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안개의 풍경 스가 아쓰코 에세이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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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한 해 해가 가면 갈수록 문학적 수사나 기교가 없는 담백한 글이 좋아진다. 물론 젊은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전에 본 적 없는 화려한 수사의 문장을 접할 때마다 노트 한 귀퉁이에 적어 두거나 편지 상단의 계절 인사말로 써먹거나 하는 식으로 시간이 지나도 어떻게든 잊지 않으려 애를 쓰곤 했었다. 그러다 보니 화려함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길 없는 담백한 글에는 시선이 가지 않았다. 말하자면 책의 내용보다는 문장의 화려함에 이끌리곤 했던 것이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았다고나 할까.

 

스가 아쓰코의 에세이 <밀라노, 안개의 풍경>은 담백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딱 들어맞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보는 것처럼 반복해서 읽어도 지겹다거나 지루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등단했던 그녀는 '이미 완성된 작가'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탄탄한 실력을 갖춘 작가였지만 팔 년 후 세상을 떠나기까지 단 다섯 권의 에세이만을 세상에 남겼을 뿐이다. 그러나 전통과 구습에 얽매인 고국에서의 생활에 갑갑함을 느끼고 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세계를 향해 동경을 품었던 작가가 1960년대에 이미 유학과 국제결혼이라는 파격적인 선택을 감행하였다는 사실과 2차 세계대전 직후 십삼 년간 이탈리아 밀라노에 거주하며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유럽의 모습은 꽤나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마치 기억의 올들을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풀어내고 잇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무심코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루를 올려보았다가 나는 실로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저녁해를 가득 받은 종루의 크고 작은 종들 아래 가로대 위에서 한 사내가 양쪽 손발을 사용해 춤을 추듯, 공중을 헤엄치듯 움직이고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 본 광경이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면 사내의 모습과 함께 그의 온몸에서 솟아나는 듯한, 밀려왔다가 물러가는 파도처럼 여러 겹으로 포개지고 사방으로 흩어지며 축일을 알리는 종소리가 떠오른다. 저 멀리 해가 뉘엿뉘엿한 평야를 뒤덮는 연보랏빛 안개와 함께." (p.42~p43)

 

<밀라노, 안개의 풍경>에는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사상과 문화를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사유했던 청춘의 한 자락과 2차 대전 직후 유럽 대륙을 휩쓸었던 카톨릭 학생운동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 국적을 초월하여 자신과 함께 순수했던 청춘의 기쁨과 슬픔을 공유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 그리고 작가가 심취하고 동경했던 움베르토 사바, 알렉산드리아 만초니 등 이탈리아의 여러 문호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후 이십대의 젊은이였던 그들이 카톨리시즘을 보편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하자며 시작한 운동보다 사회변혁의 보폭이 훨씬 커서, 서점 친구들이 한순간 목표를 잃은 듯 보이던 무렵이었다. 나와 처음 만난 날 제노바 역으로 함께 마중나왔고 나중에는 나의 남편이 된 페피노가 1967년 마흔하나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며, 유력한 대변자를 잃은 가티의 처지는 더욱 악화되었다. 그 무렵 서점은 경영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성장해 있었지만 출판을 책임지던 가티가 슬럼프에 빠져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니 당연히 출판 부문은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 상태였다." (p.102~p.103)

 

스가 아쓰코의 에세이가 독자의 마음을 붙드는 이유는 밀라노의 안개처럼 모호하고 여러 겹으로 중첩되는 면이 있다. 작가가 경험했던 젊은 시절의 추억을 쫓아가다 보면 독자들 역시 아슴아슴 자신의 추억 속으로 스며들기도 하고, 다시 오지 않을 청춘의 한 페이지를 작가와 함께 경험하다 보면 그게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아련한 슬픔이 되어 밀려오기도 한다. 책에서 나열되는 밀라노의 한 장면이 독자가 겪었던 구체적인 한 장면으로 치환되기도 하고, 그 순간 책장을 훑던 손가락도 방향을 잃고 만다. 어쩌면 오래된 흑백 사진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지도 모른다.

 

"오래된 사진 한 장. 한여름 태양이 내리쬐는 제노바 기념묘지의 하얀 대리석 계단 위에서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내가 흰색 투피스를 입고 희미하게 웃고 있다. 일본을 떠난 지 사십 일째인 1953년 8월 10일 아침, 이탈리아에 막 상륙한 참이었다." (p.133)

 

이십대 말에서 사십대 초, 인생의 한창때를 회상하는 작가의 글은 강물에 찰랑이는 물비늘처럼 곱디곱다. 그 시절의 추억은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말이다. 때로는 영화나 연극의 한 장면처럼, 그 시절 읽었던 책 속 한 구절처럼, 다정했던 사람의 낮은 목소리처럼 정겹다. 나이듦이 두렵지 않은 까닭 역시 현실의 고단함으로부터 우리의 눈길을 빼앗는 아름다운 추억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설 연후의 후유증이 밀라노의 안개처럼 잔득하게 달라붙는 금요일 오후, 스가 아쓰코의 추억 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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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연휴의 여파는 기껏 마련한 제사 음식이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는 연휴 끝물부터 시작된다. 다들 기진한 몸으로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과 연휴의 마지막 날까지 알뜰하게 연휴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묘한 뒤섞임이 변덕스러운 날씨만큼이나 어지러운 건 지난해나 올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풍경이었다. 설 전날 올해 고등학생이 되는 아들과 함께 이천에 사는 큰형 집으로 향했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갑자기 서울 어머니 집으로 모이게 되었다. 왁자한 분위기에 쉽게 동화될 수 없었던 나는 방 한켠의 조용한 곳을 찾아 준비해 간 책을 꺼내 읽었다.

 

설날 점심 무렵 아들과 함께 서울대학교에 들러 학교 곳곳을 돌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중앙도서관 앞의 잔디밭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가방을 멘 학생들이 도서관을 향해 끝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하루쯤 쉬어도 괜찮으련만 설날 당일에도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 도서관을 찾는 많은 학생들. 그들의 어깨가 천근만근 무거워 보였다. 어느 대학을 졸업하건 취업이라는 벽 앞에선 속수무책인 듯 보였다. 어렵다는 취업 관문을 통과한들 세상살이가 갑자기 쉬워지는 건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역시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하겠지.

 

연휴를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한 오늘. 그닥 힘든 일도 없었는데 하루의 피로가 어깨를 짓누른다. 포근하던 날씨는 찬바람이 불며 기온이 크게 떨어졌다. 전국에 한파주의보가 발령되려나 보다. 불현듯 윤대녕의 소설 '대설주의보'가 떠오른다. 살다 보면 돌변하는 날씨만큼이나 가팔라지는 삶의 파도를 넘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무슨 무슨 주의보' 발령을 내려줬으면 좋겠다. 누군가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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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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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독자가 책에서 기대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재미와 교훈. 그러나 이게 언제나 공평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어서 어떤 책은 재미 쪽으로 극단적으로 기울거나 또 어떤 책은 교훈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마치 윤리 교과서에 약간의 스토리를 얹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물론 책을 읽는 독자도 자신의 취향에 따라 재미를 우선순위에 두기도 하고 교훈을 위주로 책을 선택하기도 할 것이다. 물론 책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아주 두꺼운 책도 끝까지 읽어내도록 하는 것은 온전히 재미라 말할 수 있고 책을 다 읽은 후 뭔가 뻐근한 느낌이 들도록 하는 것은 교훈인 까닭에 재미와 교훈 중 어느 것 하나도 무시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지만 말이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우리와 당신들(Us against you)>은 재미와 교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무척이나 애쓴 작품이 아닌가 싶다. 평범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작가가 교훈을 더 염두에 두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두 요소는 서로 상충되는 면이 없지 않아서 재미만 강조하면 교훈이 퇴색하는 느낌이 들고 교훈을 강조하면 반대로 재미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재미를 추구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너무 진지하게 임하는 바람에 살짝 다큐가 된 느낌이랄까. 두꺼운 철학책도 무리 없이 읽어내는데 그깟 재미쯤이야 조금 덜하면 어떠냐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인생은 우라지게 희한한 것이다. 우리는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가며 인생의 여러 가지 측면을 관리하려고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인생의 대부분을 규정한다. 우리는 이해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가장 좋았던 기억도, 가장 나빴던 기억도. 이해는 언제까지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 중 누구는 이사를 가겠지만 대부분은 여기에 남을 것이다. 이곳은 복잡하지 않은 곳이 아니지만 어른이 되어보면 어디든 그렇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베어타운과 헤드에 얼마나 많은 허점이 있는지 하늘도 알고 땅도 알지만 그들은 우리 마을이다. 여기가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의 모퉁이다." (p.595)

 

이 책은 지난해 발간된 <베어타운>의 후속작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도 베어타운이고 전작에서 마을의 하키팀 에이스였던 케빈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마야와 그 주변 사람들도 그대로 등장한다. 자신의 딸 마야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사는 워킹맘 미라와 하키팀 단장이자 마야의 아빠이기도 한 페테르, 마야의 절친인 아나...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작가는 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갈등과 분열, 화해와 용서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케빈에게 성폭행을 당한 마야는 이젠 더 이상 성폭행을 당하는 꿈을 꾸지 않지만, 동생인 레오는 누나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밤마다 긁는 버릇이 생겼고, 언제든 복수를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겠다고 생각한다. 마리 역시 자신의 딸에게 일어났던 끔찍한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도 혹시 다른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게다가 청소년 하키팀의 유망주였던 아맛 역시 케빈의 성폭행 사실을 증언하는 바람에 모든 것을 잃고 방황하는 등 그날의 상처는 마을 전체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 그들이 사는 베어타운 역시 청소년 아이스하키팀을 육성하여 마을 경제를 살려보려 했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헛돈다.

 

마야의 아버지이자 베어타운 하키팀의 단장인 페테르는 하키팀을 재건하고 마을을 살리기 위한 방안을 찾아 동분서주한다. 하키팀의 후원금이 절실했던 페테르는 베어타운 지역구 의원인 리샤르드 테오와 접촉하고, 신임 코치로 사켈을 영입하며, 하키팀의 팀원도 일신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 간의 불신과 알력, 온갖 소문과 억측, 혼란을 이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으려는 획책과 술수가 난무한다.

 

"팀 스포츠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단체의 일원이 되고 싶어서일까? 어떤 사람에게는 이유가 단순하다. 또 하나의 가족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애초에 가족이 없었던 사람에게는 팀이 가족일 수 있다." (p.472)

 

사켈에 의해 새로 구성된 베어타운의 아이스하키 팀 멤버는 오직 개인이 갖고 있는 실력만으로 선발된 까닭에 범죄 전과가 있는 비다르마저 포함되게 되었고 주장을 맡은 벤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마을 사람들은 또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벤이를 옹호하는 사람들과 벤이를 배제해야 한다는 사람들.

 

"베어타운에서는 누가 세상을 떠나면 가장 아름다운 나무 아래에 묻는다. 다들 말없이 슬퍼하고 조용히 이야기하며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걸 훨씬 쉽게 생각한다. 이곳에는 좋은 사람들도 살고 나쁜 사람들도 살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지는데, 그 둘을 구분하기가 쉬운 것만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좋은 사람인 동시에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 (p.515)

 

우리 사회에서도 자신과 신념이 같은 사람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도 조금이라도 의견이 다르면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결속력이 강하고 인원이 적을수록, 못 배우고 다양한 사회 계층과의 소통이 어려울수록, 종교적 신념이나 공동체의 목표가 뚜렷할수록 그러한 경향은 강화된다. 소위 태극기 부대와 같은 일부 극우 집단이나 워마드와 같은 남성 혐오 집단, 그리고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일베 회원들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일상에서도 그들은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공격성을 보이게 될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누구보다도 순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에게는 언제나 선과 악의 양면성이 공존하는 까닭에 어느 쪽에 더 많은 영양분을 주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과 성향이 결정된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는 베어타운의 주민을 통해 인간 본성과 차별, 혐오, 집단 이기주의 등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런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서로의 단점을 보듬으며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베어타운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축소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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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엉뚱한 곳에서 뜻밖의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된다. 예컨대 창의력이라고 하면 예술 분야나 과학 등 특정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특별한 능력쯤으로 생각될 뿐 법과 증거에 의거하여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에게는 그닥 필요하지도 않고 그럴 만한 능력도 없다는 게 보편적인 시각이 아닐까. 물론 작가보다 더 작가 같은 문유석 판사와 같은 특별한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며칠 전, 창의력이라면 내가 문유석 판사보다 한 수 위라고 주장하는 판사 한 명이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마치 판사계에서 창의력 짱은 나라고 선언이라도 하려는 듯.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고 했던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처럼 그도 역시 일약 스타가 되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성. 창.호.! 뭔가 아우라가 풍기지 않는가. 그는 김경수 지사의 재판에 있어 전례가 없는 창의적인 재판을 했다. 법과 원칙, 그리고 법관의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한다는 일반인들의 상식을 뒤집고 그는 오직 추측과 상상력, 자신의 이념에 따라 전무후무한 판결을 내렸다. 이보다 더 창의적인 재판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그의 판결문에는 개인적인 추측과 예단을 나타내는 말 '~로 보인다'는 말이 무려 81번이나 등장한다. 소설을 업으로 하는 소설가도 이와 같은 짧은 글에 그만한 상상력을 발휘하기는 힘들 듯하다. 그는 어쩌면 판사라는 직업보다는 소설가에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증거도 없이 오직 자신이 쓴 한 편의 소설을 근거로 김경수 지사를 재판했으니 말이다. 그의 능력으로 볼 때 판사를 사임하는 순간 신춘문예에 응모만 하면 작가로 등단하는 건 떼놓은 당상이 아닐까. 적극 권하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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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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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학생들이 하는 가장 많은 불평불만은 취약한 과목의 학습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아니었을까. 예컨대 "난 커서 장사나 할 건데 돈 계산이나 할 줄 알면 되지 미적분은 도대체 왜 배우는 거야?"라거나 "소크라테스니 니체니 하는 개똥철학을 배워서 도대체 어디다 써먹겠다는 거야?"라는 식의 불만에 찬 말들은 누구나 한 번쯤 내뱉었음직한 불평이었을 것이다. 물론 학생들의 선호나 관심에 따라 불평의 대상이 되는 과목은 각자 달랐겠지만 말이다. 누구에게는 수학이, 누구에게는 과학이, 또 누구에게는 윤리나 철학이, 때로는 사회나 국어가...

 

일본의 유명한 컨설턴트인 야마구치 슈의 저서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읽는 독자라면 먼저 자신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철학이라면 진절머리가 났던 사람이라면 더욱더. 그러나 이 책은 서양 철학을 시간 순서로 요약한 철학 입문서는 아니다. 자신이 속한 모임에 나가 자신의 학식을 부풀리기 위한 목적으로 달달 외우게 되는 그런 책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를테면 "니체 하면 '신은 죽었다'라는 말이 떠오른다'는 둥 어떻게든 자신의 얕은 지식을 들키지 않기 위한 방안으로서 철학을 공부했던 사람들이 생각하는 철학의 효용은 이 책에서 논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철학이라면 으레 자신의 무식을 가리기 위한 치장으로서 생각했던 까닭에 철학은 실용적인 학문이라기보다는 항상 현실과는 동떨어진, 학문으로서의 학문으로만 존재하는 듯하다.

 

"철학 등의 교양이 소홀히 다뤄진 원인 중에는 철학 연구자들의 태만도 있다. 원래 철학은 무기로서, 혹은 도구로서 상당히 유용한데도 그 쓸모에 대해 계몽이나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그들이 해 온 일을 들여다보면 철학에 관해 작성한 문헌은 고작 자신들의 철학과 사상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독선적으로 주장하는 전단지 광고에 불과하거나, 그도 아니면 전문가들에게만 통하는 설계도 해설 아니면 자기네들끼리 나누는 고생담이 대부분이었다." (p.34)

 

책의 목차를 보면 책의 내용을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철학을 배우는 새로운 방법과 왜 철학 앞에서 좌절하는가? 를 설명한 1부 '무기가 되는 철학'에 이어 이 책의 본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 2부 '지적 전투력을 극대화하는 50가지 철학·사상'에서는 1장 '사람'에 관한 핵심 콘셉트, 왜 이 사람은 이렇게 행동할까?, 2장 '조직'에 관한 핵심 콘셉트, 왜 이조직은 바뀌지 않을까?, 3장 '사회'에 관한 핵심 콘셉트,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4장 '사고'에 관한 핵심 콘셉트, 어떻게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의 순서로 쓰여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철학 이론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일상에서 철학을 쉽게 접목할 수 있을까를 연구한 실용서로서의 철학이다.

 

"우리는 외부의 현실과 자신을 각각 별개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이를 부정했다. 외부의 현실은 우리가 어떤 시도를 하느냐에 따라, 혹은 하지 않느냐에 따라 '그러한 현실'이 된 것이므로 외부의 현실은 곧 '나의 일부'이고 나는 '외부 현실의 일부'다. 즉 외부의 현실과 나는 결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 현실을 자신의 일로 주체적으로 받아들여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태도, 즉 앙가주망이 중요하다." (p.96)

 

우리는 종종 자신이 속한 조직을 등한시하거나 조직의 문제는 자신의 책임과는 무관한 어떤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한 경향은 직급이 낮을수록 강화된다. 어쩌면 우리는 조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임원을 비롯한 소수의 몇몇 사람만 가능한 일이라고 단정하거나 그렇게 믿는 까닭에 자신은 그저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파편화된 부속품쯤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조직의 혁신이 어중간한 상태에서 흐지부지 좌절되고 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경영자, 간부, 실무자를 나란히 놓고 보면 환경 변화의 전망을 바라보는 사정거리가 경영자, 간부, 실무자의 순서로 점점 짧아진다. 경영자는 적어도 10년 앞의 일을 내다보지만 간부는 기껏해야 5년, 실무자는 1년 후의 일만 내다볼 뿐이다. 그러니 10년 앞을 내다보는 경영자라면 머지않아 다가올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변혁의 필요성을 늘 의식하겠지만, 눈앞에 닥친 일에만 매진하는 간부나 현장 책임자는 자세한 설명 없이 이대로는 위험하니 방식과 방향을 바꾸라는 지적을 받으면 충분한 해동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채 바로 혼란기로 돌입하게 된다." (p.152)

 

오늘날 기업 경영의 가장 큰 화두는 '혁신'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우리는 복잡한 현상에 매몰되어 본질을 외면하거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이 없다. 우리가 본질을 파악하고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학문이 철학이며 과거 철학자들이 세상과 인간을 향해 던졌던 질문을 통해 우리는 지금 눈앞에 닥친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생각의 틀을 배울 수 있다. 가뜩이나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가 보는 현상에만 휩쓸리면 해결책은커녕 문제의 본질마저 파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러므로 경영 전반에 걸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마다 현실의 상황을 철학이나 심리학, 경제학 개념에 대입하여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철학 · 사상에 관한 용어가 바로 그러하다. 이들 용어는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의 앞머리에서 언급한 대로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나 현상을 더욱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을 길러 준다. 개념이 통찰력을 길러 줄 수 있는 것은, 개념이 바로 새로운 세계를 파악하는 관점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p.297)

 

철학이 때로는 우리의 무식을 가려주는 방어막이 되기도 한다.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철학을 하는 주된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철학의 효용이 너무 일방적으로 좁혀진 듯한 느낌이 들고, 우리가 철학의 다양한 효용을 미처 배워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라고 했던 앨런 케이의 말처럼 우리는 시시각각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한 변화의 조류 속에서 조금이라도 방심하거나 현상에만 현혹되면 우리는 금세 도태되고 만다. 본질을 파악하고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방식, 혹은 방향을 안내하는 길잡이로서 철학보다 유용한 학문은 없다. 우리가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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