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기를 운행하는 신에게 반기라도 들고 싶은 요즘, 8월의 끝으로 향하는 오늘 아침의 기온도 제법 높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밤새 수그러들지 않았던 높은 열기와 습도가 견딜 만할 정도로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8월도 다 가고 곧 9월인데... 계절의 순환을 그것밖에 못 할 거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왼손에는 작은 피켓이라도 만들어 들고, 오른손은 종주먹을 쥐고 흔들며, "더워서 못 살겠다. 하느님은 물러나라! 물러나라! 물러나라!" 데모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밤 기온이 내려간 덕분인지 아침에 산을 오르는 인원이 조금 늘었습니다. 말하자면 산스장에도 신입 회원이 들어온 셈이지요. 회원카드나 입회비를 받은 바는 없지만 신입 회원은 멀리서 봐도 태가 납니다. 등산복은 물론 등산화까지, 몸에 걸친 모든 게 신상입니다. 누가 강요한 것은 아니지만 신입 회원이라면 의당 신상을 갖춰 입고 나와야 하는 걸로 믿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신입 회원으로서의 자격을 득한 후 아침 산행에 나섰던 것입니다. 여전히 매미가 울고, 인간의 땀 냄새를 맡은 모기들이 까맣게 달려드는 등산로를 마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처럼 힘들게 올라왔을 테지요. 다만 산스장의 신입 회원이 증가하는 계절은 봄과 가을에 불과할 뿐 여름과 겨울에는 늘 보이던 얼굴도 이따금 사라지곤 합니다. 어렵게 첫발을 내딛은 신입 회원들은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모습이 사라지곤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좋은 습관을 들인다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뜻일 테지요. 그러나 어렵게 들인 좋은 습관을 깨버리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인지요.


줄리아 히벌린의 소설 <꽃과 뼈>를 며칠째 붙들고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마음을 다잡고 집중하여 읽어야겠다 싶은 순간,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기거나 소식마저 뜸하던 사람과의 약속이 잡히는 통에 읽다 말다를 반복하다 보니 이야기가 쭉 이어지지 않고 토막토막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입니다. 가뜩이나 소설은 주인공이 딸과 함께 사는 현재와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1995년을 오가며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까닭에 자칫 잘못하면 앞부분을 다시 읽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곤 합니다. 심리적으로 아둔한 데가 있는 나로서는 이와 같은 심리 스릴러 추리소설을 읽을 때면 늘 신경이 곤두서곤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온갖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도 느긋합니다. 이 책은 전에 한 번 읽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책의 제목은 전과 다르지만 내용은 같습니다. 나는 5년 전쯤 <블랙 아이드 수잔>이라는 책의 제목으로 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도 했습니다. 꽤나 긴 세월이 흐른 탓인지 세밀한 내용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나는 그들의 운명을 놓고 온갖 터무니없는 가설을 상상했다. 혹시 리디아가 뭔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괴물이 살해한 걸까? 리디아는 항상 블랙 아이드 수잔 사건에 대한 신문 기사를 잘라내서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하는 스크랩북에 붙이곤 했다. 여백에는 지적인 필적으로 빽빽하게 휘갈긴 메모가 있었다. 괴물이 그 집 폭풍 대피소를 가족 묘소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웨스트 텍사스 사막에 뼈를 내버렸을 수도 있다." (p.282)


이번 한 주가 지나면 2025년의 8월이 끝나고 9월이 시작됩니다. 달력을 보니 9월 7일은 하얀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입니다. 밤에 기온이 내려가 그렇게 이슬이 맺힌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하늘을 향해 데모를 하지 않아도 백로에는 그런 날씨가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바깥 기온은 여전히 높고 나는 작은 피켓이라도 손에 들고 "물러나라! 물러나라!" 외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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