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추운 날씨였어요. 그렇지 않나요? 이렇게 추운 날은 왠지 수다를 떨고 싶어집니다. 주제는 딱히 상관없어요. 그저 말이 하고 싶을 뿐이죠. 모든 게 꽁꽁 얼어붙는 날씨에 혹시 입이라도 얼어붙을까 저어하는 때문일까요? 남자도 나이가 들면 여성호르몬의 일종인 에스트로겐이 분비되어 감성적으로 변한다고들 하는데 저도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모처럼 새벽 산행을 했더니 몸은 가뿐하고 오후가 지난 지금도 컨디션이 좋습니다. 코끝이 찡한 추위였지만 산속 공기는 더없이 맑았었죠. 모두가 잠든 그 시각에는 바람도 잠에 취했는지 그저 잠잠했습니다. 미세먼지가 극성이던 며칠 동안 산행은 고사하고 외출마저 조심스러웠었죠.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는 게 자연의 이치인가 봅니다. 미세먼지가 사라지자 추위가 극성이니 말입니다. 온종일 바람이 불고 기온마저 뚝 떨어져 체감온도로 치자면 제가 산행을 하던 새벽 시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합니다. 맑고 화사한 겨울 햇살이 넘실대고 있지만 한 줌 온기마저 느껴지지 않네요.

 

사람들의 시선은 온통 호주오픈 테니스 경기에 쏠려 있었습니다. 만년 비인기 종목이었던 테니스 경기를 이렇게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본 적이 있었던가 싶습니다. 아마 없지 않았을까요? 제 기억으로는 그렇습니다. 정현 선수의 서브 하나하나에, 리턴 하나하나마다, 이어지는 스트로크에 감탄과 아쉬움의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습니다.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죠. 완벽한 경기였습니다. 4강이라니, 믿어지지가 않았죠. 정현 선수의 피와 땀이 만들어 낸 위대한 성과였습니다.

 

기욤 뮈소의 소설 <파리의 아파트>를 손에 잡았지만 좀처럼 진도는 나가지 않네요.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따분하고 일상적인 대화가 아닌, 따뜻한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누군가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온종일 수다를 떨고 싶은 그런 날씨였습니다. 몹시도 추운 날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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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움의 시대 -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가벼운 것의 문명
질 리포베츠키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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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하는 '가벼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흔하디흔한 의미의 '무게가 적다'는 뜻일까요. '옷차림이나 마음 따위가 가뿐하고 경쾌하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생각이나 언행 따위가 침착하지 못하고 경솔하다'는 의미일까요. 나는 지금 막 프랑스의 철학자 질 리포베츠키가 쓴 <가벼움의 시대: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가벼운 것의 문명>을 어렵사리 다 읽었습니다. 읽었다기보다 읽어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듯합니다. 책을 읽기 전만 하더라도 내게 '가벼움'은 그저 무게가 적다거나 경쾌하다는 의미의 긍정적인 단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쩌면 큰 관심을 두지 않았거나 의미도 없는 단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질 리포베츠키가 설명하는 '가벼움'의 의미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가벼움'에 정복당한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은 한동안 나를 우울하게 했던 게 사실입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 또한 자신들도 역시 '가벼움'에 조종되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겠지만 말입니다.

 

"소비지상주의의 세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가벼움을 악마화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은 아름답고 분별 있는 삶을 이끌어 나가기에는 부족하다. 무한히 작은 세계의 정복은 특별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아마도 그것은 지상에서 살아가는 우리 삶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분야에서 그런 변화가 일어날까? 가장 좋은 부분뿐 아니라 가장 나쁜 부분도 포함하고 있는 이 엄청난 혁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당분간은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지 간에 이것은 지금까지는 부차적이고 평범했지만 이제는 우리 운명을 결정지을 만큼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p.22)

 

책은 긴 서문에 이어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장 '삶을 가볍게 하기: 안락함, 경제, 소비', 제2장 '새로운 몸', 제3장 '마이크로, 나노, 비물질적인 것', 제4장 '패션과 여성성', 제5장 '예술 속의 가벼움에서 예술의 가벼움으로', 제6장 '건축과 디자인: 새로운 가벼움의 미학', 제7장 '우리는 쿨한가?', 제8장 '자유, 평등, 가벼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저자는 우리 삶과 연관된 모든 분야를 아우르며 '가벼움'이 이끌어 갈 우리 시대의 미래를 조망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소비 경제이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이념과 철학의 문제로 귀착됩니다.

 

"물론 행복이 인간들을 도와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행복의 내적 변화는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각 개인은 시행착오를 거듭해 가며 자기 삶의 흐름을 바꾸고, 그 삶을 가볍게 만들려고 애쓰다가 행복한 결과를 얻기도 하고, 이따금은 덜 행복한 결과를 얻기도 한다. 어쨌든 가벼움의 정복은 불확실하고, 불안정하고, 매우 개인적이다. 그 비밀은 책 속에도 있지 않고, 다른 어떤 곳에도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 비밀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p.367)

 

'가벼움'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가 자신의 몸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필사적인 것처럼 개인은 정치나 제도에 있어서도 탈정치화를 가속화함으로써 정치적 무게를 줄이고 극도로 가벼워진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정치 제도나 이념은 사회 구성원의 행동 양식이나 유행, 건축, 예술, 과학의 발전 등 여러 개별 분야와는 별개로 독자적인 발전 단계를 거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실생활을 지배하는 현실 영역에 있어서의 발전이 제도와 이념을 변화시키는 기폭제의 역할을 한다고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지배한다는 유물론적 관점이 꼭 옳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시대 전반을 이해하고 우리의 미래상을 조망하기 위해서는 사회 각 분야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 변화를 감지해야만 하겠지요. 시나브로 '가벼움의 추구'는 이 시대의 가치관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듯 보입니다. '무거운 것'을 버리고 '가벼운 것'을 취하고자 하는 자세는 '나노'로 대표되는 물질 세계의 경량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짧아진 유행의 지속성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느슨하거나 쿨한 상태로 나아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변화는 감정에 충실하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좋지만 자신 또한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키기도 합니다.

 

"삶을 가볍게 만들겠다는 현대적 이상은 물질생활의 영역을 넘어서서 남녀의 내밀한 부부관계, 성관계의 세계에까지 퍼져 나갔다. 하이퍼개인주의 사회에서 행복에 대한 갈망은 사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집단적 강제와 중압감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삶이라는 거푸집 속에 스스로를 부어 주조한다." (p.297)

 

가볍고 유동적인 어떤 것은 우리의 부담을 줄여주는 반면 빠른 변화로 인한 불안정과 변덕스러운 유행에 적응해야 하는 스트레스와 새로운 의무가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느슨해진 인간관계는 사회와 가정에 대한 책임을 조금쯤 덜어낼 수는 있다고 할지라도 그로 인해 울타리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우울과 고독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기도 합니다. 결국 개인의 행복을 위해 추구하는 가벼움은 삶의 전 영역에서 무차별적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직 '가벼움'만이 선이고, '무거움'은 곧 악이라는 식의 시대적 가치관을 무작정 추종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성향에 맞게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절실한 시기입니다. '가벼움'의 의미가 무겁게 느껴지는, 역설적인 책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가벼움'과 '무거움'이 상존하는 역설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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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그럴 때가 있습니다. 하루의 시간이 무척이나 조용히 흘러가고 있는 듯한 느낌? 시계의 초침이 째깍째깍 멈춤과 움직임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소리도 없이 미끄러지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이죠. 마치 맑은 시냇물이 평지를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나의 느낌에 따라 주변을 감싸고 있는 모든 사물들도 조용히 숨을 죽인 채 지금의 고요를 감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한 그런 무겁지 않은, 오히려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가벼움이 상존하는 그런 시간을 나는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인생에서 그런 시간은 참으로 귀하게 찾아오는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이 그야말로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하계 올림픽에 비해 동계 올림픽은 그닥 인기가 없다는 것은 사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인 우리 민족에게는 이번 동계 올림픽이 역대 어느 올림픽보다 더 의미가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동안 단절되었던 만남과 대화의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어느 의원은 남북 단일팀 구성에 반대하는 서한을 국제올림픽위원회에 보냈다고 하더군요. 그 소식을 듣고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아무리 권력에 눈이 먼 정치인이라고 할지라도 민족의 안녕과 평화통일이라는 장기적인 목표를 등한시한 채 제 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마저 분열과 적대 감정을 고조시키려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게 과연 한 인간으로서 할 짓인가 의심이 들기도 했고 말이죠.

 

그들의 속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해방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그들은 이념 대결과 안보 팔이로 자신들의 권력을 다져왔고, 그 바탕 위에서 자신들의 부정과 축재가 숨겨져왔던 것이니까요. 남과 북의 평화는 그들이 누려왔던 권력의 맛과 향수를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남과 북의 평화를 저지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하겠지요. 그들이 저질렀던 부정과 부패의 죄악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는 것도 두려울 테고 말입니다. 어떻게든 그들은 안보 팔이로 재미를 보았던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고 싶을 것입니다.

 

단언하건대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하는 순간 자유당은 제1야당으로서의 지위를 잃고 소멸하거나 군소정당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자신들을 선전할 더 이상의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것이 두려운 것이지요.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오늘처럼 고요히 흐르는 시간은 침묵 속에서 많은 것을 바꿔놓게 마련이지요. 한치 앞의 미래를 바라보지 못하는 게 인간인가 봅니다. 조용한 휴일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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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책, 모비 딕
너새니얼 필브릭 지음, 홍한별 옮김 / 저녁의책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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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을 생각할 때면 '내 영혼에 축축하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11월이 있다.'는 소설 속의 한 문장이 떠오르곤 한다. 자기를 이슈메일이라고 불러달라는 사람 그가 했던 말이다. 소설에서 그는 포경선 '피쿼드'호에 승선하여 흰 고래 '모비 딕'을 쫓는 항해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인물이며 독자들에게 세상이라는 가면 너머의 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엄혹한 삶의 현실을 밑바닥까지 체험했던 이슈메일은 파멸을 향해 내달린 '피쿼드'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물이 되어 동료의 죽음을 대가로 얻은 삶의 비밀을 독자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한다. 24만 단어, 전체 134장의 장대한 서사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작가 허먼 멜빌을 대신하는 이슈메일의 철학적 사유가 더해짐으로써 더욱 매력적인 소설로 읽혀진다. 게다가 음울하고 유약한 성격의 이슈메일이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은 얼마나 매혹적인지...

 

"이슈메일은 소설의 정서적 철학적 중심이 될 삶에 대한 태도를 떠올리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기묘한 뒤죽박죽 사태 속에서 때로 야릇한 순간이 찾아온다. 우주 전체를 광대한 규모의 농담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때다. 농담의 속뜻을 어렴풋하게밖에는 파악하지 못하고 이 농담이 누구도 아닌 자기를 놀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이슈메일은 이런 삶의 태도를 "자유롭고 느긋한, 순한 무법자 철학"이라고 부른다." (p.25)

 

너새니얼 필브릭의 <사악한 책, 모비딕>은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저자가 끔찍이도 좋아하는 소설 <모비 딕>을 주제로 자신이 쓴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미국의 성서라고도 불리는 <모비 딕>을 저자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74년에 처음 접한 후 지금까지 최소 여남은 번은 더 읽었다고 고백한다. 너새니얼 필브릭은 <모비 딕>을 얼마나 아꼈던지 저자 허먼 멜빌의 우상이자 문학적 영감을 제공했던 '너새니얼 호손'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에 넣었던 것으로도 모자라 '피쿼드'호가 출항했던 낸터킷 섬의 실제 주민이 되었다고도 한다. 이 정도면 <모비 딕>의 애독자라기보다는 시쳇말로 '덕후'에가까운 게 아닌가. 그럼에도 저자는 <모비 딕>에서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나는 『모비 딕』을 가장 최근에 읽었을 때에야 페달라라는 인물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시인해야겠다. 페달라와 마닐라에서 온 노잡이들은 그냥 지옥 같은 장식물로 갖다놓은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에이해브를 에이해브로 만드는 핵심 요소였다. 어떤 지도자도, 아무리 미치광이라고 해도 내부 조언자나 계속 부추기고 다그치는 사람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p.41)

 

소설 <모비 딕>의 해설서이기도 한 이 책은 저자가 반복하여 읽었던 자신의 애장도서에 대한 헌사이자 그가 소설에서 끊임없이 찾고 발견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기록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작가 허먼 멜빌의 경험과 많은 자료, 이를테면 고래잡이와 태평양에 관련된 수많은 학술 논문들과 기록들 그리고 셰익스피어, 밀턴, 베르길리우스의 여러 책들을 통하여 완성된 <모비 딕>은 초기 비평가들의 호의적인 비평에도 불구하고 멜빌이 일흔두 살의 나이로 죽기 전까지 미국에서 고작 3715부가 팔렸다고 한다. 그러나 1차 대전이 끝난 직후, <모비 딕>의 진가를 알게 된 여러 사람들에 의한 찬양이 시작되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모비 딕』은 앞날을 위해 쓴 책이다. 현재의 불같고 혼란스러운 열정에 저항하는 사람, 높이 나는 캐츠킬 독수리의 영혼을 가진 사람을 그리면서, 멜빌은 불가사의하게도 1851년 미국에 절박하게 필요했으나 거의 10년이 지나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 대통령이 되어 전면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드러나지 않았던 정치가의 모습을 그려낸 것이다." (p.97)

 

우리는 간혹 원작보다 더 매력적인 어느 서평가의 글에 매혹되어 그제야 비로소 원작을 읽기도 한다. 그때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원작을 탐험하는 독자는 서평가가 마련해 준 해설서를 지도 삼아 원작의 곳곳에 숨겨진 비밀 동굴을 탐험하게 된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모험을 떠났을 때는 결코 발견할 수 없었던 비밀 동굴에서 독자들은 큰 기쁨을 맛보기도 하고 삶의 비의를 깨닫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 의해 우리가 소위 고전이라 칭하는 대개의 문학 작품이 거친 세월의 풍화에도 불구하고 푸른 생명력을 부여받고, 오랜 시간 새로운 독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멜빌은 『모비 딕』에서 이슈메일이 지지한 입장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은 것이다. "세속의 모든 것에 대한 회의와 천상의 모든 것에 대한 직관, 이 조합으로 신자가 되지도 불신자가 되지도 않고, 양자를 똑같은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회의와 희망을 뒤섞는 데서 오는 구원, 짧고 터무니없고 부조리한 삶 앞의 온화한 극기심, 이것이 내가 『모비 딕』을 읽는 이유다." (p.130)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부푼 희망을 안고 내가 읽었던 오래전의 <모비 딕>은 누렇게 변색된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망각의 더께가 이끼처럼 쌓이고 있다. 그러나 고전의 생명력은 나의 대에서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 너새니얼 필브릭과 같은 탐서가가 존재하는 한 나의 아들 세대로, 또 다시 아들의 아들 세대로 면면히 이어질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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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미세먼지가 심하던지 실내에서도 목이 칼칼하고 가슴이 답답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마치 운무 자욱한 풍경처럼 시야가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꽉 막혔던 남북 관계는 남북 고위급 회담에 이어 오늘도 남북 차관급 실무회담이 열리는 등 조금씩 숨통이 트이고 있지만 말이다. 사실 이전 정부는 대통령의 의무를 방기한 채 직무유기를 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국가의 독립과 영토 보전의 의무,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 수호의 책무, 겸직 금지 의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노력 의무, 취임 선서문 상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진다.'고 되어 있지만 헌법 수호의 책무는 물론 평화적 통일을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손을 놓고 있음으로써 대통령 직을 수행하는 사람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편하기는 했겠지만 말이다.

 

이번 주 들어 아침 운동을 못하고 있다. 몸이 찌뿌듯하고 영 개운치가 않다. 컨디션이 안 좋은 건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닐 터, 오늘은 국민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사건들이 여럿 있었다. 모 대학교의 대학원 박사과정에 면접도 보지 않은 연예인이 합격했다는 기사가 있었는가 하면 국정원 특활비 수수 의혹, 다스 실소유주 의혹 등 기정사실화 된 범죄 건만 해도 차고 넘치는 전임 대통령 2mb의 성명서 낭독도 있었다. 그의 말인 즉,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보수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이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냈던 사람으로서 그의 주장은 비겁하기 그지없었다.

 

한 국가의 지도자였던 사람은 재임시절 혹여라도 잘못이 있었다면 과감히 인정하고 당당하게 처벌을 받을 필요가 있다. 변명으로 일관하며 비겁하게 나불댈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의혹으로만 떠돌던 사건들이 하나둘 그 실체가 밝혀지고 있는 마당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여전히 변명과 꼼수로 피해가려고 하는 모습은 전직 대통령의 자세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으로서는 처벌을 감수하겠다는 짧은 인사만이 국민들에게 하는 최대한의 예의이자 땅에 떨어진 전직 대통령의 체면을 다시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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