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찌르르르!' 말매미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지난 주 월요일 아침 등산로에서 처음 들었던 매미 소리보다 조금은 우렁차게 변한 듯도 하고, 이따금 시끄러운 것도 같고, 월요일 이후로 매미 소리를 다시 들었었나 되짚어 보기도 한다.  그 매미 울음 소리 때문이었는지 머릿속으로는 낱글자들이 오그르르 몰려든다.  장마가 한창인 요즘, 맑은 햇살은 참 오랜만이다.  '매미들도 반가웠던 게지.'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두서없이 얽히는 이 오전의 헐떡임 속으로 한 권의 책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좀머 씨 이야기>.  한동안 잊고 지냈던 책이다.  책을 읽고 많은 생각들이 오갔지만 결국에는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었던 책들이 있다.  <좀머씨 이야기>도 그런 책이다.  넉넉 잡아 서너 시간이면 다 읽을 만큼 부담이 없었던 책.  그래서 더 생각이 많아졌는지도 모른다.  세어보지는 않았어도 줄잡아 서너 번은 읽지 않았겠어?  그런데도 리뷰는 한 줄도 쓰지 못했다고?  그랬다.  <좀머 씨 이야기>는 논리적인 언어의 흐름으로 정리되거나 저장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의 이미지로만 기억될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 <좀머 씨 이야기>의 리뷰를 쓰고자 한다.  비논리적인 이미지를 글로 옮긴다는 것이 모험과 다름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1.  관계 맺기와 "나를 좀 제발 그냥 놔 두시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그 대부분이 언어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나 자신의 말에는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빈말이 섞이게 마련이다.  예컨대 '언제 술이나 한 잔 하자'라든가 '오늘따라 옷이 멋져 보이는군요' 하는 식의 상투적인 말들은 그 말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좀머 씨 이야기>에서 작가는 이 빈말에 대한 폐해를 독자들에게 여러 번 주지시킨다.

 

""...그런 말들은 인간의 삶에서 만들어진 말들이 아니라, 질 나쁜 소설이나 터무니없는 미국 영화에서 생겨난 말들이니까 그런 말들을 똑똑히 기억해 두거라!"

그래서 <그러다가 죽겠어요>라는 따위의 말들을 아버지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박이 떨어진 도로에 이슬비가 내리던 날, 좀머 아저씨 옆으로 차를 몰면서 그런 틀에 박힌 빈말을 아버지가 열린 창문을 통해 큰소리로 외쳤던 것이다."    (p.34)

 

또 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내가 남 몰래 짝사랑하던 카롤리나의 빈말이 그것이다.  카롤리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아이들이 호수 윗마을에 살았고 나만 홀로 아랫마을에 살았기 때문에 하굣길에 카롤리나와 오붓한 시간을 갖는 것은 오직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카롤리나가 했던 <월요일에 너랑 같이 갈게!>라는 말에 나는 한껏 들뜨게 되지만 정작 월요일에 있었던 카롤리나의 말은 "나 오늘 너랑 같이 안가."였다.

 

"한참 동안 변명이 이어졌지만 갑자기 이상하게 귀가 멍멍하고 다리에 힘이 빠져서 그것을 머리에 기억해 두기는커녕 제대로 듣지도 못하였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는 그 애가 말을 끝낸 다음 갑자기 돌아서더니 윗마을 쪽을 향해 샛노란 옷을 휘날리며 다른 여자 아이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만큼 잽싸게 달렸다는 것뿐이다."    (p.55)

 

마지막으로 풍켈 선생님의 말은 이 소설에서 극단적으로 작용한다.  결국 나는 풍켈 선생님의 말로 인해 삶에서의 모든 관계를 끊고자 자살을 결심한다.  물론 미수로 끝나지만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억지로 내게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올림 바 건반 위에 구역질나는 코딱지를 붙여 놓은 미스 풍켈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내가 딱 한 번 필요로 하였을 때 도와줄 것을 간청하였건만 비겁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어긋난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모양만 지켜보았을 뿐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세상사람들이 자비롭다고 하는 하느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그런 모든 것들에게 의리를 지킬 필요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토록 비열한 세상에서 노력하며 살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나말고 다른 사람들이나 그런 못된 악에 질식해 버리도록 두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는가?  그런 사람들이나잘 먹고 잘해 보라지!  나를 포함시키지는 말고 말이다!  나는 앞으로는 결코 그 사람들이랑 같이 어울리지 않으리라!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리라!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고 말겠다!  그것도 지금 당장!"    (p.83)

 

2. 인간 소외와 편견

   

<좀머 씨 이야기>는 화자인 '나'의 성장 과정을 담고 있다. 그는 아주 어린 꼬마에서부터 고등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으로 자라난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제목은 <좀머씨 이야기>인데 말이다.  이 책에서 좀머씨는 차창에 스쳐가는 풍경처럼 그려질 뿐이다.

 

"마을에서 좀머 아저씨의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름이 페터 좀머인지 혹은 파울 좀머인지 아니면 하인리히 좀머인지 혹은 프란츠 크사버 좀머인지 알지 못했으며, 좀머 박사인지 혹은 좀머 교수인지 아니면 좀머 박사 교수인지도 모르는 채, 사람들은 그를 유일하게 <좀머 씨>라는 이름만으로 알고 있었다.  좀머 아저씨의 직업이 무엇인지 아니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었는지 혹은 과거에 직업을 가지고 있기는 했었는지조차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p.15)

 

좀머 아저씨는 긴 호두나무 지팡이를 짚고 텅 빈 배낭을 멘 채 밤이고 낮이고 걷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어디를 다니는지, 목적지가 어디인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잰 걸음으로 다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좀머 씨는 한마디로 마을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인간이었다.  으레 그렇듯 소외된 인간을 향한 무수한 억측과 소문이 따라붙는 것은 좀머 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리타 슈팅엘마이어가 말해주었는데요.  좀머 씨는 항상 경련을 한대요.  온몸이 다 떨린대요.  리타가 그러는데 꼭 안달뱅이처럼 근육이 다 움직인대요.  의자에 앉으려고만 해도 몸이 먼저 떨린대요.  그래서 자기가 떠는 것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으려고 항상 걷는 거래요."    (p.38)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편견은 그것이 자발적이든 또는 그렇지 않든 간에 언제나 부정적이다.  소외된 사람들의 삶은 항상 불행할 것이라는 삶 전체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혹시 범죄를 저지르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 이르기까지 사실이 아닌 주관적 판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떤 경우에는 확신에 차서 말하는 경우도 있다.  과연 그럴까?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불행한가?  그렇지 않다.  다만 그렇게 믿을 뿐이다.  인간이 겪는 대부분의 스트레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오지 않던가.

 

좀머 씨는 결국 호수에 빠져 자살한다.  소설 속의 '나'는 먼 거리에서 좀머 아저씨의 마지막 모습을 그저 지켜만 보았을 뿐 '좀머 아저씨!  정지!  뒤로!'라고 소리치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하러 마을로 달려가지도 않았으며, 아저씨를 구할 수 있는 배나 뗏목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에 아저씨의 모습은 사라졌다.  밀짚모자만이 동그마니 물 위에 떠 있었다.  그리고 무지하게 길게 느껴졌던 30초 혹은 1분이 지난 다음 몇 개의 물방울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을 뿐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밀짚모자만이 아주 천천히 남서쪽을 향해 떠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어둑어둑한 원경으로 사라지기 전까지 오랫동안 그것을 쳐다보았다."    (p.111)

 

어떤 목적이나 희망도 없이 무작정 걷기만 하는 좀머 씨는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반복되는 그 행위가 바로 우리의 삶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를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언어를 통하여 단순히 관계 맺는 것으로 가능한 일은 결코 아니다.  소외된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누군가의 삶을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비록 그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그와의 만남이 잦았을지라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 - 최갑수 골목 산책
최갑수 글.사진 / 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낯선 골목을 걷고 있노라면 시간의 회벽을 따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추억의 한 장면을 만나곤 한다.  골목을 따라가면 언제나처럼 작은 공터가 나오고 왁자한 아이들이 그곳에서 숨바꼭질을 하거나, 비석치기를 하거나, 양갈래머리를 한 한 무리의 여자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다.  때로는 무리에 속하지 못한 어린 아이들이 놀이에 끼이고 싶어 이리저리 기웃대며 놀이를 방해하지만 저녁 어스름이 질 때까지의 골목은 온통 아이들 차지였다.  어둑어둑 해가 지면 아이들은 아쉬움만 한아름 내려 놓고 공터를 떠난다.  호박꽃이 환한 저녁이면 공터 한켠에 놓인 평상으로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밤새 모깃불이 타올랐었다.  이따금 어른들의 이야기가 호박 넝쿨처럼 길게 이어지는 날이면 졸음에 겨운 아이들은 제 어미의 무릎을 베고 곤한 잠에 빠져들고 풀벌레 소리만 별처럼 가득했었다.

 

골목에서는 그때 맡았던 제 어미의 땀내음처럼 아릿한 향수가 밀려오곤 한다.  낮은 담장 넘어 손바닥만한 마당 한켠에선 걸레를 빠는 누이의 모습.  일렁이는 검은 머릿결에 함초롬한 가을 햇살이 소복소복 쌓일 것 같은 오후.  영훈, 종애, 영숙, 정태 같은 낯익은 이름들이 어디선가 들려올 것만 같다.  '아무개야!  밥 먹어라!' 하는 메아리가 앞산 머리에 쩌렁쩌렁 울릴 것만 같다.  손을 뻗으면 그 정겨운 풍경이 하마면 잡힐 듯한데...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골목의 옛 모습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까치발을 뜨면 안마당까지 훤히 보이던 정겨운 풍경도, 깡통을 차며 놀던 작은 공터도, 세월의 더께가 일던 담배가게도 이제는 모두 아슴아슴 멀어지고 있다.  여행작가 최갑수의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는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최갑수 골목산책'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나즈막한 슬레이트 지붕이 골목으로 나란히 펼쳐지는, 골목을 따라 코스모스 여린 데궁이 일렁일 것만 같은 그때의 풍경 속으로 안내한다.

 

"골목을 다니다보면 순수한 사랑으로만 가득 찬 곳에 들어서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것은 바람으로 흔들리는 미루나무의 움직임처럼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다.  나는 할머니들과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지켜보며 보일러로 따뜻해진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있을 때의 느낌을 받았다.  온통 평화와 사랑으로 충만하다는."    (p.240)

 

서울의 부암동이나 북촌 한옥마을에서부터 통영의 동피랑, 청주의 수암골, 부산의 태극도마을, 대전의 복지관길 등 저자의 발길은 전국을 누비고 있다.  건물의 높이가 1m씩 높아질 때마다 남보다 두세 걸음쯤 앞서 걸어야만 했던 우리는 골목의 여유란 그저 게으름의 상징, 청산해야 할 구태의 하나쯤으로 여기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어미의 시큼한 땀내음이 물씬 풍겨오던 삶의 터전이 사라진 자리에는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도통 찾을 길 없는 콘크리트 건물이 위압적인 자세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다.  이렇듯 풍경의 변화는 사람들의 일상을 생경하게, 또는 살풍경하게 만들어 놓았다.  추억은 오직 마음 속의 그리움으로만 존재하는 추상적 개념이 되고 말았다.

 

"나는 지금 수암골 골목에 서 있다.  주홍빛 불이 들어오고 있는 가로등 아래로 단발머리 여자 아이가 뛰어간다.  먼 지붕 위로 별이 돋고 어디선가 졸리운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이 모든 것은 익숙하지만 새롭게 다가온다.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곳.  그곳이 바로 골목이다."    (p.359)

 

언젠가 댐 건설로 인해 자신이 살던 고향을 잃고 실향민 아닌 실향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난적이 있다.  그는 호수 어딘가를 가리키며 자신이 살던 곳이라고 말했었다.  그때 나는 느꼈었다.  '아, 개발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픔이 되는구나!'하고 말이다.  개발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삶의 흔적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음을 그때 알았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체취는 이제는 더 이상 찾기어렵다.  새로이 태어나는 자식들에게 제 부모의 흔적을 지우도록 강요하는 사회를 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까.  골목을 보존해야 하는 첫째 이유는 거기에 있지 않은가.

 

뽀얀 가을 햇살 속에 온종일 펄럭였던 이불 홑청처럼 순수한 마음이 흘러가던 곳.  그곳이 바로 골목이었음을 이 책을 읽고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모퉁이를 돌면 백구가 컹컹 짖던 내 어릴 적 친구의 집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이제는 몇 남지도 않은 골목이 부디 무사하기를...  그곳에 흐르던 순수의 마음들이 계단을 오르고, 공터를 돌아 고샅고샅 흩어지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로그에 글을 쓰고, 그 글을 '공개'로 설정해 놓았다면

대부분의 블로거들은 자신의 글을 읽은 다른 블로거,

또는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반응에 대해 한번쯤은 의식할 듯합니다.

저만 그런가요?(그렇다면 이 글은 순전히 제 주관적인 견해가 되겠지만)

 

아무튼,

저도 가끔은(자주는 아닙니다) 제가 쓴 글에 대해 다른 사람의 반응을

살필 때가 있습니다.  저는 누가 뭐래도 번잡한 것을 싫어하고,

명예욕이 넘치거나 시기심이 많은 것도 아닌, 조금은 내성적인 성격인데도 말입니다.

<팡세>를 쓴 파스칼도 자신이 쓴 글에 대해 독자의 반응을 의식한 듯합니다.

대문호 파스칼과 저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구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시간이 날 때 재미삼아 끄적거리는 아마추어의 입장이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아직도 제가 궁금해 마지않는 점은 제 글을 읽는 독자의 반응을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일에 따라 블로그 방문객의 수에 약간의 편차가 있다고 할지라도,

글을 쓰는 제 입장에서 보면 그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또는 시간적 여유의 유무에 따라(조금 한가한 날은 제가 쓴 글을 훑어 보고 고치기도 함),

좋은 글(제가 보기에 그래도 괜찮다 싶은)과 나쁜 글(형편없어 보이는)로 나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저의 판단은 번번이 빗나가곤 합니다.

 

전혀 공을 들이지 않았던 글('전혀'는 아니겠네요. 조금의)은 오히려

폭발적인 반응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많이 읽히는 듯 보이는 반면

꽤나 공을 들이고 스스로도 만족해 하던(자뻑인가요?) 글은

그닥 인기가 없더군요.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죠.

오히려 일관되게 그랬었다면 저도 이렇게까지 궁금해 하지는 않았을 테죠.

참 알 수 없는 일이죠?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자전거로 나를 세운다 - 자전거 세계일주, 나를 향한 50가지 질문
스콧 스톨 지음, 윤덕노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형체만 그려 놓은 담장의 벽화 앞에 동네 꼬마 몇몇이 옹기종기 모여 낙서를 하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끝이 뭉툭해진 연필에 가끔씩 제 침을 묻혀가며 낙서 아닌 낙서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얼굴 윤곽 안에 눈이며, 코며, 입을 그려 넣습니다.  그리고 빈 풍경 안에 알 수 없는 것들을 그리며 때로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을 지켜보기도 합니다.  웬만한 화가의 진지함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빈 곳을 채워갑니다.

 

당연한 것 아닐까요?

어려서는 자신의 경험으로 삶의 빈 공간을 메우는 것이니까요.  한 살 두 살 같은 경험이 반복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색다른 경험도, 내 삶의 빈 공간도 없어질 즈음이 되면 우리는 이제 삶이라는 것에, 또는 일상이라는 것에 조금쯤 시들해지게 마련입니다.  마치 솔개가 40년 정도 살다 보면 부리는 구부러지고 발톱은 무뎌지며, 날개는 무거워서 날기도 힘든 상황에 처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쯤 되면 사람도, 솔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놓이게 됩니다.  솔개는 그런다지요?  높은 바위산으로 올라가 둥지를 틀고는 자신의 부리를 바위에 쪼아 없애버리고는 닳아 없어진 자리에서 새 부리가 나오면, 다시 그 부리로 무뎌진 발톱을 하나씩 뽑고, 무거워진 깃털도 모두 뽑아내어 새로운 발톱과 깃털이 자라게 한다구요.  그렇게 생사를 건 130일을 보냄으로써 40여 년의 새 삶을 살게 된다지요. 

 

사람도 별반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욕심으로 무뎌진 감성과, 무료한 일상에 매몰된 두뇌와, 안락에 취해 죽어가는 열정을 되살리지 못한다면 비록 육체는 백 살을 산다 한들 이미 자신의 수명은 그 순간에 다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솔개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제2의 인생을 다시 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 <자전거로 나를 세운다>의 저자인 스콧 스톨은 자전거 여행을 통하여 생사를 건 솔개의 체험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자전거 하나로 4년 동안 6대륙 50개국, 4만1444㎞를 일주하였으니까 말이죠.  어쩌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고행의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여행을 시작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지도를 던져 버리고 스스로의 방향 감각을 믿으며 발 끝으로 직접 풀을 밟는 감각을 느껴 보려는 것이다.  때로 숲 속에서 길을 잃을 때도 있겠지만 지도 제작자가 표시할 수 없는 세상을 직접 보고 싶었다."    (p.123)

 

저자는 여행을 준비하는 데만 꼬박 2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과 직업, 절친한 룸메이트, 자신감 등 그를 구성하던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불안감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러다 자전거를 타고 세계를 향해 훌쩍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세상이라는 품 속에서 4년을 보냈습니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듣게 되는 흔한 질문에서부터 자신의 내면에서 메아리치는 떨쳐버릴 수 없는 의문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그 수많은 질문들에 대하여 답을 찾고자 노력한 듯 보입니다.  우리와 똑 닮은 보통 사람의 저자가 들려주는 나름의 답변은 정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생각하는 정답과는 상반된 말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자 자신의 경험과 독자의 인생 경험을 합치면 더 즐거운 인생을 발견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인생이 자신에게 진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기를 두려워 한다.  사람들은 또 왜 자신이 꿈꾸는 것처럼 살지를 못하는지 몰어 보기조차 두려워한다.  인생의 의미를 찾아 자신을 증명하려는 모험을 시도할 용기조차 없다.  그러니 실패를 극복하려는 노력도 하지 못한다.  그저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라고 자위할 뿐이다.  그냥 그렇게 지내는 편이 훨씬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생각한다."    (p.44)

 

"결과적으로 사람들 대부분은 바깥 세상의 기대에 맞춰 자신을 개조하려고 들거나 아니면 자신의 기대에 맞춰 세상을 살려고 인생을 낭비한다.  그래야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p.420)

 

저자는 이 책에서 '용변은 어디서 보나요?'와 같은 일상적이고도 원초적인 질문에서부터 '행복하세요?'와 같은 철학적이고도 근원적인 질문에 이르기까지의 그가 선정한 50가지의 질문을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손이 뒤틀리고 관절이 찢어지는가 하면 강도를 만나기도 하고 물 한모금을 찾아 극한의 인내력을 감수해야 했던 저자의 경험으로부터 독자가 얻을 수 있는 간접경험은 산처럼 커 보입니다.  우리는 저자처럼 훌쩍 떠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악의 인간은 자신을 노예처럼 부리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던 <월든>의 작가 소로우의 말처럼 나, 그리고 너는 "최악의 인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전거로 세상을 건너는 법 - 메콩강 따라 2,850km 여자 혼자 떠난 자전거 여행
이민영 글.사진 / 이랑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은 자전거로 통학을 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자전거는 통학을 위한 주요 교통수단이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도로에 차가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전거만큼 값싼 교통수단도 없었기에 아침이면 도로는 온통 자전거의 물결이었다.  당시에도 물론 버스는 있었다.  그러나 100원 남짓이던 버스요금은 학생들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같은 동네의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떼를 지어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그런 까닭에 자전거에 얽힌 추억도 많다.  한번은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늦은 밤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길을 걷고 있던 어느 여학생과 부딪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무슨 썸씽이 있었냐고?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나를 향해 걸어 오던 여학생은 내가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으면 똑 같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역시 왼쪽으로 피하려다가 결국은 속도를 죽이지 못하여 여학생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말았다.  나는 그 사태를 무마하려고 자전거에서 재빨리  내려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었을 뿐이다.

 

지금도 가끔 떠오르는 또 다른 추억은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의 일이었다.

대학 진학 공부의 막바지에 박차를 가하던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꽤나 지쳐있었다.  어느 날 평상시처럼 학교에 나와 자습을 하던 친구들 몇몇이 머리를 맞대고 모의를 했고, 그 결과를 내게 선심 쓰듯 알려주고는 그들과 행동을 같이할 것을 반 강제적으로 종용했었다.  계획인즉슨 학교에서 30km 정도 떨어진 계곡으로 자전거를 타고 놀러가자는 것, 그것도 가장 더운 날 가장 더운 시간을 골라서 출발하여 우리의 인내력을 시험해 보자는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왜 그 무모한 계획에 선뜻 동참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8월의 땡볕 속으로 무모하게 뛰어들었다.  목적지에 반도 이르지 못한 지점부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만 보면 온 몸에 물을 끼얹고 더위에 지친 개처럼 혀를 길게 뽑고 물을 들이켜기 바빴다.

 

어찌어찌 목적지에 도착한 시각은 막 저녁 어스름이 질 무렵이었다.  준비해 간 쌀로 밥을 짓고 삼겹살을 구워 배를 채운 것 까지는 좋았는데 돌아갈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래도 친구들은 계곡의 물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한참을 놀고 나니 홀딱 젖은 몸에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졌다.  달도 뜨지 않은 캄캄한 밤길을 라이트도 들어오지 않는 자전거를 타고 달리려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다섯 명 중에 라이트가 멀쩡한 자전거를 탄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다.  그 약한 조명에 의지하여 우리는 달리고 또 달렸다.  설상가상으로 도중에 한 친구의 자전거에 펑크가 났다.  어찌할 수 없었던 우리는고장난 자전거를 끌고 자전거 수리점을 찾아 수십 분을 헤맸다.  그러나 휴일의 늦은 시각이었던지라 자전거포의 문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다.  우리는 막무가내로 자전거를 수리해 주십사 사정하여 펑크를 수리하고 가까스로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요즘 들어 자전거 여행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자전거로 세상을 건너는 법>이다.  사실 요즘은 전국의 어느 도로를 가더라도 마음 놓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곳은 드물다.  도로 사정은 좋아졌지만 그만큼 차도 많아졌고 달리는 차의 속력도 위협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오지로 향한다.  여행을 좋아했던 작가 이민영도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여자 혼자서 무려 2개월 동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의 메콩강 4개국, 2,850km를 달릴 결심을 한 것은 나의 학창시절의 경험처럼 조금 무모하다 싶다.  결국은 무사히 마쳤지만 말이다.  이 책은 그때의 기록이다.

 

"나 역시 20대의 대부분을 미친바람처럼 떠돌았다.  그러다가 나이 서른이 되고, 세상 이곳저곳을 떠돌며 모든 곳이 비슷하게 느껴질 무렵, 문득 '이젠 충분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여행을 다니지 못한다 해도, 더 이상 놀지 못한다고 해도 아쉬울 것이 없을 만큼 충분히 다 불태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의 미친바람이 잦아든 것이었다.  대신 30대에 접어든 지금은 가슴속에 '사무침'이라고 할 만한 단단히 덩어리 같은 것이 느껴진다.  진정으로 사무칠 때 화두를 잡아야 평생 흔들림 없이 정진할 수 있다는데, 산만하게 이곳저곳으로 뻗었던 내 인생의 많은 길들이 사실은 나선형을 그리며 하나의 단단한 화두로 통합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화두를 풀기 위해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고, 여행 직전에 대학원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를 자축하기 위해 혼자 새로운 땅, 새로운 하늘을 내 속도로 천천히 헤쳐나가는 자전거 여행을 계획했다.  이번 자전거 여행을 통해 익숙한 일상이 끊어진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섬세한 감각과 새로운 생각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해준다는 것을, 모든 것이 불편하고 낯설 때 삶에 더 감사하게 된다는 것을 생생히 배울 수 있었다."    (p.264)

 

책의 제목이 맘에 들어 고르긴 했지만 작가 이민영은 생소한 사람이다.  그러나 막상 책을 읽고, 그녀의 이력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을 때, 조금은 놀랍고 약간의 존경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포항공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일했으나, 대학 시절부터 휴학을 거듭하며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고 한다. 인도와 남미, 스페인의 산티아고는 물론, 나중에는 여행인솔자라는 직업까지 얻어가며 60개국을 떠돈 후 2010년 서울대 인류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의료인류학과 진화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단다.  그녀의 여정은 메콩강 상류인 태국의 치앙마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으로 이어진다.  오르막 내리막의 연속인 산악도로와 섭씨 40도 이상의 뙤약볕이 내려쬐는 길을 자전거로 여행한다는 것은 남자인 나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펑크도 스스로 때워본 적이 없는 왕초보 자전거 여행자였던 작가.  독자는 그래서 더 공감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절대로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해서는 안 돼.  절대로 '어렵다'는 말을 해서도 안 돼.  어려울지는 몰라도 반드시 해결책이 있단다."  그분이 말해준 주옥같은 명문장들은 지금도 내 가슴속에 새겨져 있다.  사과 한 알을 보아도, 포도 한 송이를 보아도 "이 탱탱한 알을 좀 봐!  얼마나 즙이 많고 맛있겠니!" 하고 감탄하던 천진난만한 할아버지, 충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그의 삶이 내게는 위대한 예술품처럼 느껴졌다."    (p.117)

 

메콩강을 찾는 수많은 외국인과 그곳에 터를 잡고 사는 원주민들, 자전거를 타고 느리게 여행하면서 작가가 만난 사람들은 실로 다양했다.  가난하지만 낯선 여행자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 줄 아는 순박하고 고운 심성, 자신들만의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 그들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에 감동하는 작가.  그 모든 것들이 30대의 인류학도인 작가에게 앞으로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어떤 고난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망해야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좋은 만남이 아닐까?  작가가 마냥 부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