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동안 남들이 흔히 말하는 '사랑해!'라는 말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았다.

너무도 흔해빠져서 그 가치마저 사라진 듯한 그 말을 무에 생각할 게 있다고 그렇게 오래 생각했느냐 하겠지만 나는 그래서 더 오래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대충 생각한 게 아니라 시간이 날 때마다 아주 열심히,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정말 열과 성을 다하여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었다. 나란 놈, 내가 생각해도 참 유별나고 별난 놈이다. 그냥 '사랑해!'라고 말하나 보다 생각하면 그만인데 그걸 한사코 끄집어 내어 뒤집어도 보고, 나누어도 보고, 말하는 주체와 객체를 분리하여 정량화를 하고 싶으니 말이다. 시쳇말로 "노답!!"

 

그렇게 오랫동안 생각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것 하나를 알게 되었다. 진행형의 구분이 애매한 우리말에서 '사랑하다'는 진행의 의미보다는 오히려 한 시점에 정지된 상태로 읽는다는 걸 알고 조금 놀랐다. '어떻게 그럴 수가...' 사랑은 연속적인 시계열의 진행이지 한 순간에 들었던 심리 상태만 의미하는 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될 수도 없고 말이다. 예컨대 나는 '지금' 널 무지무지 사랑하지만 조금 지난 '다음 순간'에는 너를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그 강도가 때에 따라 점층적이거나 점강적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사랑해'라고 말하는 사람의 그 순간의 마음 상태로 받아들이는 것, 또는 책의 주인공이 그 말을 하는 순간의 심리로만 읽는다는 것은 진행형으로 읽었을 때와 상당한 의미 차이가 난다. 지금껏 나만 그렇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동안 '사랑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 저 사람이 지금 나를 사랑하는구나'쯤으로 생각했다. 사랑하는 감정은 결코 순간적으로 들었다가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혹시라도 나처럼 '사랑해'라는 말을 순간적인 심리 상태로 받아들였던 분이 있다면 의식적으로나마 진행형으로 생각할 것을 권한다. 그래야만 불안을 떨쳐버릴 수 있다. 삶을 사랑의 과정으로 볼 때 사랑이 순간적이라면 그 얼마나 불안할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라면을 끓이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가 김훈의 글에서는 언제나 마른 먼지내가 난다. 도무지 헐거운 부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완벽을 추구하는 그의 성정이 내 가슴께를 콕콕 찌른다. 나는 이따금 밭은 기침을 하며 책을 내려 놓는다. 내 게으른 호흡으로는 작가의 철두철미를 차마 감당하지 못하는 까닭이며, 그의 기름기 없는 문체에 길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독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한 권의 책을 편히 읽도록 하기보다는 한 권의 책을 가슴으로 다시 쓰라 명령하는 것만 같다.

 

나는 작가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한다. '어렵게 쓴 시는 독자도 그만큼 어렵게 읽어야 한다.'고 햇던 대학 친구의 말을 나는 몇 번이나 곱씹고 되내었다. 지난한 독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이 힘겨움이 막 입대한 훈련병의 모습으로 화하여 쉬고 읽기를 반복하게 한다. 훈련병 시절에는 어머니의 시큼한 땀냄새가 그렇게 그리웠었지. 그러나 김훈의 글에선 오래 전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려야만 했다.

 

"지금은 한식날 아버지 무덤에 가서도 나는 울지 않는다. 내 여동생들도 이제는 다들 늙어서 울지 않는다.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4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는 사별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고, 슬픔조차도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 먼 슬픔이 다가와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인데, 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 (p.33~p.34)

 

나의 할머니는 6.25 동란에 할아버지를 여의고 젊은 나이에 청상이 되었다. 그 기구한 운명에 지지 않으려는 듯 할머니는 언제나 꼿꼿하셨다. 이따금 할머니 방에서 잠을 잔 날이면 동이 트지도 않은 이른 새벽에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깨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하나 흐트러짐 없이 앉아 계신 할머니의 모습을 먼저 보곤 하였다. 할머니는 종지에 떠온 찬물을 머리에 찍어 바르시며 숱이 많지 않은 머리카락을 팽팽히 당겨 말아쥐고는 언제나 그렇듯 쪽을 찌고 비녀를 꽂았다. 그것은 어린 손자에게조차 당신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 싫어했던 마지막 자존심이었고, 당신의 운명에 대한 분노이자 성스러운 기도였다.

 

나는 위의 인용문을 이 책 <라면을 끓이며>에서 처음 보았던 게 아니고 28인의 소설가가 쓴 <내 영혼이 한뼘 더 자라던 날>에서 먼저 읽었었다. 나는 그때 작가가 말하는 '풍화의 슬픔'을 내 가슴께에 한 자 한 자 새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마치 살을 도려내는 고통인 양 깊은 울음을 울음 울게 했다. 이 책은 실상 바쁜 식사를 마치고 하루의 밥벌이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이 시대의 아픔을 그리고 있다지만 나는 예전에 출간된 그의 저서에서 받았던 오래된 슬픔과 이 책에서 처음 읽는 새로운 슬픔이 마구 뒤섞이는 바람에 하루의 정해진 끼니를 이따금 건너 뛰어야만 했다.

 

"주어와 술어를 가지런히 조립하는 논리적 정합성만으로는 세월호 사태를 이해할 수도 없고 진상을 밝힐 수도 없을 것이다. 또 이 사태를 개관화해서 3인칭 타자의 자리로 몰아가는 방식으로는 이 비극을 우리들 안으로 끌어들일 수가 없다. 나는 죽음의 숫자를 합산해서 사태의 규모와 중요성을 획정하는 계량적 합리주의에 반대한다. 나는 모든 죽음에 개별적 고통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에 값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명과 죽음은 추상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회복이 불가능하고 대체가 불가능한 일회적 존재의 영원한 소멸이다." (p.175~p.176)

 

현재는 언제나 간절함이 배어 있다. 그러므로 간절함이 없는 현재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세월에 밀려 과거로 변한 지금은 그 간절함 밖의 간절함이었던 듯 덧없고 쓸쓸하기만 하다. 머리가 희끗해진 작가의 글을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읽게 될지 알지 못한다. 내게 남은 것은 오직 지금 읽는 이것과 서먹해진 과거의 저것만 있을 뿐이다. 아직도 나는 작가가 말한 '풍화의 슬픔'이 오래도록 아프다.

 

"간절해서 쓴 것들도 모두 시간에 쓸려서 바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늘 말 밖에 있었다. 지극한 말은, 말의 굴레를 벗어난 곳에서 태어나는 것이리라." (p.410)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알타이 걸어본다 6
배수아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줄잡아 2,3일이면 대충 다 읽지 않을까, 했던 것이 일주일을 넘기고 나서야 겨우 다 읽었다. 딱히 게으름을 피운 것도 아닌데 유난히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이 종종 있다. 그렇게 꾸역꾸역 읽다 보면 내용도 잘 생각나지 않고 말이다. 소설가 배수아의 알타이 여행기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얄팍한 책의 두께와 여행기라는 말에 '저것쯤이야.' 생각했었다. 넉넉잡아 이삼 일, 맘만 단단히 먹으면 하룻밤에라도 다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웬걸, 나의 예상과는 달리 진도는 좀체 나아가지 않았고 하릴없이 날짜만 축내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사진이나 그림이 반 이상을 차지하는 다른 여행기와는 달리 이 책은 여느 소설책보다 더 빾빽한 글씨와 알타이 체류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작가의 공간적 이동이 적었고, 우리에게는 한없이 낯선 알타이의 묘사가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나는 '궁금하면 500원'이 아니라 천 원을 받는다 해도 알타이에 대해 딱히 궁금한 게 없었다. 책이 지루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때에 맞춰 내가 바빠진 탓도 있었고, 기대했던 여행기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변명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우리 여행자들은 말을 잊은 채 지상의 풍경에 고정했다. 이곳이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던 그 세계, 그 공간에 속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탄 비행기는 1만 년 전의 오늘을 향해 시간을 거슬러 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울란바토르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이곳은 알타이다, 나는 알타이에 있다는 감정이 비로소 가슴에서 피어올라 향나무의 흰 연기처럼 나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p.62)

 

작가의 특이한 이력처럼 여행지 선정도 색달랐다.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이화여자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한 작가는 한동안 공무원(병무청)으로 일하다가 무작정 쓴 소설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 이 1993년 <소설과 사상> 겨울호에 실림으로써 등단했다고 한다. 그 후 독일에서 1년간 체류하던 그녀는 2002년 다니던 직장에 사직원을 제출하고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2009년 여름 그녀가 알타이 고원의 추위에 떨면서 유르테에 불을 피울 야크똥을 모으는 고생을 자초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것은 여행기가 아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것은 여행기라고 불리기에는 어떤 요소가 너무 부족하거나 혹은 너무 넘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결코 여행과 함께 시작하거나 끝나지 않는다. 나는 여행을 떠났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나로부터의 도피였으며, 특별히 흥미진진하거나 남다른 사건이나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p.11)

 

독일어로 소설을 쓰는 몽골 샤먼이자 투바 부족의 추장인 갈잔 치낙에게 이끌려 이름도 낯선 알타이-투바를 그녀는 2009년부터 세 번이나 다녀왔다고 한다. 대부분이 유럽인인 여행객 중에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던 작가는 끝도 알 수 없는 스텝 초원을 말을 타고 달려보기도 하고, 요리에 재주가 없다는 그녀가 20명 이상의 식사를 자원해서 준비했다가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기도 하고, 여행의 마지막 무렵에는 병명도 알지 못하는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인간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은, 문명으로부터 잊혀진 몇 안 되는 지역 알타이-투바를 그녀는 그렇게 겪어냈다.

 

"우리들 머리 위의 하늘은 투명한 푸른빛의 폭포이다. 깨끗하고 맑은 대기는 우리의 영혼을 스치며 너울거린다. 찌르는 듯한 햇빛이 환하게 쏟아지는 스텝 초원에 앉아 빵에 부드러운 야크 버터와 달콤한 딸기잼을 발라 밀크티와 함께 먹는다. 밀크티는 항상 한 번에 기본으로 두세 잔을 마셨다." (p.154)

 

작가의 여행기라기보다는 알타이-투바 유목민 체험기에 가까운 이 책에서도 첼로를 전공한 오스트리아 여인 마리아가 비중있게 등장한다. 그녀는 5개 언어를 할 줄 알고, 유목민과 결혼하여 알타이에 살고 싶다는 염원으로 나이 어린 알타이 유목민 총각과 소개팅을 하고 몽골어와 투바어까지도 배운다. 그러나 문명에 길들여진, 오페라에 열광하는 마리아는 열병과도 같았던 알타이앓이에서 금세 벗어난다.

 

"나는 누구였던가. 나는 이곳에서 그것을 완전히 잊고 지냈는데, 눈앞으로 닥친 귀향을 생각하니 갑자기 그런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너무나 나 자신으로 존재함으로써만 살아갈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나 자신이 되기를 그토록 강요하는 불안과 혼돈이 없으며, 그래서 늙은 뿔처럼 단단히 뭉쳐 있던 나의 자아는 무엇인가의 영향 아래 서서히 부드러워졌고, 점점 밀도가 희박해지고 가벼워져서 검은 호수 아래로, 향나무의 연기를 따라, 밤 늑대의 울음 속으로, 달의 둥근 얼굴 속으로 휘발되어버렸고, 그럼으로써 도리어 나는 검은 호수와 향나무의 연기, 늑대의 울음, 달의 얼굴로 동시에 모두 존재할 수 잇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p.224)

 

여행이 이따금 돌이킬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나를 이끌 때가 있다. 이곳에 왜 왔는지, 나는 이곳에서 과연 무엇인지, 문명으로부터 나는 얼마나 멀어졌는지, 그것이 나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작가의 의식 저편을 주목하고 있었다. 어쩌면 작가는 지금 그녀의 가슴 한켠에 알타이의 햇살 한 줌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 거라는, 그런 예감이 들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를 볼 때가 있다. 내가 실시간 검색어를 신경써야 할 연예인도 아니고 일부러 주목하여 보는 건 아니지만 자동적으로 시선이 가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그 검색어 순위 안에 '허경영' 씨가 올라왔다. 그가 리스해서 타고 다니는 롤스로이스의 책임보험료가 미납되어 적발됐다는 기사와 함께. 여담이지만 그가 타는 롤스로이스의 한 달 리스비가 800만 원이라니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능력이 좋은 사람임은 분명해 보인다. 이따금 특이한 행동과 허무맹랑한 대선 공약으로 웃을 일 없는 우리를 즐겁게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제 연예인 다 되었군' 하고 생각했는데 그는 실제로 연예인 맞다. 그의 프로필에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가수이며 소속은 '본좌엔터테인먼트'로 되어 있다. 그는 아마도 19대 대선에도 출마할 모양인데 페이스북에 발표한 그의 대선 공약을 보면 이렇다.

1. 이명박 구속

   (사랑의 열매 1조 기부시 면책)

 

2. 박근혜 부정선거 수사

   (결혼 승락시 면책)

 

3. 새누리당 해체 및 지도부 구속

   (소록도 봉사 5년시 집행유예)

 

4.UN본부를 판문점으로 이전

 

5. 만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건국수당

   매월 70만 원씩 지급(어버이 연합 제외)

 

6. 결혼수당 남녀 각 5000만 원씩 지급

   (재혼시 1/2지급, 삼혼시 1/3)

 

7. 출산수당 출산시마다 3000만 원씩 지급

 

8. 국회의원 출마자격 고시제 실시 -

   국회의원 1/3로 감원

 

9. 정당정치 해산하고 국회의원들은

   무보수 명예직으로

 

10. 몽골과 국가 연합

 

11. 바이칼 호수물 서울시 공급

 

12. 만주땅 국고 환수

 

13.독도 간척사업으로 일본 근해

   500미터 앞까지 영토 확장

 

그의 공약이 이루어질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암튼 속은 시원하다. 그는 정말 대한민국에 없어서는 안 될 연예인 맞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울지 않는 아이 -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뭄이 심각하다. 나랏님이 기우제라도 지내야 할 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 주에 찔끔거리며 내린 비도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그나마 날씨가 푸근하다고 좋아할 일도 아닌 것이 맑은 날이면 중국발 미세먼지로 나라 전체가 먼지에 덮여 시야는 온통 희끄무레 답답하기만 하다. 언제부터였지? 꽤 오래된 듯한데... 아무튼 나는 올 가을 들어 가을다운 가을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것만 같다.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불만도 이만저만하지 않다. 그렇다고 나의 불만을 누구에겐가 속 시원히 토로할 수도 없으니 애면글면 속만 끓이고 있다. 투명하게 맑은 가을 하늘을 보았던 게 마치 몇십 년은 지난 듯하다.

 

날씨에 대한 불만은 독서에도 영향을 미친다. 답답하고 끈적끈적한 내용의 소설이나 오랜 시간 몰입을 요하는 철학이나 경제학 서적은 일단 제외. 가볍고, 상쾌하고, 쉽게 이해되는, 그렇다고 너무 유치하지도 않은 그런 책에 눈길이 간다. 이 시기에 나의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 줄 만한 책으로는 에쿠니 가오리의 수필집이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이 <울지 않는 아이>이다.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자평 속에 책은 막힘 없이 쭉쭉 읽혔다.

 

"내게도 당나귀가 한 마리 있다면 좋겠다. 당나귀와 뒤뜰과 무화과나무와, 산책을 위한 길과 쉴 수 있는 언덕, 그리고 자그마하고 시원한 샘. 그러면 소설 따위 쓰지 않고 '무한하고 평화로우며 덧없는' 해 질 녘의 세계에서 평온하게 살 수 있을 텐데. 나는 선한 것을 좋아한다." (p.30)

 

그녀의 팬은 국내에도 많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나는 왠지 에쿠니 가오리의 팬은 날씨에 따라 변동성이 크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예컨대 올 가을처럼 미세먼지가 전국을 뒤덮는 날이 한동안 지속된다거나 장맛비가 한 달 내내 그치지 않고 내린다면 사람들은 다들 '아, 에쿠니 가오리가 생각나는군' 하고 말할 것만 같다. 그런 다음 사무실에서건 집에서건 외출을 삼가한 채 한동안 틀어 박혀 그녀의 책만 읽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날씨마저 우울하여 마음이 평소보다 백 그램쯤 더  무거워지면 나도 모르게 에쿠니 가오리의 가볍고 생기발랄한 문체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에 대한 열렬한 팬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내가 문득 그녀를 생각해 내는 걸 보면 그녀에게는 나도 미처 알지 못하는 묘한 매력이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뭐랄까, 그녀의 글에는 복어맑은탕을 한 그릇 쭈욱 들이켰을 때의 개운함이 있다. 입 안에 감도는 텁텁한 느낌이라곤 도무지 찾아 볼 수 없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참을성이 영 없었다. 참을성이 없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기 편한 방향으로 흐른다. 책을 읽느니 마당에서 비눗방울 놀이나 하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어린애였다. 비눗방울 놀이 말고는 그림을 그리고 학종이 접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흐물흐물. 개어놓은 이불 위에 엎드려 그저 뭐라고 주절주절거리고,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잠들어버리는 놀이를 나와 동생은 그렇게 불렀다." (p.64)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과 에세이를 다 합쳐야 고작 서너 권일 뿐이다. 그런 내가 작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하는 것은 조금 건방지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리뷰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글에서는 좀 어떠랴 싶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그녀가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초창기에 썼던 8년 치의 에세이를 모았으니 만큼 이 책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쓴 글이 대부분이다.

 

"결혼이란 참 잔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가장 되고 싶지 않은 여자가 되고 마는 일이다. 서글프다." (p.146)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멍하니 빨려들 듯 읽고 있노라면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모름지기 자신이 겪었던 특별한 경험을 아주 특별하게 쓸 수 있는 능력이라기보다 평범한 일을 평범하지 않게, 적어도 지루하지 않게 쓸 수 있는 능력이라고 믿게 된다. 그러자면 우리가 경험하는 소소한 일상에서의 느낌을 잘 감지하고 그것을 흐트러지지 않도록 잘 갈무리하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책에서 읽는 타인의 감정은 곧잘 공감하면서도 평상시에 내가 느끼는 감정은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 맹추도 그런 맹추가 없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 한 권을 다 읽었더니 몸도 마음도 개운해졌다. 뿌옇던 대기도 조금 밝아진 느낌이다.

 

"제목이나 표지의 느낌, 책등이 각이 졌는지 둥그스름한지, 글자의 간격과 활자의 종류, 종이의 색감, 냄새, 감촉, 서점 책꽂이에 아무리 책이 많이 꽂혀 있어도 내 손에 딱 맞춘 것처럼 감기는 책은 당연히 한정되어 있고, 그런 책들은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책이 지닌 '기척' 같은 것." (p.212)

 

정말 그럴까?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다만 날씨와 독서는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11-12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13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