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첫눈이 내리는 동안, 그리움과는 별개의 슬픔이 쏟아졌다. 카톡 문자 메시지를 알리는 진동음이 끝없이 이어졌고, 응답이 없는 나를 걱정하는 몇몇은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어둑어둑 그늘이 진 방에는 진득한 침묵이 내려앉았고, 다리께서부터 차오르던 슬픔이 목과 얼굴을 거쳐 마치 나를 익사시키려는 듯 온 몸을 짓누른다.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이 무기력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정호승 시인의 시를 나즉나즉 읊어보았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자

정호승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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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오다 - 다큐 피디 김현우의 출장 산문집
김현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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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면은 세월에 따라 세세한 풍경은 잊히지만 공간 깊숙이 스며들었던 소리는 더욱더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경우가 있다. 세월에 흐릿해진 공간이 소리에 묻혀버린 느낌이랄까. 어느 해 여름 남해의 해변에서 들었던 파도 소리도 세월에 역행하여 생생하게 되살아나곤 한다. 해변에는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동안 파도에 깎여 그 크기며 모양도 제각각인 자갈들이 깔린 몽돌 해변이었다. 파도가 육지에서 물러갈 때마다 몽돌을 가볍게 스치며 내는 자글거림이 밤새 이어졌었다. 소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나는 결국 해변으로 향했고, 그날 나는 잠을 포기한 채 밤새 해변을 서성였었다.

 

김현우 피디의 출장 산문집 <건너오다>를 읽으며 몽돌 해변의 파도 소리를 떠올렸던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날 내가 보았던 몽돌은 어느 이름난 장인이 깎고 다듬어도 그와 같은 아름다움을 연출할 수는 없을 듯했다. 오랫동안 파도에 씻기고 다듬어지면서 둥글둥글해진 돌들이 물기를 머금고 달빛에 은은하게 빛나는 모습은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어쩌면 그것은 세월의 더께가 빚어낸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글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낱글자 하나하나에서 세월의 묵은 때가 묻어나는 그런 글이 좋다.

 

"처음 제의를 받은 지 사 년 만에 한 권의 책을 마쳤다. 책 한 권으로 묶일 만큼의 글을 써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쓰는 동안 뭔가가 정리되긴 했다. 글쓰기는 적어도 나에게는 도움이 되는 작업이었다. 대충 삼십대의 시기와 겹치는 십여 년을 이렇게 정리해보고 나니 뭔가 더 분명히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삶은 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 그건 좀처럼 자신이 생기지 않는 일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p.253)

 

<건너오다>는 EBS <다큐프라임> <지식채널e>의 연출가이자 존 버거, 리베카 솔닛의 번역가이기도 한 저자가 출장을 갔던 17개국 38개 도시를 관통하며 자신이 느끼고 기록했던 것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여행기와는 크게 다르다. 도시를 방문하는 목적이 일반 여행객의 그것과는 다르기도 하지만 김현우 피디의 감성이나 지나온 삶이 달라서일 수도 있다.

 

"모든 시간들, 아니 순간들에 이유를 붙이고 싶은 것은 내가 어떤 '의미'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야 나의 과거와 미래가 '일관되게'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삶이란 그래야 한다고, 적어도 삼십대까지의 나는 생각했던 것 같다. 비어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어떻게든 그 시간에 이유를 붙이려 했다. 그렇게 피곤했다." (p.111)

 

<건너오다>가 다른 여행기에 비해 특별하다고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일반 여행객들이 잘 찾지 않는 특별한 곳을 다녀왔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피디라는 직업적 특성상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주제가 뚜렷해야만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방문지에서 보여줄 필요가 있는 대상과 방문지의 역사와 그곳 사람들의 생각을 종합하다 보면 세계 곳곳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훑게 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개중에는 물론 일과 연관되지 않은 사적인 만남이나 관광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발칸의 지금을 보며 전쟁이라는 필터로만 보는 것도 선입견임을 안다. 다만 그렇게 열린 창을 통해서만 본 것들이 해준 이야기는, '소속되어 있음'이 지닌 폭력적인 가능성이었다. 발칸은 잘생긴 땅이었다. 산들은 위엄이 있고, 그 사이로 흐르는 강은 풍요롭고, 사이사이 보이는 평원은 기름지고, 아드리아 해는 눈부셨다. 그런 자연에 비해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풍경은 어두웠다. 짧은 여정이라 단정할 순 없겠지만, 나는 그 어두움이 '밖에서 주어진 정체성', 즉 소속이 지닌 어둠이 아닐까 생각했다." (p.154)

 

김현우 피디의 글이 유려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때로는 단조롭고 투박한 느낌마저 든다. 그럼에도 술술 읽힌다. 책을 읽는 도중에 급한 용무가 생겨도 좀처럼 책을 내려놓기 어렵다. 미려한 문장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중간중간 화려한 사진이 실린 것도 아니지만 깊은 사색에서 우러난 진솔한 문장들이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의 뒷모습을 힐끔거리며 쳐다보게 되는 듯도 하고, 누군가 내 뒷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는 온통 과거만을 향한 문장은 아닌 것이다. 그 마음도 여전히, 늘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미래를 향하고 있다. 사람은 '기대'가 없어도 다가올 날들을, 혹은 남은 날들을 그려볼 수밖에 없다. 그건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음을, 그렇게 환하기도 했고 어둡기도 했던 자신과 비로소 화해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마음일 것이다." (p.250)

 

우리가 하는 흔한 실수 중 하나는 세월의 가치를 은연중에 무시한다는 것이다. 시시하고 촌스럽다는 이유로. 그러나 내가 어느 해변에서 보았던 기나긴 세월의 흔적은 오롯이 내가 자연 속에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왔다 가는 존재임을, 그렇기에 어떤 인간도 자연과 세월이 빚은 작품을 결코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던 것처럼 김현우 피디의 글이 독자들에게 특별했던 까닭은 글 속에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긴 시간을 두고 고치고 다듬었던 흔적들이 세월의 더께로 책의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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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건 무턱대고 저지르고 보는, 말하자면 '무작정'이 어울리는 사람을 보면 왠지 부럽다. 직진 성향의 저돌적인 용기가 부러운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부딪혀서 어떤 일의 결과를 알고 싶어 하는 강한 호기심과 열정이 부러운 것이다. 인생에서 호기심과 열정이 사라진다면 삶은 그야말로 무기력하고 암울한 어떤 것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어서도 아이의 호기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즐기겠다는 굳은 약속과 같다.

 

호기심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 근심이 아주 작게 느껴지기도 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자신의 근심을 잠시 내려놓은 채 호기심이 펼쳐 보이는 인생의 마법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60, 70, 80살이 되었을 때의 자신이 궁금하지 않다면 살아야 될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마냥 부정적으로만 비칠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의지로 나이 먹는 것을 거부할 수도 없으니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오늘은 소설(小雪), 눈은 날리지 않지만 어제 내린 비로 한결 맑아진 공기, 볼에 닿는 느낌은 제법 차갑지만 여린 햇살의 온기가 마냥 반갑기만 하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소설(小雪)을 소춘(小春)이라고도 했다지. 아직 따뜻한 햇볕이 간간이 내리쬐는 까닭에.

 

만민교회 이재록 목사의 1심 판결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했다는 기사.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손녀가 운전기사에게 했다는 폭언.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날들이 계속될 것 같지만 세상은 온갖 신기한 일들을 마련한 채 삶을 유지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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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에트가르 케레트 지음, 장은수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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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자신의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라면 나를 제외한 타인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의무, 또는 나의 이야기를 요구할 권리를 갖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는 이러한 권리와 의무를 방기한 채 타인의 삶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것이다. 문득 그런 느낌이 들라치면 에트가르 케레트의 소설집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를 읽는 게 좋다.

 

"이야기 하나 해봐."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내 집 거실 소파에 앉아 명령한다. 분명히 말하건대 결코 유쾌한 상황이 아니다. 나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지, 하는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그것은 시킨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지막으로 내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던 사람은 내 아들이었다. 벌써 일 년 전 일이다. (p.9)

 

느닷없이 들이닥친 스웨덴 남자가 권총을 꺼내 들고 이야기를 내놓으란다. 이 웃지 못할 상황은 단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스웨덴 남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채 들려주지도 못했는데 또 다른 사람이 문을 두드린다. 이번에는 설문조사원이다. 그도 역시 리볼버를 꺼내 들고 이야기를 요구한다. 자신을 놀라게 할 이야기를 꺼내보라고 주문한다. 다른 사람이 또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는다. 이번에는 피자 배달부다. 피자 상자 밑에서 식칼을 꺼내 든 남자 역시 이야기 하나를 요구한다.

 

"짧은 거 하나만 해줘요. 깐깐하게 그러지 말고. 요즘 상황이 안 좋잖아요. 실업에, 자살 폭탄 테러에, 이란인들에. 사람들은 뭔가 다른 걸 애타게 바라고 있어요. 우리처럼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 뭣 때문에 이 지경까지 몰린 것 같아요? 우리는 절박해요. 절박하다고요." (p.15)

 

모르는 사람들이 흉기로 위협하며 이야기를 요구하는 상황. 나는 네 사람이 한 방에 앉아 있는 상황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자 그들은 그건 목격 진술이지 이야기가 아니라고 항의한다. 상상력을 발휘하란다. 소설집의 표제작이자 첫 번째 이야기인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는 그야말로 모르는 누군가가 작가의 생각 보따리를 풀어헤치기 위해 영혼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게 아닐까.

 

두 번째 이야기인 '거짓말 나라'는 평생 거짓말을 해온 한 남자(로비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곱 살 때 담배 심부름을 갔던 로비에는 그 돈으로 아이스크림콘을 사 먹고는 길에서 불량배한테 돈을 빼앗겼다고 했던 게 거짓말의 시작이었다. 그 후 고등학교 시절 고모가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팔아 일주일 내내 해변을 빈둥거리기도 했고, 군대에서 탈영을 했으나 고모가 시력을 잃은 바람에 탈영병이 될 위기를 벗어나기도 했고, 직장에 늦었을 때에도 차에 치인 개를 수의사에게 데려갔다고 말하는 등 수많은 거짓말이 함께했다.

 

거짓말을 하고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로비에는 어느 날 꿈속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와 마주함으로써 자신이 했던 거짓말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꿈속에서 어머니는 사후세계가 짜증난다며 동전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풍선껌이 나오는 검볼머신에서 풍선껌을 사달라고 했다. 로비에는 잔돈이 없다며 눈물이 그렁그렁하자 그의 어머니는 그가 어릴 적 살던 아파트 뒷마당의 돌 아래도 찾아봤냐고 묻는다. 잠에서 깬 로비에는 그 길로 자신이 살던 아파트의 뒷마당으로 향한다. 돌은 여전히 거기 있었고 돌을 들추자 작은 구멍에서 빛이 새어나왔다. 땅에 엎드려서 구멍에 손을 집어넣자 검볼머신의 손잡이가 잡혔고 손잡이를 끝까지 돌리자 그는 어머니가 있던 꿈속의 장소로 순간이동을 했다. 자신이 거짓말을 했던 개의 주인 이고르를 그곳에서 만나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그 후 로비에의 거짓말은 조금씩 줄어드는데 어느 날 경리과의 나타샤가 상사에게 하는 거짓말을 우연히 듣게 된다.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우려고 차까지 절 따라온 거예요?" "아니요." 로비에가 말했다. "몰아세우려는 게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거짓말을 하는 건 멋져요. 저도 거짓말쟁이고요. 그런데 당신 거짓말에 등장한 그 이고르 말입니다. 제가 뵌 적이 있거든요. 아주 특별한 분이죠.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당신 때문에 그분이 더 난처해졌어요. 그러니까 제가 원하는 건 다만……" (p.27)

 

1992년 등단하여 이스라엘 문학의 새로운 기수로 꼽힌다는 에트가르 케레트. 기발한 발상과 일상적인 문체의 짧은 이야기들이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더없이 능청스러운 그의 작품은 단지 한 번의 웃음으로 그치게 하지 않는다. 현대인의 부조리한 삶이 그의 톡톡 튀는 발상에 덧입혀 새롭게 태어난다. 그러므로 책을 읽는 독자는 뭔가 생각할 거리를 안은 채 그의 작품을 떠나지 못하고 한동안 배회하게 된다. 내가 오늘 '거짓말 나라'를 읽고 언젠가 했던 나의 거짓말이 다른 우주의 어느 곳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지나 않을까 상상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중 우주론을 신봉하는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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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뚝 떨어진 기온에 어깨가 절로 움츠러드는 걸 보면 이제 가을보다는 겨울 쪽으로 한 발 가까워진 느낌이지만 말이다. 몸도 마음도 '따뜻함'을 향해 길게 손을 내미는 요즘, 헛헛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집 근처의 도서관에 들렀다. 생각보다는 한가했다. 마지막 단풍을 즐기기 위해 다들 들로 산으로 여행을 떠난 탓이리라.

 

생각해보면 인간이란 얼마나 간사한 동물인지. 서가에서 풍기는 퀴퀴한 종이 냄새가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구수하게도, 역겹게도 느껴지니 말이다. 지금 살고 있는 하루하루가 삶에 필요한 온갖 자질구레한 것들에 대한 길고 지루한 설명문을 억지로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면 한동안 한국 소설을 읽지 않았다는 얘기다. 정말 그렇다. 한국 소설을 읽지 않은 지 꽤나 오래되었다.

 

'제1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을 빌렸다. 책에는 수상작인 한강 작가의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과 최종후보작인 강영숙 작가의 '맹지', 권여선 작가의 '이모', 김솔 작가의 '피커딜리 서커스 근처', 김애란 작가의 '입동', 손보미 작가의 '임시교사', 이기호 작가의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정소현 작가의 '어제의 일들', 조해진 작가의 '사물과의 작별', 황정은 작가의 '웃는 남자'가 실려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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