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S. From Paris 피에스 프롬 파리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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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의 청춘남녀 중에는 운명적 사랑에 대한 기대나 믿음이 의외로 강한 듯하다. 학력이나 지적 수준, 연령이나 외모에 상관없이 말이다. 이 세상의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느님에 의해 선택된 단 두 사람이 운명적으로 만나 사랑을 키워갈 뿐 아니라 한 번 맺어진 그들의 사랑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은 다소 유치하거나 황당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들은 가슴에 품은 그러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사람에 대해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그들이 낭만적인 감성을 지녔다거나 때 묻지 않고 여전히 순진하다는 둥 다소 호의적인 판단을 내리는 듯하다. 그러나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것은 개인의 자유 영역에 속한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 기저에는 사랑에 대한 개인의 가치 판단이 작용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듯하다.

 

예컨대 자신이 믿고 있는 운명적 사랑만이 가치가 있는 유일한 사랑이고 우리 주변에서 보는 흔한 만남이나 보편적인 사랑, 나아가서는 조건을 따져 만나고 사랑에 빠져드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나 반감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 자신은 아니라고 부정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강하게 부정한다는 건 자신이 사랑에 대해 분류를 하고 자신만의 기준에 의해 등급을 매기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니라고 믿고 싶겠지만 말이다.

 

프랑스 작가 마르크 레비의 신작 장편소설 <P. S. From Paris>를 읽으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은 '처음 만남이야 어찌 되었건 사랑에 등급이 있을까?'하는 의문이었다. 이런 의문이 들었던 건 전적으로 내 개인적 경험일 뿐 소설의 내용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주관적 생각을 왜 언급하느냐고? 운명적 사랑을 믿는 것이 개인의 자유인 것처럼 그렇게 믿는 사람들의 생각의 틀을 분석해보는 것 역시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에. 그리고 블로그라는 공간은 개인의 사적 공간이기도 하니까.

 

"작가는 쉬운 직업이라고 생각들 하죠. 뭐,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어요. 그런 점도 있으니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이거 해라, 하지 마라 하며 지시를 내리는 상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조직의 틀에 갇혀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조직 없이 혼자 일한다는 건 작은 배를 타고 바다 한복판으로 나아가는 것과 다름없어요." (p.153)

 

위에 소개한 짧은 인용문만으로도 소설의 중심 내용이 대충 감이 잡히지 않을까. 그렇다. 주인공 남자의 직업은 프랑스에 거주하는 전업 작가이다. 미국에서 건축회사를 운영하며 취미 삼아 글을 쓰던 폴은 친구 부부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책을 출간하게 된다. 수줍음이 많았던 그가 갑자기 유명세를 타게 되자 도망치다시피 선택한 곳이 파리였다. 첫 책의 성공 이후로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못한 채 고독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폴을 보기 위해 그의 오랜 친구 커플인 아서와 로렌이 방문한다. 장난기가 발동한 아서와 로렌은 인터넷 데이트 사이트에 폴의 프로필을 대신 올린다. 그리고 아서는 한 술 더 떠 여자에게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는 쪽지를 보낸다. 그렇게 초대된 여인이 '미아'였다.

 

"다이지의 말이 맞았다. 상상일 뿐이라고, 또는 무시하고 싶은 막연한 희망일 뿐이라고 생각하려 해도, 폴은 몇 주일 동안 어느 거리 모퉁이에서 미아의 향기를 맡았다. 마치 미아가 앞서 지나갔기 때문에 간발의 차이로 미아를 놓친 것처럼. 다음 사거리에서는 그녀와 마주칠 거라고 확신하면서 걸음을 재촉하기도 했다. 지나가는 여자를 미아라고 부르며 붙잡기도 하고, 밤거리를 무작정 걷기도 하고, 불 켜진 창문들을 바라보면서 그녀가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에 젖기도 했다." (p.373)

 

영국에서 '멜리사 바로우'라는 예명으로 활동 중이었던 미아는 남편의 외도로 인해 속을 끓이다가 소꿉친구 다이지가 사는 파리로 훌쩍 떠나온 상황이었다. 몽마르트르에서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다이지는 미아를 이해하는 절친한 친구였다. 독신이었던 다이지는 식당 일로 늘 바빴고, 미아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머리 모양을 바꾼 채 그녀의 식당에서 서빙을 돕는다. 그러던 어느 날 다이지의 노트북으로 자신에게 온 메일을 확인하던 미아는 다이지가 가입했던 인터넷 데이트 사이트를 발견하게 되고 장난 삼아 자신의 프로필을 올려본다. 폴과 미아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프랑스나 그가 떠나온 미국에서 책의 매출은 미미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늘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가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한국에서 오는 인세 덕분이었다. 게다가 그의 작품을 번역하는 한국인 번역가 경은 일 년에 두 번 2주 동안 프랑스에서 폴과 함께 머무는 등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책을 출간한 출판사 대표는 한국에서 열리는 서울 국제 도서전에 초청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비행기표를 내민다. 비행기로 하는 장거리 여행에 공포가 있는 폴은 한국으로의 여행을 망설이게 된다. 어렵게 발을 디딘 한국에서 폴은 자신이 알고 있던 번역가 경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고 미아와의 사랑은 깊어지는데...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것처럼 자신이 지금 하고 있거나 미래에 하게 될 사랑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연애의 상대방을 선택하는 건 오직 개인의 기호와 취향의 문제일 뿐 운명적이거나 기적에 가까운 우연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경험한 사랑은 지극히 평범하거나 뻔한 계기로 서로 간의 만남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자신이 경험한 사랑이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되면 될수록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조금이라도 더 특별하거나 운명적인 사랑처럼 보이기를 열망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사랑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보편적인 사랑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을 특별하게 다룬 소설이나 영화를 탐닉하게 되는 까닭도 그런 이유이다.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사랑을 간접적으로 느껴보고 대리 만족하고자 하는 것이다.

 

소설은 아주 쉽게 읽힌다. 대화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인공 폴의 소설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한국인 번역가 경의 등장도 이채롭다. 그다지 색다를 것 없는 스토리이지만 책을 쉽게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까닭은 이야기를 구성하는 작가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빠른 전개와 소설 속 한국 번역가를 통한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스토리에 녹여내는 점도 무시하지 못할 매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특별하지 않던 사랑도 소설 속에서는 특별해진다. 매 순간 지지고 볶기만 하는 우리의 인생도 멀리서 보면 희극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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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무척이나 더운 날씨였습니다. 단순히 기온이 높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미세먼지 탓이겠지만 꿉꿉하고 탁한 느낌도 지울 수가 없었죠. 한반도에 불던 훈풍이 누군가에 의해 싸늘한 냉기로 돌변했던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지난 금요일이었죠. 다음달 12일로 예정되어 있던 북미 정상회담이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의해 한순간에 없었던 일로 돼 버리고 보니 허탈하기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비단 나만 그런 마음이었던 건 아니었을 듯합니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결정되는 중요한 순간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한반도에 드리웠던 우울한 분위기가 한순간에 걷히게 되리라는 걸. 어제 저녁 속보로 떴던 제2차 남북 정상회담 소식은 상황을 급반전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에 의한 깜짝쇼는 국민들을 위한 커다란 선물이 되었을 듯합니다. 늦은 저녁을 먹던 나도 그 소식에 숟가락을 놓고 TV 앞으로 달려갔으니까 말이죠.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듯했습니다.

 

청와대 청원 사이트에 올라온 응원글이 온 국민의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청원진행중

문재인 대통령님께 청원합니다.

참여인원 : [ 178,510명 ]

청원개요

문재인 대통령님

헌법개정안 실패, 풍계리 폭파, 북미정상회담 중지 등 오늘 하루만 해도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국가적 혹은 역사적 사건들이
좋든 싫든 결국에는 우리 국민들이 더 잘사는 나라로, 안전하고 희망이 있는 행복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줄것임을 믿습니다.

한번에 모든 일이 성사될 수는 없습니다.
반 백년에 걸쳐 지금까지도 희미하게 남아있는 냉전 분위기와 더불어 각국의 이익이 첨예하게 얽혀있는 이 순간에 저는 아니 저를 비롯한 우리 국민들은 다시 한번 우리가 뽑은 당신에게 기대를 걸려고 합니다.

당신이 1년 남짓한 시간들 속에서 보여준 모든 일들이 당신과 함께라면 역사에, 이념에, 타국의 이익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세계의 우뚝 선 대한민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증명해주었습니다.


언론이니 당리당략이니 이런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에게는 이러한 반대세력들에게 조차도 험한 말을 하며 화살을 돌리는 행위조차 당신의 철학에 맞는 일이 아닐테니까요.


이 시국에 우리 국민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당신을 믿고 응원하는 일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나 길었을 1박 4일간의 여정은 이제 우리 국민들이 이어 받겠습니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
전쟁과 혐오가 혐오대상이 되는 세상.
당신과 함께라면 꼭 오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당신에게 국민의 이름으로 청원합니다.
부디 힘을 내어주세요.

그러니 당신에게, 우리 대통령님에게 직접 청원합니다.
언제나 국민이 뒤에서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그러니 당신에게, 문재인이라는 당신에게 청원합니다.
꼭 같이 국민들 손잡고 행복하고 모두가 먼저인 세상이 도래하는 순간에 같이 눈물흘리며 부둥켜 안고 눈물 한바가지 흘려봅시다.

지난 일년과 앞으로의 4년.
그리고 특히 오늘 하루.

너무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242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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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05-27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응원하고 왔습니다^^

꼼쥐 2018-05-27 17:11   좋아요 1 | URL
이런 청원이라면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동의를 할 수 있을 듯합니다. ㅎ
북프리쿠키 님도 저와 같은 생각이셨을 듯...
 
고마네치를 위하여 - 제2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조남주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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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타고난 제 천성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마치 자신의 천성에 따라 행동하는 게 이제는 지겨워졌다고 말하기라도 하려는 듯 말이다. 줄곧 쌀쌀맞게 지내던 사람에게 살짝 어색한 미소를 띤 얼굴로 친절하게 대하기도 하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며 잔돈푼을 요구하는 노숙자의 손길에 선심 쓰듯 지폐를 건네기도 한다. 그게 비록 나의 천성도 아니고, 흔한 일상도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이 정도면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인 걸' 하는 은근히 기분 좋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일시적인 친절이나 자선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흔한 모습이라면 선량함을 타고난 사람들은 오히려 모든 게 늦되거나 어수룩하다는, 한마디로 어딘가 모자란다는 평을 감수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선량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는 선량한 사람들의 수모는 깊고 끈질기다. 당연한 듯 행해지는 그러한 폭력은 한 세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세상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세대를 넘어 끝없이 이어진다. 조남주의 소설 <고마네치를 위하여>는 일견 주인공 고마니의 성장기를 다룬 성장소설처럼 읽힌다. 그러나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작가는 우리 사회의 가장 선량한 사람들이 얼마나 지독한 삶을 살아내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강한 반론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소설이 끝나고 영화가 끝나듯 인생은 멈추어주지 않았고, 나는 눈앞에 놓인 길고 긴 시간을 건너뛰거나 내버리지 못하고 일 분 일 초 또박또박 살아내야 했다. 아마 앞으로 그럴 것이다. 그 사소한 태도들이 모여 삶을 만들고, 그 삶들이 모여 세상이 된다. 진지한 표정과 결연한 눈빛들. 누구도 행복하지 않지만 누구도 우울하지 않다. 다만 그들의 시간을 열심히 살고 있을 뿐이다." (p188~p.189)

 

서울에서 못살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S동. 고마니네 가족은 그곳에 산다. 서울 올림픽에서 굴렁쇠를 굴리던 소년에게 마음을 빼앗긴 고마니는 그날 이후로 동네 친구들과 모여 체조 연습을 한다. 그러나 집안의 물건들을 깨는 등 사고를 치는 바람에 집 밖으로 쫓겨나고 만다. 올림픽에 나가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던 마니는 친구들과 학교 뒤뜰에 모여 연습을 계속해보지만 날이 추워지면서 친구들도 하나 둘 떠나간다. 동네 체조 모임이 와해된 후에도 마니는 체조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 못한다. 이런 마니를 돕는 사람은 마니의 엄마다. 모든 게 늦되었던 마니의 엄마는 비교적 형편이 넉넉했던 집안의 외동딸로 자랐다. 조금 모자란 듯한 마니의 엄마를 위해 외가에서는 교육에 열을 올렸고 대학에도 진학시켰다. 그러나 대학생이 된 마니의 엄마는 공사 현장의 일꾼이었던 마니의 아버지를 만나 덜컥 임신을 하게 된다. 그와 같은 탄생 비화를 안고 있는 마니는 성실하지만 경제적으로 다소 무능력한 아빠와 선량하지만 나사가 하나쯤 풀린 듯한 엄마와 함께 지은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열 평짜리 주택에 살고 있다.

 

"어느 날 밤, 창 너머로 흐릿하게 반짝이는 별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그 별이 보이는 거다. 그래서 아, 내가 발견한 이 별을 나의 수호성이랄까 이정표랄까 그런 걸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 별에 이름도 붙이고, 소원도 빌고 그랬는데, 그 별이, 별이 아니라는 거다. 위성이라든가, 남산타워 불빛이라든가, 그도 아니면 그냥 비문증(飛蚊症)인 거다. 그럼 그 별에 빌었던 내 소원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 소원도 가짜가 되는 걸까. 소원은 함부로 무언가에 대고 비는 게 아니다." (p.134)

 

국가대표 체조 선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마니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체조를 배우러 학원에 간다. 그러나 그곳은 체조가 아닌 에어로빅 학원이었다. 결국 마니는 체조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지만 망신만 당하고 만다. 마니는 체조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을 살아간다. 20대 때에는 서너 번의 연애를 경험했고, 취직을 했고,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을 십 년간 이어간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해고를 당한다. 과일가게에서 채소가게로, 붕어빵을 팔고, 구멍가게를 거쳐 지금은 혼자 떡볶이와 튀김을 팔고 있는 아빠를 대신하여 십여 년간 실질적인 가장이나 다름없었던 마니. 직장에서 해고되었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차마 말할 수 없었던 마니는 그 사실을 숨긴 채 한동안 여느 날과 똑같이 집을 나선다.

 

"아저씨, 아저씨는 친절할 뿐 아니라 지혜로우세요. 하룻밤 자고 다음날 새벽에 다시 나가는 생활. 지루하기도 하고, 버겁기도 하고, 도망치고 싶기도 했던 그 평범한 일상이 끝났다.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걸까. 선로는 여기서 끊긴 걸까. 그럼 이제 나는?" (p.52)

 

재개발, 재건축, 뉴타운 등 비슷한 이름으로 진행되던 재개발 사업이 S동에서도 추진된다. 아파트에 살게 된다는 꿈에 부푼 마니의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여기저기 도장을 찍고 다닌다. 그러나 말만 무성할 뿐 아파트가 들어서려면 앞으로도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결국 마니네 가족은 집을 팔고 이사를 하기로 결심한다. 분양받은 새 아파트에서 살아보겠다던 엄마의 꿈도, 국가대표 체조 선수가 되겠다던 마니의 꿈도 현실이라는 높은 벽에 가로막힌 셈이었다.

 

"내가 아는 모든 어른은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원장도 그렇고, 코치도 그런 것 같고, 자세히 얘기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엄마와 아버지도 아마 다른 꿈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꿈을 이루지 못한 어른 중 한 명이 되었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실패 이후의 삶을 살아낸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p.152)

 

남들보다 조금 더 똑똑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선량한 사람들의 아주 작은 꿈을 지켜주지 못한다. 지켜주겠다는 의지조차 없을 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들의 나약하고 착한 심성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울 수 있을까 궁리한다. 도시는 그런 사람들이 모인 욕심의 결집체이다. 그러므로 남을 이용할 줄 모르는 선량한 사람들은 무능하다는 꼬리표를 달고 그들로부터 아주 먼 곳으로 쫓겨나곤 한다. 그러나 그들을 향해 비정하다고 말하지는 말자. 비정하다는 말은 내가 그렇지 않을 때 타인을 향해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러한데 '비정하다'는 말을 어찌 쓸 수 있을까.

 

"소설이 끝나고 영화가 끝나듯 인생은 멈추어주지 않았고, 나는 눈앞에 놓인 길고 긴 시간을 건너뛰거나 내버리지 못하고 일 분 일 초 또박또박 살아내야 했다. 아마 앞으로 그럴 것이다. 그 사소한 태도들이 모여 삶을 만들고, 그 삶들이 모여 세상이 된다. 진지한 표정과 결연한 눈빛들. 누구도 행복하지 않지만 누구도 우울하지 않다. 다만 그들의 시간을 열심히 살고 있을 뿐이다." (p188~p.189)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도 다 가고 있다. 넝쿨장미가 흐드러진 어느 집 담벼락에도 욕심의 짙은 그림자는 지워지지 않는다. 꽃을 심고 나무를 가꾸는 이유도 자신의 추한 욕심을 어찌어찌 가려보려는 얕은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시나브로 녹음이 짙어지는 계절, 주변부로 밀려나는 선량하고 나약한 사람들을 위해 누군가는 작은 그늘이라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이따금 자신의 천성에 반하여 작은 친절이나 한번뿐인 자선을 베풀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됐다거나 충분하다 여기며 평생을 산다. 그 모든 게 위선이라는 것도 모르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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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기척도 없이 계절이 오고 또 간다. 도시에서 맞는 계절의 순환은 늘 그런 식이다. 덥다 싶으면 니도 모르게 차량 에어컨을 틀게 되고, 춥다 싶으면 히터를 틀기도 하고,우루루 떼를 지어 꽃놀이를 가기도 하고, 단풍놀이를 가기도 하면서 어름어름 계절을 가늠하는 것이다.

 

올해는 예년과 다르게 봄비가 잦았다. 그 덕분에 지독한 미세먼지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었고, 이른 더위로부터 한 발 물러날 수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여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새벽까지 내리던 비는 완전히 멎고 초여름 햇살이 강하게 쏟아졌다. 은사시나무의 여리고 둥근 잎들이 하늘하늘 흔들릴 때마다 투명한 햇살이 좁은 틈새를 비집고 새어 들었다.

 

오늘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9주기 추도식이 있었던 날, 묘하게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첫 재판이 열렸다. 추도식을 찾았던 많은 사람들에 비하여 이명박 전 대통령의 법정 방청석은 그에 대한 미움을 반영한 듯 그야말로 휑뎅그렁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을 현실에서 내가 실감했던 건 따로 있었다. 교통위반 딱지를 끊기 위해 은밀한 곳에 숨어 있던 경찰관들을 보기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교통위반 단속을 하는 게 사고의 예방 차원이 아니라 마치 부족한 세수를 보충하기 위한 꼼수로 비쳤었는데 그런 모습들이 보이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지도자 한 명 바뀌었을 뿐인데 나라 전체가 달라지는 걸 보면서 투표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오늘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9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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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늙은 여자 - 알래스카 원주민이 들려주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짐 그랜트 그림, 김남주 옮김 / 이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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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생각나는 이름 하나가 있다. 세월의 풍화를 견디기에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그 이름은 좀체 지워지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그림자처럼 희미해지다가도 부지불식간에 튀어 오르곤 하는 이름.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 사람의 이름을 나는 왜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스스로의 판단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어린 시절에 단지 귀동냥으로만 들었던 어른들의 대화 속에서 그 사람의 이름이 반복해서 등장했던 탓인지도 모른다.

 

그의 이름은 김창선이라고 했다. 1967년 9월 7일 충남 청양의 구봉 광산에서 근무했던 그는 불의의 매몰 사고를 당했고 갱에 갇힌 지 15일 8시간 35분만에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구조 기술이나 장비가 신통치 않았던 당시로서는 무사 구조를 장담할 수 없었기에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매체는 구조 현장에 집결했고, 대통령을 비롯한 온 국민의 시선이 그곳에 쏠렸다고 했다. 최장의 매몰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던 그의 사고와 구조 과정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덧붙여지고 크게 부풀려졌던 그의 이야기는 광산촌 주민들의 영웅담이 되었다.

 

벨마 월리스가 쓴 <두 늙은 여자>는 내 어린 시절의 영웅으로 자리 잡았던 그 이름 '김창선'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성장했던 강원도의 광산촌에는 언제나 죽음의 그림자가 곳곳에 드리워져 있었던 까닭에 불굴의 의지로 죽음을 이겨낸 '김창선'과 같은 무용담이 광부들의 가슴에는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로 작용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마도 '김창선'을 되뇌면서 암울한 미래와 죽음의 공포를 어렵게 이겨냈을 터였다.

 

"그래 죽음이라는 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우리가 약점을 보이는 순간 우리를 움켜쥘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말이야. 나는 당신과 내가 겪을 그 어떤 고통보다도 그런 죽음이 두려워. 어차피 죽을 거라면, 우리 뭔가 해보고 죽자고!"    (p.45)

 

작가가 들려주는 '사'와 '칙디야크'의 이야기는 알래스카 인디언 부족에 전해오는 삶과 고난 극복의 무용담이다. 그것이 비록 시대를 특정할 수 있는 사실이든 아니든, 특정 문화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이야기든 아니든 굳이 따지고 배척할 필요는 없을 듯 보인다.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이야기에는 반드시 세월을 이겨낸 무겁고 단단한 교훈과 특별한 삶의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책의 주인공인 '사'와 '칙디야크'는 부족의 젊은 사람들로부터 보살핌을 받던 한낱 연약한 노인이었다. 혹독한 추위가 몰려왔던 어느 해 겨울, 사냥조차 어려웠던 부족은 급기야 두 노인을 버려둔 채 이동하기로 결정한다. 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와 '칙디야크'에게 남겨진 것은 '칙디야크'의 손자가 두고 간 손도끼와 딸이 남겨준 사슴 가죽끈 한 다발이 전부였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자'는 '사'의 말에 '칙디야크'도 용기를 낸다.

 

"사는 자신 같은 사람, 짐승, 나아가 나무까지 압도하는 대지의 힘에 감탄했다. 그들 모두는 대지에 의존하고 있었다. 대지의 법칙에 복종하지 않는 부주의하고 무가치한 생명에는 즉각 죽음이 닥칠 터였다."    (p.60)

 

사냥감이 풍부했던 옛 기억 속의 장소를 찾아 '사'와 '칙디야크'는 혹독한 추위와 싸우면서 이동을 계속한다. 젊은 사람들의 보살핌만 받아오던 그들이 혹독한 자연과 맞서 싸워나가는 과정은 참으로 눈물겨웠다. 그러나 그들은 불굴의 의지로 겨울을 이겨냈고, 봄이 오고 따뜻한 여름이 왔음에도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식량과 땔감을 비축했다. 다시 겨울이 오고 견디기 어려운 추위가 그들을 괴롭힐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칙디야크는 친구에게 다가가 한쪽 팔을 둘렀다. 그들은 강렬한 감동에 싸인 채 말없이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지난날 친구, 가족과 더불어 그곳에서 행복했던 추억이 그들의 기억 속에 되살아났다. 이제는 자기네 부족에게 배신당하고 단둘이 이곳에 오다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p.72)

 

1년 만에 부족을 이끌고 돌아온 족장은 두 노인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을 내보낸다. 며칠을 헤매던 부족원들은 두 노인이 여전히 살아 있으며 많은 식량을 비축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여전히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던 부족을 위해 '사'와 '칙디야크'는 자신들이 비축한 식량과 도구를 내어준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들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는다. 부족의 사람들이 '사'와 '칙디야크'의 거처를 오가면서 불굴의 의지와 용기로 목숨을 건진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부족원들은 두 노인에게 진심을 담은 존경과 신뢰를 표한다. 그에 따라 '사'와 '칙디야크'의 경계심도 조금씩 누그러지고 마침내 '칙디야크'의 딸과 손자와의 상봉도 성사된다.

 

"몸이 음식을 필요로 한다면, 마음은 친구를 필요로 하지."    (p.84)

 

책에서든 현실에서든 살다 보면 잊히지 않는 이름들이 하나 둘 생겨나곤 한다.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존 프란시스가 그렇고, <예언자>를 쓴 칼릴 지브란이 그렇고, 법정 스님이나 이해인 수녀님이 그렇다. 나와는 상관도 없을 듯한 닥터 노먼 베쑨이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그렇기도 하다. 어쩌면 그런 잊히지 않는 이름들이 모여 나의 영혼을 이만큼 성장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런 이름들과 함께 '사'와 '칙디야크'라는 낯선 이름이 나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처럼 서늘한 바람이 부는 초여름의 어느 날이면 그런 낯선 이름을 우연히 떠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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