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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자리 장수에서 광장으로 - 민주화 운동가 이오순 평전
임수정 지음 / 밥북 / 2025년 11월
평점 :
사람의 운명은 한순간에 변한다. 살아보니 그렇다. 우리는 마치 두께가 다른 얼음판 위에 서서 어디가 얇은지 또는 어디가 두꺼운지 도통 아무런 정보도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얼음판의 둘레를 마구 헤집고 다니는 꼴이다. 겁도 없이 말이다. 단 한 번도 나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얇은 얼음 위를 딛지 않는다는 건 기적에 가깝다. 물론 얇은 얼음을 디뎠지만 물에 휩쓸리기 직전에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경우도 더러 있겠지만 말이다. 이렇듯 삶을 유지하는 건 두렵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두렵다고 해서 다들 한 귀퉁이에 모여 오들오들 떨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두려움을 떨치고 과감히 일어나 자신이 밟을 곳이 살얼음판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기꺼이 한 발을 내딛는 이도 있고, 그것을 똑똑히 지켜본 이들 역시 자신의 두려움을 툭툭 털고 일어서 다른 이의 평안한 삶을 위해서, 그리고 현실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서 자신의 편안한 삶을 기꺼이 포기하기도 한다. 삶의 용기는 그렇게 하품처럼 전염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삶이 두려울 때마다 그들의 지난 삶을 회상하기도 하고, 그들의 용기를 가슴에 깊이 새기기도 한다.
"나는 처음부터 이오순의 외동딸 송영숙에 주목했다. 이오순이 서울로 장사하러 떠날 때 열 살이었던 송영숙은 엄마 없는 집에서 가사를 전담했다. 1965년 가족들이 서울로 이주할 때 함께 상경했으며 청계천 봉제공장에 취직해서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막냇동생 송광영이 분신하자 엄마와 함께 민주화운동에 동참했다. 내가 인터뷰를 하러 갔을 때 일흔여섯의 송영숙은 치매를 앓고 있었다. 대부분의 질문에 '다 좋았다'고 답했다. 왜 그렇게 열심히 했느냐고 묻자 '막둥이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제'라고 답했다." (p.6 '책머리에; 중에서)
나는 평전을 좋아한다. 개인의 일생에 대한 필자의 논평이 곁들여진 평전은 전기문에 비해 객관적이고 학술적이라는 게 다수의 견해다. 물론 미화와 왜곡으로 점철된 평전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수정 작가가 쓴 <민주화 운동가 이오순 평전, 돗자리 장수에서 광장으로>를 읽게 된 것도 지금까지 내가 유지해 온 독서 편력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나는 전두환 독재정권이 발의했던 학원안정법에 반대하여 스스로 분신의 길을 택했던 이오순 여사의 아들 송광영 열사를 익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책을 읽는 데 주저함이 없도록 했다. 사실 8,90년대의 민주화 과정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에게 있어 '송광영'은 낯선 이름이다. 더구나 그의 모친이었던 '이오순'은 더더욱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독재에 저항하고 그들의 탄압에도 결코 굴하지 않았던 용기와 헌신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오순은 숨죽인 채 오열했다. 머리에 삼베수건을 쓰고 대열의 맨 앞에 서 있던 유가협 어머니들 그 누구도 소리 내어 울지 못했다. 울음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물만 뚝뚝 떨궜다. 동백꽃이 툭, 질 때처럼. 심장이 벌떡이는데도 소리 내 울 수는 없었다. 울음소리를 내는 순간 광영의 죽음은 개인적인 일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이오순은 그때 알았다. 침묵만큼 처절하고 슬픈 오열은 없다는 것을. 광영의 죽음, 열사들의 자기희생은 민주주의를 위한 순수한 피흘림이라는 것을. 수천의 군중 앞에서 열사로 호명되는 순간 광영의 죽음은 그 의미가 분명해졌다는 것을. 막내아들 광영은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한 투사라는 것을 가슴에 또렷하게 새겼다." (p.213)
일제강점기였던 1927년에 태어난 이오순은 그녀의 나이 38세에 남편과 사별하고 다섯 명의 어린 자식을 책임지는 가장으로 살다가 1994년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재산이나 연고도 없이 자식들을 데리고 무작정 서울살이를 시작했던 1959년부터 그녀의 삶은 오롯이 해방 이후 우리나라가 겪었던 질곡의 역사를 그대로 재현한 셈이었다. 더구나 1985년에 막내아들을 잃고 1986년부터 시작된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유가협)' 창립회원으로서의 활동은 평범한 아낙이었던 이오순을 광장의 투사로 변모시켰다. 산업화시기에 서울로 서울로 모여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고단한 삶과 그들의 허기진 일상을 따뜻한 손으로 어루만지지 않았던 위정자와 기업인들로 인해 거리는 온통 최루탄과 화염병이 오갔고, 공장 노동자의 삶은 점점 더 피폐해져 갔었다. 나는 이오순 평전을 읽는 내내 송광영 열사의 짧았던 생애를 떠올렸고, 언젠가 읽었던 권여선 작가의 <푸르른 틈새>가 나도 모르게 오버랩되었다.
"이오순은 자식뿐만 아니라, 이웃, 일가친척, 유가협 동지들을 돌보며 함께 살아갔다. 그녀는 언제나 남들 앞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조용히 헌신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헌신을 했을까? 수많은 자료를 훑어보아도 '무엇을 좋아했다', '무엇을 즐겼다'는 기록은 없었다. 늘 돈을 벌러 다녔고 시위에 참여했고 유가협 회원들과 한울삶에서 지냈다." (p.289 '에필로그' 중에서)
숨이 컥컥 막혀 곧 죽을 것 같던 현실도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닌 듯 무척이나 가볍게 느껴질 때가 있다. 기억 속의 시간은 언제나 중력을 잃고 부유한다. 그러나 가벼이 떠다니던 기억들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기록으로 남겨졌을 때, 그것을 읽는 사람들은 그때의 기억을, 그 시절의 삶을 가슴으로 살아내게 된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한 우리는 남편과 자식을 잃고 억척같이 살았던 한 여인의 삶을 다시 살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어쩌면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이오순이라는 여인과 그 여인을 어머니로 두었던 송광영이라는 이의 뜨거운 피가 책을 통하여 수혈되었는지도 모른다. 영하로 떨어졌던 오늘 아침의 기온 속에서 조금의 추위도 느끼지 못한 채 산을 오를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런 까닭이었을 테다. 삶의 열정은 역사의 물관을 타고 그렇게 끝없이 전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