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의 여파는 기껏 마련한 제사 음식이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는 연휴 끝물부터 시작된다. 다들 기진한 몸으로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과 연휴의 마지막 날까지 알뜰하게 연휴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묘한 뒤섞임이 변덕스러운 날씨만큼이나 어지러운 건 지난해나 올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풍경이었다. 설 전날 올해 고등학생이 되는 아들과 함께 이천에 사는 큰형 집으로 향했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갑자기 서울 어머니 집으로 모이게 되었다. 왁자한 분위기에 쉽게 동화될 수 없었던 나는 방 한켠의 조용한 곳을 찾아 준비해 간 책을 꺼내 읽었다.

 

설날 점심 무렵 아들과 함께 서울대학교에 들러 학교 곳곳을 돌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중앙도서관 앞의 잔디밭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가방을 멘 학생들이 도서관을 향해 끝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하루쯤 쉬어도 괜찮으련만 설날 당일에도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 도서관을 찾는 많은 학생들. 그들의 어깨가 천근만근 무거워 보였다. 어느 대학을 졸업하건 취업이라는 벽 앞에선 속수무책인 듯 보였다. 어렵다는 취업 관문을 통과한들 세상살이가 갑자기 쉬워지는 건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역시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하겠지.

 

연휴를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한 오늘. 그닥 힘든 일도 없었는데 하루의 피로가 어깨를 짓누른다. 포근하던 날씨는 찬바람이 불며 기온이 크게 떨어졌다. 전국에 한파주의보가 발령되려나 보다. 불현듯 윤대녕의 소설 '대설주의보'가 떠오른다. 살다 보면 돌변하는 날씨만큼이나 가팔라지는 삶의 파도를 넘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무슨 무슨 주의보' 발령을 내려줬으면 좋겠다. 누군가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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