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이 된다는 것 -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
안셀름 그륀 지음, 황미하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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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그렸지만 본인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얼굴입니다. 얼굴에는 자신의 삶의 이력이 그려집니다. 자연스러움은 이처럼 시간의 경과에 따른 변화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뜻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변화를 모두 이해하기에는 우리의 지식이 너무나 얕고 보잘것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삶에서는 언제나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입니다. 온갖 부조리가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를 주저앉히는 좌절과 낙담, 슬픔과 분노... 위로가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정작 위로가 필요치 않은 시기에는 위로가 없었던 것처럼 위로가 넘쳐난다는 건 또 한편으로 슬픔과 분노 혹은 좌절과 낙담이 넘쳐난다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위로를 가장한 거짓 위로가 세상을 장악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 없는 빈 밭에는 밀알의 싹보다는 잡초만 무성한 것처럼 말이지요.


"일부 그리스도교 단체들도 상업 광고처럼 그러한 구호를 내걸면서 슬퍼하는 이들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신앙인들로 구성된 자기네 공동체 안에서 위안을 얻게 될 거라고 약속합니다. 그 단체들이 자신들의 약속을 이행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놓고도 늘 질문이 제기됩니다. 그러나 큰 도움을 주는 긴밀한 관계, 결속은 사람들이 위안을 얻게 될 거라고 피상적으로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더 심오한 것입니다."  (p.40)


세계적인 영성 심리 상담의 대가인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저서 <위안이 된다는 것>을 구매했던 시점은 '10.29 참사' 직후였습니다. 최근의 일이지요. 그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좁은 골목길에서 비참하게 죽어갔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에게도,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국민들에게도 진정한 위로를 건네는 사람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국정을 책임지는 관료들의 생각은 '시간이 가면 금세 잊힐 일인데 뭐 그리 호들갑을 떨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것일 테지요. 적당히 애도하고 밑선에서 몇 명 책임자를 처벌하면 가족을 잃은 유족들도, 일시적으로 분노하는 국민들도 그 위세가 금세 잠잠해지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평온을 되찾게 될 것이라는 게 그들의 판단인 듯합니다. 그러나 깊은 슬픔은 가슴에,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깊은 생채기를 남길뿐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새살이 돋고 그리운 이를 가슴에 묻을 때까지 말입니다.


"울음은 쌓이고 쌓여서 터져 나오는 감정에서 우리의 짐을 덜어 줍니다. 눈물은 고통을 완화시킵니다. 펑펑 울고 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울음은 누군가를 제압하고 그에게 과도하게 요구하는 듯한 고통을 견뎌 내게 하고 그에게 답해 주는 유일한 방법이 됩니다. 우리 인간은 울음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 울면서 자기를 내려놓는 것, 그러면서 고통을 허용하고 그 방향을 돌리거나 사라지게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답을 더 이상 알지 못합니다. 말로도, 몸짓으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p.218)


책의 부제인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륀 신부님의 의도는 명백합니다. 어떻게든 지금의 슬픔이나 좌절에서 벗어나 남은 삶을 꿋꿋하게 살아가도록 하자는 것이지요. 어쭙잖은 말로 생색을 내거나 아는 체를 한다는 건 그들의 고통을 가중시킬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장 '빗나간 위로', 2장 '결속감에서 얻는 위로', 3장 '아름다움 속에 깃든 위안', 4장 '자연이 주는 위안', 5장 '몸과 영혼에 생기를 북돋아 주는 위안', 6장'내적 원천의 힘', 7장 '기도가 주는 위로'의 목차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위안을 얻습니다. 포옹이나 대화, 독서, 음악, 그림, 자연, 산책, 반려동물, 운동, 낮잠, 걷기, 목욕, 기억, 유머, 고요, 기도 등 신부님이 제시하는 위안의 방법들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친밀한 사람이 당신과 대화를 나눈 뒤 위로를 받고 떠나간다면, 그것은 당신 자신도 굳세게 할 겁니다. 위로, 위안은 이 불확실한 세상 가운데서 우리 모두에게 든든한 토대를 마련해 줍니다. 이 토대 위에서 우리는 자신을 향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서로 마주보며 똑바로 설 수 있습니다."  (p.292 '맺음말' 중에서)


우리는 종종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와 같은 꼰대질을 지금 슬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내뱉곤 합니다. 습관화된 자기 과시와 자기 피알의 시대에 위로마저 형식적으로 흐르는 듯하여 씁쓸하기만 합니다. 결국 우리는 마음과 마음이 다가가는 방법을, 체온과 체온으로 위로하는 방법을 까맣게 잊어버린 세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현종 시인의 시 '놀다'에는 이런 시구가 있습니다. "괴로움을 견디느라 괴로움과 놀고/ 슬픔을 견디느라 슬픔과 놀고/ 그러다가/ 노는 것도 싫어지면/ 싫증하고 놀고......”(「놀다」 전문) 싫증하고 놀 수 있는 날은 아마도 머나먼 미래가 될 듯합니다. '10.29 참사'를 잊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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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심한 멧돼지의 복수


그해 나는 리더 멧돼지가 되었다. 나를 지지하는 뒷골목 똘마니들의 단합과 응원 덕분에 어찌어찌 뒷골목을 통솔하는 총장 멧돼지에 오르기는 했었지만 나의 출세는 거기에서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스승인 천공(千空) 멧돼지의 적극적인 출마 권유가 나와 아내 멧돼지의 마음을 움직였고, '설마 되겠어?'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일단 출마하는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게다가 천공이 누구던가! 건강 관리를 잘하는 멧돼지의 평균 수명이 17~20년인 걸 감안할 때 평생 천 개의 구멍(空)을 판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는데 15세인 천공 멧돼지는 이미 950공(空)을 넘어 천공(千空)을 목전에 둔, 가히 멧돼지계의 전설로 불리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멧돼지의 습성상 눈만 뜨면 땅을 파는 여느 멧돼지와는 달리 그를 찾는 많은 멧돼지들을 상대하면서도 구멍을 뚫는 성과면에서는 다른 멧돼지들을 월등히 앞서가는 걸 보면서 우리와 같은 보통의 멧돼지들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여 많은 멧돼지들이 그를 칭하여 "가히 천공(千空)이로고!" 하는 감탄을 쏟아냈던 것이다. 그런 분이 나의 출마를 권유했을 뿐만 아니라 리더 후보들이 등장하는 토론장에 나갈 때면 친히 나의 네 발에 왕(王) 자를 써주기까지 했으니 나로서는 감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결국 상대 후보를 가까스로 물리치고 리더 멧돼지가 되는 데 성공했다. 그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6개월이 지났다.


며칠 전에는 리더 멧돼지 관사로 이사를 했다. 남산 자락에 위치한 한적한 곳이지만 식구라고는 아내 멧돼지와 비상식량이자 도시락 대용으로 키우고 있는 강아지 몇 마리가 전부이니 이전 리더가 살았던 북악산 밑의 관저가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리더 멧돼지를 보호하기 위해 상주하는 많은 멧돼지들의 북적거림으로 인해 그곳에서는 적어도 지금과 같은 정적에서 오는 불안과 두려움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이 머리를 맴돌았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아내 멧돼지의 히스테리성 발작이 점점 더 심해지는 걸 보면 이곳으로의 이사는 나에게나 아내 멧돼지에게나 결코 이롭지 못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했다. '진작 천공 스승을 찾아뵙고 상의를 드릴 걸...'


나는 사실 겁도 많고 소심하며 누구보다도 이기적이며 속 좁은 멧돼지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런 성격이 형성된 데에는 아버지 멧돼지의 영향이 컸다. 유년 시절 나는 나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모든 것을 아버지 멧돼지의 계획에 따라야만 했었는데 이런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멧돼지에게 대들거나 반항하지 못했다. 그것은 순전히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리더 멧돼지가 된 후 내가 했던 모든 연설에서 '자유'를 역설했다. 그것은 어쩌면 자유를 누리지 못한 어느 멧돼지의 분노이자 넋두리였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약간의 분노조절장애가 있던 나는 나약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선공(先攻)이라고 믿게 되었다. 뒷골목에서 잔뼈가 굵은 나는 일명 '선빵'을 통하여 나를 증명했고, 내 편에 서는 멧돼지는 누구나 진심을 다해 애정을 쏟았다. 그것이 어쩌면 적자생존의 멧돼지계에서 겁 많고 소심했던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유일한 생존전략이었는지도 모른다. 리더 멧돼지가 된 뒤에도 나는 나의 권력에 위협이 될 만한 멧돼지란 멧돼지는 모두 제거해버렸다. 전임 정권에서 뒷골목의 총장(총대장이라는 의미)을 지냈던 나는 당시 차기 리더로 지목되었던 한 인물을 잔인하게 도륙했고, 그 결과 그의 가족 전체가 재기불능의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시에도 일부 멧돼지들은 너무 잔인하다며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반대하기도 했었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는 걸 나는 일찌감치 어둠의 세계에서 배워 익혔었다. 그것을 일부 소문 멧돼지들이 나의 행동을 두고 정의롭다며 추켜세웠고 나의 이미지는 그렇게 굳어졌다. 집요함은 끈질기다로, 잔인함은 정의롭다로...


겁 많고 소심한 성격인지라 만성 변비와 소화불량을 달고 사는 통에 아무데서나 방귀를 뿡뿡 뀌는 건 막을 수가 없다. 다른 멧돼지들은 내가 인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까닭에 어린 인간들이나 하는 도리도리를 따라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항상 생명의 위협을 느껴왔던 나로서는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하여 사방을 훑어보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졌던 것인데 남 말 하기 좋아하는 멧돼지들이 도리도리로 표현했을 뿐이다.


일기를 처음 쓰다 보니 말이 길어졌다. 다음 일기에서는 나의 영역인 용산에서의 일상을 써보기로 한다.


*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히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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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등산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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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좋은 생각이란 여러 생각의 흐름에서 생각 하나가 어쩌다 내 의식의 갈고리에 얻어걸리는 기막힌 우연의 결과일 테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달아나려는 생각을 꼭 붙잡고야 말겠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좋은 생각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진배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좋은 생각이 내 의식의 그물에 걸려들 때는 주로 산을 걷거나, 멍하니 넋을 놓고 있거나, 음악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한마디로 자신의 존재조차 까맣게 잊게 되는 그런 순간이다. 말하자면 좋은 생각이란 나조차도 내려놓은 찰나와 같은 순간에 번개가 치듯 전해지는 하느님의 선물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아무리 새롭고 재미있는 일도 몇 번 반복되는 순간 쉽게 질리고 마는 성마른 내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아침 산행을 이어오게 된 것도 어찌 보면 걷기에서 얻을 수 있는 그와 같은 큰 혜택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람은 크든 작든 짐을 지고 있다. 단, 그 짐은 옆에서 보면 내려놓으면 될 것 같지만 그 사람에게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오히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모색한다. 그것을 등에 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p.346)


우리에게 <고백>을 쓴 추리소설 작가로 잘 알려진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 <여자들의 등산일기>는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휴식이나 쉼의 의미로 읽힐 수 있는 책이다. 가벼운 배낭을 메고 동네 뒷산의 평탄한 길을 걷는 듯한 기분으로 가볍게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책인 것이다. 결말에 대한 아무런 힌트도 없이 추정할 수 있는 어떤 작은 단서조차 꽁꽁 숨겨야만 하는 추리소설 작가가 이처럼 책을 이해하기 위한 별다른 노력 없이도 작가의 의도를 너무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중 소설을 쓴다는 건 작가의 능력을 가늠케 하는 기분 좋은 반전이다.


“산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다만, 누가 다치기보다는 치유되는 이야기요.”
_미나토 가나에 (출간기념 인터뷰에서)


책은 '묘코 산', '히우치 산', '야리가타케', '리시리 산', '시로우마다케', '긴토키 산', '통가리로', 가라페스에 가자' 등 8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된 소설집이다. 직장 동료이지만 다소 어색했던 두 사람(리쓰코와 유미)이 산을 오르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의 묘코 산, 우연히 참가한 단체 미팅에서 만난 커플(간자키와 미쓰코)이 등산 데이트에 나서는 내용을 다룬 히우치 산, 야리가타케 정상 도전에 번번이 실패한 '나'는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결심으로 세 번째 정상 도전에 나섰지만 우연히 만난 중년 커플로 인해 방해를 받는다는 내용의 야리가타케, 서른다섯의 독신 번역가이자 아버지의 양파 농사를 돕고 있는 미야카와 유미가 의사 남편을 둔 언니의 제안으로 동반 등산에 나선다는 내용의 리시리 산, 리시리 산에 올랐던 유미가 이번에는 언니와 그녀의 딸인 나나카까지 동행하여 등산에 나서는 시로우마다케, 남자 친구인 다이스케와 산에 오르는 마이코의 이야기가 담긴 긴토키 산, 웹사이트 '여자들의 등산일기'에 모자를 만들어 팔고 있는 유즈키가 뉴질랜드 트래킹 투어에 참가한다는 내용의 통가리로, 언니와 함께 리시리 산과 이어서 시로우마다케에 오른 후 본격적인 등산 계획을 세울 겸 등산 친구를 사귀기 위해 등산 페스티벌에 참여한다는 내용의 '가라페스에 가자' 등 시종일관 소설은 여자들을 주인공으로 그들만의 고민과 인생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의 산문집 <걷기 예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발걸음을 앞으로 밀어내는 것은 그 무시무시한 괴로움의 씨앗이 아니라 자기 변신, 자기 버림의 요구,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 길과 몸을 한 덩어리로 만드는 연금술을 발견해야 한다는 요청이다.  여기서 인간과 길은 행복하고도 까다로운 혼례를 올리며 하나가 된다."  우리는 어쩌면 그날이 그날 같았던 지난날의 나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즐겁고도 가벼운 그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산에 오르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지금까지의 인생에 비슷한 장면이 몇 번이나 등장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같이 놀고 싶으면 끼워달라고 하면 그만이고, 다른 그룹 아이들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하면 참가하면 되는데, 먼 곳에서 바라보고 있을 뿐. 나는 외려 누가 귀 기울여 듣느냐는 듯 관계없는 책을 펼치는 그런 아이였다."  (p.363)


반짝 추웠던 날씨가 풀리자 미세먼지가 극성이다.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지난밤 개기월식을 보면서 대학 기숙사에 있는 아들과 전화 통화를 했었다. 아들도 역시 도서관 옥상에서 개기월식을 구경하고 있다고 했다. 붉게 변하던 달이 점차 흐려지더니 마침내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인생도 저 달과 다르지 않겠지?' 생각했었다. 친구들과 함께 개기월식을 보고 있었다는 아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기에는 아들에게 남은 시간이 너무도 많은 까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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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 가을 하늘을 보니 문득(이라고 말하면 너무 가식적일 테고 아무튼) 소설이 쓰고 싶어 졌다. 소설을 써본 경험은커녕 짧디 짧은 리뷰 한 편도 쩔쩔매면서 갑자기 웬 소설? 하고 뜬금없어하는 사람들이 다수이겠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이 개판을 넘어 돼지판으로 흐르는 실정이다 보니 사람이 아닌 멧돼지를 주인공으로 삼아 우화를 한 편 써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용산 시민공원을 어슬렁거리는 멧돼지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현실을 조금 과장되거나 부풀려서 혹은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다른 멧돼지 무리를 등장시켜 풍자적으로 그려보는 것은 요즘처럼 웃을 일 없는 시기에 개인의 정신건강을 돌보는 차원에서라도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우화의 배경은 주로 용산 시민공원으로 하고 멧돼지 무리를 지휘하는 리더 멧돼지와 그의 아내 멧돼지 그리고 리더 멧돼지의 지시를 따르는 몇몇 멧핵관(일명 멧돼지 핵심 관계자)들을 등장시켜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을 동물의 차원에서 해석해보고자 함이다. 그렇다고 특정 정치인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말해야 하겠지만).


물론 내가 소설이나 우화를 쓸 깜냥이 되지 못한다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공모전에 출품할 것도 아니고, 판매를 위한 상업용 목적도 숫제 없으니 단순한 오락이나 도락의 차원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인 듯싶은 것이다. 마감일자가 있어 빨리 쓰라고 들볶일 일도 없을 테고 말이다. 쓰고 싶을 때 쓰고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을 테니 못할 것도 없겠다 싶은 만용이 불끈 솟는 게 아닌가. <멧돼지의 일기>(물론 정해진 건 아니고 가제에 불과하지만)라는 제목으로 아주 천천히... 그에 필요한 소재는 어느 정치인이 무한정으로 제공할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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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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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예컨대 말이나 글로, 혹은 행동이나 몸짓으로, 또는 악보나 그림으로, 또는 이제껏 아무도 꿈꾸지 못했던 자신만의 발명품으로, 우주의 비밀을 푸는 수식이나 이론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남긴다. 그리고 우리는 미처 다 읽지 못한 세상의 많은 이야기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 이야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여간다. 그러고 보니 세상은 온통 이야기의 바다, 이야기의 천국인 셈이다. 나 역시 그동안 내가 읽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회상하거나 어떤 의미였을까 해석하면서 특별하지 않은 나의 이야기를 덧붙여간다. 나의 삶이 시간의 수직선상에 나열된 작은 한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나는 더없이 마음이 푸근해지고 저으기 안심하게 되는 것이다.


"책이 내 외로움을 덜어주었다. 이것이 내 말의 요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도 그런 사람들이 외로움에 사무치는 일이 없도록 글을 쓰겠다고!"  (p.34)

"외로움은 내가 맛본 인생의 첫맛이었고, 늘 그 자리에, 내 입안의 틈 속에 숨어 있다가 자신의 존재를 일깨워주었다."  (p.53)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읽고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는 이들의 마음은 다들 나와 비슷한 삶의 방식 혹은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소설에서 루시는 소설을 쓴 작가인 동시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준다. 1980년대 중반 소설의 화자인 루시는 간단한 맹장수술을 받고 원인도 알 수 없는 고열에 시달린다. 직장과 집안일로 바쁜 남편은 결국 자신의 장모인 루시의 엄마에게 SOS를 보냈고, 입원한 뒤 삼 주쯤 지났을 무렵, "안녕, 위즐." 하는 어릴 적 애칭과 함께 오랫동안 인연을 끊고 지냈던 엄마가 나타났다. 아무도 없는 일인용 병실에서 남편과 어린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외로움과 씨름하던 루시. 엄마라는 존재는 파편화된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하나하나 끼워 맞추어 주기 위한 소중한 사람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도 이렇듯 반쯤은 알게 반쯤은 모르게, 사실일 리 없는 기억의 방문을 받으면서 세상을 이런 식으로 어찌어찌 통과해나갈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공포라는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보도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마음인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삶은 아주 많은 부분이 추측으로 이루어진 듯하다."  (p.21~p.22)


루시에게 있어서 그녀의 어릴 적 기억은 따뜻하거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엄마는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풀어놓는다. 그렇게 들먹여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개로 루시 역시 자신의 기억들을 하나 둘 되살린다. 종조부의 차고에서 지내며 추위와 배고픔과 외로움에 떨던 날들, 부모님의 억압과 간헐적인 폭력이 이어지던 날들, 친구들과 이웃들로부터의 차별과 따돌림, 그녀에게 고향인 앰개시는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무지의 기원이자 사회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외로운 섬과 같은 곳이었다. 남편과 결혼하여 그토록 동경하던 뉴욕에 정착하여 아이를 낳고 소설가가 된 지금까지의 여정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음에도 그녀의 엄마는 결혼도 하지 못한 채 늙어가고 있는 오빠와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되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언니에 비하면 루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이루었다고 믿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진정, 냉혹함은 나 자신을 붙잡고 놓지 않는 것에서,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게 나야, 나는 내가 견딜 수 없는 곳-일리노이 주 앰개시-에는 가지 않을 거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결혼생활은 하지 않을 거고, 나 자신을 움켜잡고 인생을 헤치며 앞으로, 눈먼 박쥐처럼 그렇게 계속 나아갈 거야!,라고. 이것이 그 냉혹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204~p.205)


루시는 옷가게에서 우연히 만났던 소설가 세라 페인의 워크숍에 참가한다 세라 페인은 '섬약한 연민에 기우는 스스로를 잡아 세우지 못하'는 작가, '무대에 능한 작가'라는 혹평을 듣기도 하지만 루시에게 세라는 '뉴욕이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것일 뿐'이라며 세라에 대한 지지를 버리지 않는다. '작가의 일이란 인간의 조건에 대해 알려주는 것,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했던 세라 페인에 대한 지지를.


“나는 우리가 아이였을 때 품게 되는 아픔에 대해, 그 아픔이 우리를 평생 따라다니며 너무 커서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 그런 갈망을 남겨놓는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을 꼭 끌어안는다. 펄떡거리는 심장이 한 번씩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끌어안는다.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p.217)


이 소설에는 루시 곁을 스쳐갔던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과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았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가장무도회처럼 짧았던 수많은 인연들의 총합일지도 모른다. 얼굴을 달리하여 나타났던 수많은 천사들 덕분에 우리의 삶이 유지되는 것은 물론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삶이 아름다웠노라고, 꽤 행복한 삶이었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행복은 스스로의 노력이 아니라 스치듯 지나쳤던 수많은 사람들의 친절 덕분이었음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독자들에게 잔잔히 말하고 있다. 소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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