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식 이별 - KBS클래식FM <김미숙의 가정음악> 오프닝 시 작품집
김경미 지음 / 문학판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월입니다. 나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가을을 기다리며 한 권의 시집을 읽겠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나는 우리가 또는 길고 긴 여름을 보내는 우리가 따뜻한 봄이나 선선한 가을을 기다리며 우리는 마치 하늘에 보내는 짧은 제문처럼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은 어쩌면 이쯤에서 우리의 고난을 끝내고자 하는 작은 바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절은 가고 또 오는 것, 그 숱한 회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성마른 성격의 인간에게 부여된 인내의 한계는 참으로 얕고 얕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각자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여름이 다 가기 전에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고, 나는 영혼에 찌든 때를 씻어내듯 한 편의 시를 읊어야 했던 것입니다.


가을입니다


며칠 사이에

복사지처럼 얇게 느껴지는 여름옷들


그 복사지로는


물들기 시작한 가을 은행잎과 단풍잎들

다 베낄 수 없어서


두툼한 노트 한 권

스웨터 한 벌 마련한 가을입니다


가을 강물 보러 왔는데

갈대만 보이는 계절입니다


반송되어온 편지묶음 같은 갈대들


세상 모든 감정 뒤섞여

뭐라 말할 수 없는 가을입니다.  (p.264)


<김미숙의 가정음악> 오프닝시를 2019년 3월부터 일주일에 7편씩 매일 썼었다는 김경미 시인의 시집 <카프카식 이별>은 어쩌면 전적으로 낭송을 위해 쓰인 시만 묶은 낭송 시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시는 목소리를 숨긴 채 눈으로만 읽히는 소리 없는 시가 아니라 누군가의 목소리로 혹은 세상 모든 사람의 목소리로 읽혀야만 하는 낭송을 위해 쓰였다는 사실입니다. 목소리를 잃은 시는 순전히 목소리만 잃었던 것은 아닌 듯 사람의 온기마저 잃고 우리 곁에서 멀어졌습니다. 시를 읽지 않는 세상에 텅 빈 계절이 소리도 없이 오가고, 우리는 그렇게 텅 빈 세월을 허무하게 살다가 하냥 사라졌습니다. 김경미 시인은 우리에게 시를 배달했던 게 아니라 뜨겁지 않은 체온을 날마다 전해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카프카식 이별 1


그만두자고 일방적으로 상처 주고 떠나온 여행


누워도 머리가 천장에 닿을 것 같은

시베리아 횡단열차 3등석 2층 침대 윗칸에서


이별이 고통스럽기는 왜 내가 더 고통스러운지  (p.176)


갓 태어난 아이가 말을 배우듯 나는 시인의 시를 한 자 한 자 눌러가며 서툰 솜씨로 시를 낭송합니다. 나의 목소리는 시나브로 작아져만 가고 종국에는 소리를 잃고 흔적만 남았습니다. 가만가만 불렀던 나의 노래가 하늘을 훨훨 날아올라 가을을 기다리는 한 편의 제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늘 어딘가에 머물다 가을을 재촉하는 한 방울의 비로 떨어지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누군가의 바람이 비가 되어 내립니다. 어쩌면 우리가 시를 읊어 가을이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과 몸이 바닥까지 가라앉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손가락 하나 까딱이는 일조차 마냥 귀찮게 여겨진다. 어제저녁이 그랬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나는 다만 작은 주방창으로 흘러드는 성근 저녁 햇살을 바라보고 있었고, 지금은 만날 수 없는 그리운 이들의 얼굴을 하나둘 떠올렸었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고,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없이 소파에 누웠던 게 다였다. 언제부턴가 나는 나에게 일어난 불행한 일에 대해 '왜?'라거나 '왜 나에게?'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 걸 삶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렇게 묻고 따진다면 내가 믿는 하느님도 당황스러울 테니까 말이다. "너에게는 안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어나도 된다는 논리냐?"라고 하느님이 내게 되묻는다면 나는 마땅한 대답을 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불행한 사건이나 사고는 다만 그 시간에, 그에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그것은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고 나는 담담히 생각하기로 했다. 모든 불행의 원천은 '혹시 내가 하느님께 불경한 일을 저질러서?', '주변의 다른 누군가에게 저질렀던 못된 짓에 대한 죄과로?', '조상의 묘를 잘못 써서?' 등 온갖 종류의 인과를 자신에게 귀결시키다 보면 없던 병도 생길 가능성이 높고, 그것 역시 평소 자신이 믿는 신을 당혹게 하는 정신 자세라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종교의 필요성 역시 사라질 테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아주 가끔 한 번씩 몸도 마음도 크게 흔들리거나 심하게 허물어질 때가 있다. 어제처럼. 나 역시 정신적으로 취약한 보통의 인간 중 한 사람일 뿐 수도자가 아닌 까닭에 그와 같은 우울을 피하거나 예방할 방법은 알지 못한다. 그것 역시 이따금 발병하는 감기처럼 그 순간에 일어난 하나의 현상일 뿐이라고 믿게 될 뿐.


갑자기 휘몰아치는 격한 감정이나 정신적 추락에 대해 나는 저항하거나 반항할 생각을 일절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동안 무심히 나 자신을 지켜보다 보면 뭔가 다른 하고픈 일이 생기고 바닥났던 의욕도 조금씩 되살아나는 것이다. 머리맡에 두었던 책을 읽는다거나 밖으로 나가 조금 걷는다거나 예전에 보다 만 영화를 이어서 본다거나 그도 저도 싫으면 그저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기도 한다. 물론 그것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우울에서 벗어나는 다른 좋은 방법들이 얼마든지 있겠지만 나는 적어도 나만의 방식으로 조용히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삶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앞으로도 이와 같은 일들이 여러 번 발생할 테지만 나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스스로를 지켜가지 않을까 싶다.


오늘도 바깥 기온은 여전히 높고,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가로수 밑 그늘로 숨어들고 있다. <이것은 꿈인 동시에 생시>를 읽고 있다. 다섯 명의 시인이 쓴 이 책은 마치 그들이 쓴 산문시처럼 읽히지만 사실은 그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쓴 에세이.


"인연을 떠나보낸다. 비가 오지 않는데도 제멋대로 화락 펼쳐지는 장우산처럼, 내 속도 있는 대로 펼쳐지던 때가 있다. 바야흐로 사랑의 우기였다. 그럴 때에 나는 해가 쨍쨍 드는 거리에서 혼자만이 커다란 장우산을 쓰고 가듯 종종걸음으로 걷는다. 어디 구석에다가 이 거추장스러운 속마음을 버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기어코 접어지지 않는 커다란  장우산을 쓰고 내가 걸어왔던 거리를 그대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마음의 빗살을 하나하나 다시 가누고 우산을 접듯 속마음을 접어둘 수가 있다."  (p.1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활활발발 - 담대하고 총명한 여자들이 협동과 경쟁과 연대의 시간을 쌓는 곳, 어딘글방
어딘(김현아) 지음 / 위고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곳에나 많은 경쟁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능력보다 노력과 열정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 한계를 모르는 까닭에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노력해야 하는지, 어느 선에서 멈추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노력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우리는 지레짐작만으로 자신의 열정을 쏟아붓기도 전에 노력을 멈추곤 한다. 그리고 타인의 성취를 무척이나 부러워한다. 이런 사례는 글쓰기 분야에서도 다르지 않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하지만 모든 걸 작파하고 오직 글쓰기에만 전념하는, 소위 전업 작가에게 있어 글쓰기가 매번 즐겁기만 할까. 아무리 즐겁던 일도 자신의 업이 되는 순간 하기 싫어지는 건 만국 공통이 아닐까 싶다. 만화나 웹툰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학생도 그것이 교과서에 실리면 보기 싫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글을 잘 쓰려면 밥도 잘하고 설거지도 잘하고 청소도 잘해야 한다는 내 말 따위는 잊어버렸거나 헛소리라는 것쯤 알아버렸을 것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글방의 기원에는 입맛 좋은 소녀들이, 아, 그 총명하고 섬세하고 솔직하던, 그렇지만 한밤중에 맨발로 집을 뛰쳐나와야 했던, 고립무원의 절벽에 섰던, 견고한 벽을 향해 미친 듯 질주하던, 때로 으스러지고 부스러지던 나의 그녀들이 있다. 시도이자 예감이자 미래인."  (p.83)


어딘글방을 운영한다는 어딘(김현아) 작가의 에세이 <활활발발>은 그야말로 우연히 읽게 된 책이다. 자주 들르는 도서관의 서가를 아무런 목적도 없이 훑어보던 중 제목이 특이해서 내 눈에 띄었던 책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책날개에 적힌 작가의 이력을 읽지 않았더라면 책을 빌려 집에까지 끌고 오지는 않았을 터, '어딘글방은 양다솔, 이길보라, 이다울, 이슬아, 하미나 등 출판계에 신선하고 활활발발한 바람을 불어넣은 90년대생 여성 작가들이 몸담았던 글쓰기 수련의 장이자 글쓰기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서로가 서로를 참조하고 배우는 곳이었다.'라는 대목에 나도 모르게 홀딱 정신이 팔렸지 뭔가. 1부 '글방이 활활발발해지는 순간', 2부 '글도 잘 쓰고 일도 잘하는 입맛 좋은 소녀들', 3부 '세상에 꽃이 핀다면 그녀들의 웃음소리 때문이다 - 글방러들의 글 모음' 등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시종일관 유쾌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글방을 한 지 10여 년이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써서 만나 합평회를 하는 방식에는 변함이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의 글에 대한 피드백을 들을 때 두근두근 초긴장하는 얼굴들도 변함이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오늘 글이 좋았다는 편을 받은 사람의 발그레한 홍조도 변함이 없다. 얘들아 웬만하면 쓰지 마, 글 쓰는 거 힘들어, 안 쓰고 살 수 있으면 쓰지 말고 살아.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하는 말이다."  (p.8 '들어가며' 중에서)


목적이 없는 독서가 즐겁듯이 글쓰기에도 목적이 없을 때 즐겁다. 물론 단점도 있다. 어딘글방처럼 글쓰기를 목적으로 하는 이들이 모인 곳에서 집중적으로 글쓰기를 연마하지도, 그렇다고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나와 같은 얼치기 독서인은 아무리 책을 읽어도 글쓰기 실력에는 도통 진척이 없다는 것이다. 글을 써서 돈벌이를 하겠다는 목표도, 그렇다고 남들보다 더 멋진 글을 써서 이름을 날려보겠다는 목표도 없으니 나의 글은 언제나 일기 수준의 끄적임에서 머무를 뿐이다. 하지만 장점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어서 읽었던 책에 대한 나의 느낌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도 있고, 속절없는 분노나 슬픔이 치솟을 때도 비록 형식에는 맞지 않는 글이지만 뭔가 써보려고 컴퓨터를 켜서 빈 화면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 가라앉곤 하는 것이다.


"신기한 일이라고 나는 종종 말하곤 한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도 아주 열심히 진지하게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매번 새롭고 놀랍다. 저 명민한 이들은 알아챈 것이다. 자신이 우주라는 걸, 내 한 몸이 꽃일 때 온 세상이 봄이라는 걸. 그렇지 않고서야 글 쓰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토록 열렬히 글방을 열어가다니. 이들로 인하여 글방은 확장되고 변주되고 진화한다. 그리고 연결된다, 당신과 나, 이토록 우연히 이토록 찬란히."  (p.244~p.245)


꽤나 오랜 시간 블로그를 운영하는 나도 글을 쓰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물론 그들 각자가 추구하는 목적은 서로 다르겠지만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쓰고, 이웃을 만들고, 때로는 맘에 드는 누군가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기도 한다. 이와 같은 연결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사실 나의 감정 조절을 목적으로 블로그에 글을 쓰고는 있지만 타인과의 연결에 때론 충만함을 느낀다. 나와 일면식도 없고 서로에 대해 아는 바도 없지만 단지 글을 통하여 서로를 칭찬하고, 위로하고, 지지한다는 이 사실이 때론 놀랍다. 당신과 나의 연결이 이토록 찬란하다고 쓴 작가의 마지막 문장이 조용한 주말 오후에 작은 파문으로 번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기를 운행하는 신에게 반기라도 들고 싶은 요즘, 8월의 끝으로 향하는 오늘 아침의 기온도 제법 높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밤새 수그러들지 않았던 높은 열기와 습도가 견딜 만할 정도로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8월도 다 가고 곧 9월인데... 계절의 순환을 그것밖에 못 할 거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왼손에는 작은 피켓이라도 만들어 들고, 오른손은 종주먹을 쥐고 흔들며, "더워서 못 살겠다. 하느님은 물러나라! 물러나라! 물러나라!" 데모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밤 기온이 내려간 덕분인지 아침에 산을 오르는 인원이 조금 늘었습니다. 말하자면 산스장에도 신입 회원이 들어온 셈이지요. 회원카드나 입회비를 받은 바는 없지만 신입 회원은 멀리서 봐도 태가 납니다. 등산복은 물론 등산화까지, 몸에 걸친 모든 게 신상입니다. 누가 강요한 것은 아니지만 신입 회원이라면 의당 신상을 갖춰 입고 나와야 하는 걸로 믿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신입 회원으로서의 자격을 득한 후 아침 산행에 나섰던 것입니다. 여전히 매미가 울고, 인간의 땀 냄새를 맡은 모기들이 까맣게 달려드는 등산로를 마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처럼 힘들게 올라왔을 테지요. 다만 산스장의 신입 회원이 증가하는 계절은 봄과 가을에 불과할 뿐 여름과 겨울에는 늘 보이던 얼굴도 이따금 사라지곤 합니다. 어렵게 첫발을 내딛은 신입 회원들은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모습이 사라지곤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좋은 습관을 들인다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뜻일 테지요. 그러나 어렵게 들인 좋은 습관을 깨버리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인지요.


줄리아 히벌린의 소설 <꽃과 뼈>를 며칠째 붙들고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마음을 다잡고 집중하여 읽어야겠다 싶은 순간,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기거나 소식마저 뜸하던 사람과의 약속이 잡히는 통에 읽다 말다를 반복하다 보니 이야기가 쭉 이어지지 않고 토막토막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입니다. 가뜩이나 소설은 주인공이 딸과 함께 사는 현재와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1995년을 오가며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까닭에 자칫 잘못하면 앞부분을 다시 읽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곤 합니다. 심리적으로 아둔한 데가 있는 나로서는 이와 같은 심리 스릴러 추리소설을 읽을 때면 늘 신경이 곤두서곤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온갖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도 느긋합니다. 이 책은 전에 한 번 읽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책의 제목은 전과 다르지만 내용은 같습니다. 나는 5년 전쯤 <블랙 아이드 수잔>이라는 책의 제목으로 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도 했습니다. 꽤나 긴 세월이 흐른 탓인지 세밀한 내용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나는 그들의 운명을 놓고 온갖 터무니없는 가설을 상상했다. 혹시 리디아가 뭔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괴물이 살해한 걸까? 리디아는 항상 블랙 아이드 수잔 사건에 대한 신문 기사를 잘라내서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하는 스크랩북에 붙이곤 했다. 여백에는 지적인 필적으로 빽빽하게 휘갈긴 메모가 있었다. 괴물이 그 집 폭풍 대피소를 가족 묘소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웨스트 텍사스 사막에 뼈를 내버렸을 수도 있다." (p.282)


이번 한 주가 지나면 2025년의 8월이 끝나고 9월이 시작됩니다. 달력을 보니 9월 7일은 하얀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입니다. 밤에 기온이 내려가 그렇게 이슬이 맺힌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하늘을 향해 데모를 하지 않아도 백로에는 그런 날씨가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바깥 기온은 여전히 높고 나는 작은 피켓이라도 손에 들고 "물러나라! 물러나라!" 외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가는 기본적으로 그가 속한 사회의 변화에 대한 예민한 촉수를 지닌 인간이어야 한다는 걸 새삼 느낀다. 구성원이 미처 감지하지 못한 미세한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인지하는 것은 물론 그와 같은 현상을 직접적인 설명이 아닌, 익숙한 배경과 친숙한 인물을 배치한 가상의 공간에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속한 사회의 변화를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이 소설가가 담당해야 할 몫이라는 뜻이다. 그러자면 소설가는 자신의 눈과 귀는 물론 영혼의 수신기마저 대중을 향해 활짝 열어 놓을 필요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김애란의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는 내내 나는 소설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는 한편 김애란 작가는 누가 뭐래도 우리 시대의 좋은 소설가 중 한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한 시절 누군가와 정기적인 대화를 나눴다 해서, 긴장과 웃음, 안부를 나눴다 해서 헤어짐이 이렇게 서운할 줄은 몰랐다. 이상하지. 직장에서는 그 모든 게 지겨웠는데. 사회적 감각의 스위치를 꺼두고만 싶었는데. 고향에서 엄마와 나 오직 두 사람만의 관계로 세계가 쪼그라들자 그 많은 언어가 그리워졌다. 실수하고, 변명하고, 거짓말하고, 반문하고, 더러 표 안 나게 유혹하고, 티 나게 매혹하고, 긍정하고, 의심하고, 호응하는 사회적 몸짓이. 그래서 그 일부를 한동안 내준 로버트가 필요 이상으로 소중하고 친밀하게 다가왔는지 몰랐다."  (p.254 '안녕이라 그랬어' 중에서)


표제작인 '안녕이라 그랬어'를 비롯하여 '홈 파티', '숲속 작은 집', '좋은 이웃', '이물감', '레몬케이크', '빗방울처럼'의 총 6편의 단편이 실린 이 책에서 작가는 어떤 집단에 소속되기를 갈망하는 개인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탈락하거나 그 집단의 기존 구성원으로부터 내쳐지는 상황에서 개인이 겪는 상실감과 절망을 그리고 있다. 예컨대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어떻게든 그들 집단에 편입되기를 희망하는 성민이 그들 중 한 사람인 오 대표가 주최한 홈 파티에 삼류 배우인 이연을 대동하고 참여하지만 사회적 지위나 금전적 차이 등 여러 이유로 겉돌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그린 '홈 파티'나 집에서 독서 토론 수업을 하고 있는 '나'는 어느 날 신혼부부인 듯 보이는 젊은 남녀가 위층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며 인테리어 공사에 대한 협조를 구하는 입주민 동의서에 사인을 해주면서 소음으로 인한 갈등을 겪게 되는데, 그것을 계기로 전세를 살고 있는 '나'의 처지와 경제적으로 자신보다 못하다고만 여겼던 학생의 부모가 신축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한다는 소식에 상실감과 절망에 빠진다는 '좋은 이웃' 등은 우리 사회가 친밀도나 경제적 지위에 따라 예전보다 더욱 세분화되고 그렇게 세분화된 집단과 집단 간에 발생하는 배척과 적의는 더욱 강해지고 있음을 작가는 소설을 통해 그 실상을 보여주려 했는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그런데 얄궂게도 남의 욕망은 탐욕 같고 내 것만 욕구처럼 느껴집니다. 기본 욕구, 생존 욕구 할 때 그런 작은 것으로요. 그런데 그곳에 생존이란 말을 붙여도 될까, 그런 건 좀 염치없지 않나 자책하다가도, 자본주의사회에서 모두에게 떳떳한 선이란 과연 어디까지일까 반문합니다."  (p.141 '좋은 이웃' 중에서)


마을이나 지역 또는 국가 단위의 공동체의 유지와 결속력은 어쩌면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개개인의 친밀도나 비슷한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기존에 형성되었던 집단은 나날이 소규모로 분화되고, 한 집단에 소속되었던 구성원 역시 어떤 사고나 건강, 또는 재정상의 이유로 집단에서 탈락하여 어쩔 수 없이 더 낮은 계급의 집단에 편입되는 일은 전에 비해 더 흔한 일이 되고 말았다. 그에 따라 상실감과 절망에 빠지는 개인은 나날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어떤 집단에서 탈락한 개인은 전에 속했던 집단의 정체성을 꾸준히 유지하는 까닭에 중심을 잃고 비틀거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조건에 따라 이합집산이 현실화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구성원 대다수가 심각한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김애란 작가는 그와 같은 현상을 정확히 짚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책에 실린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음과 같다.


"김애란 정도 되면, 즉 한 작가가 자기만이 아니라 문학 자체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면, 그를 통해 문학의 본질을 곧장 말할 수도 있게 된다. 자주 사용되는 개념은 '재현'과 '표현'이다. '재현 represent'은 세계를 더 선명하게 다시 나타나게 하는 일이고, '표현 express'은 주체의 감정을 밖으로 정확히 찍어내는 일이다. 김애란의 재현에 대해서는, 누군가를 사회학자라고 규정할 자격이 사회학자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면, 나는 김애란이 오랫동안 사회학자였고 이제야말로 유감없이 그렇다고 주장할 것이다."  (p.311 '해설' 중에서)


처서도 지났는데 올여름 더위는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이 무색하게 질병관리청에서는 말라리아 경보와 함께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당부를 하고 있다. 말라리아는 백신도 없다면서 말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내적 친밀도와 의식적 계층 구분에 따라 세분화되고 폐쇄화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것이 비단 최근에 불어닥친 갑작스러운 변화일까마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그와 같은 현상이 급격히 강화된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으로 그친다면 별 문제가 없을 듯 보이지만 집단 상호간의 유대는 단절되고 그에 따라 적대감마저 보이고 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작가의 말'이 내게 주었던 의미를 곰곰 되짚으며 리뷰를 마무리한다.


"앞으로도 저는 삶이 무언지 모른 채 삶을, 죽음이 무언지 모른 채 죽음을 그릴 테지만, 때로는 그 '모름'의 렌즈로 봐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음을 새로 배워나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뒤늦은 깨달음의 형태로 다가오니까요."  (p.316~p.317 '작가의 말'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