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학번 새내기가 된 아들은 개강을 며칠 앞두고 일견 설레고, 일견 긴장하고 있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이 입학하는 연세대학교는 학교 방침에 의해 1학년 새내기들의 송도 캠퍼스 기숙사 입사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집을 떠나 생활해 본 적 없는 아들이 처음 보는 룸메이트와 방을 공유한다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을 터, 룸을 배정받은 날부터 룸메이트 찾기에 나섰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들에 의하면 같이 방을 쓸 친구는 아들보다 한 살 어린 응용통계학과 새내기라고 했다. 기계공학부인 아들은 룸메이트가 될 친구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입학한, 자기 절제력이 뛰어난 친구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친구와의 생활을 위해 아들은 이번 주 일요일 송도로 떠난다. 캠퍼스에서 이동할 때 입겠다며 '과잠'도 사두었고, 청자켓 등 필요한 물건을 캐리어에 담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군에 입대하는 것도 아닌데 아비로서 걱정 반, 기대 반 미묘한 감정이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기도 하고...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아들 역시 군 입대에 대한 걱정이 컸던지 지난주 일요일 갑자기 토익 시험을 보겠다며 나갔었다. 아들은 카투사에 입대하고 싶어서 토익 점수가 필요했었나 보았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연습 삼아서라도 토익 시험을 보는 게 어떻겠느냐 여러 번 권했으나 귓등으로도 듣지 않더니 막상 대학생이 되자 발등의 불로 느껴졌던가 보다. 처음 본 토익 시험이 어땠어? 물었더니 걱정했던 RC는 오히려 시간도 남고 쉬웠는데 LC에서 잠깐 집중을 못해 몇 문제를 놓친 것 같다며 그래도 900점 이상은 나올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카투사 입대에 필요한 토익 점수는 760점 이상이면 된다고.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는 아들에게 나는 몇몇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친구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학 생활은 또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한 것인지 등등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런 말들도 결국 스스로의 경험에 의해 무시되거나 적절한 형태로 바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부모 된 자의 걱정이 앞선 까닭에 불필요한 잔소리를 늘어놓았던 것이다. 성깔 사나운 꼰대가 된 기분이었다.

 

'모든 출발에 따르는 가벼운 불안이 지나갔다.'고 썼던 알베르 카뮈의 여행일지 중 한 구절이 생각났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아들도 역시 가벼운 불안이 지나갔을 터, 대학 생활이란 어쩌면 겪어 봐야 깨닫게 되는 것일 뿐 타인의 조언이나 잔소리에 의해 그 향배가 달라지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계절이 바뀌려는지 바람이 몹시 거세다.

 

바람이 인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

세찬 마파람은 내 책을 펼치고 또한 닫으며,

물결은 분말로 부서져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나온다!

날아가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 버려라

돛배가 먹이를 쪼고 있던 이 조용한 지붕을!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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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 얼어붙은 시간 속에서 희망을 찾는 법
캐서린 메이 지음, 이유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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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라는 다분히 시적인 이 책의 제목에 걸맞게 책의 내용 역시 담백하면서도 유려하게 펼쳐진다. 자신의 인생에 펼쳐진 겨울과도 같은 불행 앞에서 작가는 그저 담담하게, 호들갑스럽거나 유난스럽지 않게 수용하고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이 '인생의 겨울'에 들어섰음을 직시한다. 누구에게나 있을 듯한 '인생의 겨울'을 자신의 삶 속으로 오롯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진정한 겨울의 의미를 깨닫는 것을 작가는 ‘윈터링(wintering)’, 즉 ‘겨울나기’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겨울을 견디며 달갑지 않은 인생의 교훈을 깨닫는 것. 작가는 자신이 겪었던 인생의 겨울을 아주 담담한 필체로 쓰고 있다.


"그러나 겨울은 죽음이 가장 가까워지는 시간이다. 현대의 안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잡아챌 듯한 추위가 엄습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그 기나긴 밤의 침묵 속에서, 그리고 그 밤이 가져오는 깊은 어둠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이들이 여전히 실재함을 느낀다. 겨울은 유령들의 계절이다. 그들의 창백한 형태는 밝은 햇살 속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겨울에는 다시 선명해진다."  (p.76)


계절의 변화는 이러저러한 작은 징후들, 이를테면 기온이나 습도의 변화, 바람의 세기나 방향의 변화, 낙엽이 지거나 새순이 돋는 것과 같은 자연의 변화 등으로 인해 누군가 알려주지 않아도 미리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지만 인생의 겨울은 아무런 기척도 없이 다가오는 까닭에 순간 놀라고 당황할 수밖에 없다. 작가 역시 남편의 맹장염 수술 이후 자신에게 찾아온 원인불명의 건강문제로 인한 실직, 아이의 등교 거부 등 평온했던 일상이 순식간에 곤두박질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자신이 인생에 있어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었음을 직감한 작가는 9월 인디언 서머 시즌부터 이듬해 3월까지 겨울을 나는 동안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회고록 형식으로 기록하게 되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윈터링의 진실이 놓여 있다. 겨울에는 지혜를 얻게 되며, 겨울이 끝나고 나면 누군가에게 그 지혜를 전해줄 책임이 있다는 것. 마찬가지로, 우리보다 먼저 윈터링을 겪은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는 것도 우리의 책임이다. 아무도 손해 보지 않는 선물 교환과도 같다. 어쩌면 세대에 걸쳐 이어져온, 평생을 지녀온 타성을 깨는 일이 필요하다. 남들의 불행을 지켜부면서 나라면 절대 취하지 않았을 어떤 방식으로 그들이 스스로 화를 초래했으리라 넘겨짚는 습성은 박정한 태도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해롭다."  (p.169)


작가는 핀란드인 친구를 만나 겨울을 나는 북유럽인들의 지혜를 듣고 핀란드에 방문하기도 하고, 동화책과 소설 속 배경에 등장하는 겨울의 의미를 자문하기도 하며, 찬물 수영으로 조울증을 극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겨울 바다에 뛰어들어 보기도 하며, 동면을 하는 겨울잠쥐(dormouse)로부터 잠의 의미를 깨우치기도 한다. 겨울의 혹한 속에서 잎을 떨군 채 생명력을 잃은 듯 보이는 나무도 실은 내년 봄을 위한 잎눈을 품고 있음을 새롭게 깨우치기도 한다. 슬기롭게 겨울을 나는 동식물들이 겨울을 거부하거나 겨울에 저항하려 하지 않는 것처럼 인생의 겨울을 슬기롭게 벗어나는 사람들 역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겨울나기를 더 잘하려면 우리는 시간에 대한 개념부터 수정해야 한다. 우리는 삶이 직선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시간은 순환적이다. 물론 우리가 점차 늙어간다는 점을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살아나가는 동안 우리는 건강한 때와 아플 때, 낙관론과 회의론, 자유와 구속의 국면들을 거쳐간다. 모든 것이 쉬워 보일 때가 있다가도, 모든 것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것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재가 언젠가는 과거가 되고, 우리의 미래가 언젠가는 현재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는 수밖에 없다."  (p.306)


우리는 때론 생명력이 넘쳐나는 봄과 여름이 끝없이 이어졌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우리의 인생에서 '불변의 전성기를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시련이 있게 마련이고 혹독한 '인생의 겨울'을 단 한 번은 견뎌내야 한다. 그렇게 '인생의 겨울'을 지나고 나면 휴식과도 같았던 긴 공백을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하고, 전에는 없었던 분별력과 혜안을 선물처럼 얻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의 겨울'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에게 더 혹독한 겨울을 제공하는 경향이 있다고 작가는 지적한다. 그럼에도 여성들이 사회를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인생의 겨울'을 겪는 일이 온전히 그 사람의 불찰이나 부주의 탓인 양 공격하며 그 사람으로부터 등을 돌리려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오직 앞을 향한 쉼 없는 전진과 치열한 경쟁에서의 승리만을 요구한다. 그러나 작가는 우리에게도 때로는 후퇴가 필요하고 빛이 있는 만큼 그림자가 있는 것처럼 따뜻한 여름이 가치 있는 만큼 추운 겨울도 그 쓸모가 있는 법이라고 말한다. 그런 자연스러운 원리를 외면한 탓에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괴물처럼 변하는 것이 아닌가 의아하게 생각한다고. 사람·동화·자연·여행 등을 통해 자신의 작가의 겨울나기를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지금 '인생의 겨울'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위로를 그리고 언제가 닥쳐올지도 모르는 '인생의 겨울'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강한 용기와 신념을 귀한 선물처럼 건넨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언젠가 자신이 겪었던 인생의 겨울을 작가처럼 아주 담담하게, 이전보다 더 성숙한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들려줄 날이 오지 않을까.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누구에게나 예전에 겪어보지 못한 인생의 겨울이었지만. 그것이 크든 혹은 작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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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이 시작된 것도 마치 엊그제의 일인 양 생생한데 벌써 두 달이 지나고 있다. 시간의 흐름이 무서운 게 현재는 이렇듯 느긋하지만 지난 시간을 되짚어보면 그 속도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짧은 2월에 날씨마저 꽁꽁 얼어붙어서인지 그날이 그날 같은 하루하루가 어찌 흘러가는지 도무지 그 속도를 체감하기 어렵다. 코로나19를 핑계로 다들 대면 접촉을 꺼리는 까닭에 나날이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도 시간의 흐름을 실감하지 못하게 하는 한 원인이지 싶기도 하고... 오늘도 바깥 날씨는 여전히 쌀쌀하고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도로에는 오후의 께느른한 햇살이 한껏 여유롭다.

 

어제는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한 여야 대선 후보 4명의 첫 TV 토론회가 있었다. 어느 한 사람을 콕 집어 지지하는 건 아닌 까닭에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토론의 주제 또한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분야인 경제라고 하지 않던가. 사실 경제는 생활밀착형 주제인 동시에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나 역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기는 했으나 경제는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여담이지만 내 주변에는 경제학 전공자들이 유난히 많다. 경제학 교수로 있는 분도 있고, 경제학을 전공한 조카만도 2명이나 된다. 그렇지만 명절이나 가족 행사에서 만나는 자리에서도 경제를 대화의 주제로 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부러 피하는 건 아니지만...

 

암튼 어제의 대선 후보 토론회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대선후보로서의 자격이 갖추어졌다고 여겨지는 세 명과 함량 미달의 후보 한 명이 토론회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제1야당의 대선 후보라는 자가 그 정도의 실력으로 후보 자리에 올랐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한국어 실력도 달리는지 질문도 파악하지 못한 채 엉뚱한 답변을 내놓기 일쑤여서 보는 내가 얼굴이 뜨거워질 정도였다. 일례로 빅데이터 기업과 플랫폼 기업에 대한 기본 상식선의 이해조차 없어서 안철수 후보의 질문에 엉뚱한 답변을 보란 듯이 내놓았던 건 그의 무식을 만천하에 드러낸 하나의 증거였다. 아무리 상식이 없어도 그렇지 대선 후보로 나선 자가 그 정도의 지식도 없다면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그의 무식을 내세운 답변은 이것 말고도 많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본다면 대한민국의 국격이 떨어지는 문제일 테니 이쯤 해두기로 하자.

 

어디에서 보니까 부동시로 군 면제를 받았으면서 당구 실력은 500이라던데 당구나 폭탄주에만 진심으로 달려들 게 아니라 대선 후보로서 제발 공부 좀 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창피하기 그지없다. 다음 토론회에서는 어떤 무식함을 보여줄지 내가 다 걱정스럽다. 놀지 말고 제발 공부 좀 해서 격조 높은 토론회를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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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지도 - 어느 불평꾼의 기발한 세계일주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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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끝이 뭉툭하게 닳은 연필 한 자루만 손에 쥐어 줘도 마냥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잘 써지지 않는 연필심에 침을 발라가며 삐뚤빼뚤 글자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혹은 의미도 없는 낙서를 하면서 온종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시절. 삶이 흘러가는 방향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자라는 키만큼이나 수북수북 행복이 쌓여가던 시절. 계절이 오가는 길목에 허름한 아지트 하나만 있어도 행복했던 기억을 가득가득 담을 수 있었던 시절. 그러나 세상 모든 것에 깃들던 행복이 어느 순간 한 뼘 사진 속으로 오그라들었고, 행복은 체험하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바라만 보는 눈요깃감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나에겐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났던 것일까?

 

행복은 어쩌면 행복에 대한 아무 관념이 없던 어린 시절에나 맛볼 수 있는, 유효기간이 매우 짧은 경험일지도 모른다. '뭔가 관찰하는 행동만으로 관찰 대상을 변화시킨다'는 하이젠베르크 원리가 작동하는 순간, 이를테면 성인이 된 당신이 '행복이란 무엇일까? 나는 지금 행복한가?' 하면서 하루에 12번쯤 질문을 던지는 순간 어린 시절의 흔했던 행복은 그 성질이 변하여 다시는 그런 행복을 경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른 채 맛보던 순수했던 행복.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행복의 가짓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헤아릴 수 없는 행복의 그라디에이션 속에서 우리들 각자는 자신이 찾는 행복을 잃은 채 미로 속을 헤매고 있는 게 아닌가. 자식에 대한 걱정과 당부하고픈 말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주저리주저리 엉뚱한 말만 늘어놓다 잘 있으라는 인사말로 끝을 맺는 부모님의 편지처럼 성인이 된 우리는 행복에 대한 욕심과 갈망이 너무 깊고 다양해서 도저히 이룰 수 없고 노력해도 결코 닿을 수 없는 꿈속의 샹그릴라로 변하게 한 것은 아닌지...

 

기자 출신의 작가 에릭 와이너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행복하다고 인정받는 세계 각국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행복이란 주제를 통찰한 여행 산문집 <행복의 지도>를 완성했으니 말이다. 네덜란드, 스위스, 부탄, 카타르, 아이슬란드, 몰도바, 태국, 영국, 인도, 미국을 돌면서 작가는 '그곳에서 살면 내 인생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처음의 상상을 몸소 실천하고 그에 대한 깨달음과 소회를 책으로 썼다. 그러나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어느 동화 속 이야기처럼 작가 스스로가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는 없었나 보다.

 

"네덜란드의 관용은 일상 속에서 정확히 어떤 모습일까? 우선 세 가지가 떠오른다. 마약, 성매매, 자전거 타기. 네덜란드에서는 이 세 가지가 모두 합법이다. 그리고 안전을 위해 미리 조치를 취하기만 한다면, 이 세 가지 모두 쉽사리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탈 때 헬멧을 쓰는 것이 그런 조치다."  (p.41)

 

흔히 행복을 찾는 여행이라고 하면 자신의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이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자신의 내면에서 들끓는 욕심을 인식하고 이를 잠재우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거나,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시기심과 질투 등 행복을 방해하는 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심리적 처방을 찾아 떠나는 내적 여행이 대부분인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행복에 대한 탐구를 핑계로 공간적 이동을 요하는 여행을 선택했다. 말하자면 작가는 행복이 그 나라만의 자연경관과 문화적 배경에 의해 탄생된 독자적 산물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어쩌면 행복 탐구를 빌미로 여행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잔혹한 기후와 철저한 고립 앞에서 아이슬란드인들은 절망 때문에 술독에 빠져 사는 삶을 쉽사리 선택할 수도 있었다. 러시아인들은 그랬다. 하지만 이 바이킹의 강인한 아들딸들은 정오의 하늘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검은 어둠 속을 들여다보며 다른 삶을 선택했다. 행복하게 술독에 빠지는 삶. 내가 보기에 그건 현명한 선택이다. 사실 어둠 속에서 달리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p.298)

 

국가가 나서서 국민 행복 총량을 높이는 정책을 펴는 부탄, 국민에게 어지간한 월급쟁이 연봉보다 많은 용돈을 나눠 주는 카타르, 실패가 권장되는 나라 아이슬란드, 지구에서 가장 덜 행복한 나라 몰도바, 모순덩어리의 국가 인도, 유럽의 여러 나라와 저자의 고향인 미국 등을 돌아본 작가는 '행복의 본질에 대해 포괄적으로 일반화할 사람은 바보 아니면 철학자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철학자도 아니고 바보도 물론 아닌 작가가 행복의 본질을 밝힐 수는 없었으리라. 그럼에도 작가는 행복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남겼다.

 

"돈은 중요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다. 돈이 우리 생각대로 기능하는 것도 아니다. 가족은 중요하다. 친구도 중요하다. 시기심은 해롭다. 지나치게 생각을 많이 하는 것도 그렇다. 바닷가는 선택 사항이다. 신뢰는 그렇지 않다. 감사하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기서 감하 더 나아가는 건 종잡을 수 없는 바다에 발을 들여놓는 것과 같다. 행복은 미꾸라지 같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일들을 많이 만났다."  (P.521 '에필로그' 중에서)

 

행복에 목말라하는 현대인들은 독서의 고통을 감수하면서 버트란트 러셀의 행복론을 읽기도 하고, 천 근 무게의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누군가가 하는 행복에 대한 강의를 듣기도 하고, 행복을 위해서라면 반 백 년도 더 된 자신의 습관을 고치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행복에 이르렀다는 사람을 만나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행복은 다만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 삶 전체를 아우르는 단 하나의 목적일 수는 없다. 게다가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마음이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대상에 이르는 저마다 다른 거리를 갖고 있는 까닭에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한 음식을 맛볼지라도 행복의 감도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마음이 행복에 이르는 거리는 몇 미터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지금 시속 몇 킬로미터의 속도로 행복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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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라고 절망의 오늘을 희망의 내일로 바꾸라고 국민은 윤석열을 불러냈고 국민은 윤석열을 키워냈습니다."는 광고 문구를 듣는 국민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정치인의 광고라는 게 뭐 다 거기서 거기이겠습니다만 대선이라는 빅 이벤트는 어쩌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를 지지하는 누군가는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을 테고 그를 지지하지 않는 또 다른 누군가는 말도 안 되는 광고라며 눈을 질끈 감거나 채널을 돌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의 광고가 합당했다고 생각하는 일인입니다. 그를 지지하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의 광고 속 멘트를 합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느냐고요? 그렇습니다. 그의 삶을 속속들이 아는 건 아니지만 그가 재직했던 검찰 조직 내에서도, 혹은 그가 사랑하는 그의 가족에 대해서도 그는 철저히 불공정과 몰상식을 실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측근이었던 한 모 검사 혹은 손 모 검사의 비리에 대해서도, 장모를 비롯한 처가의 비리에 대해서도 그는 못 본 척 눈곱만치도 파헤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덮음으로써 몸소 '불공정과 몰상식은 이런 것이다' 하는 모습을 국민 모두에게 알렸던 것이지요. 게다가 그는 모든 보수 언론(대한민국 전체 언론일 수도 있겠지만)을 장악함으로써 자신과 자신의 측근 혹은 가족의 비리는 일체 드러나지 않도록 조처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절망의 오늘을 살게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불공정과 몰상식의 화신인 셈이지요. 불공정과 몰상식으로만 따진다면 대한민국에서 그보다 더 뛰어난 인물은 아마도 찾기 어려울 듯합니다. 국민들의 분노가 그를 키웠고 종국에는 그를 대선판으로 불러내기에 이른 셈이지요.


그는 국민의 분노를 밑거름으로 측근들의 영달과 가족의 부와 자신의 체중을 키웠습니다. 그 모든 게 국민들의 덕분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고마움을 그는 자신의 대선 광고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낸 듯합니다. 피둥피둥 살이 쪄서 쩍벌을 일상화하게 만든 것도, 부정한 돈이 넘쳐나는 까닭에 주택청약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도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 질끈 눈을 감아준 덕분이었습니다. 광고 속 멘트는 전적으로 옳고 합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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