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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늙은 여자 - 알래스카 원주민이 들려주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짐 그랜트 그림, 김남주 옮김 / 이봄 / 2018년 4월
평점 :
이따금 생각나는 이름 하나가 있다. 세월의 풍화를 견디기에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그 이름은 좀체 지워지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그림자처럼 희미해지다가도 부지불식간에 튀어 오르곤 하는 이름.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 사람의 이름을 나는 왜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스스로의 판단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어린 시절에 단지 귀동냥으로만 들었던 어른들의 대화 속에서 그 사람의 이름이 반복해서 등장했던 탓인지도 모른다.
그의 이름은 김창선이라고 했다. 1967년 9월 7일 충남 청양의 구봉 광산에서 근무했던 그는 불의의 매몰 사고를 당했고 갱에 갇힌 지 15일 8시간 35분만에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구조 기술이나 장비가 신통치 않았던 당시로서는 무사 구조를 장담할 수 없었기에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매체는 구조 현장에 집결했고, 대통령을 비롯한 온 국민의 시선이 그곳에 쏠렸다고 했다. 최장의 매몰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던 그의 사고와 구조 과정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덧붙여지고 크게 부풀려졌던 그의 이야기는 광산촌 주민들의 영웅담이 되었다.
벨마 월리스가 쓴 <두 늙은 여자>는 내 어린 시절의 영웅으로 자리 잡았던 그 이름 '김창선'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성장했던 강원도의 광산촌에는 언제나 죽음의 그림자가 곳곳에 드리워져 있었던 까닭에 불굴의 의지로 죽음을 이겨낸 '김창선'과 같은 무용담이 광부들의 가슴에는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로 작용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마도 '김창선'을 되뇌면서 암울한 미래와 죽음의 공포를 어렵게 이겨냈을 터였다.
"그래 죽음이라는 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우리가 약점을 보이는 순간 우리를 움켜쥘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말이야. 나는 당신과 내가 겪을 그 어떤 고통보다도 그런 죽음이 두려워. 어차피 죽을 거라면, 우리 뭔가 해보고 죽자고!" (p.45)
작가가 들려주는 '사'와 '칙디야크'의 이야기는 알래스카 인디언 부족에 전해오는 삶과 고난 극복의 무용담이다. 그것이 비록 시대를 특정할 수 있는 사실이든 아니든, 특정 문화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이야기든 아니든 굳이 따지고 배척할 필요는 없을 듯 보인다.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이야기에는 반드시 세월을 이겨낸 무겁고 단단한 교훈과 특별한 삶의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책의 주인공인 '사'와 '칙디야크'는 부족의 젊은 사람들로부터 보살핌을 받던 한낱 연약한 노인이었다. 혹독한 추위가 몰려왔던 어느 해 겨울, 사냥조차 어려웠던 부족은 급기야 두 노인을 버려둔 채 이동하기로 결정한다. 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와 '칙디야크'에게 남겨진 것은 '칙디야크'의 손자가 두고 간 손도끼와 딸이 남겨준 사슴 가죽끈 한 다발이 전부였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자'는 '사'의 말에 '칙디야크'도 용기를 낸다.
"사는 자신 같은 사람, 짐승, 나아가 나무까지 압도하는 대지의 힘에 감탄했다. 그들 모두는 대지에 의존하고 있었다. 대지의 법칙에 복종하지 않는 부주의하고 무가치한 생명에는 즉각 죽음이 닥칠 터였다." (p.60)
사냥감이 풍부했던 옛 기억 속의 장소를 찾아 '사'와 '칙디야크'는 혹독한 추위와 싸우면서 이동을 계속한다. 젊은 사람들의 보살핌만 받아오던 그들이 혹독한 자연과 맞서 싸워나가는 과정은 참으로 눈물겨웠다. 그러나 그들은 불굴의 의지로 겨울을 이겨냈고, 봄이 오고 따뜻한 여름이 왔음에도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식량과 땔감을 비축했다. 다시 겨울이 오고 견디기 어려운 추위가 그들을 괴롭힐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칙디야크는 친구에게 다가가 한쪽 팔을 둘렀다. 그들은 강렬한 감동에 싸인 채 말없이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지난날 친구, 가족과 더불어 그곳에서 행복했던 추억이 그들의 기억 속에 되살아났다. 이제는 자기네 부족에게 배신당하고 단둘이 이곳에 오다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p.72)
1년 만에 부족을 이끌고 돌아온 족장은 두 노인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을 내보낸다. 며칠을 헤매던 부족원들은 두 노인이 여전히 살아 있으며 많은 식량을 비축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여전히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던 부족을 위해 '사'와 '칙디야크'는 자신들이 비축한 식량과 도구를 내어준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들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는다. 부족의 사람들이 '사'와 '칙디야크'의 거처를 오가면서 불굴의 의지와 용기로 목숨을 건진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부족원들은 두 노인에게 진심을 담은 존경과 신뢰를 표한다. 그에 따라 '사'와 '칙디야크'의 경계심도 조금씩 누그러지고 마침내 '칙디야크'의 딸과 손자와의 상봉도 성사된다.
"몸이 음식을 필요로 한다면, 마음은 친구를 필요로 하지." (p.84)
책에서든 현실에서든 살다 보면 잊히지 않는 이름들이 하나 둘 생겨나곤 한다.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존 프란시스가 그렇고, <예언자>를 쓴 칼릴 지브란이 그렇고, 법정 스님이나 이해인 수녀님이 그렇다. 나와는 상관도 없을 듯한 닥터 노먼 베쑨이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그렇기도 하다. 어쩌면 그런 잊히지 않는 이름들이 모여 나의 영혼을 이만큼 성장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런 이름들과 함께 '사'와 '칙디야크'라는 낯선 이름이 나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처럼 서늘한 바람이 부는 초여름의 어느 날이면 그런 낯선 이름을 우연히 떠올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