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걷히기도 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운동을 나서는데 때마침 눈이 내렸다.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가볍고 건조한 눈발이었다. 가로등 불빛을 배경으로 푸슬푸슬 부서지는 눈발을 보자 오슬한 추위가 사무치도록 느껴졌다. 하루쯤 눈을 핑계로 아침운동을 거른들 건강에 큰 이상이 올 것도 아닌데, 하는 얄팍한 유혹이 가슴 밑바닥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표표히 날리는 눈발과 모자른 잠을 채우고 싶다는 달콤한 유혹. 꼭 무슨 영화 제목처럼 강렬한 느낌이었다.

 

나는 끝내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다. 삶과 시간의 채색은 늘 그런 식이다. 당위를 무시한 채 아무리 약한 척 어리광을 부려도 거기에 대한 응답도 결국 나의 몫이며, 자신의 어떤 행위에 대한 변명 또한 세상 사람들로부터 한참이나 늦게 응답을 받거나 모르는 척 무시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외롭다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이끌기에는 우리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가냘프고 서로 어깨를 맞댄 우리의 이웃들 또한 세상은 언제나 두려운 곳이기에. 게다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생각보다 한참이나 넓어서 개인의 미약한 목소리로는 자신이 원하는 그 넓이의 사람들에게 끝내 이를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생각지도 못한 화재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던 2017년의 연말. '같음'이나 '같아짐'을 바라는 우리의 소망과는 달리 우리는 늘 크게 어긋난 '다름'을 확인하곤 한다. 세상을 이해하는 우리의 태도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끝내 시인할 수밖에 없는 2017년의 우매함은 세월의 뭇매를 맞은 먼 훗날, 감당할 수 없는 후회의 무게로 각자의 어깨에 얹힐지도 모른다. KBS 정상화를 바라는 어느 연예인과 그를 비난하는 만화가. 이념이 지배해 온 대한민국, 이념 앞에서 상식은 언제나 뒷전이었던 우리의 구태는 언제나 깨질런지... 상식이 통하는 2018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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