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각 산타 오민석 판사를 보는 시각은 대체로 부정적인 듯하다. 물론 구치소에 있는 박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일부 박빠들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사람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다시 한 번 곰곰 생각해 보면 기각 산타 역시 한 집안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부모이며 든든한 남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가 결혼을 했는지, 슬하에 자식은 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말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그를 두둔하고자 함은 아니다. 불혹을 기점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기 때문이다. 본인의 가치관이 자식들 보기에 떳떳한 것인지, 본인이 속한 사회를 위해 혹은 우리의 미래 세대를 위해 본인의 행위가 적합한 것인지 한번쯤 따져 묻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정상적인 사고의 사람임을 전제로 할 때.

 

기각 산타 역시 사람인지라 개인의 욕심이 있고, 과도한 욕심으로 인해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그도 또한 신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도 역시 이따금 실수를 하고, 후회를 하며, 시시때때로 새로운 다짐을 하는 평범한 인간이기에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의 판단은 실수라고 하기에는 반복의 횟수가 과도한 면이 없지 않아서 사회적인 비난이나 지탄을 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첫 번째 영장 청구 기각을 필두로 댓글 부대에 동참한 양지회 관계자 2명의 영장 기각,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 영장 기각, 불법사찰 혐의가 있는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 영장 기각 등 그는 그야말로 기각 요정, 기각 산타로 불릴 만했던 것이다.

 

이번에도 그는 국정원으로부터 매달 500만 원씩 약 5천 만 원의 특활비를 상납받은 조윤선 전 장관의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수수된 금품의 뇌물성 등 범죄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고, 수사 및 별건 재판의 진행 경과 등에 비춰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불구속 재판이 맞지만 사회 정의를 무시한 채 인권만 강조하는 건 문제가 있는 듯싶다. 판사((Justice)는 정의(Justice)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판사가 정의를 등한시한다면 그는 그 직에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성탄도 지난 시기에 기각 산타의 출현은 좀 당황스럽다. 성범죄를 전담하는 판사가 지하철 몰카를 찍지 않나, 영장을 전담하는 판사가 피의자를 위해 번번이 영장을 기각하지 않나, 세상 참 요지경이다. 캐롤이라도 불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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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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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스토리가 점점 더 자극적으로 변해가는 시기에 순하고 착한 소설을 만나게 되면 순간 당황하게 된다. 마치 막장 드라마만 난무하는 요즘에 7,80년대의 밋밋한 가족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재미가 없다거나 지루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적응이 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소설의 분위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책을 손에서 내려 놓을 수 없게 된다.

 

오가와 이토의 <츠바키 문구점>은 그런 소설이다. 20대 후반의 여자 주인공 포포(하토코)를 중심으로 가마쿠라 사계절의 풍경을 마치 한 폭의 수채화에 담은 듯한 느낌이다. 소설은 가마쿠라의 여름서부터 시작하여 가을, 겨울, 봄으로 이어진다. 가마쿠라의 한적하고 고즈넉한 풍경이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츠바키 문구점'을 제외한 모든 이름이 실명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작가는 가마쿠라의 실제 모습에 포포와 주변 인물들을 살포시 얹어 놓은 것이다.

 

"한때는 선대에 반항하여 대필가라는 운명을 저주하기도 했지만,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전문학교에 들어가 디자인 공부를 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선대가 세상을 떠나고 모든 것이 싫어져서 해외로 방랑을 떠난 동안에도 나를 구원해준 것은 글씨 쓰기 재능이었다." (p.70)

 

포포는 아기 때부터 대필가인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대필을 천직으로 알았던 할머니는 어린 포포에게도 글씨 쓰기 훈련을 혹독하게 시켰고 그게 싫었던 포포는 살갑게 할머니라 부르지도 않고 '선대'라고만 지칭한다. 여섯 살부터 시작된 습자 훈련을 할머니는 그야말로 혹독하게 시켰고 가족이라고는 할머니밖에 없었던 포포는 어디 마음 둘 데가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할머니에 대한 반항의 표시로 머리를 염색하고 신발도 구겨 신는 등 저항을 하던 포포는 졸업과 동시에 해외로 떠돌다가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귀국한다. 그러나 할머니에 대한 미움이 남아 있던 포포는 끝내 병문안도 가지 않는다. 그렇게 포포는 할머니와의 화해를 이루지 못한 채 작별했다.

 

"모양이 가지런한 것만이 아름다운 글씨는 아니다. 온기가 있고, 미소가 있고, 편안함이 있고, 차분함이 있는 글씨, 이런 글씨를 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p.146)

 

포포가 츠바키 문구점을 다시 열고 대필을 시작하게 된 건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대필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아끼던 동백꽃이 문구점과 함께 사라질까봐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반항기 있는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포포는 그 사실을 몹시 부끄러워 한다. 그런 까닭에 친구들과도 만나지 않는다. 그녀는 혼자 문구점 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대필 상담을 하고, 밥을 챙겨 먹는다. 조용한 나날들이 지나간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은 옆집에 사는 바바라 아주머니가 유일하다.

 

대필을 의뢰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은 다양했다. 또 다른 사랑을 찾아 집을 떠난 아내와의 이혼을 결심한 남자가 지인들에게 자신의 이혼 사실을 알리는 편지, 첫사랑에게 안부를 전하는 편지, 호스피스 병동에 있는 어머니를 위해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편지를 써 달라는 아들의 사연 등 대필을 맡겨 온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포포는 삶의 안정을 찾는다. 대필을 하면서 할머니의 가르침을 조금씩 이해해가던 어느 날 이탈리아 청년으로부터 한 보따리의 편지를 받는다.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펜팔을 했던 상대방의 손자가 유품으로 남겨진 할머니의 편지를 들고 온 것이다. 이탈리아로 보낸 할머니의 편지를 통해 포포는 늘 엄격하기만 했던 할머니가 하루도 자신을 걱정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사실과 병원에서도 그녀가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랐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그러니까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말이죠. 나도 줄곧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어느 날 깨달았답니다. 깨달았다고 할까, 딸이 가르쳐주었어요.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 하기보다 지금 손에 남은 것을 소중히 하는 게 좋다는 걸요." (p.305)

 

소설은 마치 포포의 일상을 기록한 그녀의 일 년치 일기인 양 읽힌다. 할머니에게 모질게 대했던 포포 자신의 후회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결국 츠바키 문구점을 열고 할머니의 일을 대신하면서부터 할머니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으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주변의 인물들과 함께 담담히 그리고 있다. 포포는 대필을 의뢰한 사람들의 진심이 담겨질 수 잇도록 필체와 어투, 필기도구의 종류, 편지지와 편지봉투의 재질이나 문양, 우펴의 도안, 밀봉 방식 등 하나에서 열까지 세심하게 챙긴다. 그 모든 일상에서 포포는 할머니의 진심을 읽는다.

 

"꽃뿐만 아니라 검게 구불거리는 듯한 그루도, 가는 현 같은 가지도, 살짝살짝 싹트기 시작한 나뭇잎도,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이쪽이 마음을 열면 그만큼 벚꽃도 많은 얘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벚꽃과 점점 친밀해지는 듯한 기분에 마음속으로 벚나무를 꼭 안았다." (p.284)

 

<츠바키 문구점>은 더없이 맑고 순한 소설이다.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초가을에 원두막으로 부는 순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몸의 곳곳을 가볍게 어루만지는 듯하다. 마음결을 스치는 부드러운 터치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진한 향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내 가슴을 졸이다가 모든 게 일시에 풀어지는 소설도 묘미가 있지만 뭉근하게 녹아드는 이런 소설은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손편지가 그리운 계절, 그리움은 그렇게 슬몃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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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걷히기도 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운동을 나서는데 때마침 눈이 내렸다.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가볍고 건조한 눈발이었다. 가로등 불빛을 배경으로 푸슬푸슬 부서지는 눈발을 보자 오슬한 추위가 사무치도록 느껴졌다. 하루쯤 눈을 핑계로 아침운동을 거른들 건강에 큰 이상이 올 것도 아닌데, 하는 얄팍한 유혹이 가슴 밑바닥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표표히 날리는 눈발과 모자른 잠을 채우고 싶다는 달콤한 유혹. 꼭 무슨 영화 제목처럼 강렬한 느낌이었다.

 

나는 끝내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다. 삶과 시간의 채색은 늘 그런 식이다. 당위를 무시한 채 아무리 약한 척 어리광을 부려도 거기에 대한 응답도 결국 나의 몫이며, 자신의 어떤 행위에 대한 변명 또한 세상 사람들로부터 한참이나 늦게 응답을 받거나 모르는 척 무시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외롭다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이끌기에는 우리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가냘프고 서로 어깨를 맞댄 우리의 이웃들 또한 세상은 언제나 두려운 곳이기에. 게다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생각보다 한참이나 넓어서 개인의 미약한 목소리로는 자신이 원하는 그 넓이의 사람들에게 끝내 이를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생각지도 못한 화재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던 2017년의 연말. '같음'이나 '같아짐'을 바라는 우리의 소망과는 달리 우리는 늘 크게 어긋난 '다름'을 확인하곤 한다. 세상을 이해하는 우리의 태도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끝내 시인할 수밖에 없는 2017년의 우매함은 세월의 뭇매를 맞은 먼 훗날, 감당할 수 없는 후회의 무게로 각자의 어깨에 얹힐지도 모른다. KBS 정상화를 바라는 어느 연예인과 그를 비난하는 만화가. 이념이 지배해 온 대한민국, 이념 앞에서 상식은 언제나 뒷전이었던 우리의 구태는 언제나 깨질런지... 상식이 통하는 2018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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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백제 - 백제의 옛 절터에서 잃어버린 고대 왕국의 숨결을 느끼다
이병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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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학창시절의 나는 우리나라의 역사에 그닥 많은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예 제쳐놓거나 등한시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꼭 자발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지는 않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당시만 해도 국사는 대학 입시뿐만 아니라 공무원 시험 등 대부분의 시험에서 필수과목이었고 국사를 공부하지 않은 채 사회에 진출한다는 건 꿈도 꿀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국사에 관심이 없는 학생일지라도 국사로 인해 제 인생의 앞길이 막히는 걸 바라지 않았기에 다들 열심히 국사를 공부했었다. 물론 그런 분위기 탓에 마음에서 국사와 가까워질 수 있었던 많은 기회를 박탈당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 이병호 관장이 쓴 <내가 사랑한 백제>를 읽으면서 나는 문득 무미건조했던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딱딱한 문체와 간간이 흑백 사진이 실린 국정 역사교과서처럼 공부는 그저 흥미나 관심보다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의무일 뿐이라는 사실이 크게 부각되던 그 시절. 국사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열정에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단 한줌이라도 더해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오늘날 한국 고대사 학계는 고조선의 위치 문제나 고구려사의 귀속 문제, 임나일본부의 실체 등과 관련해 첨예한 역사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러한 국내외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백제는 소외되거나 그다지 쓸모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백제와 관련된 자료를 접할 때마다 항상 간절함과 뜨거운 가슴으로 대했다. 나는 역사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사람 사는 이야기이고, 관계에 대한 해석이며, 교훈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p.17)

 

딴은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유독 백제의 역사에 대해서는 별반 아는 게 없었다. 저자도 이 책에 쓰고 있다시피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보았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백제가 차지하는 위상은 정말 보잘것없는 게 아니었던가. 단 몇 쪽으로 백제의 역사 전체를 기술한다는 건 어찌 보면 옛 백제인에 대한 모독이자 후손으로서 백제 역사를 등한시했던 우리들의 부끄러운 민낯이기도 했다. 순천고를 졸업하고 한국교원대에서 역사교육과 학사를, 서울대대학원에서 문학 석사를, 와세다대학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던 저자의 화려한 이력 뒤에는 백제 역사에 대한 저자의 관심과 뜨거운 열정이 숨어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마다 삶의 목표나 의미가 다르지만 나는 삶을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짧은 인생이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그것을 다시 사회에 '되돌려 주는 삶'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내 꿈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백제를 연구하다가 죽는 것이다. 꿈을 얘기하다 갑자기 죽음을 이야기하는 게 다소 생뚱맞게 들릴지 모르지만 죽을 때까지 한결같이 공부하는 모습을 꿈꾸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p.27)

 

사료 중심의 연구가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유물과 유적을 조사하여 백제의 숨겨진 역사를 밝혀온 저자는 자신의 이력과 연구 성과가 담긴 이 책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한 듯 느껴졌다. 그것은 자신의 성취에 대한 뿌듯함도 있겠지만 1,400년 전 동아시아 국제 교류의 중심이었던 문화 강국 백제의 진면목을 자신이 쓴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더 큰 듯했다.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백제왕도 핵심유적 복원 사업'이 국정과제로 선정되는 등 그동안 소외되었던 백제의 위상이 조금씩 높아지고는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백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채 개선되지 않고 있는 현실은 저자의 입장에서 그저 안타깝기만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백제를 사랑하는 한 명의 역사학자로서 안타까움이 깊게 배인 저작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제1부 왜 백제를 공부하는가, 제2부 유물은 어떻게 역사가 되는가, 제3부 이제 백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등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후기와 참고도서 목록, 부여지역의 주요 유적 분포도까지 꼼꼼하게 실었다. 책을 읽다보면 세계가 인정하고 일본이 탐낸 백제 시대의 역사를 정작 우리만 잊고 지냈던 게 아닌가 하는 미안함과 함께 교과서에서는 본 적 없는 다양한 유물과 사료들이 책의 곳곳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백제 유물이 이렇게 많았던가, 하고 놀라게 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가 아니라 백제 역사를 잘 몰랐던 한 명의 독자로서 나는 백제인의 예술성과 독창성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며칠 전, 신문에 보도된 뉴스에는 예산 봉산면 효교리 일원에서 진행되는 발굴조사 현장에서 사비도읍기 백제시대의지역 수장급 인물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횡혈식 석실분이 발견되었고, 그곳에서 직물 조각이 붙어 있는 두개골이 나왔다는 기사가 실렸다. 두개골에 붙은 직물은 베로 추정되고 수장급 무덤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 목관 부재도 함게 나왔다는 기사였다. 중요한 역사의 흔적이나 유물에 대한 기본적 상식조차 없는 나와 같은 일반인들이 그와 같은 유물 발굴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얼마나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직접 체감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큐레이터로서 저자와 같은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도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 온 백제 이야기를 갈무리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모멘텀을 설정하고 싶었다. 나는 여전히 백제에 대한 간절함과 열정이 사그라들지 않기를 꿈꾸고 있다. 10년 뒤에는 좀 더 새롭고 알찬 나의 백제에 대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줄 것을 약속한다." (p.366)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승자에 대한 편애를 너무 심하게 유지해 왔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신라가 아닌 백제의 역사, 나아가서는 가야의 역사에 대해 관심과 사랑을 보여줄 때이다. 역사의 균형을 찾아가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후손된 임무임을 자각할 때, 우리의 문화는 세계 무대에서 더욱 빛날 것임은 자명한 일, 저자가 사랑한 백제는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인이 사랑하는 백제로 거듭나지 않을까. 그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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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블로거들이 한 번쯤 맞닥뜨리게 되는 고민은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사진을 올리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문제이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한 편의 글을 완성함으로써 얻는 기쁨이나 충만함은 시간의 손실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도 벅찬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은 시간이 흐르면서 또는 횟수가 반복되면서 차츰 그 효용가치가 떨어지게 마련이고 급기야 글을 쓰는 데서 오는 기쁨과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기쁨을 비교하기에 이르는 시기가 온다. 말하자면 기회비용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지않고 오롯이 글을 씀으로써 얻을 수 있는 편익이 마침내 제로 상태가 되었거나 이미 마이너스 상태가 된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소재의 빈곤에 있다. 대부분의 블로거들이 시작 단계에서부터 자신이 추구하는 블로그의 방향을 결정하기는 하지만 방향이 결정되었다고 해서 무한정의 소재가 제공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한 분야의 글만 집중적으로 올리면 글을 쓰는 자신도 재미가 없거니와 글을 읽는 다른 네티즌들의 새로운 흥미를 유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았다. 책을 읽고 간단한 메모 겸 감상평을 올리자는 게 주목적이었지만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어낸다는 것도 어렵지만 책을 읽은 후에도 매번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글을 써야하나 하는 고민이 반복적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보면 글을 쓰는 데서 오는 기쁨은 온데간데없고 블로그를 유지한다는 게 하나의 큰 부담으로 느껴진다.

 

다른 고민도 있다. 이건 물론 블로그를 유지하느냐 마느냐 하는 고민과는 하등 관련이 없는 문제이다. 길을 걷거나 잠시 산책을 하다가 머릿속에 우연히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다음에는 이러이러한 글을 블로그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글로 옮기게 되면 글의 주제나 구성이 처음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다시 쓰면 될 게 아니냐 생각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미세먼지로 바깥 공기가 워낙 안 좋아 이러고 있다. 발표를 보니 우리나라의 공기질(Air Quality) 수준이 전 세계 180개국 중 173위라고 한다. 미국 예일대와 컬럼비아대 공동연구진이 발표한 '환경성과지수(EPI) 2016'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공기질 부문에서 100점 만점에 45.51점으로 이는 전체 조사대상 180개국 중 173위라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처음에 생각했던 간결하고 명쾌한 글을 쓰지 못하고 두서없는 글을 쓰고 말았다. 늘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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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23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온라인 유목민이 된 이유를 이 글에서 알게 되네요 ㅜㅜ

꼼쥐 2017-12-24 17:04   좋아요 0 | URL
블로그를 유지하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거죠. 그렇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