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정말 오긴 오는군요. 안 올 줄 알았거나, 오는 데 한참이나 걸릴 줄 알았는데 말이지요. '연말연시'라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입니다. 모임도 잦고, 여기 저기 불려다니다 보면 본의 아니게 이런저런 실수도 잦아지게 마련이지요. 일 년에 할 실수를 이맘때에 모두 몰아서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술을 못 마시는 까닭에 다른 사람의 실수를 그저 참아주거나 술에 만취하여 아무 일도 아닌 일로 실랑이를 벌이는 둘 사이의 시비를 잘 중재하는 역할이 주어진 임무라면 임무인데 이런 식으로 몇몇 모임에 참석하다 보면 녹초가 되곤 하지요. 술에 취한 사람들은 간혹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멍멍이에 빙의되기 때문에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종종 목격하게 되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그런 모임에서는 별의별 일들이 다 벌어지는지라 없던 오해도 쌓이고, 새로운 갈등도 생겨나지만, 항상 그런 부정적인 일들만 있는 것도 아닌 듯합니다. 아무 기대도 없이 참석했던 모임에서 간절히 보고 싶었던 사람을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술기운을 빌어 원수 대하듯 하던 사람과 어색한 화해를 시도하게도 됩니다. 그리고 각종 인사말들이 안주처럼 술좌석을 오가게 되지요. 술잔이 몇 순배 도는 것처럼 인사말도 그렇게 돌고 도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보다 인사말이 더 먼저 취하는지 발음을 도통 알알들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러서야 사람들은 하나둘 집생각이 나나 봅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도 그 즈음이지요.

 

저는 이따금 아무것도 아닌 짧은 인사말에 눈물이 왈칵 솟을 때가 있다는 것을 밝히지 않을 수 없군요. 정말 그렇습니다. 제가 혹 눈물이 너무 많아 평소에도 시도 때도 없이 질질 짜는 사람이 아닌가 의심하는 분이 있다면 결단코 오해입니다. 저는 웬만한 일로는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는, 어찌 보면 냉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몇 년 동안 소식도 듣지 못했던 사람으로부터 '잘 지냈어?'와 같은 평범한 인사말이 아닌, 밑도 끝도 없이 '얼마나 힘들었어?' 물어올 때, 저는 대답에 앞서 눈물부터 왈칵 솟는 걸 보면 '사는 게 힘든 거구나'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연말연시에 들었던 짧지만 감동적인 인사말이 있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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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분 아빠 육아 - 할 일 많은 직장인 아빠의 육아법, "육아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자녀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안성진 지음 / 가나북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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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한글을 뗀 듯 보이는 어린 아이가 도서관 한 귀퉁이 또는 대형서점의 작은 공간에 철푸덕 주저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면 괜히 장난을 걸고 싶어진다. 어찌나 열심인지 통통한 볼살이 발그레하고 쌕쌕거리는 숨소리에 책장이 가볍게 떨리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한 채 오롯이 책에 빠져 있는 아이의 모습. 나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이끌리지만 '아이의 독서를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내 검지손가락을 곧게 펴 등 뒤에 감추고는 살금살금 아이 곁으로 다가가 그 씰룩거리는 볼살을 콕콕 찔러보고 싶은 유혹이 더 강하게 들곤 한다. 말하자면 나는 아이의 독서를 훼방 놓고 싶어 하는 마음이 더 강하게 드는 것이다. 그런 유혹은 나이 든 사람이 아이의 독서를 방해하는 일반적인 심술과는 다르다. 빨려들어갈 듯 집중하는 아이의 관심을 살짝 흐트러뜨려 나에게 잠시나마 아이의 시선을 붙잡아 둘 수는 없을까 궁리하는 것은 약간의 질투가 섞인 애교로 봐야 할 것이다.

 

느닷없는 공격에 당황한 아이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책을 잡고 있던 한 손으로 내 검지손가락이 다가온 쪽으로 자신의 팔을 허공에 휘휘 내 저을 것이며, 귀찮아 죽겠다는 듯 '아잉!' 소리를 냄으로써 자신의 불쾌한 감정을 토로할 것이다. 그 일련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시선은 여전히 책에 머문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아이가 책에 집중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더 아이를 방해하고 싶어할 테고 말이다. 나는 이런 감정이 들 때마다 어떤 죄책감보다는 슬몃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롯이 책에 빠져들던 아들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책을 읽으며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낄낄거리던 아들의 웃음소리도 귓가에 맴돈다.

 

안성진 님의 육아서 <하루 10분 아빠 육아>를 읽는 내내 볼살 통통했던 아들의 옛 모습이 떠올랐다.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없었던, 더 어렸을 적의 아들은 내가 읽어주는 동화를 귀기울여 가만히 듣고 있다가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를 외치곤 했었다. 한 번만 읽고 잠들었으면 바라는 나와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내가 읽어주는 동화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고 싶어했던 아들의 실랑이는 이제 해보고 싶어도 더는 할 수 없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아이가 아이로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잠시 한 눈을 팔면 어느 순간 훌쩍 커 있는 아이를 발견한다.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이 훌쩍 성장한 아이들의 성장을 되돌릴 수 없다.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도 없다. 나중에 후회할 일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육아라는 단 하나의 소중한 가치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p.61)

 

누구에게나 자식은 그 자체로서 소중하다. 그러나 그 소중함을 표현하는 방식은 각자가 다 다르다. 이를테면 그것은 선택지의 하나이거나 가치관의 발로일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 한 아이가 겪게 되는 미래는 확연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육아가 자신의 개성이나 입맛에 맞는 하나의 선택이어서는 곤란하다. 게다가 부부만 사는 햇가족이 보편화된 요즘, 육아의 기술은 어렸을 때부터 보고 배워 저절로 습득되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나도 그랬지만 우리는 준비가 되지 않은 초보 엄마, 초보 아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찍 깨우치면 깨우칠수록 좋다. 육아는 더이상 저절로 습득되지 않는, 시간을 내어 배우고 익혀야 하는 전문 영역으로 귀속되었음을 인지해야 한다. 육아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아이를 알기 위해 아이의 발달과정에 대한 책을 반드시 찾아 읽어야 한다. 책을 읽거나 전문가를 찾아 상담이나 교육을 받는 수밖에 없다. 당연히 대부분의 부모들이 저렴하고 접근하기 좋은 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책만큼 풍부한 지식을 전해주는 수단이 없는데도 책을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부모들이 손쉽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사는 것이다." (p.83)

 

몇 년 동안 한 인터넷 서점 블로그의 글벗으로 지냈던 하우애(안성진) 님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육아서를 출간했다는 소식도 뜬금없는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왜 이제야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였다.

 

바쁜 직장인으로서의 아빠가 아이들을 위해 하루 10분을 할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단단히 결심하지 않으면 일회성의 이벤트로 그치고 만다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나는 이따금 주변의 아이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삼겹살 잘 굽는 방법'이 시험 문제로 나온다면 정답을 모를 아이들이 없을 거라고 말이다. 일 년에 서너 번 가족들과 여행을 가고, 그곳에서 원없이 먹고 마시게 함으로써 아빠가 맡은 육아의 책임이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육아는 아이의 성장을 돕는 지속적인 과정이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하우애(안성진) 님이 굳이 '10분'을 강조한 이유도 지속성을 염두에 두고 쓴 말임을 책에서 밝히고 있다. 하루 10분, 지극히 짧다고 생각하면 짧을 수도 있는 이 시간에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부족한 잠을 잘 수도 있고,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도 있고, 친구와 모여 술을 마시거나 화투를 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에도 아이는 자라고, 그 소홀했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부메랑으로 다가올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가족으로부터 외면받는 아빠의 모습을 자신의 미래로 선택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루 10분 아빠 육아'는 어쩌면 우리에게 선택이 아닌 의무이자 삶 자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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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집을 나서는데 경비아저씨가 청소를 하고 있었다. 가을은 이래저래 청소와 연관된 사람들이 수난을 겪는 계절이다. 청소를 하고 돌아서기 무섭게 금세 새로운 낙엽으로 뒤덮이니 말이다. 낙엽이 시간에 맞춰 떨어질 리도 만무하고, 쌓여가는 낙엽을 보면서도 청소를 무작정 미룰 수도 없는 일이니 참으로 난감할 밖에. 열심히 비질을 하던 아저씨는 잊었던 것이라도 문득 생각 난 듯 하던 일을 갑자기 멈추고 감나무 끝을 쳐다보았다. 몇 개 남지 않은 감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팔랑팔랑 춤을 추고 있었다. 아저씨는 손에 들린 대가 긴 빗자루를 이용하여 감나무 잎을 떨어뜨리려나 보았다. 손에 들린 빗자루를 길게 뻗었는데도 거리가 조금 부족했던지 까치발까지 세운 채 말이다. 그러나 우듬지에 단단히 매어달린 이파리는 팔랑팔랑 춤을 출 뿐 좀체 떨어지지 않았다. 할 일 바쁜 아저씨를 놀리기라도 하려는 듯 말이다. 몇 번을 그렇게 헛손질을 하던 아저씨는 제 풀에 지쳤는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공연히 헛심만 쓴 꼴이었다.

 

오늘 아침에는 눈이 내렸다. 올 겨울 들어 처음 보는 눈이었다. 아저씨는 여전히 비를 들고 계셨다. 나뭇가지에는 소복소복 눈이 쌓이고 바닥에 떨어진 눈송이는 금세 녹아버렸다. 내 인사를 듣지 못했었는지 아저씨는 초점 없는 시선으로 눈 내리는 풍경에 빠져 있었다. 어느 젊은 날의 첫사랑이라도 추억하는지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마저 어려있었다. 볼에 와 닿는 쌀쌀한 바람도 아저씨를 그 하염없는 추억의 늪에서 건져내지 못했다.

 

어제와는 새삼 달라진 오늘. 사람들은 어제보다 십 분쯤 더 여유로워졌고, 그리움이 한 뼘쯤 더 깊어졌고, 세상은 얼었던 마음들이 1킬로그램쯤 녹아내렸고, 떨어진 낙엽만큼 하늘은 조금 넓어졌다. 어제와는 달라진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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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인 척 - 슬프지 않은 척, 아프지 않은 척, 혼자여도 괜찮은 척
이진이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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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낮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폴짝 뛰면 마치 손이라도 닿을 듯 말입니다. 요즘은 사흘돌이로 비가 내리는 통에 계절을 가늠하기가 정말 힘들어졌습니다. 마치 여름 장마가 가을로 옮겨 온 것처럼 말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흐리고 이따금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엔 시간이 지겹도록 천천히 흐른다는 것입니다. 하루의 길이가 족히 1.5배는 길어진 듯하고, 낮도 밤인 것 같고, 밤도 낮인 듯하여 해야 할 일에 도통 갈피가 잡히지 않습니다. 저만 그런가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오늘 기대도 하지 않고 펼쳐 들었던 책이 기대 이상이었다는 것입니다. '헐, 대박!'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나쁜 사람이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착한 사람이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을. 사람은 쉽게 변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99% 노력과 1%의 재능을 가지고도 때로는 재력 한 가지로도 쉽게 얻어진다는 것을. 머리 똑똑한 가난한 집 자식보다는 수천만 원짜리 족집게 과외를 듣는 머리 나쁜 아이가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내일부터 할 거야'하며 미루던 모든 일은 내일이 되어도 못한다는 것을." (p.26)

 

어느 리뷰에서도 쓴 적이 있습니다만 저는 이렇게 글과 그림이 뒤섞인 짧은 글들로 엮인 책을 그닥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였을 테지만 별반 기대도 없이 책을 펼쳤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책에 깊이 빠져들었던 것이지요. '세상을 살 만큼 산 사람은 어떻게 글을 써도 연륜이 묻어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지요. 저는 비록 작가의 나이도, 이력도 알지 못하지만 세상 경험이 많은 사람이구나, 하는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독자의 마음을 끄는 책이나 글은 재능만으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골 죽집에 한동안 못 간 게 미안해서 다른 길로 멀리 돌아서 다니고는 한다. 지하철에서 옆 사람이 졸면서 기댈 때 밀어내면 그 사람이 민망해 할 게 미안해서 그냥 참는다. 6개월째 다니던 한의원. 병이 안 낫는 게 미안해서 다 나았다고 거짓말하고 다른 한의원으로 간다. 나는 몇 살 때부터 이렇게 살았던 걸까?" (p.138)

 

책의 내용은 이처럼 짧은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쉬운 말들로, 흔히 겪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이처럼 깊은 울림을 주는 글을 쓰기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저로서는 작가에게 그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저는 작가의 블로그에 들러 이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될 거라는 근거도 없는 추측성의 멘트를 댓글을 남겼을까요.(http://oldrabbit804.com/220530837484) 저야말로 나잇값도 못 하는 주책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저처럼 나잇값 못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작가의 블로그를 다녀갔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느끼는 호불호의 경계가 점차 희미해진다는 걸 알게 됩니다. 싫은 일도 하게 되고 좋은 일도 포기하면서 세상에 나도 모르게 길들여지면서, 선명했던 자신의 감정을 경계가 없는 회색으로 색칠하면서, 누구나 다 그렇게 산다며, 나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고 자신을 위로하면서 우리는 어느 순간 어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는 '어른인 척' 행동했는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아침마다 들려오는 엄마의 잔소리와 6개월째 낫지 않는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힘들고 카드값으로 펑크 난 월급 때문에 짜증나고 늦게 일어나 회사에 도 지각해서 짜증나고 징검다리 휴일 우리 회사만 안 쉬어서 짜증나지만 그래도 늘 감사한 이유는 그보다 더 큰 걱정이 없다는 것이다." (p.274)

 

닉네임은 늙은 토끼, 좌우명은 '아님 말고'라는 이진이 작가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오늘처럼 우울이 바닥까지 끌리는 날도 가벼운 마음으로 거뜬히 버텨낼 것 같습니다. 세상 무서울 게 없다는 듯 호기롭게 걸을 것 같습니다.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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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하더라도 대학생활의 가장 큰 로망은 역시 미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는 여학생과 나란히 걷기만 해도 징계를 받던 시대였으니 대학생이 되기 전에 이성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종례시간에 반 아이들의 가방을 조사하기도 했었죠. 어느 때였는지 기억에는 없지만 제 친구 중 한 명은 가방에 무심코 넣어두었던 연애편지가 발각되어 일주일 동안 반성문을 쓰기도 했었습니다. 이성에 대한 열망이 가장 왕성한 시기의 아이들을 그렇게 가두어 둔 덕분에 그나마 대학 문턱을 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남녀교제 자체를 철저히 막아놓았던 걸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그랬으니 아이들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미팅에 목을 맬 수밖에 없었고, 맘만 먹으면 주말마다 미팅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를 잔뜩 품고 나갔던 미팅은 실망만 가득 안고 돌아오기 일쑤였고 그 횟수가 거듭될수록 열기는 시들헤져만 갔습니다. 그때 속담처럼 성행하던 말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혹시나' 했던 일들이 '역시나'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많은 국민들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명분으로 국정화를 고집하는 정부와 그에 동조하는 학자들이 정말로 떳떳하다면 집필진의 이름을 밝히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집필진만 해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신념대로 떳떳한 일을 하는 거라면 정부가 비공개 원칙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자진하여 밝히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정부는 내년 3월 원고 초안이 나올 때까지 집필진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을 모양입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인 셈이죠. 익명으로 댓글을 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인터넷 실명제를 운운하던 작자들이 이제는 그 중요한 역사 교과서를 쓰는 것에도 익명으로 하자고 합니다 그들의 논리는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역사 교과서가 인터넷 댓글만도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꼴입니다. 부끄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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