복이다.
4월의 날씨치고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부는데 여전히 꽃은 피고, 오가는 사람들은 
제 것인 양 봄을 즐기고 있었다.
짧은 글을 메모하고 자리를 일어서려는데 아쉬움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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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0-04-15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이 시, 꼼쥐님이 쓰신 거에요?
우와~~ 대단하신데요^^
정말 멋진 시에요. 특히 저는 저 대목 쉿, 이라는 대목이 좋아요.
맨날 아이들하고 지지고 볶아서
봄이 속삭이는 소리도 놓치거든요^^

꼼쥐 2010-04-16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분한 칭찬이에요.
쓰고 보니 운율도 잘 안 맞고...
대부분의 엄마들은 그렇죠. 특히 아이가 어리면 더 시간 내기 힘들죠.
들러주셔서 고맙습니다.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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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선현의 글을 접할 때마다 내 지식의 일천함에 갑갑증을 느끼곤 한다.
다산의 서간을 번역본으로 읽으면서도 그 뜻을 이해함에 때로는 좌절하게 되니 내가 하는 독서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스무 살의 나이에 우주 사이의 모든 일을 다 깨닫고 완전히 그 이치를 정리해내려 했다는 다산의 열정과 학문에 대한 의지는 부끄러움과 반성의 마음으로 이 글을 읽게 했다.  혹자는 물을 것이다.  학문으로 밥 빌어 먹을 것도 아닌데 그까짓 것 배워서 뭐에 쓰겠냐고.  만일 그렇게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우리가 기르는 가축과 다름이 없다.  자식에게 밥 잘 주는 주인 만나는 법만 가르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사람은 태어나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서로의 영적 성장을 도모하여야 하며,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가장 큰 책무이자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무릇 독서하는 도중에 의미를 모르는 글자를 만나면 그때마다 널리 고찰하고 세밀하게 연구하여 그 근본 뿌리를 파헤쳐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는다면 수백 가지의 책을 함께 보는 것이 된다.  이렇게 읽어야 읽은 책의 의리를 훤히 꿰뚫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이 점 깊이 명심해라.
다산이 유배지에서 그의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자신으로 인해 폐족의 자제가 된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 때문에 남들로부터 천대와 멸시를 받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아비로서의 부정이 듬뿍 묻어난다.  때문에 다산은 아들들의 학문을 더욱 독려하게 되고, 곁에서 돌보지 못하는 까닭에 가족간의 예법, 친인척간의 올바른 관계, 양계 및 양잠법, 친구를 사귀는 것과 술마시는 법도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챙기고 있다.  유배지에서 겪는 외로움과 고달픔을 내색하지 않고 오직 자식들의 안위와 무사를 바랐던 다산의 진심어린 편지는 읽는 이의 마음을 적시고도 남음이 있다.  더구나 막내아들의 죽음을 전해 듣고 애통해 하는 아비의 심정과 슬픔 속에서도 자신보다는 어머니를 챙기라고 간곡히 당부하는 모습에서 당대의 강직한 선비의 면모보다는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자상함이 엿보인다.  이 책에서는 학문하는 자세와 삶에 대한 태도, 세상의 이치 등 우리가 되새기고 간직해야 할 소중한 가르침이 배어있다.
무릇 사대부 집안의 법도는 벼슬길에 높이 올라 권세를 날릴 때에는 빨리 산비탈에 셋집을 내어 살면서 처사(處士)로서의 본색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벼슬길이 끊어지면 빨리 서울 가까이 살면서 문화(文華)의 안목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P.148)
위 글에서 보듯이 권세가 높을수록 청렴하고자 했으며, 가난할수록 새로운 것에 대한 배움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다산의 선비다움과 실학자의 면모가 잘 드러나고 있다.
스스로 자기 재물을 사용해버리는 것은 형태를 사용하는 것이고 재물을 남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정신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된다.  물질로써 향락을 누린다면 닳고 없어질 수밖에 없고 형태 없는 것으로 정신적인 향락을 누린다면 변하거나 없어질 이유가 없다.(P.152)
이 책은 이처럼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형님으로서, 그리고 자신의 학문을 알아 주는 학문적 지기이자 선생으로서 존재하던 다산의 둘째 형님 정약전에게 보내는 편지 및 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경전의 해석과 차용에 머물지 않고 대담한 비판과 끊임없는 그의 탐구정신은 경서뿐 아니라 병법, 천문,  지리, 역사, 농법 등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학문적 범위를 가능케 했다. 
생계가 어려운 제자들에게 선비다운 농사법을 전수하는가 하면 목민관의 자세와 방법에 대해 논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 대사상가로, 실학자로서 다산을 평가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자상한 아비로, 우애로운 동생으로, 또는 위대한 스승으로 우리는 다산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나는 블로그를 시작하면서부터 아직은 어려 대화가 쉽지 않은 아들에게 나의 생각과 권하는 말을 편지로 남기고 있다.  어느 아비나 자신의 삶을 자식에게 전하고 그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시키려 노력할 것이지만,  다산의 편지를 읽으며 진정한 아비다움은 학문에 대한 의지와 끝없는 노력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그리고 자신의 수양을 결코 멈추지 말아야 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거든 그 일을 하지 말 것이고 남이 듣지 못하게 하려면 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제일이다.  이 두 마디 말을 늘 외우고서 실천한다면 크게는 하늘을 섬길 수 있고 작게는 한 가정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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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 나에게 놀라운 일이 있었는가?

 

2. 오늘 나에게 감동을 준 일이나 마음에 와 닿았던 일이 있었는가?

 


3. 오늘 나에게 영감을 준 일이 있었는가?

 

    <네개의 다른 양식> ---엔젤스 에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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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별 여행자>의 저자 무사 앗사리드는 자신의 수첩에 "우연"을 위한 빈 자리를 남겨둔다고 한다.

그날이 항상 그날 같은 나의 일상에서 나도 우연을 위한 빈 시간을 마련해야 겠다.

혹시 아는가.

기적처럼 놀라운 일이 우연히 내게 찾아와 무한한 감동을 주고, 떨리는 마음에 신의 계시처럼 커다란 영감을  한아름 안겨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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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사는 즐거움 - 시인으로 농부로 구도자로 섬 생활 25년
야마오 산세이 지음, 이반 옮김 / 도솔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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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연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이 책의 저자를 알지 못하면서 야쿠 섬을 방문했던 것도  ’인연’이라는 말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1999년 2월 재팬텍스(Japantex)의 관람을 목적으로 일주일간 일본 여행을 떠났었다.
이런 여행이 대개는 그렇지만 관람 후의 남은 일정에 더욱 관심을 집중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우리 일행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많지 않은 여행 경험을 종합하여 여행지를 선정하고, 여행 경비를 계산하고, 숙소와 준비물 등을 준비하며 부산을 떨었었다.   그렇게 급조된 여행지가 야쿠 섬이었다.  도쿄에서 가고시마까지, 다시 가고시마에서 야쿠 섬까지 비행기를 두 번이나 갈아타며 그 먼 곳까지 갔던 이유는 그곳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여행 정보에 끌렸기 때문이다.  그날은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특별한 목적도 없었던 우리 일행에게 미끄러운 비탈길을 걷는 자체로도 여행자의 의지를 꺾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그 유명한 수령 7200년의 조몬 삼나무를 보지도 못한채 안락한 숙소의 유혹에 못이겨 길을 돌려야만 했었다.  스치듯 지나쳤던 그 섬의 원시림은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잘 보존된 그들의 자연 경관은 우리 나라의 여러 여행지에 들를 때마다 내게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 섬에 들렀을 때도 저자는 아마 그곳에 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그를 몰랐고, 지금 그가 기록한 삶의 자취는  나의 손에서 유서로 읽히고 있다.

이 책은 저자 야마오 산세이가 1996년 7월 호부터 98년 6월 호까지 만 2년에 걸쳐서 월간 '아웃도어'지에 연재했던 것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현대의 미야자와 켄지'로 불리는 저자는 많은 시와 산문을 쓴 시인이자 농부이며, 실천하는 사회 운동가이자 구도자였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도쿄에서 야쿠 섬으로 들어와 손수 집을 짓고, 밭을 일구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지냈던 25년의 섬 생활은 저자가 그토록 바랬던 평화로운 세계를 이루어준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지 못한다.  2000년 11월에 말기 암 선고를 받고 2001년 8월에 조용한 죽음을 맞기까지 저자의 부인이 발문에 언급하듯이 그의 삶은 '여기에 사는 슬픔'이고 '여기에 사는 괴로움'인 동시에 '여기에 사는 기쁨'이자 그것들을 넘어서 '모든 것은 즐거움'이라고 하는 삶에 대한 찬가와 같았다.
이 책의 표지에 실린 부부의 사진처럼 이 책의 내용은 담담하고 소박하게 사는 가족의 일상을 계절의 순환과 더불어 조용히 써내려 가고 있다.  저자가 지향했던 '아웃도어 라이프'는 수렵과 채집의 석기시대 문화를 현실에서 즐기는 것이요, 삼라만상의 신성함을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요, 지구의 차원에서 생각하고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실천하고자 했던 '지역생명주의'였다.
인간의 생명이라는 필름은 바깥 세계의 온갖 대상에 감응하며 기쁨과 분노와 슬픔과 즐거움 등의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그런데 그 감정은 생명의 가장 깊은 영역에서 작용하고 있는 '공명 현상'이란 본질에 뿌리를 두고 일어난다.  우리 몸속의 유전자에는 우리가 식물이었던 때의 기억이 분명히 남아 있기 때문에 꽃 한 송이가 피면 이웃 가지의 꽃도 동시에 피는 것처럼 우리도 절로 꽃 피워지는 것이다.(P.253)
우리 모두가 농부가 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우리가 파괴한 이 자연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땅에 우리는 두 발을 딛고 서있다는 것을.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찾았던 삼척의 무릉계곡이나 지리산 칠성계곡의 모습은 지금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다.  그것을 몹시 그리워 하는 간절한 향수는 다음 세대에 우리가 물려줘야 할 가장 소중한 유산이 될 것임을 나는 막연히 느끼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로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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